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1106)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106화
유령궁 5층.
유령왕녀 테네리페 에체베리아는 차갑고 냉연한 실내를 소리 없이 걷고 있었다.
고요와 고독이 내려앉은 것만 같은 공간을 가로지르며, 긴 한숨을 내쉰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저 앞에 그녀의 피폐한 본래의 몸뚱이가 보인다. 액체가 흐르는 여러 관에 연결된 채 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유령궁 3층에 본체가 있다는 이야기는 거짓. 사실은 최고 꼭대기 층에 본체가 있었다.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다는 5층.
유령궁 내부 던전주의 방.
이곳이 테네리페의 본체가 있는 장소다.
쨍!
테네리페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녀의 몸을 비치던 거울이 깨졌다.
이제 1층 메인홀에서 이곳을 볼 방법은 없다. 그녀는 또각 또각 자신의 몸을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테네리페.]스스스스스스스.
본체로부터 연기가 흘러나왔다. 이내 두 다리로 바닥을 디딘 산양의 모습을 한 언데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4군단의 관리자, ‘디자이어’이었다.
[이 선택이 정녕 최선인가?]“응.”
그녀가 무릎을 굽히고 자신의 본체를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제 입술을 본체의 입술 앞에 가져다 댔다.
“곧 ‘그녀’가 돌아와. 이게 최선이야.”
사아아아아아아아!
서로 맞춘 입술 사이로, 테네리페의 몸에서 흘러나온 무언가가 본체로 옮겨갔다. 이내 테네리페의 몸은 털썩 차가운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자 미동도 없이 앉아 있던 본체의 몸이 꿈틀꿈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팔이 움직여서 몸에 달린 관을 하나둘 떼어댔다.
마침내 입과 코에 붙어 있는 관도 떼어낸, 왜소하고 비쩍 마른 테네리페의 진짜 몸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
전신에 불처럼 터져 나오는 통증.
가뭄처럼 갈라진 피부와 시체 같은 냄새.
그녀는 깨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싫다.”
깊게 숨을 토해낸 그녀가 고개를 돌려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라우라가 오기 전에 숨어야 해. 어서…….”
“멈추세요.”
우뚝!
그녀의 걸음이 그대로 멈추었다.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었던 유령궁 5층에서 제삼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벅 저벅.
이내 유령궁에 낀 안개를 뚫고 익숙한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7군단장인 시몬 폴렌티아와, 그의 이번 임무 동료인 메리다 휴 이켈이었다. 테네리페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폴렌티아 후배? 휴 이켈 학생! 너희가 어떻게 여길……!”
“상황이 이 지경이 됐는데 방법이 중요합니까.”
시몬의 목소리는 냉랭했다.
“비상사태에 궁의 최고책임자가 마음대로 자리를 비우시질 않나, 아무런 상의 없이 본체로 돌아가시질 않나. 지금 유령궁을 억제하고 있으신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시몬이 뒤를 가리켰다.
“이제 곧 유령궁 전체에 망령들이 들끓기 시작할 거예요. 3층에서 왕녀님을 찾고 있을 당신의 부하들도 위험해질 겁니다.”
“…….”
“왜 이런 짓을 벌이는 거죠? 그리고 지금 어딜 가시는 거죠?”
그녀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가 고개를 들었다.
“이럴 시간 없어. 곧 라우라가 올 거야.”
“……그자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침입자의 정체도 이미 알고 계시네요.”
시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왜 모든 걸 숨기는 건가요. 왜 모두에게 허심탄회하게 진실을 이야기한 뒤 함께 싸우려고 하지 않는 거죠?”
테네리페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러다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게 내 의무니까.”
스릉!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앞세웠다.
“테네리페 에체베리아. 키젠에서는 당신이 1군단과 협력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모든 걸 숨기려고만 하는 행동은 의심만 부추길 뿐이에요.”
“……거기서.”
왜소한 테네리페가 팔을 뻗으며 마법진을 펼쳤다.
“비켜.”
촤아아아아아아아아!
그녀의 손바닥에서 무수한 위습들이 칠흑을 머금은 채 쏟아지기 시작했다. 시몬과 메리다가 동시에 나란히 서며 자세를 취했다.
“메리다! 준비됐어?”
“응.”
