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1039)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39화
활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진다.
장력의 한계를 시험하듯, 짐승의 창자로 만든 시위가 위태롭게 떨린다.
그러나 활을 붙잡은 사용자의 몸에는 미동도 없다.
목표는 풀밭에 숨어서 풀을 뜯고 있는 토끼.
서서히 시위를 쥔 손에서 힘이 풀리고, 화살은 소리 없이 직선을 그리며 뻗어나간다. 토끼가 흠칫하며 반응했지만, 이미 화살은 정확히 토끼의 급소를 꿰뚫은 뒤였다.
“후욱.”
뒤이어 긴장을 풀어내는 듯한 숨소리가 들린다.
짝짝짝.
토끼는 쓰러졌고,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시몬이 웃는 얼굴로 손뼉을 쳤다.
“축하해! 활을 정말 잘 다루네.”
“…….”
초승섬의 원주민, 알리타가 시몬을 가볍게 노려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잡은 토끼를 향해 걸어갔고, 시몬도 옆으로 따라붙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사냥이야?”
시몬이 물었다.
“음식은 충분히 많이 가져왔어. 주민분들이 다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을 만큼…….”
“우리는 외부인이 준 음식 따위에 의존하지 않아! 애초에 나는 사냥을 하러 여기 온 거고!”
그렇게 소리친 알리타가 와작 하고 손에 든 초콜릿 바를 한입 베어 먹었다. 잠시 표정이 황홀하게 변했다가 시몬의 시선을 느꼈는지 다시 굳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사냥은 신과 영접하는 중요한 의식이야.”
“그렇구나.”
시몬은 별 토를 달지 않고 수긍했다.
중립지대라 그런지 토착신앙 같은 게 있는 모양. 그 정도의 정보만 머릿속에 넣어두었다. 그러고는 신기하단 눈으로 알리타를 바라보았다.
“새삼 느끼지만 대륙어 정말 잘하네. 언제 배웠어?”
“어릴 때.”
알리타가 퉁명스러운 투로 말을 이었다.
“그 시절엔 우리도 이 섬에 들어온 외부인들과 접촉하는 게 허용됐거든. 그들이 가르쳐 줬어.”
‘지금은 아닌가 보네.’
시몬은 잠시 알리타가 필사적으로 도망치던 모습을 떠올리다가 말을 이었다.
“아까 네가 말한 그 ‘포용의 맹약’이었던가? 그것 덕분에 나와 이야기할 수 있는 거지? 맹약의 발동 조건은 목숨을 구해주는 거고.”
알리타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시몬을 빤히 바라보았다.
“너 뭐야, 우리 일족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라도 돼?”
“아니, 그냥 그럴 것 같아서.”
군단장으로서 대륙을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과 문화들을 접한 경험들이 어디 가는 게 아니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시몬의 마인드는 크게 열려 있었다.
그렇게 잡담을 나누다 보니 방금 잡은 토끼 앞에 도착했다. 알리타는 활을 내려놓고, 토끼에 박힌 화살을 뽑은 다음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시몬도 알리타의 기도가 끝나길 조용히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사냥에 성공해서 너희들의 신께 기도한 거지?”
“아니.”
알리타가 게슴츠레 눈을 뜨며 죽은 토끼를 가리켰다.
“여기 이분이 신이야.”
초승섬 원주민들에게는 특이한 신앙과 풍습이 있었다. 그들은 신이 직접 날짐승이나 동물로 변신해서, 인간들에게 잡혀 고기를 베풀어준다고 믿었다.
즉, 여기 있는 죽은 토끼도 신인 셈이다.
“그렇구나.”
시몬도 토끼를 향해 기도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잡혀주셔서 감사합니다.”
“……너, 외부인 주제에 편견이란 게 없구나.”
얼떨떨한 웃음을 흘린 그녀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신이 먹을 고기를 주는 만큼-”
알리타의 목소리가 일순 줄어들었다.
“언젠가 우리도 고기가 되어 신께 먹힐 각오를 해야겠지만.”
“응?”
시몬이 기도를 마치고 그녀를 보았다.
“방금 뭐라고 했어?”
“아무것도 아니야.”
착.
알리타가 동물 가죽으로 만든 가방에 방금 잡은 토끼를 집어넣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내 포용의 맹약자인 시몬 폴렌티아. 내게 뭘 원하지?”
시몬의 눈이 반짝였다.
이제야 좀 일이 풀리려고 하는 모양이다.
“내가 원하는 건 정보야. 혹시 결사라는 자들에 대해 들어봤어?”
알리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음식 이름인가?”
“……아니야.”
이걸 어떻게 설명한다.
시몬은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혹시 이 섬에 들어온 외부인들 중에 수상한 사람이 있었어?”
알리타가 허리에 손을 얹고 당당히 말했다.
