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1013)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13화
첫날 개학식은 무사히 끝났다.
시몬은 키젠 3학년 과정이 1, 2학년 과정과 다른 가장 큰 차이는 ‘자율’이라고 생각했다.
정원과는 관계없이 원하는 수업을 마음대로 들을 수 있고, 원한다면 한번 들었던 수업을 다음 날 찾아가서 다시 들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명망 높은 키젠 교수들이 아기 새 먹이듯 친절하게 지식을 떠먹여 줬다면, 지금부터는 내가 먹이를 찾아다녀야 한다는 느낌.
물론 세상일의 대부분이 그렇듯, 책임 없는 자유는 없다. 이 자율이 바탕으로 깔린 만큼 3학년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임무’의 수준도 높아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키젠 3학년 과정이 기존 커리큘럼에 비해 변동 사항이 워낙 많았기에, 부총장 제인은 한 달 동안의 ‘적응 기간’을 둔다고 했다.
이 적응 기간 동안에는 외부 파견 일정은 없다. 대신 3학년 과정을 순조롭게 소화하기 위한 ‘전교생 통합 교육’을 실시한다고 한다.
앞으로는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시몬은 기대감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몸을 일으켰다.
개학식이 끝난 뒤, 제인은 학과별로 대표들이 인솔해서 기숙사로 돌아가라고 지시했다. 원래는 소환학과 대표 헥토르의 몫이었지만, 그가 부재중이었기에 시몬이 학과생들을 인솔해서 이동하고 있었다.
소환학과는 키젠 캠퍼스에서도 가장 외곽에 있다. 거리가 먼 만큼, 학과생들 사이에서 여러 이야기꽃이 피어났다.
“머리 아파 죽는 줄 알았어!”
주황색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흔들렸다. 소환학과의 분위기 메이커이자 시몬과 같은 7조의 에슈 아르젤이 가이드북을 덮고 기지개를 쭈욱 켰다.
“설명을 들어도 왜 잘 모르겠지? 다중 수업 시간표? 수업 후 보충 요청? 파견 나가는 데 쓸 서류는 왜 이렇게 많은 거야? 후속 절차는 또 뭐고! 갑자기 자유가 주어지지 오히려 복잡해!”
“어려운 건 모두 마찬가지일 거야. 그러니까 한 달의 적응 기간을 줬다고 생각해.”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던 토토가 말을 받았다.
“2년 동안 했던 것처럼 열심히 하면 분명 3학년 과정도 수월해질 거야.”
“오올~ 잠깐 안 본 사이 데스나이트 소년, 뭔가 의젓해졌다?”
그 말을 들은 토토가 허리를 꼿꼿하게 펴며 뺨을 빨갛게 붉혔다. 장난기가 들린 에슈가 그의 뒤로 돌아왔다.
“이건 뭐야?”
이제는 토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뿔 달린 모자’가 교복 바지 끝에 대롱대롱 걸려 있었다. 토토가 더더욱 부끄러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앞으로는 언제든 빨리 ‘각오’를 하려고.”
“와우! 멋진데! 작년 3학년이랑 싸웠을 때 그 모습 또 보여주면 안 돼?”
“여기선 싫어!”
에슈가 토토에게 모자를 씌우려고 하고, 토토가 도망치면서 시끌벅적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란히 걷고 있던 시몬과 로레인이 싱긋 웃었다.
“시몬?”
“응.”
“혹시 엄마가 네게 이상한 임무 같은 거 맡긴 적 없지?”
시몬이 순순히 답했다.
“응, 정말로 없어.”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키젠 1학년 초에는 잃어버린 아버지의 군단을 수집하라는 임무가 있었고, 2학년에는 본 드래곤을 완성하라는 임무가 있었지만, 지금은 딱히 네프티스로부터 별다른 임무가 떨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면 시몬을 노리고 있을 1군단. 하지만 네프티스는 1군단에 대해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
“적응 기간인 한 달 동안은 괜찮겠지만, 혹시나 로크섬 밖으로 나가게 되면 조심해.”
로레인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한결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번에 정상회의에서 공인을 받았지만, 네크로맨서들은 완전히 통제가 안 되는 인간들이야. 언제 어디서 탐욕을 드러내고 공격을 해올지 몰라.”
“응. 그렇지.”
“특히 대놓고 선전포고를 한 1군단이 문제네.”
그녀가 초조한 얼굴로 엄지를 깨물었다.
“남은 한 달 동안 키젠에서 어떻게든 그들을 묶어둘 방법을 강구해 볼게.”