두 소년 소녀가 동시에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들의 손에도 위습이 쏟아져 나오고, 두 공격이 서로 부딪히며 맹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먼저 공격을 시전한 테네리페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픽 하고 웃음 지었다.
“……누가 가르쳤는지 모르겠지만 잘 배웠네.”
[물러서라!]부웅!
그때 등 뒤에서 산양의 형태를 한 에이션트 언데드가 나타났다.
제4군단의 관리자, 디자이어였다.
[궁에서 유령왕녀의 명은 절대적이다!]디자이어가 거대한 망치를 시몬에게 휘두르려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크하하하!]그러자 시몬의 몸에 연결된 본 아머들이 벗겨지더니 앞에서 재조립되며 피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두 관리자의 검과 망치가 부딪히며 굉음을 터뜨렸다.
강렬한 광풍이 사방으로 터져 나가며, 일행들은 팔을 들어 맞바람을 견뎠다.
[수백 년 만이구나! 디자이어! 네 상대는 나다!] [피어!]피어가 디자이어의 몸통을 발로 차서 멀리 밀어내고는 자신도 돌진했다. 두 관리자들이 순식간에 중앙에서 사라졌다.
우웅!
테네리페가 다음 동작을 취했다.
이번엔 손을 뒤쪽으로 뻗자, 바닥에 쓰러져 있던 테네리페의 호문쿨루스가 서서히 팔을 들어 올렸다. 그중에서 손가락에 낀 아공간 반지가 번쩍이는 게 보였다.
이내 아공간이 열리고, 새로운 언데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실례하겠습니다.]메이드 복장을 입고 손에 먼지털이와 밀대를 들고 있는 언데드, 4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 마코였다.
시몬의 눈이 부릅떠졌다.
‘에이션트 언데드! 빨간방을 정리하는 중이어야 하지 않나?’
[알고 있습니다. 에르제베트, 프린스를 비롯한 7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들은 현재 전원이 빨간방을 막아내느라 흩어져 있는 상태.]마코가 밀대를 시몬을 향해 창처럼 겨눈 채 달려들었다.
[그렇다면 저를 막을 수 있는 건 없습니다.]“큭!”
시몬이 즉시 아공간을 열었다.
좀비와 구울, 스켈레톤이나 스컬윙 등 7군단의 언데드들이 무수히 전면으로 파도처럼 쏟아졌지만 마코가 밀대를 휘둘렀다.
촤아아아아아아아!
그녀의 밀대에 닿자 언데드의 파도가 꿀렁거리며 왜곡되더니 동시에 새하얀 물감에 칠해진 것처럼 백색으로 뒤덮였다.
마코는 밀대로 언데드의 파도를 마음대로 휘저으며 나아갔다. 마치 백색 물감이 칠해진 듯한 언데드들은 힘을 잃고 쓰러졌다.
밀대뿐만이 아니라 먼지털이나 빗자루를 들고 언데드들을 무력화하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망령에게만 통하는 기술이 아니었다.
터어어엉!
[끝입니다!]마침내 쏟아져 나온 언데드 무리를 돌파한 마코가 밀대를 고쳐 쥐고 시몬을 향해 내질렀다.
그런데 밀대가 시몬의 얼굴 앞에서 우뚝 멈췄다. 마코가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돌렸다.
새하얀 장갑이 밀대를 붙잡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나도 모든 에이션트 언데드를 두고 온 건 아니야.”
보험이 있었다.
다른 한 손에는 찻잔이 든 쟁반을 받치고 있는 턱시도 차림의 좀비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시몬의 앞에 서 있었다.
[안 됩니다, 메이드.]전 5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이자 백귀부대의 대장.
[그 더러운 물건은 결코 사람을 향해서는 안 됩니다.]이번에 새롭게 제7군단에 들어온 좀비집사였다.
시몬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도와줘, 집사.”
[어처구니없군요. 도와달라 부탁한다고 해서 언제나 도와줄 거라 생각한다면-]좀비집사가 한 손에 받친 쟁반을 제자리에서 던지더니 칠흑을 실은 주먹을 내질렀다.
다급히 밀대를 들어 막아낸 마코가 뒤로 주르륵 밀려났고, 다시 몸을 빙글 돌려 제자리로 돌아온 집사가 손바닥을 펼쳐 공중에 떠오른 쟁반을 안전하게 받아냈다.
[오산입니다.]‘도와줄 것 같은데.’
크읍!
