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1108)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108화
“저에게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시몬의 말에 테네리페가 응?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시몬의 너무나 진지한 눈빛을 보고는 자신도 표정을 결연하게 굳혔다.
“방법이 있구나.”
“네, 그 전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배경에 대해서는 알았지만, 아직 키젠에서 문제 삼은 부분이 해결되지 않았어요.”
“1군단 문제를 말하는 거네.”
그녀가 눈을 감았다.
“그래, 모든 건 내가 불러온 재난이야.”
테네리페는 운명에 순응하는 성격이 되지 못했다.
본래 호문쿨루스 인형은 긴급 시에나 사용하는 물건이었으나, 테네리페는 자신의 몸은 유령궁을 억누르는 생체 결계로 전락시킨 채, 대부분의 시간을 호문쿨루스에 영혼을 옮겨 활동했다.
어떻게 본다면 호문쿨루스를 진정한 내 몸이라 생각하고 세상을 돌아다녔다.
당장은 큰 문제가 없어 보였으나, 시간이 지나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영혼이 빈 채 방치된 본체가 썩어 들어가는 병에 걸린 것.
대륙에 기록이 없는 불치병이었다. 영혼이 본체의 몸으로 돌아와도 이 병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며 테네리페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막상 그렇게 되니 테네리페는 그제야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습지.”
테네리페가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평소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의무’가, 막상 정말로 내가 죽을 때가 되니까 크게 보이더라.”
더 이상 생애에는 미련이 없다.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이 죽어도 이 의무는 계속되어야만 한다는 어떤 강렬한 의무감에 사로잡혔다. 비로소 숨 가쁘게 여러 방안들을 준비했으나 쉽지 않았다. 털갈이를 돕던 왕녀 후보도 이유 모를 사건으로 죽었고, 에체베리아 가문의 여성이 아닌 일반적인 네크로맨서는 제대로 유령궁을 통제하지 못했다.
그때 문득 떠오른 이야기가 있었다.
-영생에 관심이 있나.
그 말을 들은 지가 언제인지 가늠도 되지 않을 과거에 1군단의 군단장이 그런 말을 했었다. 요즘은 키젠과 1군단의 분위기가 안 좋은 건 알았지만, 테네리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1군단장과 약속을 잡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1군단장은 영생을 주고, 의무에서 벗어나게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으며 대신 새로운 유령왕녀는 자신이 고른 사람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럼……!”
“물론 거절했어.”
시몬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테네리페가 고개를 저었다.
“1군단장 헤일은 내가 알던 이전의 헤일이 아니었어.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였구. 나는 이 의무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지만 그런 수작에 당할 정도로 판단력이 흐려진 건 아니야.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뒤.
자신에게 편지 한 통이 전달되었다.
테네리페가 비탄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리페라고 부르는 건 이 대륙에 한 사람밖에 없어.”
“라우라군요.”
“그래, 아까도 말했듯, 그녀가 결사의 힘을 등에 업고 하려는 짓은 뻔해.”
테네리페가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죽을 때 라우라가 유령궁에 있다면, 라우라가 다음 유령왕녀가 될 거야. 유령왕녀가 된 뒤에는 궁에서 그저 나가 버리겠지. 그러면…….”
“과거 세상을 황폐하게 만들었던 그 고스트스트림이 재현되겠네요.”
“맞아. 나는 라우라의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움직였지만 건강은 점점 더 악화됐어. 이제는 시간이 없어.”
그녀가 후욱 숨을 몰아쉬었다.
“한 번 더 털갈이를 한 뒤에 제대로 대응할 생각이었는데…… 라우라가 예상보다 일찍 돌아온 거야. 라우라는 5층으로 올라올 방법을 알고 있어. 실제로 한번 와봤으니까.”
“…….”
시몬은 눈을 감고 생각했다.
그때 단체로 목숨을 끊은 것처럼 보이던 왕녀 후보들.
틀림없이 라우라의 소행이다. 의무를 등한시하고 자유를 좇았던 테네리페를 흔들고 비난하기 위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시한부 판정을 받아 흔들리고 있던 테네리페는 완전히 멘탈적으로 무너졌고, 유령궁 또한 혼란에 빠진 틈을 타 라우라가 들어온 것이리라.
쿠쿠쿠쿠쿠쿵!
멀리서 전투의 소음이 들린다. 테네리페가 놀란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 쳤다.
“라우라가 왔어! 이제 시간이 없어!”
시몬이 인상을 썼다.
“혹시 저와 왕녀님이 힘을 합쳐 라우라를 상대한다면…….”
“미안하지만 지금 이런 내 몸 상태로는 라우라를 물리칠 수 없어.”
테네리페가 힘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무엇보다 유령궁에서 라우라는 막을 수 없는 재해야. 타락한 네크로맨서이기 이전에 망령을 흡수하고 빨아들이는 이능을 가졌어. 여기에 결사의 힘까지 얻었다면 더더욱.”
그녀가 고개를 돌려 시몬을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혹시 방법이 있다면 지금 말해줘.”
“……성공 확률은 낮긴 하지만.”
시몬이 고민 끝에 파멸의 대검을 들어 올렸다.
