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1103)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103화
“키젠의 제7군단장, 시몬 폴렌티아가 이곳에 있나?”
결사의 구원자, 킬로바니안이 물음을 던졌다.
그리고 뮬리아는 입을 열지 않았다. 전투 중에 굳이 응답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대신 천천히 스피릿을 끌어 올리며 상대를 분석했다.
‘폭발의 범위.’
지면을 보면 킬로바니안이 딛고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반경 1미터 조금 안 되는 범위의 원은 깨끗하다.
전형적인 배리어, 혹은 결계 관련된 기술.
큰마음 먹고 쓴 공격을 너무 간단히 막아냈다. 상대는 방어의 스페셜리스트가 틀림없다. 그렇다면.
‘공격의 틀 자체를 완전히 바꾼다.’
그녀가 두 손바닥을 쫙 펼치더니 복잡한 인을 맺기 시작했다. 하얀 코트를 입은 채 서 있는 킬로바니안은 방해할 생각도 없는 듯 태연한 낯으로 물었다.
“이봐, 들려? 세상을 구원할 구원자가 묻잖아. 시몬 폴렌티아가 이곳에 있어?”
촤라라라라!
다음 공격을 완성한 뮬리아가 거칠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킬로바니안의 주위로 커다란 녹색 종이 같은 것이 펼쳐지며 시야를 가렸다.
“대접이 영 아니라니까.”
킬로바니안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사이, 그의 몸에 녹색 종이가 덥석 들러붙었다.
덥석! 덥석!
사방에서 종이가 튀어나와 킬로바니안의 몸을 포개었다. 그가 ‘응?’ 하는 표정으로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뮬리아가 손바닥을 움직이자 갑자기 킬로바니안의 몸을 덮은 종이가 한 번 반으로 접혔다.
마치 3차원의 존재가 2차원으로 접혀 버린 듯한 기술. 킬로바니안이 오! 하고 탄성을 흘렸다.
“이거 신기한데.”
종이가 접혀갈수록 자연히 그의 몸도 줄어들어 갔다. 승리를 확신한 뮬리아가 더더욱 흑마법의 속도를 높였고 가슴까지 접히기 시작한 킬로바니안은 태연한 얼굴로 하나 남은 팔을 들어 올렸다.
꾸욱.
그가 주먹을 가볍게 쥐자, 다시 킬로바니안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뮬리아의 눈이 부릅떠졌다.
‘방금 무슨?’
“유령궁의 네크로맨서들은 기이한 기술을 사용한다더니 사실이었네.”
킬로바니안이 손바닥을 착 소리가 나게 포개더니 이내 손안에서 무언가를 빚어내듯 만들어냈다. 방금 뮬리아가 사용한 바로 그 종이 기술이 그의 손안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방금과는 반대로 접힌 종이가 펼쳐지며 점점 그 덩치를 불려 나갔다. 그것을 바닥에 놓고 공 굴리듯 굴리자, 종이가 눈덩이처럼 부풀어 오르며 뮬리아에게 다가갔다.
‘내 흑마법을 역으로!’
뮬리아가 급히 손바닥을 펼쳤다. 전면에 종이의 벽이 펼쳐지고, 다가오는 종이의 공을 그대로 접어버렸다. 서로 접히고 펼쳐지기를 반복하는 그때.
“세 번 같은 질문을 던지는 건 좋아하지 않지만, 구태여 물을게.”
킬로바니안의 몸이 소리 없이 뮬리아의 옆에서 나타났다.
“시몬 폴렌티아가 여기 있지?”
“망할!”
부앙!
뮬리아가 즉시 마투로 전환하며 칠흑이 실린 발차기를 날렸다. 가볍게 고개를 꺾어 피한 킬로바니안이 비웃음을 흘렸고, 그녀가 함성을 지르며 손끝에서 즉시 시전 가능한 저주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퍼버버버버버벙!
킬로바니안은 전면에 보이지 않는 배리어를 펼치는 것으로 막아냈다. 그때 뮬리아가 득달같이 달려와 킬로바니안의 배리어에 손을 올렸다.
물리법칙이 일그러지듯, 다시 한번 킬로바니안의 철벽과도 같은 배리어가 거짓말처럼 반으로 접히고, 그 틈을 타고 뮬리아가 뛰어들어 손을 뻗었다.
