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1295)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95화(1295/1318)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295화
랭거스틴.
카페 야외 테이블 앞.
“뭐라고 해야 할까.”
주문한 오렌지 주스를 한 모금 마신 시몬이 땀을 삐질 흘렸다.
“이렇게까지 잘될 줄 몰랐네요.”
맞은편에 나란히 앉은 유리와 크리스티나가 손을 꼭 맞잡은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유리의 눈에는 망설임과 두려움의 잔재가 흐릿하게 일렁이고 있었지만, 크리스티나의 눈에 비치는 건 강렬한 자신감과 믿음.
그것이 유리를 서서히 늪에서 끄집어내는 것만 같았다.
“……가, 감사합니다. 군단장님.”
다시 고개를 돌린 유리가 드문드문 목소리를 냈다.
“시험 하나를 떠넘겼을 뿐인데, 이렇게 되다니.”
시몬이 미소 지었다.
처음에 대면했던 그 세상만사에 무심하던 그가 아니다.
사실 유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지금은, 그런 표정이나 태도가 타인과의 거리를 두기 위한 일종의 자기방어책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순수한 모습. 이것이 크리스티나가 반했던 유리의 본모습일 것이다.
정치와 이해타산이 머릿속에 꽉 박힌 크리스티나 셀린이 반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말씀을요. 제가 더 감사드리죠.”
시몬이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유리 경께서 협조해 주신 덕분에 바다의 위기도 극복했으니까요. 그리고 크리스티나 님의 마음을 바꾼 건 제 능력이 아니라, 크리스티나 님 본인의 깨달음 덕분입니다.”
“어머나, 군단장님도 참. 감사드려요.”
그녀가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그렇게 답했다.
“……그, 그런데 크리스티나. 나 같은 걸 만나도 정말 괜찮아?”
유리가 고개를 팍 숙였다.
“너라면 훨씬 더 좋은 남자를…….”
“나는 너밖에 없다고 했지?”
크리스티나는 눈에 확신에 더해 신념까지 담아 유리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유리의 눈에 깃든 어둠이 불빛에 밝혀지듯, 조금은 편안해졌다.
‘다행이다.’
시몬도 내심 걱정을 했다.
이번 결정이 유리의 속을 더 썩이는 결정이 될까 봐.
다행히 유리는 아직 절망에 완전히 잠식당하지는 않은 상태였고,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 싶어 하는 욕구가 분명히 있었다. 크리스티나가 내민 손을 용기 내어 잡는 것만 봐도 그랬다.
“군단장님은 저희 부부의 은인이에요.”
냅다 ‘부부’까지 박아버리며 심약한 유리에게 쐐기를 꽂은 크리스티나가 고개를 홱 기울여 시몬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제 여동생 엘리사랑 동갑에다가 키젠 동기라고 하셨죠? 혹시 엘리사한테는 관심 없어요?”
“……네?”
“제가 밀어드릴 수 있어요! 셀린 가문의 가주가 아내라면 차후 군단장님의 세력 결집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혹시 두 분이서 잘되면 우리랑 부부 동반 여행이라도……!”
어디까지 갈 셈인가.
시몬이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두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마음만 받겠습니다.”
“농담이에요.”
못내 아쉬운지 그녀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엘리사 고거 고거, 매력이 부족한가 보네.”
“……하하.”
시몬이 땀을 삐질 흘리며 다시 유리를 바라보았다.
“참, 그리고 아직 다른 에스텔라 살롱 분들을 만나보기는 부담스러우시다구요.”
“지금도 심장이 너무 버거워서…… 조금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하.”
하긴 크리스티나 셀린과 함께 있는 것도 유리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용기를 낸 셈이었다. 시몬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럼요.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자기 자신만의 걸음걸이로 천천히 일어나 주세요.”
“감사합니다. 군단장님과 크리스티나 덕분에 조금은 더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가 입술을 깨물었다.
“……언젠가 아버지께 인정받아, 변경백이 되겠습니다. 크리스티나에게 모자라지 않는 남자가 되고 싶습니다.”
크리스티나가 또 눈물샘이 자극됐는지 펑펑 울기 시작했다.
시몬도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늘 응원하겠습니다. 미래의 변경백.”
* * *
이걸로 유리 미그일과의 일은 마무리됐다.
똑 부러진 성격의 크리스티나 셀린이라면, 흉계를 꾸미는 데 능한 백작부인의 좋은 상대가 될 것이다. 물론 유리도 전처럼 쉽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 변경백이 백작부인이 한 짓을 알게 됐으니까.
남은 건 두 사람이 얼마나 잘해주는가에 따라 달렸다.