“이 군단장의 무기인 파멸의 대검은 던전주의 힘을 빨아들이는 능력이 있습니다. 테네리페 님이 정말로 던전주라면, 이 검으로 찌른 뒤 그 힘을 추출해 낼 수 있겠죠. 그러면 라우라가 유령왕녀가 되는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있을 거고, 제가 이 힘으로 라우라를 제압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그렇게 해.”
그녀가 두 팔을 벌렸다.
“실낱같은 확률이라도 있으면 시도는 해봐야지 않겠니? 나는 이제 미련 없어. 내가 죽어도 라우라를 막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최대한 테네리페 님의 목숨은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해보겠습니다.”
시몬이 자리에서 말했다.
“의무를 저버린 왕녀라고 자꾸 자책하시는데 제 생각은 달라요.”
“응?”
“지난 수십 년간 유령궁과 대륙이 망령으로 위태롭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습니다.”
시몬의 눈이 총명한 안광을 머금었다.
“의무를 끔찍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한 거잖아요? 공공의 의무를 위해 노력한 사람에게, 자신의 인생을 100% 바치지 않았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어요. 누구도 테네리페 님의 희생을 잊지 않을 겁니다.”
그 말에 테네리페의 목구멍이 꿀렁하고 움직였다.
눈시울이 뜨거워진 그녀가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더니 비로소 고개를 젖히며 하아 하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폴렌티아 후배를 조금 더 빨리 만났다면 어땠을까. 1군단장이 아니라 폴렌티아 후배를 찾아갔어야 했는데…….”
“괜찮습니다. 지금이라도 만났으니까요.”
[크흐흐!]피어가 한마디 했다.
[약속한 보상인 마검을 다루는 마누스를 완성하기 전까지는 죽을 순 없지!]‘……피어도 참.’
쿠쿠쿠쿠쿠쿠쿵!
뒤에서의 전투가 더더욱 격렬해지는 것 같았다. 뒤에는 이미 메리다의 무아몽중이 펼쳐져 있었고, 장난감 세계에서 온갖 망가진 장난감 잔해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도 가겠다.]조용히 지켜보던 4군단의 관리자 디자이어가 무아몽중 속으로 들어갔다.
시몬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구원자라지만 완전 각성한 메리다와 에이션트 언데드 둘이 붙었는데 시간을 끄는 게 전부라니.
“서둘러야 해!”
테네리페가 말했다.
“라우라는 이미 전 층을 돌면서 망령을 빨아들이고 힘을 단기간에 부풀린 상태일 거야! 정면 대결은 불리해!”
“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 *
테네리페가 의자에 앉았고,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들어서 그녀의 가슴 중앙을 조심스럽게 겨누었다.
그리고.
푸욱!
파멸의 대검이 가슴 끝에 파고들었다. 그녀가 눈을 질끈 감으며 고통을 참았다. 신음 한 번 흘리지 않고 담대하게 견디는 모습이었다.
쏴아아아아아!
그러자 정말로 던전주를 죽였을 때처럼, 그녀의 던전주로서의 힘과 권한이 파멸의 대검으로 빨려들기 시작했다.
‘제발!’
성공 확률은 떨어진다고 했지만 사실 그 정도가 아니다.
이건 실패를 전제로 하는 행동이나 다름없다.
던전주의 힘을 흡수해, 던전을 자유자재로 장악할 수 있는 파멸의 대검.
그러나 너무 크고 강력한 던전은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다. 실제로 시간의 탑에서 시간을 다스리는 던전의 흡수는 실패에 그쳤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수백 년 동안 존재해 온 이 불가해의 던전을 흡수할 수 있을까?
‘그래도 시도해 볼 수밖에 없어!’
힘이 점점 파멸의 대검으로 모이고 있다. 그녀의 몸에서 혈관 같은 게 보였고, 그 혈관의 끝이 파멸의 대검으로 향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던전주의 힘이 파멸의 대검으로 모이는 게 느껴진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시몬이 집중력을 최대치로 발휘하고 있는데.
“이게 다 뭐 하는 짓일까?”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쫘아아악 돋았다. 시몬과 테네리페의 사이로, 두피에 뿔이 튀어나온 여성이 시뻘건 립스틱을 칠한 입술을 벌린 채 웃고 있었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터져 나왔다. 충격을 받은 시몬이 몸을 바닥을 뒹굴다 급히 자리에 일어났다.
‘저자가 라우라!’
시몬이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테네리페가 피를 토하며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방금 리페가 가진 왕녀의 권능을 뽑으려고 했지? 신기한 짓을 하는 구나 배신의 군단장.”
휘오오오오!
스피릿 폭발이 걷히고, 망토를 두른 라우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손에는 메리다가 머리카락이 붙잡힌 채 쓰러져 있었다.
“메리다!”
“아. 이 아이?”
라우라가 입꼬리를 올리며 입에서 피를 흘리는 메리다를 들어 올려 휙 던져 버렸다.
“명성이 자자한 판타서스의 여동생이란 것치고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던데.”
퍽!
