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1005)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05화
너덜너덜해진 헥토르의 몸에, 뱀의 형상을 한 관리자의 몸이 뒤섞이며 육체가 재구축되기 시작했다.
꾸드득.
꾸득.
신체 구조가 뒤바뀌고 체형이 틀어진다.
[그만두고 싶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헥토르의 어깨 너머로 뱀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악마 같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진다.
[분수에 맞지 않는 천재를 라이벌로 삼아 불행에 빠지다니. 돌이켜 보면 너는 이미 많은 걸 가졌어. 명문 가문으로 태어났고, 부족함 없이 자랐지. 실력도 현 키젠 3위라, 아래를 보면 많은 인간들이 너처럼 되고 싶어 할 거다. 너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평탄하게 살 수도 있어.]목소리가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처럼 간지럽게 살랑거린다.
[시몬 폴렌티아를 꺾는 것만 포기하면 모든 게 편하고 행복할 텐데, 왜 수라의 길을 걸으려는 거지?]“나는.”
헥토르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래를 볼 수 없는 종류의 인간이다.”
하늘만 죽도록 올려다보다가, 고개가 그대로 꺾인 채 굳어진 것 같다.
이제는 고개가 숙여지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고, 평생을 하늘만 봐야 한다.
그러니 내가 사는 세상은 저 위다.
아래에 뭐가 있는지, 발밑에 뭐가 밟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위만 보이니까 위를 향할 뿐이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과 절망감으로 뒤엉킨 오물이다. 현재에 만족하면 행복할 거라고? 나는 지금이 바닥이다. 여기서 더 나빠질 건 없다.”
그의 눈에 시뻘건 실핏줄이 일어났다.
“놈과 대적하기 위해, 나는 힘을 원한다. 하나가 돼야 나를 인정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라.”
뱀의 입이 썩은 치즈처럼 쭉 찢어졌다.
[마지막 시험도 합격. 마음에 들어, 헥토르 무어.]쿠웅!
헥토르가 상체를 일으켰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 네 격은 내 성에 차지 않지만, 널 선택한 이유는 그저 ‘섭정’과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야.]쿵!
헥토르가 손바닥으로 지면을 딛고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는 날 실망시키지 않겠지? 잘해보자고.]촤아아악!
헥토르의 등 뒤에서 두 날개가 펼쳐졌다.
그러는 사이 던전주의 손바닥이 대기를 찢으며 헥토르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지만, 헥토르는 던전주를 보지 않고 그 위의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의 입매가 비로소 미소를 그렸다.
[조금 더 가까워졌군.]터어어어어엉!
그의 다리가 지면을 밀어내며 하늘로 날아 올랐다.
* * *
던전 밖, 펌킨 사태 발현지.
로베스크 영지.
쿠구구구구구!
마치 지독한 황사가 일어난 것처럼 주위는 온통 노란색 먼지로 가득했다.
로베스크 전역에는 방대한 호박밭이 펼쳐져 있었지만, 황사는 이 농작물에 피해를 끼치진 않았다. 잎을 갉아먹는 메뚜기 떼도, 주위의 동식물도 멀쩡했다.
오로지 인간에게만 피해를 입히는 노란색 먼지.
그곳에서 떡하니 서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흑마법으로 결계를 일으킨 채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슬슬 돌아갑시다.”
일행 중 한 명이 지친 얼굴로 말했다.
“우리가 여기서 죽치고 기다린다 해도, 섭정이 무사히 돌아오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4차 원정대를 기약하죠.”
“섭정이 당할 리가 없소!”
그들 중 또 한 명의 네크로맨서가 버럭 소리 지르며 반발했다.
“분명 공략에 시간이 걸리는 게요! 우리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야 던전에서 부상자가 나오면 빠르게 치료할 수 있소!”
“가족이 원정대원으로 참여했다는 건 압니다. 마음은 알겠지만…….”
“입 다무시오!”
벌써 섭정이 들어간 지 일주일하고도 이틀이 더 지났다.
로베스크에 남은 일행들 사이에서도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옥신각신하는 가운데, 흐리멍덩한 눈으로 결계를 유지하던 네크로맨서 한 명이 입을 열었다.
