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1051)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51화
중립지대, 초승섬.
쿠우우웅-!
쿠우웅!
섬 전체가 무너질 듯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별장의 나무 벽이나 천장의 잔해가 후두둑 떨어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사람들의 겁에 질린 비명이 울려 퍼졌다.
‘매해 부서지고 새로 지어서 그런지 건물을 튼튼하게 짓지는 않았구나.’
그런 생각을 하던 수석조교가 옆을 바라보았다.
의젓하게 자리에 앉아 있는 10대 초반의 어린 소녀, 몸 곳곳에 ‘공물’을 증명하는 무늬가 있는 알리타는 그저 입술을 깨문 채 버티고 있었다.
“하늘에 오른 위대한 고래와 황소의 신이시여.”
“부디 노여움을 푸시옵시고……!”
그리고 마을에서 벗어나 키젠 측 별장에 들어온 원주민들은 모두 바닥에 엎드린 채 뭐라뭐라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러다 베히모스가 꼬리라도 휘둘렀는지 쐐애애액! 하고 바람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면 모두 기도를 멈춘 채 힉! 하고 바닥에 바짝 붙었다.
원주민들 중에서는 알리타만이 의연했다. 수석조교는 그녀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괜찮아요. 이곳은 아론 교수님께서 지켜주실 거예요.”
“……네.”
“그리고 다른 학생들, 특히 여러분과 만난 시몬 폴렌티아 학생회장님도 싸우고 계시니까 안심하세요.”
수석조교의 말에 알리타의 눈꺼풀이 조금 내려갔다.
“……시몬.”
벌떡.
그때 원주민 중의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은 못 참겠어. 이건 다 알리타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
이마에 주근깨가 가득한 여성이 알리타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공물이 바쳐지지 않으니 신께서 노하시잖아!”
불만을 속으로 삭이고 있던 다른 원주민들도 하나둘 고개를 들었다.
“그 말이 맞아. 위대한 순환의 의무를 저버리고 목숨을 연명하려고 하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자신이 살아남으려고 외부인을 끌여들여 신을 상대하게 해? 신은 인간이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죽음은 자랑스러워야 할 일이야! 이기적이고 비겁한 알리타!”
알리타는 손끝을 조금 떨 뿐 꿋꿋이 비난을 감내했다.
그때 한 목소리가 유독 귓가에 파고들었다.
“네 엄마는 당당하게 신의 입속으로 뛰어드셔서 마지막까지 명예롭게 돌아가셨어! 그런데 그 딸인 너는…….”
“아니야! 엄마는!”
알리타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라고 목소리를 높이려던 그녀가, 이내 고개를 축 늘어뜨리며 말을 이었다.
“……겁에 질린 채, 울먹이면서, 고통스럽게 돌아가셨어.”
놀란 원주민들이 말을 멈추었다.
알리타는 거대한 몬스터의 입가에 던져지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다들 알잖아.”
그녀의 어머니는 태연하게 모두와 작별 인사를 나눈 뒤 베히모스의 입으로 뛰어들어 갔지만, 목구멍으로 빨려드는 순간 표정이 바뀌었다. 살려달라고, 꺼내달라고. 아무리 아우성쳐도 모두가 외면했다.
하지만 처음에 화를 냈던 주근깨 여자는 계속 쏘아붙였다.
“그게 뭐 어때서? 네 엄마는 순환의 의무를 다하신 거야! 네 엄마만 그랬나? 모두가 그렇게 살아왔어! 그런데 올해의 공물인 네가 이제 와서 이런다는 건…….”
“저기.”
알리타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넌 죽음이 두렵지 않아?”
주근깨 여성이 눈에 힘을 주며 답했다.
“당연하지! 세상은 순환해! 죽음은 숭고해! 나는 조금도 두렵지……!”
“그러면 밖으로 나가서 베히모스에게 죽어줘.”
알리타가 문밖을 가리켰다.
그 말을 들은 주근깨 여성이 한 차례 더 흠칫하더니 이내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말했다.
“내가 왜? 올해의 공물인 네가 죽어야지 내가 죽을 이유는……!”
“이유를 찾는구나.”
알리타가 비릿하게 웃었다.
“죽음은 숭고한 일이라며?”
“……그, 그건!”
얼굴이 더더욱 붉어진 여자가 말문이 막힌 듯 우물거렸다.
