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1267)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67화(1267/1267)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67화
바다가 거칠게 요동치고 있었다.
시몬이 그동안 결을 잡고 파도를 일으켰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가히 천재지변.
마치 명인의 붓터치를 보는 것처럼 바다의 파도가 겹겹이 뭉친 채로 올라왔다가 한 겹씩 서서히 쏟아져 내리는 모습은 이 세계의 물리법칙마저 비웃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가운데.
쏴아아아아아아-!
물에 젖은 남자가 바다 위를 걷고 있다. 코트 자락을 휘날린 채 겹겹이 뭉친 파도를 꼬리처럼 달고 오는 모습은 인외의 존재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오늘도 화려하게 등장하시는군.”
부제독 아그라가 깔깔 웃으며 감상을 말했다.
남부제독, 라즌 맥밀런.
전에 주점에서 봤던 후줄근하고 피로에 찌든 모습과, 본인의 영역인 바다에서 본모습은 완전히 달랐다.
‘설마.’
시몬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시몬은 이제 제독의 발을 보고 있었다.
‘저게 청파류를 응용한 결과는 아니겠지?’
콰콰콰콰콰!
겹겹이 쏟아지는 물살 속에서 수많은 해양 몬스터들이 고개를 들이민다. 그것은 제독의 뒤를 따르는 것처럼 보였으나, 제독을 쫓으려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이유도 알 수 없이 머리가 텅텅 물살에 잘려서 떨어졌다. 무수한 해양 몬스터들이 머리를 잃고 바다로 추락했다.
“우와……!”
“와!”
선원들은 익숙해 보였지만, 이 모습을 처음 보는 신입 함장들은 말을 잃은 사람처럼 감탄사만 흘리고 있었다.
그러다 파도가 점점 잠잠해지더니 완전히 가라앉았다. 파도가 사라지고, 바다의 방대한 범위가 붉게 물들었다.
“오시는 김에 청소를 하신 거다.”
부제독 아그라가 설명했다.
“이 구간엔 늘 해양 몬스터가 득실거리거든.”
“그런데 제독은 어디 가신 거죠?”
파도가 끝나고 어느샌가 제독이 바다에서 사라져 있었다.
시몬의 물음을 들은 아그라는 조용히 한 손에 들고 있던 우산을 꺼내서 썼다.
“이미 옆에 계시지 않나.”
“!”
그 말대로.
때를 탄 코트를 입은 사내가 어느새 갑판 위에 착지해 있었다.
쏴아아아아아아아!
뒤이어 바닷물이 비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물세례에 함장들이 우왓! 하고 팔을 들어 머리를 감싼 채 뒷걸음질했다.
이미 적당히 지붕이 있는 곳에 숨어 있던 선원들이 낄낄 웃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제독.”
물이 다 떨어지자 아그라가 우산을 걷으며 말했다.
제독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뒤 손끝으로 머리에 쓰고 있는 챙이 긴 모자를 들어 도열해 있는 신입들을 바라보았다.
“이들이 시험에 통과한 자들인가.”
“예.”
시몬을 제외한 신입 함장들 모두가 흠칫한 반응을 보였다.
‘한쪽 눈이……!’
‘없어.’
부제독이 말을 이었다.
“인사 받으셔야죠. 임명식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제독이 알겠다는 듯 손을 휘저은 뒤 삐걱삐걱 갑판에 발소리를 내며 걸어갔다. 그렇게 호탕하고 활달하던 선원들도 제독의 앞에서는 꽤 예의 바르게 굴었다.
아그라가 외쳤다.
“신입 함장들은 10분 만에 정복으로 환복! 20분 뒤에 제독 앞에서 임명식을 거행한다.”
“예!”
* * *
3군단 본선 내 작전실.
본래라면 취업해야 했을 바로 그곳에, 시몬은 ‘해상 지휘권’을 가진 함장 자격으로 정복을 입고서 준비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선배였을 작전실 직원들이 정복의 정돈을 도와주고, 선서문을 가져다 주었다.
“거기 신입! 함장님들 선서문 수정된 거 가져와서 하나씩 드려!”
“예!”
어쩌면 자신의 모습이 됐을지도 모르는 작전실 신입 사원이 바쁘게 움직이며 서류를 나르고 있었다. 시몬은 그 친구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를 마음속으로나마 보냈다.
이내 작전실을 지나 함장실에 도착했다.
본선의 함장실은 제독 전용 집무실이었다. 제독은 젖은 옷 그대로였고, 말끔한 검은색 정복으로 갈아입은 신입 함장들이 그의 앞에 도열했다.
“신고합니다.”
그리고 곤란하게도.
이번 최고 성적자인 시몬이 앞으로 나와 선서문을 읽어야 했다.
처억!
시몬이 제독에게 경례 자세를 취하자, 나머지 아홉 명도 군기가 잔뜩 든 동작으로 경례 자세를 취했다.