“외부인은 전부 수상하지!”
“미, 미안해. 질문을 바꿀게. 혹시 근래 이 섬에 들어온 외부인들을 전부 기억해?”
그녀가 인상을 찡그리며 생각에 잠겼다.
“전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본 사람들은 기억해. 그 이상한 집들을 청소하는 남자도 있고.”
별장 관리원.
대륙어를 잘하는 그 까무잡잡한 남자를 말하는 것 같다.
“그렇지. 그 외에는?”
“그 이상한 집에 찾아온 사람이 세 명 있었지. 가끔 우리가 있는 숲에 어슬렁거리기도 해서 귀찮았어.”
시몬이 빛의 속도로 노트와 깃펜을 샥 꺼내 들었다.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시몬은 알리타의 묘사를 기록했다.
물론 알리타는 원주민인 만큼 이쪽 복식이나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모자를 썼다는 걸 알록달록하고 입이 삐쭉 나온 해파리를 머리에 썼다고 한다든가, 코에 피어싱을 단 모습을 보고는 코만 아직 인간이 덜 되어서 코가 은색이었다는 이상한 답을 했지만 대충 알아들을 만했다.
‘좋아, 이건 교차검증 해봐야겠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정보가 부족해.’
시몬이 수첩을 내렸다.
“네 포용의 맹약자로서 간절한 부탁이 있어.”
알리타가 헛웃음을 흘렸다.
“……외부인 놈이 우리 일족의 규율을 잘도 나불대기는. 그래, 말해봐.”
“너희 마을에 가보고 싶어!”
시몬이 눈을 반짝였다.
“아, 물론 다른 이유는 없어. 처음에 말한 대로 내가 원하는 건 정보뿐이야. 너희 마을 사람들에게도 혹시 수상한 사람을 봤는지 물어보고 싶어서…….”
알리타가 곤란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시몬이 ‘부탁해!’ 하고 계속 조르니 이내 한숨을 한 차례 쉬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진상할 외부의 음식은 넉넉히 가져왔겠지?”
“물론이지! 고마워!”
알리타가 몸을 휙 돌려서 걸어갔고, 시몬이 싱글벙글 웃으며 그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아, 그리고 이건 그냥 개인적인 질문인데 물어봐도 돼?”
“뭐지?”
시몬이 잠시 알리타의 가느다란 팔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너 남자애야? 여자애야?”
“실례다! 이놈!”
화를 내는 걸 보니 아무래도 여자아이인 것 같았다.
* * *
그렇게 시몬은 알리타를 따라 초승섬 원주민들의 마을을 향해 걸었다.
초승섬 숲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나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 주위의 경관이 바뀌었다.
‘이게 다 뭐야?’
주변의 나무가 온통 기이하게 꺾이거나 배배 꼬여 있었다. 마치 혼잡스러운 넝쿨 숲과도 같은 광경. 이 넝쿨 같은 나무들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하늘마저 뒤덮어 어두웠다. 나무는 나뭇잎 하나 없이 앙상했다.
“이쪽.”
그 와중에도 알리타는 길을 잘 찾았다. 나무들이 자라나지 않고 비어 있는 방향이 자연스럽게 마을로 향하는 길이 되었다.
“머리를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해.”
“알았어.”
시몬이 나무에 손을 짚고 몸을 낮춰서 빠져나오자, 알리타가 버럭 소리 질렀다.
“손대지 마! 우리의 신께 무엄하게 무슨 짓이냐!”
시몬이 눈을 끔뻑였다.
“이 나무도 신이야?”
“그래!”
‘잠깐, 그러고 보니.’
시몬이 고개를 내렸다. 주위의 넝쿨처럼 엉켜 있는 나무들, 알고 보니 여러 나무가 아니라 하나의 나무에서 파생된 거였다.
지면에서 올라오거나 뒤엉키기도 했지만 틀림없다.
‘내가 만진 나무의 감촉은 모두 동일했어. 이 튼튼한 감촉. 날붙이나 톱으로도 쉽게 벨 수 없을 것 같아.’
시몬이 설명을 요구하듯 알리타를 빤히 바라보자 그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 섬에 오랫동안 존재했던 ‘쓰러지지 않는 나무’님이시다.”
그녀의 일족 전설에서 따르면, 이 섬에는 거대한 나무가 자라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늘 모르고 솟구치던 나무에 벼락에 내리꽂혔고, 이에 나무가 갈라져서 크게 꺾여 버렸다고.
하지만 벼락이 ‘신’이었고, 그 신이 나무에 깃드는 것으로 나무는 죽지 않았다. 대신 하늘로 줄기와 가지를 세우는 게 아닌, 땅으로 나무줄기를 끊임없이 보내며 확장해 나갔다.
그래서 이런 형태가 되었다고 한다.
‘토끼도 신, 번개도 신, 나무도 신. 알쏭달쏭하네.’