“황사가-”
“?”
“걷히고 있어.”
사아아아아아아아아아-
주위를 노랗게 물들였던 황사가 갑자기 옅어지고 있었다.
이곳의 사람들의 목숨을 잃게 했던 그 이상현상이 점차 그 기세가 약해지고 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
던전이 클리어됐다.
“저, 저기! 사람이다!”
“사람이 걸어오고 있소!”
중심부가 노랗게 일어난 황사 한복판에서 서서히 걸어오고 있는 한 남자가 보인다. 모두가 환호하며 결계를 유지한 채 그쪽으로 향했다.
“그대는 누구…… 허업!”
끔찍한 몰골이었다.
온통 피를 뒤집어쓰고 몸에는 살점이 가득하다. 육체 곳곳이 검게 물들어 있었으며 동공 한쪽이 끔찍한 붉은빛이 감돌고 있었다.
사아아아아아아아아-!
남자의 등장을 기점으로 황사는 거의 사라졌다. 네크로맨서들도 결계를 걷고 그에게 다가갔다.
“우욱!”
“큽!”
피비린내가 진동을 한다. 피 냄새에 익숙한 네크로맨서인 그들도 절로 인상을 쓸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그들 중 한 명이 왕국의 표식이 새겨진 배지를 들고 소리쳤다.
“우리는 왕국에서 파견된 네크로맨서다! 정체를 밝혀라!”
“…….”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무정물 같은 시선으로 그들을 응시했다.
“3차 원정대의 참가자, 헥토르 무어.”
“!”
생존자라는 말에 그들은 급히 헥토르의 뒤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서, 섭정이나 다른 사람들은?”
“내가-”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원정대의 유일한 생존자다.”
* * *
헥토르의 복귀 사실에 키젠 본부는 난리가 났다.
“이쪽입니다, 요원님!”
즉각 요원들이 로베스크로 파견되었다. 까마귀 요원 알레이스터와, 정장을 입은 본부 직원들이 빠른 걸음으로 건물 내부를 걷고 있었다.
알레이스터가 인상을 썼다.
“던전의 생존자가 한 명뿐이고, 그가 키젠 학생이라고?”
“예. 키젠에서 사람이 오기 전까지는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알레이스터와 본부의 네크로맨서들은 가장 끝에 위치한 방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저주에 걸린 듯 파직거리는 칠흑이 튀는 상태로 자리에 앉아 있는 헥토르 무어가 있었다. 피비린내가 지독했다.
신체 일부는 인간의 것이 아니라 언데드화되어 있었다. 거기에 숨길 생각도 하지 않는 듯 흘러나오는 섬찟한 칠흑. 알레이스터는 먼저 들은 정보대로, 그가 군단장이 됐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리고 헥토르의 주위는 왕국의 네크로맨서들과 섭정의 유가족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사실대로 고하지 못할까!”
왕국 소속의 네크로맨서가 헥토르를 심문하고 있었다.
“어떻게 네놈이 6군단을 차지했지? 그리고 왜 네놈만 살아남았나!”
“…….”
차악!
왕국의 네크로맨서가 손에 든 서류를 펼쳐 들었다.
“우리를 우습게 보는 것 같은데, 이건 지금까지 원정대에 합류한 자들의 전체 명단이다! 정체를 숨기고 던전에 들어갔더군. 너는 섭정을 죽이고 6군단을 차지한 뒤 사람들을 입막음으로……!”
“그쯤 하시오.”
알레이스터가 까마귀 망토를 휘날리며 걸어 나왔다.
“그는 키젠 소속의 학생이요.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맡겠소.”
“……쯧.”
까마귀 요원이 등장하자, 왕국의 네크로맨서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서류를 내렸다.
“명심하시오. 이번 문제는 대규모 외교 분쟁으로 발전할 우려가 있다는 걸! 섭정은 우리 왕국의 군단장이었단 말이오.”
“무슨 말인지 알고 있소.”
저벅 저벅.
알레이스터가 다가왔다. 입을 다물고 있던 헥토르도 비로소 자신이 요구한 키젠 쪽 사람이 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레이스터는 침음을 흘렸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군.’