알리타는 더 쏘아붙이지 않고 시몬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살고 싶어 하는 욕심은 잘못된 게 아니야, 알리타. 그 무엇보다 강렬하고 숭고한 욕망이야.
“여기서 모두의 앞에서 확실히 말할게. 이기적이라고 비난해도, 명예롭지 않다고 손가락질해도 상관없어.”
-태어난 이유는 죽기 위함이 아니잖아. 너는 조금 더 떳떳하게 삶을 요구해도 돼.
“나는 더 살고 싶어!”
알리타가 눈에 잔뜩 힘을 주었다.
“그게 그렇게 죽을죄야?”
다들 알고 있었다.
죽음을 순환이라고 표현한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외면하기 위해.
공물을 정한 것은,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책감을 회피하기 위해.
공물이 되지도 않고 나이 들어서도 살아남은 사람을 손가락질하는 것은, 그들이 죽지 않아 내가 살아남을 확률이 줄어드는 게 두렵기에.
하지만 누구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다음 공물이 되는 게 두려웠으니까.
주근깨 여성도 결국 가만히 자리에 앉았다. 원주민들 모두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덜컹!
그 순간 별장의 문이 큰 소리를 내며 열렸다. 핏물에 젖은 로브 차림의 아론이 저벅저벅 걸어 들어왔다.
“아론 교수님!”
수석조교가 급히 달려가 손수건으로 얼굴에 묻은 핏물을 닦아주었다. 아론은 덤덤히 기다렸다가, 눈을 가린 피가 닦이자 고개를 돌렸다.
“알리타라고 했던가.”
“……네.”
“시몬 폴렌티아로부터의 보고다. 결사의 일원이었던 비브론을 붙잡았고, 베히모스가 몰려드는 원인은 완전히 제거했다고. 앞으로는-”
아론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죽음을 위해 살아갈 필요가 없다고 하더군.”
그 말을 들은 그녀의 눈망울이 급격히 커졌다. 이내 그녀가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아!”
맑게 갠 하늘 위로 베히모스들의 모습이 보인다.
몇 날 며칠을 초승섬에 남아 부수고 파괴했어야 할 저들이 모두 등을 돌려 먼바다로 떠나고 있었다.
뒤따라 나온 아론이 통신 수정구를 내밀었다.
“연락이 왔는데, 직접 시몬과 이야기해 보겠나?”
“?”
알리타가 통신 수정구를 받아 들었다. 그때 수정구에서 시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리타?
“왁!”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통신 수정구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녀의 눈이 휙휙 돌아가고 있었다.
“물건에서 목소리가 나와!”
-하하! 놀랐어? 나야, 시몬.
시몬의 음성인 걸 깨달은 그녀가 비로소 안심하고 통신 수정구를 들어 올렸다.
몸은 괜찮은지, 다친 곳은 없는지 이런저런 안부 이야기가 오고 갔다.
-너희 일족의 규칙이었지? 족장이 없으면 ‘공물’이 된 사람이 이를 대리하는 권한을 갖는다. 하지만 비브론은 체포돼서 너희 섬에 돌아오지 않을 거야. 즉, 지금부터는.
시몬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울려 퍼졌다.
-네가 마을을 이끌어 나갈 족장이야, 알리타.
“……내가?”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들 혼란스러울 거야. 죽음을 전제로 살아왔다가 그 제약이 사라지게 되니까. 오래 살게 된 만큼 무엇을 할 건지, 뭘 좋아할 건지, 어떻게 지낼 건지 고민해야겠지. 이제는 네가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해.
“내가 뭐를…….”
시몬이 웃는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살아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그것뿐이야.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이내 수정구를 끌어안고 울먹이며 말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시몬.”
한동안 그렇게, 알리타는 우두커니 울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론과 수석조교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괜찮을까요? 교수님. 학생들의 임무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기로 했잖아요.”
“우리는 우리 몸을 지켰을 뿐이다.”
아론이 손바닥으로 눈두덩이를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원주민들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이리로 들어온 것뿐, 관여한 건 아니다.”
수석조교가 활짝 웃었다.
“네!”
* * *
시몬과 세르네는 무사히 해안요새로 돌아왔다.
전투의 긴박감이 그대로 남아 있는 광경이었다. 이제는 요새라고 말하기도 뭣한 성벽이 무너져 있었고, 곳곳에 학생들이 퍼질러 누운 채 숨만 헐떡이고 있었다.
