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105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54화
믿을 수 없을 만큼 맑고 청아한 목소리와, 그와 대비되는 시큰둥한 톤.
그리고 익숙한 말투까지.
시몬의 시간이 그대로 정지했다.
-별의 성녀 레테라고 함다.
시몬이 뭐라고 답이 없자, 통신 수정구의 그녀 쪽에서 스스로 신분을 밝혔다.
이름을 들은 팔라딘들이 일순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기립했다. 조그맣게 ‘그라툴라 미 키빌리스’ 하고 중얼거리는 자도 있었다.
-이스라필 님이 현장에 나가셔서 제가 잠시 이쪽 지휘를 맡고 있슴다. 무슨 일임까?
성녀의 질문에,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통신 수정구를 든 시몬에게 집중되었다.
그런데.
“…….”
시몬은 머릿속이 일순 하얗게 변해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예상치 못한 인물이 튀어나와서 그랬다. 이렇게 재회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도 못했으니까.
-? 저기요.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레테 특유의 못마땅할 때 나오는 뾰로통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뭐 하잔 검까. 바빠 죽겠는데 죽을라고 진짜.
너무나도 익숙한 그 툴툴거리는 목소리.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비로소 거짓말처럼 몸에 긴장이 풀리고, 시몬은 그만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저놈이 미쳤나.’
시몬의 웃음을 본 팔라딘들은 일제히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통신 수정구에서도 웃음소리를 들었는지 발끈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당신 누구야? 지금 나랑 장난치는……!
“그라툴라 미 키빌리스(cíbĭlis). 여신의 가장 가까운 딸을 뵙사옵니다.”
시몬이 일순 표정을 고치고 진지하게 성녀에 대한 예의를 차린 뒤, 잽싸게 덧붙였다.
“이곳은 중립지대의 오르자바이고, 저는 이스라필 성녀님의 명령을 받들어 파견된 비밀 수사관입니다.”
후욱.
긴장된 시몬이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 본래의 목소리를 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녀가 알아들을 만한 이야기를 해야 했다.
“레테 성녀님은 언젠가 이스라필 성녀님과 함께 뵌 적이 있었지요. 최근에는 하늘섬에서 신세 졌습니다.”
이 정도면 눈치채겠지?
시몬은 애써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며 레테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당신 뭔데 나한테 친한 척이야.
오히려 레테의 목소리에 날 선 경계심이 더해졌다.
-비밀 수사관? 이스라필 님한테 그런 게 있다는 건 처음 듣는데.
텁.
시몬이 자신도 모르게 이마를 덮었다. 생각해 보니 레테가 하늘섬에서 만난 이스라필 쪽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게다가 목소리가 전혀 다르니 알아듣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스으.
자리에 앉아 있던 잘콘이 천천히 팔을 뻗어 창대를 붙잡는 모습이 보였다.
위기였다.
‘직접적인 지명이나 사람의 이름을 말하는 건 위험해!’
작년에 하늘섬에 있었던 에프넬 선발생 살인 사건과, 성녀 리사라 사태를 비롯한 사항은 기밀 중의 기밀이다.
지금 통신을 듣는 사람은 저쪽에도 있을 터, 그 이야기를 꺼냈다간 즉시 체포될 것이다. 레테의 사정이 곤란해질지도 몰랐다.
‘둘만 아는 이야기, 둘만 아는 이야기가 뭐가 있지?’
사실 차분하게 생각해 본다면 이야기할 거리는 많았다. 하지만 지금 시몬은 여전히 정신적으로 어지러운 상태였고, 주위에는 팔라딘들이 눈을 부릅뜨며 압박하듯 지켜보고 있었다. 잘콘은 창을 붙잡은 채 몸을 일으켰다. 금방이라도 목을 칠 기세였다.
‘둘만 아는 이야기가 뭐 있지? 이게 갑자기 왜 안 떠오르지?’
목구멍에 침이 꼴깍 넘어간다.
시몬은 자신이 너무 긴장하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버리는 타입이라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자꾸만 레스힐에 있었던 일들이나, 레테가 이쪽 키젠에 넘어왔을때의 일들이 떠올랐다. 암흑연합의 지명은 절대로 입에 담을 수 없다.
‘미치겠네! 시간이 없어!’
시몬이 눈을 질끈 감으며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리고 있는 그때.
문득, 레테의 목소리가 계시처럼 귓가에 파고들었다.
-선발 1번을 따내면, 내가 뭐든지 소원을 하나 들어줄게요.
시몬의 눈이 번쩍 뜨였다.
“하늘섬에서 했던 내기 기억나십니까? 원래라면-”
시몬이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성녀님께서 제 소원을 들어주시는 게 맞습니다.”
팔라딘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이거나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 내용을 모르는 제삼자에게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은 이야기. 잘콘은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시몬의 목에 창끝을 겨누려고 했다.
그런데.
-?$%@!!!
통신 수정구에서 기겁한 경악성이 튀어나왔다.
-뭐야 뭐야 당신! 뭐예요? 당신이 왜 거기 있어?!
시몬이 쓰게 웃었다.
참 눈치채는 게 늦기도 하지.