키젠 학생의 수준이 아니다. 이 힘은 군단장들 중에서도 이질적이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하…….”
“네놈이 아버지를 죽였어!”
그러나 수사를 시작해 보기도 전에 뒤에서 유가족들이 울부짖었다.
“500명이 넘는 원정대의 던전 생존자가 고작 한 명이라고?”
“분명 무슨 수작질이 있었을 거예요!”
다른 사람들도 헥토르를 비난했다. 수사에 방해가 되자 키젠 본부의 직원들이 그들을 말려서 뒤로 보냈다.
헥토르는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참으로 우습구나!]뱀의 형상을 한 6군단의 관리자, ‘젤러시’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았지만 헥토르의 머릿속에서는 선명히 들리고 있었다.
[이미 헥토르와 나는 하나다! 억지로 분리하지도 못하겠지! 인간 놈들 따위가 내 선택에 왈가왈부할 수는……!]터업!
그때 헥토르가 손을 제 입에 쑤셔 박았다.
“?!”
[뭐야, 뭘 하려는 거냐? 헥토르!]헥토르의 팔이 쭈우우욱 목구멍을 타고 들어가며 팔뚝까지 들어갔다. 모두가 경악하며 눈을 크게 떴다.
이내 헥토르가 입에서 뭔가를 게워냈다. 회색 액체에 뒤덮인 그것을 본 사람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저건!”
“서, 섭정이다!”
헥토르의 몸에서 튀어나온 건 틀림없는 섭정의 시체였다.
몸이 진흙 덩어리처럼 퉁퉁 불어 있었지만, 상태는 비교적 온전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섭정의 유가족들도 눈물을 뿌리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시신을.”
헥토르가 입가를 쓱 닦았다.
“수습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
모두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헥토르 무어!]주변은 침묵 속에 휩싸여 있었지만, 헥토르의 머릿속에서는 관리자 젤러시의 찢어질 듯한 외침이 쏟아지고 있었다.
[너는 불안정한 군단장이다! 섭정을 몸속에서 온전히 흡수하여 네 힘으로 만들어야 한단 말이다! 정신이 나가기라도 한 것이냐!]헥토르는 무시하고 말했다.
“내가 섭정을 죽였다고 믿고 싶은 건 알겠지만, 확인해 봐라.”
이미 본부 직원 한 명이 섭정의 시신을 부검하고 있었다. 그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알레이스터를 바라보았다.
“……사인은 복부의 관통상으로 인한 장기 파열. 물론 가슴에 아티팩트를 꽂았던 흔적은 있습니다만, 그게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닙니다.”
결과를 들은 섭정의 유가족들과 왕국의 네크로맨서들이 입을 다물었다.
동시에 젤러시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내 지시도 없이 무슨 짓이냐 헥토르 무어! 힘을 원한다면 뭐든지 한다고 했지? 지금이라도 섭정을 다시 먹어치우……!]‘지시? 뭔가 착각하고 있군, 관리자.’
[!]헥토르가 다시 입구멍에 손을 집어 넣었다.
‘관리자의 인정’은 이미 받았고, 나는 힘을 손에 넣었다. 내가 왜 네 지시를 따라야 하지?’
철썩!
쿵!
이내 헥토르가 집어삼켰던 원정대의 다른 네크로맨서의 시체도 하나둘 튀어나왔다. 그때마다 젤러시가 끔찍한 비명을 질러댔다.
[그만! 그마아아안! 저 아까운 것들을! 뭐 하는 짓이냐! 내 지시를 들어라!]‘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비록 전성기가 지났다고 해도, 섭정은 틀림없는 강자였다.
그런 그가 허무할 만큼 간단히 던전주에게 패배했다. 섭정을 중심으로 조직된 원정대는 도미노 무너지듯 간단히 와해되어 버렸다.
그런데 섭정의 힘을 일부 물려받은 헥토르가, 섭정마저도 쓰러뜨리지 못한 던전주를 쓰러뜨린 것이다.
아무리 던전주가 힘이 빠져 있었다고 한들, 인과관계가 이상했다.
심지어 젤러시는 이렇게 말했다.
-미약하구나. 미약해. 역시 섭정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힘이야.
