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1258)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58화(1258/1267)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58화
유리 미그일, 28세.
한때는 미그일 가문의 후계자로서 사교계를 빛내던 귀족 중의 귀족이었으나, 현재는 여러 이유로 대륙을 떠돌아다니며 방황하고,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래도 어린 시절엔 사교계의 중심 인물이었다는 과거가 어디 가지 않는 건지, 전 약혼자인 크리스티나 셀린을 비롯해 연결된 귀족들이 많았다.
‘……엄청 유명한 사교계 출신이었구나.’
과거 미그일이 속해 있던 귀족 사교계의 이름은 ‘에스텔라 살롱’.
곡창지대를 따라 흐르는 에스텔라강의 풍요로움 속에서 눈부신 번영을 이룩한 귀족 가문들이 세운 사교회다.
강 인근의 영지를 보유한 고위 귀족들의 자제들만이 참가할 수 있었는데, 귀족 사회에서는 누구나 알 만큼 명성과 품격이 높은 사교회였다.
여기서 에스텔라강은 특정 귀족의 차지가 아닌 ‘국가 소유’ 취급이었고, 각 영지에서는 모두 공용공간인 강을 통해 바다로 나갈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에스텔라 살롱의 귀족들이 ‘해상 지휘권’을 노리고 다수 함장 자격시험에 참가하게 된 것.
그래서 지금 이 시험장에는 유리를 아는 사람이 특히 많았다.
“세상에, 여기까지 기어들어 오셨네요.”
“아직도 살아 있었어요? 유리 경.”
귀족 자매 둘이 콧잔등을 부여잡거나 멸시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헌트 백작가의 여식인 알리라 헌트와 펠리라 헌트.
“대체 왜 그렇게 살아? 유리.”
한숨을 푹푹 쉬며, 딱한 마음과 한심하단 마음이 뒤섞인 표정으로 시몬의 어깨를 두들기는 금발의 남자.
후작가 후계자 마일러 드 샤르모.
“내가 말했지? 너는 마음가짐이 문제라고.”
“…….”
“그래, 그 표정! 일단 표정부터가 간절함이 없어! 정신력도 약하고, 무엇보다 의지가 부족해! 노력해서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아버지의 인정을 받으면 될 일을 왜 못 하는 거지? 이 쉬운 걸 왜 안 해? 왜 열심히 살지 않는 거야?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없어!”
시몬이 여전히 묵묵부답이자, 마일러는 ‘됐다’ 하고 중얼거리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도 우린 살롱에서부터 만난 오랜 친구니까. 네가 그렇게 된 건 내게도 책임이 있어. 나중에 시험이 끝나면 도움이 될 만한 일자리라도 알아봐 줄 수 있는데…….”
“됐어요! 마일러 님!”
“저런 인간이랑 이야기하면 품격이 떨어진다구요!”
마일러를 졸졸 따라다니는 다른 세 명의 영애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도 마일러는 자신의 과거 친구를 저렇게 둘 수는 없다며, 일할 곳을 알아봐 주겠다는 둥 내 밑에서 정신무장을 하자는 둥 장황한 연설을 했다. 뒤쪽의 영애들은 어리석은 친구에게도 손을 내미는 선량한 마일러에게 푹 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시몬이 썩은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았다.
“……마일러.”
“어, 왜?”
“동정할 거면 돈으로 줘.”
그 당당하던 마일러가 처음으로 당황해하며 말문이 막혔다. 뒤의 영애들은 시몬을 코 풀고 버려진 휴지조각이라도 보는 듯한 경멸의 표정을 지었다.
마일러는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쉬더니, 정말로 금화 하나를 꺼내 시몬의 브레스트 포켓에 넣어두고는 다른 곳으로 향했다. 시몬은 내심 자신의 연기에 만족하며 피어에게 말을 걸었다.
‘저 잘했죠? 피어.’
[크흐흐흐흐! 숱한 임무로 느는 건 능청스러운 연기뿐이군!]마일러가 떠났지만 여전히 유리를 아는 사람은 많았다.
벼르고 있었다는 느낌을 팍팍 내는 한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꼴이 말이 아니십니다. 유리 경.”
작은 키에 눈코입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똑 부러진 인상의 남자였다.
남작 가문의 배질 포트시.
“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이십니까? 가문도 좋고, 집안에 돈도 많고, 남들보다 백배 천배는 유리한 환경에서 시작하셨으면서! 왜 세상 모든 불운과 억울함을 다 짊어진 사람처럼 다니냔 말입니다! 정말 한심합니다!”
“…….”
시몬이 고개를 돌려 배질을 외면했다.