그나마 아직 움직일 수 있는 학생들이 빠르게 현장을 수습하고 있었다. 상황을 물어보니 다행히 크게 다친 학생은 없었다. 정신을 잃은 몇 명이 있었지만 즉시 중립지대의 병동에 실려가 치료를 받고 있다. 그렇게 큰 싸움에도 모두 살아남았다는 건 역시 키젠다운 저력이었다.
이런 와중에도, 요새 아래 ‘봄버’에 맞고 쓰러진 베히모스들은 빠르게 처리되는 중이었다. 내가 잡았느니 니가 잡았느니 학생들끼리 분쟁도 일어났지만 헥토르가 직접 돌아다니며 중재했다. 단체 임무의 공통 보상인 만큼 1인 1베히모스 획득을 기본으로 했다.
“다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쓰레기를 줍느라 여념이 없네요.”
세르네가 여우 같은 눈웃음을 치며 시몬을 바라보았다.
“우리와는 달리?”
“……하하.”
세르네가 생색내는 걸 원하는 것 같으니 시몬도 열심히 받아주고 있었다.
사실 큰소리칠 만했다. 세르네가 포획한 베히모스는 재료로서 최고의 품질이었다. 크기가 너무 크지도 않고, 지느러미와 상체가 발달했으며, 무는 힘도 상당했다. 봄버에 맞아 격추되지 않았으니 뼈의 손상까지 적었다.
좋은 재료를 손에 넣었으니 마음은 든든했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며 부상자들을 돌보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다.
“큰일이야 조장!”
“시몬!”
에슈를 비롯한 몇몇이 시몬에게 뛰어들어 오며 말했다. 시몬이 눈을 깜빡이며 그들을 돌아보았다.
“왜 그래?”
하악.
헉.
한차례 숨을 몰아쉰 에슈가 이내 큰 소리로 말했다.
“오르자바의 영주님이……!”
“!”
시몬은 여력이 있는 몇몇 동기들과 함께 바로 현장으로 향했다.
그 현장은 오르자바가 아니라, 오르자바 옆에 있는 여러 위성도시 중 한 곳이었는데 비브론이 영지성을 습격하는 바람에 영주가 몸을 피한 장소였다.
그런데 하필 이곳을 베히모스가 덮쳤고, 끔찍한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
“팔……!”
비단옷을 입은 오르자바 영주의 팔 한쪽이 떨어져 있었다. 단면은 틀림없는 이빨 자국, 베히모스에게 산 채로 잡아먹힌 자국이었다.
거기에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영주와 함께 있던 아들까지 함께 잡아먹혔다고. 부인은 오래전에 고별했으니 일가족이 몰살당한 셈이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이제 누가 오르자바의 영주지?”
“그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오르자바의 영주직의 제1승계자와 제2승계자가 세상을 떴고, 그다음으로 영지의 승계권을 가진 인물.
“……오르자바의 사무관, 베스티올라가 다음 승계자야.”
에슈의 말에 한 학생이 벌컥 화를 냈다.
“그 사람! 우리가 베히모스를 막겠다는 거 자꾸 방해하고 주민들 피난도 안 시킨 그 사람 맞지?”
“싸한데. 영주 옆에서 늘 함께 있어야 할 사무관 본인은 왜 여기 없던 거지?”
잠시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던 시몬이 얼른 고개를 들었다.
“얘들아, 나 먼저 가볼게.”
“응?”
“회장!”
터엉!
순식간에 앞으로 달리며 아공간에서 피어를 꺼내 입은 시몬이 건물 지붕을 밟고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 * *
한편 같은 시각.
해안요새 근처에 남아서 베히모스를 정리하던 학생들 앞에, 바로 그 영주가 된 사무관 베스티올라가 자신의 사병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그는 군말하지 않고 선언했다.
“오르자바의 영주로서 명합니다. 지금 바로 이곳에서 나가주셔야겠습니다.”
학생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목숨을 바쳐서 여기서 싸웠고, 아직 부상도 회복하지 못했는데 대뜸 나가라니. 항의하는 게 당연했다.
그 말을 들은 사무관 베스티올라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그가 천천히 옆으로 물러섰다. 학생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서 고개를 들었고, 이내 눈을 부릅떴다.
저벅. 저벅. 저벅.
한 무리의 군대가 이리로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