‘섭정이 믿기 힘들 만큼 쉽게 당한 이유, 섭정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던 내가 던전주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
털썩. 털썩.
헥토르의 입속에서 원정대원의 시체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어떻게 된 건지 뻔하지. 너는 섭정에게 실망했고, 던전에 들어온 뒤 섭정의 몸에 이상을 일으켜 던전주에게 죽게 했다. 그리고 조금 더 통제하기 쉬운 인간을 찾아 네 뜻대로 조종하려고 한 거지. 바로 나 같은 욕망에 눈이 먼 인간 말이다.’
[……네놈! 헥토르 무어!]털썩!
또 하나의 시체가 헥토르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내 목표는 명확하다.’
헥토르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시몬 폴렌티아를 쓰러뜨리는 건, 누군가의 꼭두각시인 6군단장이 아닌 이 ‘헥토르 무어’여야만 한다.’
터업!
헥토르가 다시 한번 손에 팔을 쑤셔 넣어 이 몸에 가장 뿌리 깊게 박힌 길쭉한 것을 붙잡았다. 전임자인 군단장이 했던 말.
-나는 이미 틀렸네. 뱀의 혓바닥을 조심하게.
힘을 갖기 위해 어떻게든 군단장이 된다. 하지만 관리자에게 몸을 빼앗기는 건 다른 문제다.
섭정이 어떻게 죽었는지 뻔히 아는데 섭정과 같은 최후를 맞이할 수는 없다.
‘나는 누구에게도 지배당하지 않을 것이다.’
촤아아아아악!
이내 헥토르의 입에서 거대한 구렁이 하나가 뽑혀 나왔다. 젤러시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를! 나를! 나를 속였구나! 나를]‘하나가 됐다면, 머리가 둘일 필요는 없겠지.’
그가 구렁이를 거칠게 짓밟았다.
팍! 소리와 함께 구렁이가 살점이 되어 흩뿌려졌다.
‘내 욕망이 마음에 들었다면, 너도 내 발판이 돼라.’
후욱.
후우우우.
헥토르가 숨을 거칠게 헐떡였다.
심상치 않은 몸 상태를 본 알레이스터가 다가왔다.
“자네 괜찮나?”
끄덕.
고개를 끄덕인 헥토르가 재차 쓱 입가를 닦았다.
“이제 내가 섭정을 죽였다는 오해는 풀렸을 터.”
그렇게 말한 그가 주변의 압도된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상대는 역사에 남을 만큼 강력한 던전주였고, 섭정은 놈의 손에 죽었다. 던전주를 파괴할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는 섭정의 힘을 얻어서 계속 전투를 이어나가는 것뿐이었다.”
그러곤 덧붙였다.
“내가 섭정을 죽였다고 믿었던 것처럼, 믿고 안 믿고는 네놈들의 자유겠지만.”
주위에 정적이 흘렀다.
뒤이어 헥토르가 알레이스터를 응시했다.
“부탁이 있습니다.”
“뭐지?”
“지금 바로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텔레포트 마법진을 준비해 주십시오.”
“……그건 곤란하군.”
알레이스터가 고개를 저었다.
“누명임을 입증했다고 해도 자네는 아직 완전히 혐의에서 벗어난 게 아닐세. 조사가 끝날 때까지는 여기서 머물면서…….”
“알레이스터 님!”
본부 직원이 통신 수정구를 들고 뛰어왔다.
“무, 문제가 생겼습니다!”
본부 직원이 알레이스터의 귓속말을 했고, 알레이스터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의 시선이 일순 헥토르에게 향했다가 돌아왔다.
“6군단의 영역인 ‘벨른’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닙니까.”
헥토르가 다 알고 있다는 투로 말했다.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자네는 아직……!”
“만약 이곳의 지휘자가 네프티스 님이었다면-”
헥토르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나를 보냈을 겁니다.”
“…….”
잠시 눈에 힘을 주고 있던 알레이스터가 픽 웃더니 한숨을 쉬었다.
“어린놈이 성격 건드리는 건 잘하는군.”
* * *
헥토르의 말대로였다.
섭정이 던전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자, 그의 영역권에서는 격변이 일어났다.