“3군단 휘하 함장 진급을 명받았습니다. 저희는 책임의 무게를 이해하고 바다의 수호를 위해, 함과 선원의 안전을 위해, 선단의 명예를 위해, 어떤 위기에도 맞서 싸우며 직무를 충실히 이행할 것을 엄숙히 선언합니다.”
“…….”
바로 이때.
피로에 찌들었어도 늘 근엄하고 박력 넘치던 제독의 표정이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앞에서 선서하는 시몬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설마 들킨 건가?’
시몬은 두근두근 심장이 뛰는 것을 느끼며 제독과 눈을 마주했다.
언젠가 들키게 되겠지만 지금 당장 들키는 건 피하고 싶었다.
“……아그라.”
부제독을 부르는 제독의 목소리에서는 짙은 피곤함이 서려 있었다.
“이놈들, 제대로 실력을 평가한 건 확실하겠지?”
제독은 아그라를 보면서 말하고 있었지만, ‘이놈들’이 가리키는 게 왠지 자신일 것 같다고 시몬은 생각했다.
“이번 임무를 위해 급하게 시험을 치러서 뽑은 것치고는 나쁘지 않은 인재들입니다. 그리고 수석인 유리 미그일의 경우.”
그녀가 덤덤하게 말했다.
“선단 역사를 통틀어도 손꼽히는 인재입니다.”
다른 신입 함장들이 씩 웃거나 시몬을 자랑스러워했고, 에스텔라 살롱 소속의 신입 함장들은 뭔가 뒤숭숭한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후우.
길게 한숨을 토해낸 제독이 손을 내려서 경례를 받았다.
“그렇다면 됐다.”
지금 정체를 들켰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시몬은 뭔가 고소하다는 생각을 하며 미소 지었다.
‘내가 증명한다고 했죠?’
아직 제대로 실력을 보여준 것도 아니다.
이 본선에서 나간 뒤가 진짜였다.
“편히 들어라.”
처억.
척.
제독의 그 말에 신입 함장들이 열중쉬어로 자세를 바꾸었다. 시몬도 자리로 돌아와 섰다.
“이틀 뒤면 너희는 직접 함대를 이끌고 핵심 작전에 참가하게 될 거다.”
철퍽.
그가 다리를 꼬자, 물이 찬 장화에 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최근에 이 바다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작전이다. 너희들의 해상 지휘권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선단의 전력 일부를 너희들에게 일임하여 지휘하도록 할 거다. 이번 일만 무사히 해결하면 3군단에 남을지, 다른 일을 할지는 너희들의 자유다.”
툭툭.
손끝으로 한 차례 테이블을 두들긴 제독이 입을 열었다.
“자신 있나?”
“예!”
모두가 우렁차게 답했다.
“브리핑에 데려가지 부제독.”
제독의 말에 아그라가 정중히 고개를 끄덕인 뒤, 신입 함장들을 보았다.
“장소를 옮긴다!”
* * *
모두가 아그라를 따라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시몬이 봤던 그 어느 배보다 거대한 만큼, 내부에 수많은 방들이 있었다.
이번엔 청소를 도맡아 하던 시몬 일행도 들어가지 못했던 통제구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너희는 오늘부로 정식으로 3군단의 함장이 됐다.”
아그라가 앞장서서 이들을 인솔하며 말했다.
“아까도 이야기했듯, 보안상 이야기해 주지 못한 것들까지 오늘 전부 설명하겠다.”
모두가 긴장하거나 설렘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선단의 한 사람으로서 대우를 해주는 것 같아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내 모두가 커다란 문 앞에 멈춰 섰다. 그녀가 문을 붙잡고 말했다.
“문이 열리면 빨리빨리 움직여서 빈자리에 앉아라. 괜히 책잡힐 짓은 하지 말고.”
“네!”
철컹!
그녀가 문을 열었고, 신입 함장들이 문을 지나 걸어갔다. 그러다 제일 먼저 들어간 알리라 헌트와 배질이 흠칫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가 고개를 팍 숙인 채 후다닥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안에 뭐가 있길래?’
시몬은 마지막 즈음에 안으로 들어왔다.
‘와!’
이곳은 지휘실 내부.
거의 30명의 제독 코트를 입은 자들이 팔짱을 끼거나 살벌한 눈으로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나같이 백전노장이라는 느낌을 풀풀 풍겼다.
‘이 사람들 전원이 해상 지휘권을 가진 함장이구나!’
옷이 다른 걸 보니 3군단 소속이 아닌 자들도 있었다. 그야말로 대규모 합동작전이었다.
“빨리빨리 안 움직여!”
누군가 버럭 외치자, 뻣뻣하게 눈치를 보던 신입 함장들이 후다닥 달려가서 가장 뒤쪽의 말석에 앉았다.
함장들이 짜증 섞인 표정을 지었다.
“아직 육지 때도 못 벗은 애송이들이군.”