“흐응- 흥-”
시몬과 로레인의 고개가 돌아갔다.
향긋한 향수 냄새가 퍼지며, 그들 사이로 천연덕스럽게 걸어온 세르네가 양손에 옷걸이에 걸린 옷을 들어 올렸다.
“방법을 강구? 이제 와서 대책을 마련하는 건 하수의 행동이죠. 키젠 측의 무모한 정상회담 발표로 시몬이 대륙 모든 네크로맨서들의 타겟이 되었는데. 이제 와서 고민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세르네가 눈꼬리를 휘었다.
“그리고 그동안 1군단이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이번에도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낙관적으로 판단하는 것까지.”
로레인이 발끈했다.
“그게 아냐. 우리는 조금 더 대국적으로 판단해서……!”
“그보다 시몬! 이거 봐주세요.”
로레인의 말을 가볍게 자른 세르네가 손에 든 옷걸이의 옷을 제 몸에 대며 말했다.
“이번 주말 데이트에 입고 나갈 옷인데, 오른쪽? 왼쪽? 어느 쪽이 예뻐요?”
시몬이 쓴웃음을 흘렸다.
“미안하지만 난 여자 옷은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감상이란 게 있잖아요.”
“어, 음. 그러면 오른쪽?”
세르네가 왼쪽 옷을 아공간에 넣고, 새로운 옷을 꺼내서 시몬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그때 로레인이 조용한 목소리로 넌지시 물었다.
“시몬, 주말에 세르네랑 어디 가?”
시몬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목소리가 무서웠다.
“아, 응! 대단한 건 아냐! 일 관련은 아니고 그냥 사적인 이야기?”
이번에 신성연방에 넘어갔을 때 얻은 성과 중 하나.
가휀에 대한 이야기를 세르네에게 들려줘야 했다.
“사적인…… 이야기.”
그런데 오히려 로레인의 표정이 더더욱 굳어졌다. 세르네는 호호호! 웃으며 입가를 가렸다.
“그래요. 남 앞에서는 절대 말할 수 없는, 나와 시몬만의 사적이고 은밀한 이야기죠.”
‘틀린 말은 아닌데 남들이 들으면 오해하잖아.’
이어지는 차기 지도자들의 신경전에 시몬이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을 느끼고 있는 그때.
“다 왔어! 저기 기숙사가 보인다!”
“집이다!”
금지된 숲의 나무들 사이로, 친근한 느낌의 건물 한 채가 보인다. 학과생들이 저마다 환호하며 기숙사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나름 의젓해야 할 최고학년이 됐어도 저런 천진난만한 구석은 바뀌지 않았다. 이 틈에 시몬도 신나는 척하며 토토와 함께 기숙사로 향했다.
“다들 오랜만입니다!”
선두로 들이닥친 에슈가 문을 발칵 열어젖혔다. 통나무로 이루어진 아늑한 기숙사 로비가 보였다.
“얘들아!”
에슈가 동기들을 돌아보았다.
2학년 시절의 몸에 박힌 습관처럼 눈치를 보며 기숙사에 들어오던 동기들을 향해, 에슈는 주목하라는 듯 팔을 들었다.
그러곤 갑자기 고양이처럼 파바박 달려가더니 힘껏 점프해서 소파에 쿵! 소리가 나게 누웠다.
“누구 눈치를 보는 건데? 우리가 이제 3학년이라니까!”
그제야 동기들의 굳은 표정이 풀리며 왁자지껄하게 웃었다. 다들 괜히 로비에 떡하니 누워보거나 주머니에 손 넣고 건들건들 걸어보았다.
“우리가 교내 최고 고참이라니, 진짜 적응 안 되네.”
“작년엔 여기 편히 앉아 있지도 못했잖아! 선배들 계단에서 내려오면 맨날 일어나서 ‘안녕하십니까!’ 하고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가 누구 들어오면 또 일어나서 인사하고!”
“윌 더글라스 그 자식 기억나는 사람!”
“하하하하! 그 인간 어디 사는지 아는 애 있냐? 키젠 3학년 전시권한 들고 인사나 하러 가게!”
“재밌겠다!”
“아, 2학년들 언제 여기 들어와? 다 죽었다 진짜.”
다들 최고학년이 됐다는 사실에 흥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제는 소파가 아니라 바닥에 자유롭게 드러누워 웃어대던 에슈가 천장을 보며 ‘하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진짜 이제 우리가 여기 왕이구나. 누구도 뭐라 못…….”
“에슈 아르젤 학생. 벌점 5점입니다.”