‘이런 타입은 정직한 물리공격이 즉효!’
촤랑!
그녀의 옷소매로부터 금속으로 이루어진 송곳이 튀어나왔고,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배리어가 벗겨진 킬로바니안의 이마를 향해 내질렀다.
‘됐다……!’
“요즘 시기 떠도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더라.”
킬로바니안이 히죽 웃었다.
“무지는 곧 죽음이라고.”
퍼어어어억!
뮬리아의 동공이 흔들렸다.
자신이 내지른 방금 그 공격이, 킬로바니안이 아닌 그녀 자신의 이마에 작렬하며 둥근 구멍이 생겼다.
“?!”
단발마의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뮬리아가 흰자를 보이며 뒤로 넘어갔다.
철퍼덕!
쓰러진 그녀의 주위로 피가 웅덩이를 이루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던 킬로바니안이 고개를 돌려 걸어갔다.
“다른 녀석한테 물어봐야 하나.”
* * *
왕녀 후보들의 단체 자살 사건, 거기에 갑작스러운 몬스터의 난입으로 유령궁은 난리가 났다.
살아남은 왕녀 후보들은 모두 안전한 유령궁 내부로 들여보냈으며,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던 유령궁 소속의 네크로맨서들도 모두 유령궁에 집합했다.
산적한 여러 문제들이 한 번에 터져 나왔다.
이번 일로 테네리페의 정신적 충격이 커 보였고, 무엇보다 3층에 있는 본체의 몸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단순한 질병이 아니었어?’
시몬은 당혹스러웠다.
어쨌거나 유령궁 밖에 결사의 구원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시몬은 자신이 나서서 막겠다고 했지만 궁의 네크로맨서들이 만류했다. 그보다 더 급한 문제가 있었다.
“빨간방이 30개로 늘었습니다!”
“유령궁의 위험도를 심각으로 격상합니다! 이대로는 또다시 고스트 스트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의뢰자 측인 유령궁 네크로맨서들의 부탁으로 시몬과 메리다는 최우선 과제인 궁의 안정화를 위해 빨간방에 투입되었다.
그렇게 며칠간 잠도 자지 못하고 정신없이 유령궁을 돌아다니며 망령들의 개체수를 줄여 나갔다. 그 끝에 간신히 테네리페와 유령궁의 상태가 안정적으로 변했다.
궁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비로소 회의가 열렸다. 유령궁의 책임자들이 궁의 메인홀로 모였다.
“테네리페 경!”
이미 회의는 시작되어 있었다. 정신없이 제 몫의 빨간방 정화를 마친 시몬과 메리다가 뛰어 들어왔다.
머리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테네리페가 애써 웃어보였다.
“못난 꼴을 보여서 미안해. 폴렌티아 후배. 휴 이켈 학생.”
“몸은 괜찮으세요?”
“이제 좀 진정했어.”
시몬의 눈이 그녀의 왼팔로 향했다.
3층 본체의 팔이 썩어 들어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호문쿨루스의 몸인 그녀의 왼팔도 축 늘어져 움직이지 못하는 게 눈에 띄었다. 그녀는 티를 내지 않으려는 것 같지만 딱 봐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등 뒤에 검을 찬 고스룩 차림의 중년 남자가 헛기침을 한 차례 한 뒤 말했다.
“도시 소프리아의 상태는 안정화되었습니다. 도시에 들어온 모든 몬스터들은 사살됐고, 왕녀 후보들의 시체는 수습했으며, 사건의 주모자로 보이는 결사의 구원자는 숨었습니다. 다행히 주민들도 내란 같은 극단적인 행동은 벌이지 않고 있습니다. 바깥 영지의 지원을 요청했으니 이제 곧 왕국의 네크로맨서들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얼굴에 긴 화상이 있는 검은 드레스 차림의 여성 네크로맨서가 말했다.
“우리는 오로지 유령궁의 상황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눈에 뻔히 보이는 분란을 일으키는 결사의 의도가 뭐겠습니까? 털갈이 기간에 왕녀님을 흔들어서 유령궁을 자멸하게 만드려는 겁니다! 우리가 외부 상황에 신경 쓰는 게 그들이 원하는 바겠죠. 오로지 유령궁과 왕녀님의 안위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저들은 유령궁에 들어오지 못하니까요.”
