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1049)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49화
꽈득!
퍽!
얼마나 오랫동안 주먹을 휘두르고 있는지, 비브론 자신조차 알 수 없었다.
주위를 둘러싼 언데드들의 벽, 시커먼 콜로세움.
그곳에서 집요하게 싸움을 거는 망자들.
후웅!
주먹이 충격파를 일으키며 좀비를 짓이기고.
꽈드득!
솟구친 발끝이 스켈레톤의 두개골을 박살 낸다.
차근차근 숫자를 줄여 나가고 있었지만 언데드들의 벽은 여전히 크고 굳건했다.
‘언제까지 소모전을 고집할 생각이냐, 시몬 폴렌티아.’
비브론은 무의식 속에서 언데드들을 부수며 생각했다. 그 모래의 던전에서 빠져나온 뒤, 시몬이 사용하는 전술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마치 완전히 다른 성향의 전략가가 된 것 같다.
부웅!
휘둘러진 비브론의 주먹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갈랐다. 돌진하던 스켈레톤들이 일순 동작을 중단하고 물러난 것이다.
‘빌어먹을.’
그가 반대쪽 주먹에 힘을 끌어모아 전면으로 충격파를 내질렀다. 처음엔 일격 일격에 수십 마리는 족히 없앴지만, 언데드들이 충격파가 내질러지는 방향으로 빠르게 물러나며 충격파를 흘려보내는 기민한 모습까지 보였다.
충격파가 지난 후에는 다시 언데드들이 들어차서 벽이 메워졌다.
끝이 없는 영겁의 전투.
차라리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든다면 힘으로 압도할 수 있는데, 이렇게 번거롭게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니 짜증이 치밀었다.
-살아남으렴.
-살아남으렴.
시몬 폴렌티아는 자신의 완전한 면역 상태가 ‘지속 시간’이 있다고 판단하고 장기전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감정이 열쇠라고 생각할 테니까.
그렇다면 어리석은 판단이다. 이 힘은 과거의 한 장면, 어머니가 베히모스에 삼켜지는 광경을 떠올리는 동안 유지된다.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다.
꽈득!
퍽!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비브론의 몸에는 상처가 늘어나고 있다. 일순 집중력이 흐려지거나 딴생각이 나면 면역 상태가 풀리고, 언데드에게 상처를 입게 된다.
그걸 아는지 군단은 끝도 없이 몰아치며 다채로운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병장구를 휘두르고, 폭발하고, 독이 튀어나오고, 이빨을 들이대기도 한다. 낯선 공격으로 집중력이 흐려지는 순간과 공격이 성공하는 순간이 절묘하게 맞춰지면 비브론도 상처를 입었다.
‘놈의 위치는.’
무의식 속에서 주먹을 휘두르던 비브론의 시선이 언데드 벽 한쪽에 군림하듯 앉아 있는 시몬의 모습을 확인했다. 단지 앉아서 팔을 조금 움직이고 있을 뿐, 그 외에 별다른 동작은 없다.
‘스스로 모습을 노출한 걸 보니 나를 유인하려는 속셈인가. 넘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휘두른 주먹이 스켈레톤 하나의 두개골도 부수지 못한 채 허공을 가르는 꼴을 보며, 비브론의 인내심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특정 장면을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한 채 싸우면 공격이나 동작이 단조로워질 수밖에 없다.
이곳의 언데드를 전부 때려눕히고 시몬 폴렌티아에게 가는 데 얼마나 걸릴까. 비브론은 조금씩 초조해졌다.
그리고 한편.
‘힘들어!’
시몬은 시몬대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비브론이 초조한 이상으로, 시몬도 초조한 건 마찬가지였다.
‘별수 없어. 비브론을 끌어내야 해. 내가 지쳐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어떻게든 이 상태를 유지해야 해!’
이 전술은 진 아르스칼트로부터 배운 것을 바탕으로 시몬이 제7군단 전용으로 바꾼 기술이다.
계기는 무리아귀를 만들던 수업 중에, 진이 해준 조언이었다.
-네가 일순 쏟아내는 명령의 절대력은 언데드에게 있어 파괴적인 수준이니라.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내팽개치고 오로지 그 명령을 따르기 위해 몸을 불사르지.
-병력의 힘만으로는 꺾을 수 없는 상대도 나타날 것이다. 디테일한 명령을 내리는 것도 익숙해져야 하느니라.
그래서 만들었다.
새로운 신전술을.
군단형 언데드들의 움직임을 극한으로 조율하고, 정제한다. 비브론은 제자리에서 무의식으로 싸우고 있다. 그의 움직임을 예측하여 언데드들을 치고 빠지게 하며 비브론을 지치게 만들고 있다.
상대는 무한히 몰려오는 검은 벽이 왔다 갔다 현란하게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받으리라.
이론상 강력하고, 계속 유지할 수만 있다면 쓰러뜨리지 못할 적이 없지만, 시몬의 부담이 너무 컸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언데드들을 컨트롤하느라 머리가 점점 뜨거워지고 입안에 신물까지 나왔다.