배질이 이를 빠드득 갈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이 이런 인간인 줄도 모르고 따라다녔다가 살롱에서 내 평판이……!”
“안녕!”
그때 살가운 목소리와 함께 바이올릿 머리카락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험을 위해 준비한 듯 모험가들이 입는 편한 복장이었지만, 기품 넘치는 몸짓에서 부유한 귀족 여식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배질의 얼굴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로, 로잘린 아가씨……!”
“안녕, 배질. 잠깐 내 새 약혼자와 할 이야기가 있는데에.”
“아…… 예…….”
금세 시무룩해져서 물러나는 배질이었다.
시몬은 그녀를 응시했다.
‘로잘린 다르시아.’
그녀 또한 에스텔라 살롱 출신의 귀족으로 크리스티나 셀린과 헤어진 뒤, 유리의 아버지인 미그일 변경백이 맺어준 새로운 약혼자였다.
물론 그건 변경백의 뜻일 뿐이고, 유리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았다.
“이런 큰 시험에 용기를 내서 참가하러 올 줄은 몰랐네! 내 약혼자!”
로잘린이 방긋방긋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영지성에서 가출했다길래 걱정했다구! 그래도 여기까지 온 걸 보니 아버지의 명을 무작정 무시할 순 없나 봐? 호호호! 시험 끝나구 같이 식이나 올리자!”
얼핏 보면 약혼자로서 존중해 주는 듯 보이지만, 시몬은 그녀의 음성으로부터 불쾌한 끈적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널 받아줄 여자는 나밖에 없어, 유리. 네가 가진 비옥한 영지의 힘으로 내 배를 불리고, 비싼 보석으로 치장하게 하고, 행복하게 해줘. 네 쓰임새는 그것만으로 충분해.”
그녀가 눈을 찡긋했다.
“결혼이라도 해야 아버지에게 마지막이라도 효도를 하는 게 아닐까? 잘 생각해 봐!”
그녀는 손을 흔들어 보인 뒤, 저 옆의 큰 키의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약혼자가 보는 앞에서 당당히 그 남자에게 팔짱을 꼈다.
“저 남자 뭐야?”
남자가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고.
“지갑.”
로잘린은 상쾌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러다 남자가 고개를 돌려 시몬의 몰골을 바라보더니, 표정이 환하게 풀리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경쟁 상대가 아님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그 밖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시몬을 향해 한마디씩 하며 지나갔다.
‘중앙 귀족들의 사교계는 원래 이런 걸까.’
사교계에서 몰락하여 폐인이 된 청년은 자극적인 스토리 그 자체였고, 에스텔라 살롱뿐만 아니라 다른 사교계 출신 귀족들도 알 만큼 유리 미그일은 유명인이었다.
-저 가문으로 저렇게밖에 못 하는 게 대단하다.
-나라 망신에 집안 망신이지.
-양팔 양다리 다 달려 있으면서도 왜 일을 안 해?
수많은 사람들이 시몬을 보고 한마디 했다.
경멸하는 자들, 비웃는 자들, 한심하게 여기는 자들.
시몬은 그 모든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야, 돈 더 없어?”
이번엔 자작 가문의 후계자인 다르크 할렉이란 남자가 다가와, 시몬이 아까 받았던 금화를 빼앗더니 키득거렸다.
“인상 펴 새끼야. 밖에 나왔다고 바로 주인 못 알아보긴.”
그가 시몬의 머리를 한 대 후려치려다가, 이내 사람이 많은 걸 깨닫고는 대신 목을 한 대 가볍게 툭 두들기고는 입꼬리를 히죽거렸다.
“좀 이따 보자? X새끼야.”
저벅 저벅 저벅.
다르크가 동전을 튕기며 멀어져 갔다. 시몬은 태연한 얼굴로 벽에 등을 기댄 채 그를 바라보았다.
딱히 화가 나진 않았다.
분장을 했을 뿐이고, 자신에게 오는 악의가 아니었으니까. 다만 진짜로 이 모든 걸 겪어야 했을 유리 미그일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아하하!”
“오호호!”
저 멀리 에스텔라 살롱 출신의 귀족들이 모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그들이 동시에 유리를 보더니 경멸과 한심함, 비웃음을 띤 얼굴로 키득거렸다.
아버지도 포기한 자식이란 소문은 파다했고, 이에 따라 미그엘 가문의 분노를 살 일도 없으니 그냥 대놓고 무시하는 모습이었다.
‘피어.’
[크흐흐! 왜 그러지 소년?]‘저 이번 시험.’
시몬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조금 더 기대되기 시작했어요.’