‘그래도 다행이다.’
시몬은 이제 심적으로 진정됐으나, 아무래도 이번에는 저쪽이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 아니! 당신이 왜 거기 있는……! 여, 여긴 이스라필 님 쪽 진영이고 이거 팔라딘 전용 통신인데……! 윽! 다들 듣지 마요!
갑자기 목소리가 멀어지더니, 부끄러움을 해소하듯 주위로 소리치는 레테의 반응을 보며 시몬은 힘겹게 웃음을 참았다.
하지만 혼란에 빠진 그녀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듣는 귀가 많으니 실수를 하면 안 되니까.
“다시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스라필 님의 비밀 수사관입니다. 현재 중립지대에서 임무를 수행 중에 아크 팔라딘 잘콘 님의 부대와 맞닥뜨렸고, 원활한 수사를 위해 제 신원이 증명되었으면 합니다.”
흠- 아흠-
통신 수정구에서 비로소 헛기침 소리가 몇 차례 들리더니 이내 상냥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맞아요. 이분의 신원은 저 별의 성녀 레테가 증명하겠습니다.
처음에 업무에 찌든 목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맑은 음성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팔라딘들이 수군거렸다.
“레테 성녀님께서 저렇게까지 말씀해 주시다니…….”
“대화를 들어보니 서로 아는 사이인 것 같기도 하고.”
“정말로 비밀 수사관인가 본데.”
금방이라도 시몬을 공격하려던 잘콘도 다시 자리에 앉아 창을 휙 벽에 던져놓았다. 잘콘의 참모가 가슴을 부여잡고 안도의 한숨을 푹푹 내쉰 뒤 잘콘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내 말이 맞지? 진짜 수사관을 잡아넣었으면 어쩔 뻔했냐!’
이내 레테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중립지대에서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저도 어떤 상황인지 자세히 듣고 싶네요.
“예, 괜찮으시다면 제가 직접 설명드리겠습니다. 성녀님.”
시몬은 레테에게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새롭게 수정된 중립지대 협약, 베히모스의 공세와 그것을 막아낸 키젠. 그리고 베히모스에게 영주가 살해당하고 새 영주가 된 베스티올라와 그가 불러낸 아크 팔라딘 잘콘과 팔라딘들, 협약을 파기하면서 공격을 강행하려는 이번 행동에 대해서까지.
모든 이야기를 들은 레테가 말했다.
-네, 잘 들었어요. 제가 직접 책임자인 잘콘과 이야기하죠.
시몬이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잘콘에게 통신 수정구를 넘겼다. 잘콘은 이를 갈며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라툴라 미 키빌리스. 아크 팔라딘 잘콘입니다.”
-네, 네. 반갑슴다. 딱히 뭐 길게 할 이야기는 없고.
레테의 목소리가 섬뜩하게 내려앉았다.
-즉시 에프넬로 복귀하십쇼. 그 어떤 종류의 교전도 불허합니다.
이걸로 끝났다.
시몬은 승리를 확신했지만 잘콘은 물러날 생각이 없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재고해 주십시오, 성녀님! 지금 중요한 건 이단 놈들과의 협약 따위가 아닙니다! 지쳐 있는 암흑연합의 두 군단장을 잡을 절호의 기회란 말입니다!”
잘콘이 목소리를 더더욱 높였다.
“협약을 어긴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하지만 두 군단장의 목을 따는 데 성공하면, 모든 공을 별의 성녀님께 돌리고 성녀님의 발 앞에 그들의 목을 진상하겠습니다! 부디 허가를……!”
뚝.
통신 수정구 너머 들리던 조그마한 소리들이 일제히 사라졌다.
주위는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모두 숨소리도 내지 못한 채 다음 레테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때.
-야.
통신 수정구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뒈지고 싶냐? 누가 누구의 목을 뭐? 이 X새끼가 진짜.
도저히 아까 그 청아하던 성녀와 동일 인물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살벌한 목소리. 팔라딘들은 창백한 얼굴로 바짝 허리를 세웠고, 참모는 입에 거품을 물었다.
-말 통하는 다른 새끼 바꿔.
“성녀님!”
-바꾸라고.
목소리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게 이런 걸까. 모두가 목에 가시를 삼킨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잘콘이 하는 수 없이 참모에게 통신 수정구를 넘겼고, 참모는 즉시 등을 돌려 굽신거리며 말했다.
“그라툴…….”
-허례허식 생략하고 내가 묻는 말에만 답하십쇼.
“옙! 성녀님!”
이어서 참모가 뭐라뭐라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고, 그 뒤로 잠시 레테의 말이 끊겼다.
잘콘도 신경이 쓰이는지 참모를 보며 말했다.
“성녀님이 뭘 물어봤습니까.”
“지금 이곳의 공간좌표. 무슨 이유로 물어보신 건지는 나도 잘…….”
반짝.
그 이유는 곧 모두가 알게 되었다.
저 멀리 하늘에 빛이 반짝였다.
‘설마!’
시몬을 포함한 사람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였다. 하늘의 반짝임은 점점 더 커졌고, ‘어어?’ 하는 외침과 함께 이제는 모두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그것은 ‘별’이었다.