시몬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대륙민의 입장에서 보기엔 죄다 신을 갖다 붙인 것 같아 이상하지만, 이 섬 사람들의 문화라니 존중해야겠지.’
“이제 다 왔어. 이쪽이야.”
그녀가 앞을 가리켰다.
정말이었다.
나무 아래에 소소한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고, 집도 흙과 짚으로 쌓아 만든 조잡한 형태였다.
그때 자리에 앉아 토기에 든 뭔가를 찧고 있던 중년 여성이 알리타를 발견했다. 그녀가 원주민들의 언어로 말했다.
“(알리타! 신께서 고기를 내어주셨니?)”
“(그럼요!)”
그녀가 달려와 마을 중앙의 제단 앞에 방금 사냥한 토끼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주변의 주민들이 웅성거리며 뛰어 들어왔다.
“#@$!^!”
다들 고개 숙여 죽은 토끼에 기도를 드리는 모습.
시몬은 뭔가 방해하기가 그래서 뒤에서 뺨을 긁적이고 있었다.
“(잠깐.)”
드디어 원주민 중 한 명이 시몬을 발견했다.
웅성 웅성 웅성!
이내 초승섬 원주민들이 시몬을 가리키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각오하자.’
시몬은 마음의 각오를 다졌다.
초승섬의 폐쇄적인 문화를 가진 원주민들.
틀림없이 자신을 배척하고 경계할 것이다. 날아오는 돌이라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결사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뭐든 감내할 자신이 있었다.
“(알리타가 외부인을 데려왔다! 네 포용의 맹약자로구나! 그렇지?)”
“(알리타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서 오세요!)”
와아아!
우후!
예상외로 환대받고 있었다.
그중에는 알리타처럼 대륙어를 쓸 수 있는 사람도 몇 명 있었다. 시몬이 눈을 깜빡이다가 애써 웃으며 그들의 인사를 받았다.
“걱정 마. 네가 내 포용의 맹약자라고 말했으니까.”
“그래서 반겨주시는 거구나.”
원주민들과 악수나 포옹을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는 와중에 시몬은 이 마을의 광경을 눈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람들이 전부 젊네.’
신기하게도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고 해봐야 30대 정도, 대부분은 알리타와 같은 10대나 20대였다. 아이들도 무척이나 많았다.
아주 가끔 장년 정도로 보이는 사람도 있는 듯했지만.
“^&$!”
“%#@!”
그들이 시몬에게 인사하러 오자, 일족의 젊은이들이 어딜 끼어드냐는 듯 화를 냈다. 10대 후반이 이 마을 세력의 핵심 권력자들인 모양이었다.
반면 나이가 많을수록 대접이 나빴다. 마치 일족의 원수라도 되는 듯 대하고 있었고, 장년의 사람들도 그것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이가 조금 있어 보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죄인처럼 눈치만 보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그때 대륙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다가왔다.
나이는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알리타를 구해주신 건 감사하지만, 오늘은 일단 돌아가주셨으면 합니다.”
“네?”
“우리 일족의 드높은 족장, 비브론 님께서 오고 계십니다. 그분은 외부인을 별로 좋게 보시지 않아요.”
족장이라는 말을 들은 시몬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그때 알리타가 고개를 갸웃했다.
“족장님은 ‘신계’에 가시지 않았어요?”
“그래, 그런데 이제 막 신계에서 오신다고 연락을…… 아!”
저 멀리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쏟아졌다.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말을 걸었던 여성이 시몬에게 몸을 피하라고 했지만, 시몬은 슬쩍 물러나 마을 사람들 뒤에서 똑같이 자세를 낮추고 기다렸다.
이내.
쿵- 쿵-
주변이 울려 퍼지는 위압적인 발소리와 함께, 털가죽으로 몸을 감싼 남자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
‘저 사람이 족장, 비브론이구나.’
이쪽 일족답게, 나이는 시몬의 또래 정도로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탄탄하게 단련된 몸에는 기하학적인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어깨에는 검은 짐승의 털을 둘렀고, 펑퍼짐한 바지를 입었다. 몸 곳곳에 특이한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절컹.
그때 족장이 걸음을 멈췄다.
“외부인의 냄새가 나는구나. 누가 외부인을 우리 마을에 들였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알리타가 창백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족장님! 그는 제 포용의 맹약자로서……!”
“처음 뵙겠습니다.”
그때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 성큼 걸어갔다. 이내 사람들을 지나 족장의 앞으로 떡하니 모습을 드러냈다.
“대륙어를 할 줄 아시니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
족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넌 뭐지?”
“암흑연합의 키젠에서 왔습니다. 기왕 이렇게 됐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시몬이 후욱 숨을 내뱉고는 족장의 눈을 마주했다.
“결사와는 어떤 관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