[크하하하하하하!]마침 확성 수정구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이제 곧 시험이 시작됩니다! 수험자분들은 정해진 위치로 이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수험자 외의 관계자들은 모두 밖으로 나가주십시오.
수험자들이 하나둘 자리를 찾아 움직였다.
이곳은 워낙 방대한 시험장이라 1번부터 8번 구역까지 나뉘어져 있었다.
‘나는 8번.’
시몬은 기둥에 붙어 있는 글자를 찾아 8번 구역으로 걸어갔다. 시험이 시작하기 전까지는 사람들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었기에, 구석에서 조용히 수첩을 꺼내 펼쳐 들었다.
스카우터 롤랜드가 정리한 부분에 더해, 시몬은 추가로 내용을 적어 넣었다.
1. 크리스티나 셀린
: 전 약혼자. 셀린 가문의 장녀이자 엘리사의 언니. 유리에 분노.
2. 알리라 헌트, 펠리라 헌트
: 헌트 백작가의 자매. 유리를 경멸.
3. 마일러 드 샤르모
: 후작가 후계자. 노력주의자. 유리를 동정.
4. 배질 포트시
: 남작가 후계자. 과거엔 유리를 따랐으나 현재는 유리를 증오.
5. 로잘린 다르시아
: 현 약혼자. 백작가 가문. 유리의 재산이 목적.
6. 다르크 할렉
: 자작가 후계자. 상습 폭행과 협박.
지나간 사람은 많았지만 중요 인물의 정리는 여기까지. 이 여섯 명만 잘 기억해 두면 될 것 같았다.
시몬이 빠르게 수첩을 끄적거리고 있는데.
‘아.’
선 채로 너무 빨리 필기하느라 실수로 깃펜을 놓치고 말았다.
시몬이 바닥의 깃펜을 주우러 다가갔다.
“이거 찾아? 유리 미그엘.”
한 남자가 히죽 웃더니 대굴대굴 굴러오던 깃펜을 발로 찼다. 그것이 옆으로 데구르르 굴러갔다.
“오 나이스 패스!”
에스텔라 살롱 출신으로 보이는 남자 귀족들이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다시 옆으로 차고, 또 차길 반복했다.
시몬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들이 장난치는 모습을 보았다.
‘여기 안 오는 게 정답이었습니다. 유리 경.’
툭.
그때 굴러가던 깃펜이 한 여성의 신발에 닿았다.
“어, 미안합니다 레이디. 여기로 차줄래요?”
귀족이 손을 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허리를 굽혀 깃펜을 줍더니, 시몬에게 다가와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거.”
중단발의 머리카락에 양처럼 복슬복슬한 머리카락의 여성.
둥근 안경을 썼으며, 수인인 듯 머리끝에 정말로 작은 뿔이 나 있다.
시몬을 더 놀리던 남자들이 ‘재미없긴!’ 하고 중얼거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고마…….”
시몬이 감사 인사를 하기도 하기 전에 안경을 쓴 양머리 여자는 종종걸음으로 걸어서 자신의 시험 구역인 7구역으로 걸어갔다.
-이제 함장 자격시험을 시작합니다! 주목해 주십시오!
드디어 시작이었다.
철컹! 철컹!
주위에 조명이 들어온다. 수험자들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스트레칭을 하거나, 암기한 것들을 외우고 있었다.
시몬은 적당히 구석에 박혀서 기다렸다.
유리 미그일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도 퀭한 얼굴이나 추레한 차림새 등 시몬의 외견을 보고 알아서 피해주는지라 편했다.
-어서 와라!
시험장 중앙에 위치한 연단.
그곳에서 선단복을 차려입은 자들이 빠르게 도열했고, 그 중간에 어깨에 걸친 코트를 휘날리며 걸어오는 여자가 보였다.
한쪽 다리를 잃었는지 투박한 목제 의족이 다리를 대신하고 있었는데, 시몬을 제외하면 누구도 바로 눈치채지 못할 만큼 그 의족을 진짜 사람의 다리처럼 움직이는 게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3군단 선단의 부제독 아그라 님이야!”
“저런 거물이 1차 시험부터 직접 통제하다니.”
3군단의 부제독, 아그라.
시몬은 새로운 정보를 머릿속에 집어넣으며 주위를 한 차례 둘러보았다.
‘제독이 직접 오지 않은 건 다행이네.’
시험 초장부터 제독에게 들켜 버리면 곤란했다. 시험에서 합격한 뒤에,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서 재회하게 되는 상황이 시몬에게 유리했다.
그때 부제독 아그라가 부하로부터 확성 수정구를 건네받은 뒤 목소리를 높였다.