섭정이 던전에서 죽었다는 소문이 퍼져 나가며, 섭정의 영역인 5개 군도와 도시국가 벨른에서 거대한 반란이 벌어진 것이다.
-섭정이 죽었다!
-악덕 영주를 끌어내라!
5대 군도의 군장들이 지휘관이 되어, 주민들을 이끌고 벨른으로 쳐들어갔다.
벨른의 어린 영주 또한 이 소식을 듣고 직접 병사들을 이끌고 나왔다.
-와! 마침 잘됐는데? 이제 사람 죽인다고 잔소리할 섭정도 없잖아! 죽여 버려! 싹 다 불태워 버려!
두 세력이 전쟁을 펼치며 벨른과 군도는 전쟁터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일간의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고, 주거지는 불탔다.
반란군은 섭정이 죽고 연합의 관리가 오기 전에 영주를 끌어내야 한다고 판단했고.
어린 영주 또한 섭정이 없는 이 기회에 반란분자를 뿌리 뽑아야 한다며 주민들을 차출해서 누명을 씌우고 죽였다.
서로의 광기만 가득한 상황.
두 세력은 공멸을 각오하고 부딪혔다.
가장 치열한 전장은 벨른의 앞에 펼쳐진 ‘저무는 벌판’이었다.
-끌어내!
-전부 죽여!
그렇게 대낮부터 치열하게 전개되는 이 전장 속.
우우우우우우웅!
하늘에서 거대한 텔레포트 마법진이 펼쳐졌다.
이내 내려오는 검은 기둥.
그것은 하늘에서 쏟아져 전장의 중간을 꿰뚫고, 지면에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었다.
“피, 피해라!”
쿠콰콰콰콰콰콰콰콰콰!
모두가 대경실색하며 물러났다.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주위가 온통 뿌연 연기로 뒤덮였다. 군도의 네크로맨서들이 몸을 떨었다.
“이 칠흑은 틀림없이 섭정이다! 섭정이 돌아온 건가?”
“하, 하지만 묘하게 다릅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섭정이 아니었다.
[멈춰라.]검은 드래곤.
그것이 입을 벌리며 울부짖었다.
―――――――――!!!
군단장의 힘이 더해진 초광범위 드래곤 피어.
그 울음소리는 벨른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울려 퍼졌고, 심지어 바다에 떨어져 있는 군도에 사는 사람들에게까지 닿았다.
퍼져 나가는 드래곤 피어에 전장의 모두가 전의를 상실했다. 까무러치는 자들, 바지에 오줌을 지리며 주저앉는 사람, 무기만 손에 쥐고 덜덜 떠는 사람들까지.
단일의 존재로 전쟁의 의지를 꺾어낸 검은용이 고개를 돌렸다.
[5군도의 지휘관은 앞으로 오라.]반란을 이끈 다섯 지휘관들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주춤주춤 걸어 나왔다. 이내 용의 모습이 녹아내리며 한 남자의 모습으로 변했다.
[지금부터 너희는 군도의 수호자인 내 지시를 듣는다.]“당신은 섭정이 아니지 않소!”
“어떻게 된 건지 알겠군.”
지휘관 중 한 명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팔을 휘둘렀다.
“던전에서 섭정을 죽이고 6군단을 차지했구나! 우리가 외부인에게 복종할 것 같은가?”
[내가 아니라.]헥토르가 팔을 들어 올렸다.
[내가 가진 힘에 복종하라.]펄럭!
펄럭!
모두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저 높은 협곡에서부터, 오로지 벨른과 다섯 군도를 보호하는 의무를 가진 ‘나이트 와이번’이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처억!
척!
그러고는 바닥에 착지해 헥토르에게 고개를 숙였다.
“가, 가장 강한 심복들이 외부인에게……!”
“이럴 수가.”
협곡에 우글거리는 언데드 중에서 나이트 와이번이 복종했다는 건, 협곡의 언데드 모두가 6군단의 새로운 주인에게 복종했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승산이 없는 전쟁.
머리를 굴린 지휘관들이 하나둘 헥토르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군도의 새로운 수호자를 뵙습니다.”
“수호자를 뵙습니다.”