“벼, 별이 떨어진다!”
“이쪽으로 온다!”
모두가 놀라서 물러났고, 별은 순식간에 내려와 그들이 있는 군막에 처박혔다.
이어지는 거대한 백색의 폭발과 연기가 주위를 뒤덮었다. 귀가 먹먹한 소음과 함께 뒤흔들리는 진동에 정신을 차리기도 힘들었다. 제자리에 선 시몬은 땀을 삐질 흘리며 연기 너머의 광경을 응시했다.
말 그대로 대폭발이었다.
‘레테, 진짜 너…….’
쿠구구구구구구구!
연기가 걷히고, 방금 잘콘이 있던 자리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겨나 있었다. 크레이터 안의 균열이나 갈라진 틈으로 신성이 발광물질처럼 번쩍이는 모습은 극단적으로 공포스러웠다.
모두가 자리에 엎어지거나 기절한 채 할 말을 잊은 가운데.
-두 번 말 안 함다.
바닥에 떨어진 통신 수정구에서 레테의 싸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선택하십쇼. 제 발로 거기서 나올 건지, 나한테 멱살 잡혀 끌려 나올 건지.
레테가 당장에라도 이곳에 나타날 것 같은 반응. 팔라딘들이 반쯤 우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잘콘을 바라보았다.
바닥에 엎어져 있는 잘콘이 부스스한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한숨을 쉬었다.
“……물러난다.”
* * *
잘콘과 그의 군대는 중립지대에서 완전히 철수하기로 했다.
그들이 군막을 걷고 짐을 싸는 사이, 시몬은 멀리 떨어진 절벽 위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며 통신 수정구로 레테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깜짝 놀랐잖슴까 진짜! 근처에 부하들도 많았는데 이상한 소리나 하고!
아까 잘콘을 협박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레테는 잔뜩 칭얼거리는 듯한 투로 변해 있었다. 시몬이 소리 내어 웃으며 말했다.
“미안해, 워낙 돌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어. 나도 이스라필 님께 연락했다가 네 목소리가 나와서 놀랐다니까.”
-아, 지금 이스라필 님은 국경에 가 있슴다. 저도 중립지대 국경 근처라서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던 거예요.
갑작스러운 타이밍에 목소리를 듣게 되어서 그럴까. 두 사람은 시간 가는 것도 잊고 몇 시간씩 수다를 떨었다. 통신 수정구의 마력이 다해갈 즈음에야 앉은 자리에서 시간이 꽤 흘렀다는 사실을 알게 될 정도였다.
-잘콘은 하늘섬으로 소환해서 제가 책임지고 갈굴게요. 여기선 말썽 피우는 걸로 유명하거든요.
“응, 그래 보이네.”
-최연소 아크 팔라딘 달았다고 눈에 뵈는 게 없는 거죠. 성녀가 말하는데 건방지게 진짜.
아무리 어려도 우리보다는 연상이지 않을까. 시몬은 그 말은 속으로 삼킨 채 미소 지었다.
“참.”
시몬이 빙글빙글 웃으며 운을 뗐다.
“리사라는 잘 있지?”
-걔는 왜요.
일순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살벌하게 변했다.
“아, 아니. 모항제 이후로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
당황한 시몬이 얼른 말을 덧붙였다.
“이제 막 성좌에 오른 성녀는 암살시도도 잦고 바뀌는 일도 많다고 들었어. 다른 선발생 동기들도 잘 있나 싶어서. 아하하……!”
잠시 수정구에 하아 하고 화를 참는 한숨 소리가 들렸다.
-고비는 넘겼슴다. 저번 일로 이름을 크게 알리기도 했고, 권능을 사용하면 누가 봐도 성녀 같은 자태로 변신하지 않슴까. 에프넬에서도 정식 성녀로 삼기로 한 것 같아요.
“다행이네.”
그렇게 말하는 지금도 점점 레테의 목소리가 흐릿해진다.
아무래도 통화는 여기까지인 것 같았다. 다시 서로 본업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아무튼, 이걸로 당신도 제게 빚 한 번 진 검다. 다음에 암흑연합 관련 일 있으면 잘 부탁해요.
시몬이 웃었다.
“알겠어.”
-참. 편지도 재깍재깍 답변해요. 죽고 싶지 않으면.
“받는 대로 답변하는데.”
-너무 느리잖슴까. 내가 다음에 보낼 답변까지 예상해서 답변해요.
두 사람이 웃음을 터뜨렸다.
목소리가 이제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흐려졌다. 이제 피차 마지막 한마디 정도 할 만한 마나만 남았다.
그리고 레테가 먼저 말했다.
-또 봐요, 시몬.
시몬도 답했다.
“또 보자, 레테.”
그것으로 통신은 끊겼다.
“…….”
잠시 여운에 잠겨 있던 시몬은 수명이 다한 수정구를 아공간에 넣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기지개를 쭈욱 켰다.
저 멀리 잘콘의 무리가 터덜터덜 퇴군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걸로 한 건 해결. 그리고…….’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하나 더 남았지.’
전 오르자바의 사무관이자 현 영주.
베스티올라와의 악연을 청산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