마코가 밀대를 들어 올려 무릎으로 쪼개 박살 냈다. 두 자루가 된 밀대를 손에 쥐고, 밀대가 없는 쪽은 칠흑을 일으켜 칼날의 형태로 만들었다.
[방해하지 마십시오!]그 상태로 집사에게 돌진했다.
집사는 우아하게 쟁반을 든 손을 등 뒤로 향하게 한 뒤, 흰 장갑을 낀 한 손만을 내뻗었다.
타닷! 탓! 파박!
두 에이션트 언데드들이 살벌한 기세로 공격을 주고받았다. 밀대가 간발의 차이로 좀비집사의 몸에 닿기 전에 흰 장갑에 붙들려 멈춰졌다. 상당히 우아한 전투법이었다.
꾸웅!
이내 집사가 바닥을 강하게 짓밟자, 주위의 바닥이 우유를 엎지른 것 같은 하얀 웅덩이로 물들었다. 바로 그 안에서 거대한 특수 좀비, ‘백귀’의 손아귀가 바닥에서 튀어나와 마코를 붙잡으려 했다.
[흡!]마코가 밀대를 휘둘렀고 백귀의 팔이 구겨지듯 접히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러나 그사이에 집사가 마코의 등 뒤로 돌아왔다.
[당신의 군단장이 약해진 몸에 돌아왔다 보니, 평소의 출력을 내지 못하는 듯하군요.] [!]터어어어어어어어엉!
좀비집사가 내지른 손바닥을 간신히 밀대를 들어 막아낸 그녀였지만, 갑자기 몸이 크게 휘청했다.
‘지면이!’
하얀색 바닥에 빨려들 듯 그녀의 몸이 기우뚱했다. 바로 그 틈을 노린 좀비집사가 바람처럼 그녀를 지나쳐 간 뒤 멈춰 섰다.
[좋군요.]그가 가볍게 손바닥을 펼치자, 공중에 떠올랐던 찻잔이 든 쟁반이 내려와 그의 손 안에 들어왔다.
당했다.
그렇게 생각하던 마코가 제 몸을 바라보았다.
몸에는 다친 곳이 없어 보였다.
뒤늦게 고개를 꺾어 제 등을 돌아보니, 메이드복의 앞치마를 묶어둔 매듭이 예쁘게 리본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마무리 일격을 날리고 싶었지만 칠칠치 못한 곳을 가만히 두고 볼 순 없었습니다.]좀비집사가 제 목의 옷깃을 바로잡으며 말했다.
[더 칠칠치 못한 부분이 없다면 이 싸움이 길어질 이유도 없겠죠.] […….]저놈의 매듭에 대한 집착은 광기였다. 지켜보던 시몬은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몇 달 동안 피어의 유적에 가둬놨더니 더 이상해진 것 같은데.’
[얕보인 모양입니다! 7군단.]터업!
마코가 메이드복을 붙잡더니 찢어버렸다. 동시에 몸이 갑자기 부풀어 오르며, 인간형에서 상체가 비대한 오우거와 같은 괴물형으로 변해갔다.
[죽이겠습니다!] [기껏 서툰 부분을 신경 써줬더니, 유감이군요.]집사는 찻잔이 든 쟁반을 바닥에 내려놓더니 가볍게 옆으로 밀었다. 그러고는 흰색이 된 바닥에서 거대한 백귀들을 끊임없이 일으키기 시작했다.
[더 이상 불편한 부분도 없으니 제대로 상대해 드리지요.]두 에이션트 언데드가 다시 한번 격돌하려는 그때.
“그만!”
테네리페가 소리쳤다.
마코는 즉각 공격을 중단하고 테네리페 쪽을 향해 고개를 깊게 숙여 보였다. 테네리페가 길게 한숨을 토해내고는 고개를 들었다.
“강하네, 폴렌티아 후배.”
“…….”
“힘으로라도 뚫고 지나갈 생각이었지만…… 생각을 바꿀게. 좋아, 알겠어.”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내가 진실을 이야기해서 결백을 밝히면, 7군단은 나를 도와줄 거야. 맞지?”
시몬이 빙그레 웃었다.
“네, 그 이야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겠지만요.”
“좋아. 말할게.”
후우.
다시 한번 가볍게 숨을 쉰 그녀가 눈을 치켜떴다.
“유령궁의 던전주가 바로 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