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1055)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055화
시몬과의 연락이 끝났다.
레테는 침대에 엎드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가끔 다리를 동동거리다가 미동도 없이 축 늘어지고, 주먹으로 베개를 팡팡 때렸다가 다시 잠자코 있기를 반복했다.
“?”
차를 쟁반에 받치고 가지고 온 프리스트가 그 광경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옆의 동료가 고개를 저으며 ‘다음에 오자’고 말했다.
그렇게 다시 홀로 남겨진 레테는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시몬과의 대화 내용을 상기하고 있었다.
-하늘섬에서 했던 내기 기억나십니까? 원래라면 성녀님께서 제 소원을 들어주시는 게 맞습니다.
그녀의 귀가 벌게졌다.
“그 미친 새끼가! 진짜!”
흠칫!
이번엔 저녁 일정을 위해 레테의 옷을 갈아입히려던 두 프리스트가, ‘다음에’라는 말을 주고받은 뒤 얼른 도망치듯 물러갔다. 레테는 다시 얼굴을 푸욱 베개에 묻었다.
‘남들 다 듣는 앞에서 내기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흐읍.
하아.
잠시 숨을 돌린 그녀가 베개에서 고개를 살짝 들어 황금빛 눈만 드러냈다.
아직도 선명히 떠올랐다.
-선발 1번을 따내면, 내가 뭐든지 소원을 하나 들어줄게요.
-그 녀석들을 못 보고 헤어진 것도 그렇지만, 1등 해서 너한테 소원 빌지 못한 것도 아쉽네.
팡 팡 팡!
침대 위에서 헤엄치듯 몸부림치며 두 주먹으로 마구 폭신한 베개를 내려쳤다.
좀처럼 부끄러움이 가시질 않는다.
이제 무슨 낯으로 부하들을 본단 말인가. 미칠 지경이었다.
그녀가 그렇게 몸부림치고 있는 사이, 저 멀리서 유난히 활기찬 구둣발 소리가 울려 펴졌다.
“레테!”
이내 바다색 머리카락에 큰 키의 여성이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제가 맡긴 일은 잘 보고 있었나요?”
신해의 성녀 이스라필이었다. 레테는 여전히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답했다.
“……네, 뭐. 별일 없었죠.”
“그런가요? 다른 분들께 물어보니, 중립지대에서 아크 팔라딘 잘콘 측으로부터 연락이 왔다고 들었는데요. 제게 보고할 사항은 없었나요?”
레테가 부스스 고개를 들어 이스라필을 바라보았다. 베개에 눌린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얼굴에 불그스름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사실은 그거, 시몬이었어요. 분쟁을 피하고 싶어서 연락했고, 어떻게 잘 처리했나 본데요.”
“우리 조카가?”
이스라필이 깜짝 놀라며 입을 가렸다가, 이내 발을 동동 굴렀다.
“레테만 조카와의 대화를 독차지하다니 너무해요! 나도 우리 조카랑 오붓이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뭐래! 그냥 일 이야기 좀 했을 뿐임다!”
레테가 즉시 반박했고, 이스라필이 휙휙 고개를 내저었다.
“거짓말하지 말아요! 사심을 채우지 않았을 리 없잖아요! 원래 나한테 온 연락일 텐데 너무해!”
“그런 거 아니라니까!”
두 성녀가 갑자기 꽥꽥 싸우는 모습을 멀찍이 지켜보며, 두 사람의 티타임을 위해 다과거리 쟁반을 들고 있던 두 프리스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멀어졌다.
‘다음에.’
* * *
한편, 아크 팔라딘이 물러났다는 희소식은 오르자바에 머무는 키젠 학생들 측에게도 전해졌다.
죽을 각오로 전투를 준비하던 그들은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가 보았다.
“진짜네?”
휘이잉-
아크 팔라딘과 신성연방 측이 진을 치고 있던 장소가 말끔히 비워져 있었다.
배에 태워 보냈으나 사정을 알고 같이 싸우겠다며 빠져나온 로레인도 놀랐고, 6군단 군도의 병력을 움직이려고 하던 헥토르도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학생들은 얼떨떨한 얼굴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냥 물러갔다면 다행이네. 솔직히 그대로 싸우면 위험했어.”
“하하하하! 쫄았냐? 쫄았어? 팔라딘 놈들은 발가락만 움직여도 충분하지!”
“이게 다 내가 아까 하늘에서 별 떨어지길래 소원을 빈 덕분이야! 프리스트들이 제발 물러나 달라고 소원 빌었거든.”
“낮에 별똥별은 무슨, 꿈꿨니?”