갑자기 내리꽂힌 차가운 한마디에 학생들이 즉시 뻣뻣이 굳어졌다. 에슈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고, 이내 계단에서 기숙사 사감이 관리원들과 함께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에슈가 횡설수설하며 억지웃음을 흘렸다.
“자, 잠깐만요 사감 선생님! 오늘은 3학년 첫날인데……!”
“첫날이라고 기숙사의 규율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학생.”
사감이 서류판에 체크한 뒤 말했다.
“말씀드리지만 2학년의 기숙사 상벌점은 3학년까지 유지됩니다. 에슈 아르젤 학생은 아슬아슬하군요. 한 번만 더 걸리면 기숙사 퇴실 조치. 로체스트에 자취방을 얻어야 할 겁니다.”
“죄, 죄송합니다.”
에슈가 고개를 푹 숙였다. 학생을 징벌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어른의 등장으로 비로소 개판이던 분위기가 조금 잡혔다.
나이 지긋한 사감이 가볍게 목을 푼 뒤 학과생들을 둘러보았다.
“매번 설명하던 기숙사 운영 지침을 또 이야기하기에는 여러분의 귀에 딱지가 앉을 것 같군요. 생략하는 대신, 3학년다운 품위와 의젓함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네!”
“그럼요 그럼요. 우리가 애도 아니고!”
“피곤하실 테니 바로 방 배정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사감이 손짓하자, 관리원이 커다란 표를 벽에 붙였다.
“3학년은 3층과 4층을 사용하시면 되겠습니다. 1층과 2층은 내일 들어올 2학년들이 사용할 겁니다. 원하는 방을 선택해서 이름을 기입하시길 바랍니다. 여러 사람이 같은 방을 원할 경우 관례대로 처리하겠지만, 서로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충분한 상의를 거쳐서 정하시길 바랍니다. 이상.”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학생들이 우르르르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뛰어올랐다.
“우리도 가자 시몬! 피츠! 안락한 곳을 골라야 해!”
“응!”
시몬과 토토, 그리고 피츠제럴드가 함께 빠르게 계단을 올라왔다.
익숙한 2층 계단을 지나.
드디어 금단의 구역. 시몬조차도 한 번밖에 가본 적 없는 3층에 올라왔다.
“넓다 넓어!”
“공기부터가 다르네.”
학과생들이 시끌벅적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토토가 방 하나를 열며 말했다.
“여기 봐! 시몬! 피츠!”
시몬이 안을 들여다보자 커다란 침대 하나가 놓여 있는 방이 보인다.
“1인실이야!”
피츠제럴드가 살짝 감격한 얼굴로 안경을 추켜올렸다.
“드디어 개인실을 쓸 권리를 손에 넣은 건가. 오래 걸렸다.”
그들이 내부의 방을 둘러보고 있는 가운데, 몇몇 남학생들은 계단을 타고 4층, 혹은 그보다 더 높은 곳로 가고 있었다.
토토가 물었다.
“어디까지 가는 거야?”
“아, 기숙사 최고 명당은 나무 위의 트리하우스지! 니들도 구경하러 와!”
동기들의 권유에 시몬 일행도 계단을 타고 건물 위의 나무로 올라왔다.
시몬은 전 총학과대표인 레오나드를 따라 와본 적 있었다.
‘이제 우리도 여기서 지낼 수 있게 됐구나.’
소환학과 기숙사는 금지된 숲의 커다란 고목 위에서 생활하던 학과생들이 하나둘 모여 형성된 곳이다. 기숙사 건물이 이 나무를 빙 둘러싼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고, 건물 꼭대기에는 나뭇가지가 사방으로 뻗어져 있다.
그리고 이 튼튼한 나뭇가지들 위로 고즈넉한 ‘트리하우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여기가 최고 인기 장소이자 명당이었다.
다만 명당이니만큼 자리가 몇 곳 없었는데, 벌써부터 자기들끼리 여기 살겠다며 싸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토토가 어깨를 움츠렸다.
“어쩐지 들어가기 어려울 것 같네.”
“나는 가능하지.”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추켜올렸다.
“여러 사람이 이름을 올리면 ‘관례’에 따라서 정한다. 즉, 키젠답게 성적순이란 거야.”
그렇다면 최고성적자인 시몬은 어디든 갈 수 있었다. 나무 위의 기숙사 생활은 로망이 있었지만, 시몬은 아직까지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구경이나 할 겸 세 사람은 점점 더 위로 올라갔다.