게다가 군단형 언데드도 파괴되면 시몬의 사념에 조금이라도 데미지는 들어오니, 피로는 누적된다. 피어의 투구로 얼굴을 가려서 정말 다행이었다. 이 안에서 힘든 티를 팍팍 내고 있으니까. 오만상을 쓴 채 혀를 내밀고 헉헉대는 중이었다.
이 상태를 오래 유지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들어와라, 비브론.’
상대도 인내심이 바닥난 건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상대가 보기에는 이 상태를 무한히 유지할 수 있어 보일 테니까.
‘들어와라.’
‘끌려 나가지 않는다.’
시몬과 비브론.
두 사람은 서로 싸우면서도 치열한 심리전을 벌이고 있었다.
퍼억!
퍽!
으적!
꽈드드득!
비브론의 몸에 언데드의 피가 연신 묻었다. 그러나 마치 방수복처럼 그의 몸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고 주르륵 바닥에 떨어졌다.
-살아남으렴.
-살아남으렴. 살아남으렴. 살아남으렴. 살아남으렴. 살아남으렴.
미칠 것 같았다.
이렇게 오랫동안 어머니의 죽음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는 건 처음이다.
이미 지난 일이다. 그냥 떠올리고 있으면 된다.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지 않나. 이젠 무뎌져서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이성은 생각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마음에도 피로가 누적될 수 있다는 사실을, 비브론은 오늘 처음으로 깨달았다.
‘빌어먹을!’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비브론이 저 멀리 떨어진 시몬을 바라보았다. 잠시 생각해 보니 이렇게 질질 끌 필요가 있을까 싶다. 언데드들이야 잔챙이에 불과하다. 공격을 하는 과정에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바람에 조금 상처를 입어도, 어차피 군단장만 죽이면 끝난다.
‘이젠 진짜 한계야.’
한편 시몬의 팔도 파르르 떨렸다. 너무 세밀한 컨트롤로 뇌가 터질 것 같았다. 그냥 피어도 입었으니 직접 저 안으로 들어가 비브론과 싸우면서 다른 언데드들로 뒤를 노리거나 보조하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시몬이 더 견디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
갑자기 비브론의 발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직접 싸우려고 일어나던 시몬이 가히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한 번 더 참았고.
“배신의 군단장!”
비브론이 돌진해 왔다.
종이 한 장 차이. 상대보다 아주 조금 더 발휘한 인내심이 모든 것을 갈랐다.
쿠왁!
비브론이 허공을 붙잡고 거대한 회오리를 일으켜 언데드의 벽을 허물어뜨렸다. 시몬은 얼른 파멸의 대검을 앞으로 세워 들었고.
터어어어어어엉!
주먹과 대검이 부딪히며 굉음이 터져 나왔다. 시몬의 몸이 언데드의 벽에서 빠져나와 뒤쪽으로 밀려났다.
“잡았다!”
비브론 또한 자신이 일으킨 바람을 타고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시몬이 ‘큭!’ 소리를 내며 재차 파멸의 대검을 휘둘렀지만.
쩡!
비브론이 팔꿈치로 대검의 검면을 내려쳐 강제로 시몬이 검을 놓치게 했다. 뒤로 물러나는 시몬의 눈에 당혹감이 스쳤고, 그런 시몬에게 돌진하는 비브론의 입가가 쩍 벌어졌다.
‘내 판단이 옳았다. 이겼다!’
그의 주먹이 시몬의 콧잔등까지 날아온 순간.
꾸우우우우웅-!
갑자기 벌집 모양의 자줏빛 쉴드가 펼쳐지며 그의 주먹이 막혔다.
‘!’
비브론의 눈이 부릅떠졌다.
시몬이 입은 피어의 무형의 망토 뒤에 숨겨져 대기하고 있던 드래고니안 슈트가 방어 마법진을 펼친 것이다. 거의 동시에 시몬이 손끝을 세웠다.
‘개문!’
촤아아아악!
촤아아아아아아악!
바닥에서 튀어나온 촉수 칼날, 오버로드가 비브론의 허벅지를 베면서 지나갔고, 동시에 친위대들이 사방에서 번개처럼 쇄도하여 그의 목과 팔과 등에 청록빛 검을 휘둘렀다.
‘어느 틈에!’
승리를 확정한 순간의 반전. 거기에 육체적 통증이 이어지며 어머니가 죽는 이미지가 살짝 흐려졌다. 비브론은 다급히 다시 어머니가 죽는 모습을 떠올렸으나.
이미 늦었다.
오버로드가 허벅지와 다리를 한 뭉텅이 베어내며 지나갔고, 다섯 기의 친위대들은 그의 몸을 크게 베어냈다. 특히 허리는 내장이 보일 정도로 깊게 베었다.
-살아남으렴.
카가가각!