간단히 이들을 복종시킨 헥토르가 이번엔 왼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군용 마차에 올라탄 채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벨른의 어린 영주가 보인다. 헥토르가 저벅 저벅 그에게 걸어갔다.
“오! 잘했어! 잘했어! 단번에 반란군을 제압하다니 말이야!”
벨른의 어린 영주가 신이 난 얼굴로 짝짝 손뼉을 쳤다.
“당신이 섭정의 대타? 뭐, 힘은 있는 것 같으니까 특별히 내 오른팔로 써줄게. 지금부터 날 보위하도록 해! 그게 6군단의 의무…….”
“아니.”
덥석!
헥토르가 팔을 뻗더니 군사 마차에 앉아 시시덕거리는 어린 영주의 뒷덜미를 붙잡고는, 바닥에 내팽개쳤다.
“수호자의 권위로 현 영주를 폐위하겠다.”
“!!”
영주 측 관리들과 병사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난데없는 폐위.
갑자기 끌어내려져 흙바닥을 뒹구는 어린 영주가 울음을 터뜨렸지만 헥토르는 눈 한번 꿈쩍하지 않았다.
“너, 너!”
태어나서 처음으로 당한 수모에 어린 영주가 시뻘게진 얼굴로 삿대질했다.
“6군단이면 섭정의 대리잖아! 섭정이 나를 이 자리에 앉혔다고! 몰라? 세상 사람들이 왜 그를 섭정으로 부르는지!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알기나 해?”
“안다.”
헥토르가 살벌한 눈으로 어린 영주를 내려보았다.
“하지만 나는 섭정이 아니다.”
“!”
“섭정은 좋은 사람이었지만, 좋은 통치자는 아니더군.”
6군단의 관리자가 헥토르의 기억을 끄집어낸 것처럼, 헥토르 또한 6군단 관리자의 기억을 보았다.
섭정은 권력을 양도하겠다는 친구의 제안을 거절하고, 그 아들이 벨른을 다스리도록 뒤로 물러나 섭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 아들은 삐뚤어졌고, 오냐오냐 달콤한 말을 일삼는 간신들의 말을 들으며 암군이 되었다.
과거 ‘광객’이라 불리며 무수한 사람을 살해하고 전우들을 배신한 것에 대한 속죄였을까. 섭정은 남은 수명 동안 자신의 사람들을 지키는 데 지나치게 집착했고 그것은 많은 폐단을 낳았다.
섭정의 실체, 그는 형편 좋은 선역이 아니었다.
방관자였다.
“더 이상 대리청정(代理聽政)은 없다.”
헥토르가 칠흑을 끌어올리더니 용의 형태로 변했다.
그가 지면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 올랐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
날아 오르는 그를 나이트 와이번들이 호위한다. 순식간에 고공으로 치달은 그가 벨른을 넘어, 벨른의 뒤에 위치한 대협곡, 그곳의 가장 높은 꼭대기에 올라갔다.
영지와 군도가 내려다보이는 꼭대기.
그곳에는 암벽의 왕좌가 있었다.
스스스!
다시 인간형으로 돌아온 헥토르가 왕좌로 저벅저벅 걸어간다.
[지금부터 벨른은 내가 지배한다. 누구에게도 통제받지 않는 것, 이것이 내 방식이다.]그러곤 스스로 등을 돌려 앉았다.
그의 칠흑이 번뜩였다.
끼이이이이이이!
께에에에에엑!
협곡의 언데드들이 헥토르의 힘에 반응하여 깨어나 울부짖었다.
[나는 군단이다.]* * *
헥토르의 등장으로 벨른의 혼란은 잠재워졌다.
그리고 군도의 지휘관 중 하나가 조용히 암벽 뒤로 숨어 통신 수정구를 들어 올렸다.
“……몰락은 혁명의 계단.”
그가 숨죽인 목소리로 키워드를 말했다.
“예, 계획이 틀어졌습니다.”
여전히 드래곤 피어의 영향력이 남아 있는지, 남자의 팔이 으슬으슬 떨리고 있었다.
“벨른의 혼란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새로운 여섯 번째 군단장은…… 아무래도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가 침음을 흘린 뒤 말을 이었다.
“벨른에서 퇴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