나무에는 선배들의 다양한 마법들이 걸려 있었다. 낭떠러지 같은 나뭇가지 끝에 서서 기다리면 다른 나무가 움직여서 새로운 길을 만드는 곳도 있었고, 넝쿨을 타고 올라가는 지점도 있었다.
워낙 나무가 단단해서 흔들리지도 않았다. 지반에 바로 지은 것처럼 튼튼했다.
“비켜봐.”
“다음은 나야!”
그리고 나무의 꼭대기에 다다를 무렵.
한 무리의 학생들이 커다란 방 앞에서 앞다투어 뭔가를 하고 있었다. 시몬 일행도 그쪽으로 갔다.
“뭐 하는 거야?”
“아. 너희들.”
동기 한 명이 손끝으로 잠긴 방문을 가리키고 있었다.
방에는 열쇠 구멍이 있었고, 학생들이 저마다 나서서 열쇠를 꽂아보고 있었다.
“학과에 최고 명당이 두 곳 있는데, 여기 꼭대기 방이 최고거든.”
“전대 과대가 물려주는 게 전통이야. 이 열쇠에 연동되는 칠흑 사용자만 열쇠로 방을 열 수 있어.”
전대 과대라면 레오나드였다.
피츠제럴드가 즉시 앞으로 나왔다.
“내가 해보겠다. 레오나드 선배님과는 나름 면식이 있었다.”
“오, 15위~”
그러나 실패.
피츠제럴드가 열쇠를 들고 열쇠 구멍에 꽂은 채 돌렸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학과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 자리는 아무래도 학과대표였던 헥토르나…….”
“네 차지일 거 같은데.”
학생들이 하나둘 기대가 담긴 시선으로 시몬을 바라봤다. 토토도 한마디 했다.
“시몬도 해볼래?”
“그럴까.”
이번인 시몬이 열쇠를 들고 방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열쇠를 넣자.
절컹!
즉각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모두가 오! 하고 환호성을 터뜨렸고, 지켜보던 다른 학생들도 고개를 들었다.
“최고 방은 회장 차지다!”
“뭐 있는지 봐봐 시몬!”
고개를 끄덕인 시몬이 방을 열었고.
“!!”
가히 소년들의 로망과도 같은 트리하우스의 내부가 펼쳐져 있었다.
* * *
개학은 필연적으로 많은 업무를 동반하게 마련이었다.
오늘도 일개 월급쟁이를 자처하는 수석조교 체헤클은 한숨을 푹푹 쉬며 끝나지 않는 서류 더미를 처리하고 있었다.
타악.
탁.
업무가 산더미처럼 많고 잠도 못 자서 잔뜩 예민한 때에.
툭. 툭. 툭.
일을 하고 있으면 방해나 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타악. 탁.
타닥.
자신의 직장상사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아, 진짜!”
참다못한 체헤클이 버럭 소리 질렀다. 그 옆에는 바힐이 자료를 든 채 돌아다니고 있었다.
“정신 사납게 옆에서 뭐 하시는 거예요? 일 없으시면 퇴근이나 하세요!”
“방학 내내 개발한 이 새로운 군단장 전용 저주들.”
바힐이 입맛을 다셨다.
“언제 ‘나의 시몬’에게 주면 적절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뭘 고민까지 해요? 저주학 수업 시간에 주든가. 아님 하수인한테 시켜서 기숙사에 보내든가.”
“내 손으로 직접, 조금 더 이른 시간에 보내고 싶군요.”
그가 장갑 낀 손가락을 탁 튕겼다.
“그래요, 오늘 개학식을 했으니 지금쯤 다들 기숙사 배치가 끝났겠죠.”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키젠 3학년은 독방을 사용하니 룸메이트도 없을 겁니다. 완벽한 독담이 가능하겠군요.”
“안 돼요. 가지 마요. 경고했어요.”
체헤클이 손바닥을 쫙 펼쳤다.
“애들 첫날이라 짐 풀고 정신없을 거라구요. 제발 어른이면 어른답게 행동하세요.”
“흠.”
바힐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체헤클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군요.”
“…….”
“…….”
체헤클은 썩어 들어가는 표정으로 바힐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긴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 체헤클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더니, 마치 총구를 대는 것처럼 스스로 관자놀이에 검지를 댔다.
“캔슬레이션.”
이내 그녀가 ‘저주 해제’ 기술을 사용했고, 눈앞에 보이던 바힐은 사라진 채 창문만 열려 있었다.
“사람이 말하면 듣는 척이라도 하라고-!”
연구실에서 체헤클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