뒤늦게 어머니의 죽는 장면이 떠오르며 비브론을 베어가던 칼날들이 더 들어가지 못하고 멈췄다. 비브론은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도는 것으로 광풍을 일으켜 친위대들을 날려 버렸다.
친위대와 연결되어 있던 시몬이 ‘큭!’ 소리를 내며 몸에 상처가 생긴 채 비틀거렸다. 물론 비브론이 입은 상처에 비하면 찰과상이었고, 즉시 뒤로 물러나는 모습이다.
‘당했나!’
비르론의 눈이 분노가 일렁거렸다.
처음부터 계획된 함정이다. 자신의 인내심을 갉아먹다가 무리한 공격을 유도하고, 마지막에 대검을 떨어뜨리며 당하는 듯한 착각까지.
그 찰나에 비브론은 어머니의 죽음을 잊었고 그 대가는 컸다.
[와라.]시몬이 팔을 뻗자, 뒤에 있던 군단의 언데드 무리가 우르르르 벽째로 움직였다. 다시 저 요새 속으로 비브론을 가둘 생각이었다.
비브론은 다시 한번 선택을 강요당했다.
저기에 갇힐 것인가. 아니면 계속 시몬을 밀어붙일 것인가.
‘선택의 여지가 없나.’
살점이 덜렁거릴 만큼 심하게 베였다. 어머니의 죽음을 떠올리면 방어력은 유지할 수 있겠지만 회복은 되지 않는다. 시간이 더 끌리면 출혈과 중상으로 위태로워질 뿐이다.
꾸우욱.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한번 호랑이의 등에 올라탔다면 끝까지 가야 한다. 비브론의 발가락이 지면을 꼬집듯 강하게 짓밟았다.
‘여기서 끝장을 본다!’
그의 몸이 거칠게 쇄도했다. 시몬도 일순 물러나는 것을 멈추고 손에 쥔 파멸의 대검을 고쳐 잡은 뒤 힘껏 휘둘렀다.
쩌어어어어어엉!
다시 한번 두 사람의 주먹과 대검이 강하게 부딪힌 뒤 반탄력으로 서로가 물러나고, 다시 서로가 돌진하며 공격을 주고받았다.
굉음이 연달아 꽝! 꽝! 하고 터져 나온다. 두 사람의 공격이 어지럽게 허공에서 격돌한다. 싸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군단의 언데드들이 비브론의 등 뒤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비브론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
[한 가지 묻지, 비브론.]시몬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 자신도 ‘공물’ 제도의 희생자면서 왜 제도를 바꾸지 않고 사람들을 죽도록 방치했지? 왜 알리타를 공물로 죽게 한 거냐?]대답할 필요가 없는 질문.
하지만 비브론은 감정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 편이 내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살아남으렴.
-살아남으렴.
비브론에게 ‘생’이란 형벌과 죄책감.
자신은 괴로워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싸움꾼의 운명을 타고났으면서도, 가장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지 않으면 버티지 못하는 이 일그러진 삶.
한때나마 평범한 복수를 꿈꾼 적도 있다. 제도를 바로잡으려고 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 광경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이 바뀐다.
“왜 나만 고통받아야 하지? 왜 나를 희생해서 주위를 더 나아지게 바꿔야 하나!”
터업!
그가 한 손으로 시몬의 파멸을 강하게 붙잡고 힘으로 밀어냈다.
“하하 호호 웃는 놈들의 꼴을 보면 눈이 뒤집혀서 견딜 수 없어! 이 세상의 불행은 찰나가 아니라 전제여야만 한다! 그것이!”
쿠구구구구구구구구!
그의 주먹이 텅 빈 시몬의 머리를 향해 쇄도했다.
“내 대의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이번에야말로 비브론의 주먹 끝이 시몬의 얼굴에 닿았으나.
출렁!
결정적인 순간에 주먹이 비틀렸다.
아니, 주위의 공간 전체가 회오리처럼 비틀렸다. 그의 주먹은 비틀린 공간 속으로 휘어져 빨려 들어가고.
[내가 결사에게 느끼는 가장 싫은 점은.]태연히 비틀림 속에서 나온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가볍게 그으며 빠져나왔다.
[자신의 비틀린 생각을 ‘대의’라며 거창하게 지껄이는 그 알량한 태도야.]촤아아아아악!
비브론의 가슴이 크게 베이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살아남으라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비브론의 동공이 뒤집히더니, 그대로 털썩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잘 가라.]따악.
시몬이 손을 튕기기 무섭게, 비브론의 몸이 소용돌이에서 강제로 튕겨 나와 뒤쪽으로 날아갔다. 그 뒤쪽에는 군단의 언데드들이 바글거리며 기다리고 있었고.
쿠웅!
비브론의 몸이 그 안으로 빠져드는 동시에 언데드들에게 둘러싸였다.
시몬이 눈을 감으며 머리에 쓴 피어의 투구를 손끝으로 밀어 올렸다.
“뭘 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까지 그 광경을 떠올리며 괴로워해. 비브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