동기들의 이야기를 듣던 헥토르가 쯧 하고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등을 돌렸다.
피에르를 비롯한 파벌 학생들이 웃으며 따라붙었다.
“아, 솔직히 다행이라고 생각했지 헥토르?”
“입 다물어라.”
“하하하하하!”
다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한마디씩 주고받고 있는 가운데.
“조장!”
“시몬!”
시몬이 다가오고 있었다. 에슈와 토토, 로레인이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다. 에슈가 요란한 동작으로 두 팔을 휙 벌리며 말했다.
“조장! 정말로 네 말대로 됐어! 신성연방이 물러갔다구!”
“그러게 내 말 맞지?”
시몬이 기지개를 쭉 켜며 개운한 표정으로 답했다.
“어떻게 안 거야? 시몬?”
로레인의 물음에 시몬은 잠시 옆머리를 두어 번 긁적이다가 답했다.
“그냥 그럴 것 같았거든.”
“에이, 뭐야- 조장! 엄청난 이유가 있을 것처럼 이야기해 놓고!”
하하하!
다들 웃고 떠들고 있는 가운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서 있는 세르네만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시몬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쪽 인맥의 외교로 해결한 거겠죠? 무시 못 하겠네요.”
“그게 무슨 소리지? 세르네.”
그녀와 같은 조원인 피츠제럴드가 안경테를 붙잡으며 말을 받았다.
그러나 세르네에게 허락 없이 말을 건 죄로 목덜미에 깃털이 꽂힌 채 ‘끽! 끽!’ 원숭이 소리를 내며 저 멀리 뛰어갔다.
그러다 시몬과 세르네가 눈이 마주쳤다. 세르네는 다 알고 있다는 듯 여우 같은 웃음을 흘렸고, 시몬도 어깨를 으쓱했다.
“참, 그보다 사무관 베스티올라가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 없어?”
“베스티올라? 아! 현 영주 말하는 거지?”
에슈가 허리에 손을 얹으며 혀를 찼다.
“안 그래도 애들이 찾고 있었어. 근데 아크 팔라딘이 퇴각한 뒤에 보복당할 걸 알았는지 귀신같이 내뺐다더라.”
“어디로?”
“믿기 힘들지만 암흑연합 쪽이래.”
에슈가 헛웃음을 흘렸다.
“원래 암흑연합 출신이고, 중립지대인 오르자바에 신분을 숨기고 취업한 거였대. 엄청 이름 있는 집안사람이 험지까지 와서 일하니까 별종 소리를 들었다던데.”
“…….”
시몬이 턱을 짚고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렇구나. 그럼 암흑연합까지 찾아가서 끄집어내야겠네.”
“으, 응?”
시몬이 터벅터벅 걸어서 근처에 있는 아론에게 다가간 후 남은 일정에 대해 물었다.
임무도 예정보다 빨리 끝났고, 주변 피해도 수습해야 한다. 무엇보다 도시 수색팀은 결과적으로 거의 베히모스 수업을 못 들어서 보충수업이 필요하기도 했으니 4일 정도 초승섬에 더 머물기로 했다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들은 시몬이 말했다.
“이틀 정도만 단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셨으면 합니다.”
“너도 이제 키젠 최고학년이다, 시몬. 네가 움직이는 데 내 허가가 필요하진 않다만.”
아론이 몸을 돌려 시몬을 바라보았다.
“뭘 하려는 건지 물어봐도 되겠나.”
시몬이 삐딱하게 미소 지었다.
“대가를 치르게 해야죠.”
* * *
암흑연합, 볼드윈 왕국.
대가문 바이트론 저택.
“이게 다 무슨 일이니? 응? 말을 좀 해보렴.”
바이트론 가문의 안주인인 바이트론 부인이 굳은 얼굴로 아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베스티올라는 침대에 누운 채 가만히 천장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
바이트론 부인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창밖을 보았다.
온갖 무기로 무장한 험상궂은 사내들이 가문의 정원에 쫙 깔린 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들 전원이 용병들, 개중에는 로브 차림의 정체를 숨긴 듯한 위험한 네크로맨서들까지 있었다.
저택 전체가 낯선 무장 병력으로 보호받고 있는 형국이었다.
“중립지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오르자바의 영주가 됐다고 연락을 한 지 얼마나 됐다고 갑자기…….”
베스티올라는 육포를 하나 집어서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었다.
“네, 네. 하늘이 두 쪽 나도 제가 거기 영주입니다, 어머니. 외적들이 들어와서 잠시 피난 온 것뿐이고. 조용해지면 돌아갈 겁니다.”