피투성이인 메리다가 벽에 부딪힌 채 주르륵 바닥에 떨어졌다. 시몬의 눈이 살벌하게 번뜩였다.
“차기 상아탑주보다 재미는 없었어. 아, 물론 상아탑주도 죽었지만 말이야.”
“……세르네를.”
일순 머릿속의 퓨즈가 나가 버릴 뻔했지만, 시몬이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평정을 되찾았다.
아직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을 내릴 때가 아니다. 테네리페가 당했던 것처럼, 전형적인 멘탈을 흔드는 이야기일 뿐이다.
“……집사와 마코는 어떻게 했지?”
“보다시피.”
그녀가 뒤를 가리켰다.
끄드드드드드득!
마치 시몬의 능력인 소용돌이를 연상케 하는 기술이 펼쳐져 있었다. 온갖 망령들과 스피릿으로 뒤엉킨 공간에 좀비집사와 마코의 살점이 서로 뒤섞인 채 꾸드득거리며 회전하고 있었다.
‘에이션트 언데드 셋을 상대로 돌파했어. 개인이 이런 힘과 출력을 오래 유지하는 건 말이 안 돼.’
시몬이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망령을 흡수한 지금의 힘은 일시적일 거야. 테네리페 님이 죽은 뒤, 유령궁에게 선택받기 위해 최대한의 힘을 끌어올린 거겠지.’
시몬의 시선이 잠시 아래로 향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
웅웅!
중간에 방해를 받았지만, 테네리페의 몸에서 던전주의 힘을 거의 다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유령왕녀의 힘이 지금 이 대검에 실려 있다.
“자, 내놓으실까-”
라우라도 그것을 아는지 파멸의 대검을 보고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두 팔을 뻗었다.
“유령왕녀의 자리를.”
그 순간.
시몬의 앞에 거대한 금붕어가 나타나 눈을 부릅뜬 채로 노려보고 있었다.
거기에 사방에 금붕어들이 가득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연달아 스피핏 폭발이 터져 나왔다. 그녀가 두 팔을 벌리며 아하하! 웃었다.
“크훕!”
촤아아아아!
폭발을 가르며 시몬이 바닥에 착지했다.
“그걸 반응하다니, 우리의 천적이란 말이 허울은 아니구나.”
그녀가 손짓하자 더 많은 금붕어들이 이 세상을 채울 기세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래 못 갈 거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사방에서 금붕어가 쏟아져 내린다. 시몬이 정신없이 바닥을 내달리며 파멸의 대검을 끝없이 휘둘러 댔다.
‘시간을 끌어야 하나? 하지만 왕녀님과 메리다가……! 그렇다고 빠르게 끝내기엔……!’
시몬의 고민이 길어지는 그때.
살랑-
갑자기 깃털 하나가 시몬의 귀 옆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시몬은 우뚝 걸음을 멈추고 홀린 듯이 그 깃털을 바라보았다.
세르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척!
단 한 마디.
시몬이 쏟아지는 금붕어를 무시한 채 파멸의 대검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화아아아아아아아악!
불안정하고 위태롭게 파멸의 대검에 붙들린 채 모여 있던 왕녀의 권한을 뿌려 버렸다.
“정신이 드디어 나갔구나!”
어떻게 된 상황인지 깨달은 라우라가 두 팔을 벌리며 웃었다.
“드디어 내가! 유령왕녀가 된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왕녀의 힘이 개방되었고 세상이 일순 녹색으로 수십 번 물들었다가 돌아왔다. 시몬은 숨을 헐떡이며 앞을 지켜보았다.
두근-
피를 토하는 테네리페도, 뒤엉킨 채 방치된 좀비집사와 마코도, 웃고 있는 라우라도, 모두가 정지한 것처럼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하하!”
화륵!
라우라의 몸에 녹색 힘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드디어! 왕녀의 힘이 내 손에…… 어?”
평소의 출력이었다.
라우라의 동공이 흔들렸다.
‘설마……!’
뒤늦게 보이는.
라우라의 가슴을 검처럼 꿰뚫은 세르네의 하얀 깃털이 보인다. 그리고.
스르륵.
쓰러져 있던 한 명이 자리에서 흐느적거리며 일어난다.
라우라는 고개를 삐거덕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둠 속에서 녹색 눈동자의 안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아.]다 죽어가던 소녀가 멀쩡하게 일어난 채 비틀거리고 있었다.
싸아아아아아아아아!
유령들이 주위에 나타나 그녀의 몸에 스피릿으로 이루어진 드레스를 입히고 왕관을 씌웠다.
모두가 입을 벌렸다.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내가 아니라 왜 저딴……!”
[조용히.]메리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손끝을 내렸다.
쿠우웅!
“?!”
라우라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몸에 머금은 망령들이 일제히 통제에 벗어나는 바람에 일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메리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 * *
유령궁의 밖.
“이런…….”
암흑연합의 지원군들과 네크로맨서들을 상대하며 기다리고 있던 킬로바니안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거대하고 웅장한, 오래된 고성의 모습을 하던 유령궁의 모습이-
“뭔가 잘못됐군.”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블록으로 쌓은 듯한 장난감 성으로 변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