“네놈들이 여기에 온 이유,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드넓은 경기장 전체에 웅웅 울려 퍼졌다.
“진지하게 3군단에 뼈를 묻으러 왔거나, 바다를 수호할 각오로 온 놈들은 여기 없겠지. 너희가 일확천금이나, 가문에 해상 지휘권을 안겨 주기 위해 여기 기어들어 온 건 잘 안다.”
수험생들의 표정이 굳어지거나, 쓰게 웃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알고 있다고 해도 설마 시험 시작부터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할 줄이야.
“하지만 실력만 있다면 상관없다. 이번에 해상 지휘권을 퍼주는 건 바다에서 일어나는 기상천외한 이상현상을 막기 위한 전력 보충의 개념이다! 너희가 3군단에 들어와 이번 일에 공헌한다면, 그 뒤에 무엇을 하든 우리는 말리지 않겠다. 우리가 관심이 있는 건 하나!”
그녀가 목소리를 높였다.
“네놈들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느냐 아니냐다!”
피차 체면치레는 그만하고, 제대로 일만 하면 원하는 걸 주겠다는 이야기.
곳곳에서 수험자들의 고양된 웃음소리와 환호성이 들려온다.
시몬도 가문의 이득이나 돈을 위해 온 건 아니지만, 3군단이 아닌 다른 목적이 있어서 들어왔기에 더더욱 전의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럼 준비해라.”
철컹! 철컹!
뭔가 시험장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모두가 어떤 시험을 치를지 긴장하고 있는 가운데.
덜컹!
갑자기 발을 딛고 있던 바닥이 사라졌다.
수험자 모두가 비명을 지르며 아래로 추락했다.
“우와앗!”
“헉!”
첨버어엉!
쏴아아아아아아아아!
시몬이 눈을 뜨니 어느새 주위는 바닷물이었다. 다른 수험자들도 떨어져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시몬이 아래를 보니 바닥이 까맣게 보일 정도로 깊었다.
‘시험장 전체가 일종의 풀장인가?’
방대한 직사각형 시험장에서 8개 구역은 이제 마나로 이루어진 ‘로프’로만 구분되어 있었고, 한 구역당 50명의 수험자들이 팔다리를 휘저으며 고개만 내민 채 숨을 쉬고 있었다.
“다, 다짜고짜 뭐야?”
“실력만 있으면 오케이라고 했지만, 물론 그건 ‘바다’에서의 이야기다.”
수험자들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 아그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육지에서 이름 좀 날렸다고 기어들어 온 놈들부터 솎아내야 하지 않겠나.”
쏴아아아아아!
쏴아아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기장 8구역 전체에서 난데없이 거대한 ‘파도’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우왓!”
“크헙!”
파도에 휘말린 400명의 수험자들이 크게 휘청였다. 다들 각자의 흑마법으로 버티거나 자신의 몸을 어떻게든 고정하고 있었다.
‘어떻게 파도를 일으키는 거지?’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각 벽면에는 마나로 작동하는 아티팩트가 붙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저걸로 인공 파도를 일으키는 것 같았다.
“이곳은 군사시설이다.”
부제독 아그라가 단상에서 걸어 다니며 확성 수정구를 들고 말했다.
“함선의 테스트와 개발을 진행하는 곳이지. 여기서 다양한 형태와 세기의 파도를 일으켜서 함선이 바다의 움직임에 잘 적응하는지 체크한다.”
“어떻게 함선을 테스트하는 곳에 사람을 집어넣을 수 있냐고…….”
한 수험자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전문 항해사나 함장이 아니다. 항해사나 선박 기술자는 3군단에서 얼마든지 지원해 줄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전력’이다!”
아그라가 목소리를 높였다.
“바다에서와 육지에서의 전투는 완전히 다르다. 명심해야 할 건, 이건 바다에서 싸울 줄 아는 자들을 선별하기 위한 시험이라는 거지. 하늘을 날거나 바다를 얼리는 등 바다에 직접 저항하려는 자들은 전투 탈락이다. 수단이 뭐든 버티기면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망망대해에서도 사흘이고 나흘이고 날 수 있는 걸 증명한다면 뽑겠다.”
웅성 웅성!
수험자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외에 금지 사항은 없다. 부디…….”
그녀가 입꼬리를 올렸다.
“살아남길 바라마.”
삐이이이!
삐이이이이이!
삐이이이!
곳곳에서 불안한 경보음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쿠구구구구! 하고 거대한 엔진 같은 게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시몬은 물에 둥둥 뜬 채 눈을 감고 바다에 집중했다.
‘온다.’
쏴아아아아아아아!