모두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의 동의에 힘을 얻은 듯한 그녀가 더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왕녀 후보들도 데리고 왔으니, 저는 내일 당장이라도 털갈이를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왕녀 후보들의 상태는 어떻소? 아무래도 지금 바로 투입되기에는 너무 이른 게 아닌지…….”
“상황이 상황이지 않소! 지금 당장이라도 적합성 테스트를……!”
스으.
그때 테네리페가 손을 들었다. 궁의 네크로맨서들이 말을 멈추고 그녀를 보았다.
“뮬리아는…… 어디 있어? 안 보이는데.”
그 물음에 네크로맨서들이 진땀을 흘리며 빠르게 시선을 교환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중 한 사람이 얼른 말했다.
“불길에 갇힌 왕녀 후보를 구하러 갔습니다. 아직 복귀하진 못했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는 모양입니다.”
“무사히 돌아올 거예요. 뮬리아가 얼마나 강한지 왕녀께서도 아시잖아요. 그보다 내일 바로 털갈이를…….”
테네리페가 힘없이 미소 지은 뒤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펼쳤다.
“3일.”
“!”
“3일 정도는 어떻게든 버텨볼게.”
그녀가 후후 웃었다.
“내일 당장 털갈이를 하는 건 역시 무리 같으니까. ……헤헤.”
“왕녀님……!”
다들 고개를 떨구거나 이마를 덮는 등 반응을 보였다.
시몬과 메리다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 * *
유령궁은 비상 체제에 돌입했다. 얼떨결에 이곳의 임무를 맡은 시몬과 메리다는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유령궁을 억누르는 결계 그 자체나 다름없는 테네리페의 상태가 오락가락하기에, 4군단에서도 유령군단에서 통제를 벗어난 언데드가 생겨나는 등 문제가 간혹 발생했다.
시몬의 7군단이 없었다면 큰일 날 뻔한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시몬은 궁으로 들어가 빨간방을 정리하는 것 외에도, 4군단과의 합동 미션도 수행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메이드 복장의 언데드가 꾸벅 인사했다. 시몬도 빙긋 웃었다.
“서로서로 도울 땐 도와야지.”
제4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 마코.
그녀는 상당히 강력했다.
스피릿에 휘감긴 청소용 도구들을 사용했는데, 바닥을 닦을 때 쓰는 물걸레질로 망령들을 모조리 휩쓸어 버리거나 빗자루와 먼지털이로 망령들을 청소하는 모습은 시몬의 머릿속에 인상 깊게 남았다.
시몬의 몸에 연결되어 있던 본 아머 차림의 피어가 ‘크흐흐!’ 하고 은근히 합류를 종용하기도 했다.
[이번에 4군단이 깨지면 이쪽으로 넘어와라! 마코!]“피어!”
시몬이 못 말린다는 듯 피어에게 한마디 했다. 마코는 권유는 고맙지만, 자신은 계속 유령궁에 남을 거라고 했다.
어쨌거나 그녀를 도와 테네리페의 통제에 벗어난 유령들을 다시 4군단으로 돌려보냈다.
유령궁에서는 각 에이션트 언데드들과 4군단이 궁 전체 방어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기에 그들이 무너지면 유령궁도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털갈이 시즌이 시작되면, 그들이 제 역할을 다해야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내친김에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마코.”
[네, 7군단장님.]“테네리페 님, 사실 병에 걸린 거 아니지?”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갑자기 병이 확 악화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시몬이 팔짱을 꼈다.
“나는 저주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그녀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병은 맞습니다. 하지만 모든 건 테네리페 님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습니다.]“그게 무슨 말인…….”
“시몬.”
그때 마침 퐁 하고 메리다가 이쪽 방으로 넘어왔다.
그녀가 나침반을 흔들며 말했다.
“복귀 명령이야. 메인홀로 모이래.”
“무슨 일 있어?”
끄덕.
메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체불명의 침입자가 유령궁에 들어왔어.”
시몬이 힐긋 눈치를 본 뒤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난리가 난 게 세르…….”
“아니야.”
세르네는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유령궁에 들어왔단 말인가.
“아무래도-”
메리다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인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