육포를 모두 씹어 먹은 그가 손가락을 쪽쪽 빨고는 등을 돌려 누웠다.
“그 영지 지하에 발견된 광물들도 곧 제 차지겠죠. 협조해 주시면 수입금을 떼어드릴 테니 눈감아주세요.”
“아들!”
“죄송하지만 피곤하네요, 어머니.”
결국 바이트론 부인은 한숨을 쉬며 방에서 나갔다. 그녀가 나간 뒤 발소리가 멀어지는 걸 확인한 베스티올라가 벌떡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걸어갔다.
그러고는 방 안의 옷장 문을 발칵 열었다.
고오오오오오!
시퍼런 결사의 포탈이 열려 있었다. 그 크기는 점점 줄어들며 사라져 가고 있었다. 베스티올라는 결심하듯 옷장 문을 닫았다.
‘여기 남아야 해. 이 방법밖에 없다.’
결사에서는 베스티올라에게 다른 공간에서 잠시 체류한 뒤, 시간이 더 지난 뒤에 움직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그가 거절했다.
힘겹게 손에 넣은 오르자바의 영주 자리다.
영주와 영주 아들이 죽고 비상시 승계 서열에 의거하여 영주가 됐지만, 아직은 오르자바가 완전히 자신의 영지라고는 할 수 없었다. 즉위식도 하지 않았고, 영지인들의 여론도 나쁘다.
이런 때에 현 영주인 자신이 실종된다면 오르자바에서 다른 인물이 영주직에 오를 가능성도 있었다. 그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그러니 몸은 안전한 바이트론에 있으면서, 계속해서 ‘영주’로서 오르자바에 영향권과 행정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키젠 놈들도 결국 임무 때문에 왔을 테니 언젠가 거기서 나가야만 한다. 기회는 있다.
“우선은 요직 임명부터.”
콧수염을 가볍게 쓴 그가 서류장을 펼쳤다. 오르자바에 자신의 인물들을 요직에 앉혀두고, 자신이 돌아왔을 때 완전히 도시를 장악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세상이 욕해도 상관없다. 가장 중요한 건 내 이익이다.
그가 낄낄거리며 임명장을 써 내려가고 있는 그때.
쿠르르르릉!
갑자기 저택에 벼락이라도 떨어진 듯한 굉음과 진동이 울려 퍼졌다. 저택 전체가 우르르 떨리고 책상에 있던 물건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침입자다!
-죽여!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괜히 움찔한 베스티올라는 일단 창가에 커튼을 친 뒤, 슬쩍 얼굴만 내밀어 상황을 살폈다.
누군가가 저택 정원의 정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벌써 키젠 놈들이 온 건가! 몇 명이나 왔지?’
그러나 아무리 봐도 침입자로 보이는 건.
단 한 사람이었다.
으적!
꽈드드드드득!
퍼어어어어억!
고작 1분도 되지 않은 시간에, 그에게 덤벼든 용병들은 한 명도 남김없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죽여라! 고용주가 죽여도 된다고 했다!”
그 뒤로 네크로맨서들이 흑마법을 날려댔으나, 침입자는 가뿐히 공격을 피하며 달려들어 하나하나 박살 냈다. 코어를 개방한 네크로맨서들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스윽.
그때 악몽에 나올 것 같은 반듯한 해골 투구의 둥근 동공이 베스티올라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베스티올라는 흠칫하며 몸을 떨었다.
‘배, 배신의 군단장! 여기까지 온 건가!’
그가 다급히 들고 있는 서류와 돈뭉치를 챙겨 들고는 가방에 쑤셔 넣고 후다닥 뛰었다. 그가 문고리를 붙잡고 빠져나가려는 순간.
쾅!
문이 열리며 해골 갑주를 입은 한 남자가 들어왔다.
[다시 보는군.]그의 뒤에는 가문에 고용된 병사들이 모조리 바닥을 나뒹굴거나 뼈 같은 것에 붙들려 제압당해 있었다.
뒷걸음질 친 베스티올라의 동공이 흔들렸다.
‘배신의 군단장!’
그가 뒤늦게 다시 창가를 바라보았다.
‘그럼 아까 그 해골 투구는!’
키이이이이이잉!
맨몸으로 싸우던 침입자가 맨손에서 데스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켜 네크로맨서들이 날리는 투사체를 베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이 아니라 그의 데스나이트였다.
[이런 곳에 숨어든다고-]저벅저벅 안으로 들어온 시몬의 안광이 번쩍였다.
[내가 못 잡을 줄 알았나. 결사의 끄나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