방금의 파도는 맛보기였다고 말하듯, 벽면에서 거대 파도가 출렁이며 들이닥쳤다. 근처의 수험자들이 우왓! 소리를 내며 헤엄쳐서 파도의 범위에서 빠져나갔지만.
“끄흡!”
“헉!”
타이밍이 맞지 않아 파도에 휘말린 수험자들이 그대로 밀려 나가다가 벽에 부딪혔다. 시험장에 들어올 때 받아서 입고 있던 얇은 조끼의 센서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삐익!
삑!
-256번 수험자 탈락입니다.
-9번 수험자 탈락입니다.
“자, 잠깐!”
“이런 거였……!”
이건 시작이라는 듯 사방에서 거대한 파도가 넘실거리며 쏟아지기 시작했다.
벽은 물론, 파도에 휘말려 구역과 구역을 구분 짓는 마나 펜스에 닿거나 넘어가도 불합격이었다.
“우와아아아아악!”
“온다!”
1지역 쪽은 무슨 해일 같은 게 수험장을 통째로 쓸어내리고 있었다.
해일은 1지역을 덮친 뒤 그 크기와 세기 그대로 2지역과 3지역까지 밀고 내려온다. 처음엔 이 정도 물놀이쯤이야! 하고 웃고 있던 수험자들도 웃음기가 쏙 빠지고 말았다.
사람 키의 다섯 배가 되는 해일이 수험자들을 밀고 나간다. 사람이 무슨 장난감이나 팝콘처럼 튕겨 나가고 있었다. 벽에 부딪히다 못해 장외되어 기절하거나 중상을 입는 수험자들이 속출했다.
“이, 이건 미친 짓이야!”
“나는 기권! 기권할래!”
곳곳에서 기권자들이 속출했다.
그중의 한 남자가 후후 웃고 있었다.
“3군단 선단이면 요직 중의 요직! 이곳에 들어가는 시험을 쉽게 생각하니 그렇…… 크훕!”
갑자기 그의 몸이 수면 아래로 쭉 빨려 들어갔다.
“로빈!”
“갑자기 사라졌어!”
위만 신경 쓰면 되는 게 아니었다.
아래에 프로펠러가 작동하며 곳곳에 물의 회오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빨려 들어간 사람은 그대로 탈락이었다.
-57번 수험자 탈락입니다!
-100번 수험자 탈락입니다!
아우성과 혼란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 가운데 즐겁게 지켜보고 있는 한 명이 있었다.
“육지 놈들의 생각은 다 뻔하지. 헤엄만 잘 치면 끝인 줄 알았나? 하여간 이쪽 세계를 쉽게 본단 말이야.”
부제독 아그라가 손에 장치를 들고 작동시켰다.
“더 재미있게 해볼까?”
철컹! 철컹!
이번엔 전면부의 문이 개폐되더니 거대한 함선 세 척이 물살을 밀고 엄청난 속도로 들이닥쳤다. 수험자들이 울먹이며 옆으로 헤엄쳤다.
“피해!”
“지, 진짜 죽겠다! 이 새끼들아!”
시험에 참여한 절대다수가 코어를 개방한 네크로맨서였지만 시험 자체의 수준이 차원이 달랐다.
주최 측은 3군단에, 군사 목적으로 뽑는 시험.
사방에서 몰아치는 파도를 버티는 것도 힘들었다. 아래로 애매하게 잠수하면 빨려 들어간다.
“푸합! 큭!”
“수, 숨을 못 쉬겠어!”
모두가 정신없이 고통받고 있는 가운데.
“응?”
수험자들의 고개가 하나둘 돌아갔다.
유난히 멍하니 수면에 둥둥 떠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그렇게 비웃음을 당하던 한 명.
삐뚤어진 안경에, 늘어진 셔츠를 입은 남자가 두 손을 경건히 모으고 눈을 감은 채 마치 명상하듯 수면 위에 떠 있었다.
“저게 미쳤나! 이봐 안경! 옆에 파도! 파도 온다고!”
쏴아아아아아아!
마침 커다란 파도가 밀려들었으나 남자는 그 자세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자 높은 파도에 휘말렸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몸이 파도를 따라 위로 솟구쳤다가 다시 내려왔다. 가끔 부서진 잔해물이나 사람들은 보지도 않고 옆으로 쓱쓱 피하며 피해 나갔다.
온갖 흑마법을 총동원해 버티던 수험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뭘 하는 거지?”
“저것도 흑마법인가?”
혼란 속의 평화.
시몬은 마치 이 시험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별개의 존재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자.’
시몬이 서서히 눈을 떴다.
‘슬슬 움직여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