“시험 하나 쳤다고 우리와 같은 취급이라니, 이가 갈립니다그려.”
좋지 않은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했다.
아무리 비상사태라지만 백전노장인 자신들과 이런 신입들이 같은 함장직이라니. 거기에 바다 종사자들은 모두 육지인들에 대해 적대적인 인식을 가졌다.
다른 신입 함장들은 완전히 기가 눌렸는지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척척 자리에 앉아 허리를 힘껏 펴고 정자세를 취했다.
“…….”
그러는 와중에도 시몬은 특유의 무신경한 유리 미그일 연기를 시작했다.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로 오고 있었다.
다른 함장들의 찢어 죽일 듯한 눈동자가 향하고 있었지만 시몬은 그야말로 무심했다.
‘조직 문화를 존중해 주려고 했는데, 굳이 기를 꺾으려고 든다면야.’
드르륵!
의자를 붙잡고 만천하에 소리가 나도록 끌어서 그것을 빼낸 뒤, 떡하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이내 두 손을 깍지 껴서 테이블에 내려놓고 등받이에 몸을 세상 편안하게 푹 기댄 채 그들의 시선을 마주하며 미소 지었다.
‘뭘 봐?’
싸아아아아아아!
몇몇 함장들이 역으로 움찔한 반응을 보인다.
격분해서 얼굴이 시뻘게지는 함장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함장들은 적대감을 거두고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짓거나 웃음을 흘리기도 했다.
‘대단해!’
‘저 깡다구 뭐야.’
‘속이 다 시원하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든 함장들의 적대감 가득한 시선을 막아주고 당당하게 구는 시몬의 모습에 신입 함장들 모두가 감동한 뒤였다.
[크흐흐흐! 아주 잘했다!]피어도 신이 난 듯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분장했다지만 시몬은 엄연히 군단장, 지금 이 자리에서 그와 동등하게 맞설 수 있는 건 같은 군단장인 제독뿐이다.
그때 부제독 아그라가 들어와 말했다.
“제독께서 입장하십니다.”
참방 참방.
어느새 이 방까지 물이 바닥에 차오르며 제독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든 함장들이 암흑연합의 해군 총사령관이자, 오랜 시간 바다를 위해 헌신했던 군단장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이내 제독이 자리에 앉고, 다른 함장들도 자리에 앉았다.
“모여줘서 고맙군. 다른 해역을 지키는 함장들까지도 이번 작전에 참가해 주어 감사를 표한다.”
제독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이제 곧 바다의 운명, 더 나아가 대륙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대한 전쟁을 시작할 것이다.”
그의 중후한 목소리가 좌중에 울려 퍼졌다.
“내륙의 사람들은 우리가 죽어나가는 것을 모른다. 우리가 피 흘리고 숨을 참으며 매일매일 파도와 맞서는 것을 무신경하게 넘길지도 모른다. 우리가 전쟁에서 이긴다고 해도 늘 그랬듯, 신문 기사에는 ‘바다에 이상현상이 사라졌다’는 한 줄 기사만 무심하게 남겨지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가 깍지 낀 손을 내려놓으며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긍지를 가지고 싸울 것이다.”
옳소!
그럼 그럼!
함장들이 크게 환호하며 제독의 말에 호응하고 손뼉을 쳤다. 시몬도 살짝 감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시몬이 최근에 참여한 룬 리그는 대륙의 이목이 집중된 행사였다. 많은 이들이 지켜보았고, 그곳에서 활약한 덕분에 시몬은 룬 리그의 영웅이라는 호칭도 받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는 이런 큰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룬 리그보다 중요할지 모르는 대륙의 운명이 걸린 일이나,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 궂은일들은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사람들의 힘으로 해결되고 있었다.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네.’
시몬도 조금은 더 의욕이 생기는 걸 느꼈다.
룬 리그라는 무대의 중앙에 있다가 이제 무대 뒤편을 경험하게 됐다. 바다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제독.”
“예.”
아그라가 앞으로 나와 테이블에 메모리얼 수정구를 내려놓았다.
“신입 함장들도 있고, 다른 해역의 함장들도 계시니 처음부터 설명하겠습니다. 대부분의 함장분들은 다 아는 내용이겠지만 한 번 더 머릿속에 되새기는 의미에서 집중해 주시길 바랍니다. 설명하기 전에 우선-”
달칵.
그녀가 메모리얼 수정구를 작동시켰다.
“이번 임무, 우리가 처치해야 할 가장 강력한 적을 먼저 보여 드리겠습니다.”
메모리얼 수정구로부터 흘러나온 빛에 함장들이 탄성을 토해내거나 숨죽인 비명을 흘렸다.
바다를 두 발로 걸어다니는 형언할 수 없이 거대한 존재의 모습이 비쳤다.
아그라가 굳은 표정으로 운을 뗐다.
“신적인 존재를 죽여본 적 있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