두 사람과 헤어진 시몬은 이제 원래 목표였던 졸업 작품 재료를 구매하기 위해, 랭거스틴의 네크로맨서 상품 거리인 캠밸로드에 들렀다.
적어둔 노트 조각을 바스락거리며 꺼내 든 시몬이 문득 높이 솟은 시계탑을 보았다.
‘아, 저기. 예전에 저기서 다 같이 지낸 적 있지.’
시계탑 숙소. 랭거스틴의 야경이 다 내려다보이는 장소였다.
잠시 그쪽을 가만히 바라보던 시몬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직 메이린, 딕, 카미바레즈 모두 취업 평가에서 복귀하지 못한 상태였다.
시몬도 함대 제작에 언노운까지 잡느라 복귀가 늦은 편인데, 그런 시몬보다 다른 세 사람이 더 늦고 있었다. 어쩌면 키젠 전체에서 가장 늦는 편일지도 몰랐다.
‘다들 잘하고 있는 걸까.’
걱정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이 또한 키젠의 시험이었기에 시몬이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
게다가 복귀가 늦으면 늦을수록 졸업 논문 준비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농후했다.
‘마지막 학기만큼은 꼭 같이 보내고 싶은데.’
시몬은 지금 멤버들이 어떤 상태인지 간절히 알고 싶었다.
* * *
키젠 전체 6위, 부회장 메이린 빌렌느.
그녀가 취업해야 할 조직은 ‘흑철성채’였다.
이곳은 상아탑과 지리적으로 마정석 광산을 놓고 다투는 사이라 상극 중의 상극이며, 마법사 집단과 암살자 집단이라는 점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오랫동안 대립해 왔다.
그런데 이런 갈등을 끝낼 역사적 사태가 지금 벌어지고 있었다.
<상아탑-흑철성채, 자원 교류 거래소 준공식>
짝짝짝짝!
상아탑의 상아탑주 대리인 다니엘라 빌렌느와, 흑철성채의 성주가 악수하고 있는 모습.
두 세력의 오랜 갈등이 봉합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흑철성채 쪽에서, 정장 차림에 빨간 머리로 물들인 한 남자가 박수를 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 아슬아슬하게 해냈다.’
바로 메이린이었다.
그녀의 가짜 신분은 ‘에라스 발모어’라는 남성이었는데, 하필이면 위장 인물의 성별이 남자였다.
그렇게 시작된 메이린의 인생 첫 남장은 우당탕탕 실수 연발이었다.
몸매를 감추기 위한 수많은 노력들, 아무 생각 없이 남탕에 끌고 가려는 선배들이나, 쿨한 남장 메이린의 스타일에 반해서 냅다 고백을 하는 여귀족들까지.
그런데 사건의 스케일에 비하면 이런 남장 이슈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메이린은 자신이 취업한 흑철성채에서 상아탑에 ‘전쟁’을 선포하려는 사실을 알아냈다.
-어쩔 수 없네, 신입. 교활한 상아탑 놈들이 우리와 거래하던 마정석 가공업체들에 압력을 넣어 거래를 끊게 했네. 흑철성채 전체가 무너지게 생겼어! 남은 건 전쟁뿐이야!
-부,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
그렇게 상아탑의 사정에 능통한 메이린이 물밑으로 움직였다.
우선 그녀는 흑철성채에서 가장 필요한 ‘흑철’이라는 물건에 주목했다. 마정석을 특수한 방법으로 강한 열기로 태우는 과정에 까만 찌꺼기가 남는데, 이 찌꺼기에는 마나에 반발하는 효과가 남아 있다. 이를 디센스톤, 혹은 간단히 흑철이라고도 부른다.
바로 그 흑철을 쌓아 만든 게 흑철성채로, 온갖 마법과 흑마법에 강력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이 흑철성채 덕분에, 상아탑 인근의 적대적 세력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물론, 마나가 풍부한 지역에서 자라난 강대한 몬스터들의 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물론 이 흑철성채를 유지하려면 매해 다량의 흑철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상아탑에서는 적대 관계인 흑철성채를 견제하기 위해, 주변 세력들이 흑철성채에 흑철과 마정석을 팔지 못하도록 원천 차단한 것.
이에 흑철성채 사람들은 상아탑이 성채를 무력화시킨 뒤에 자신들을 침공할 거라는 위기감이 생긴 것이다.
-제가 해결할 수 있어요!
메이린은 상아탑의 사정에 훤했다.
상아탑에서도 마정석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흑철이 발생하는데, 이를 모조리 폐기하거나 중립지대에 헐값에 넘겨 버리고 있었다. 적대 관계인 흑철성채에 넘어가서는 안 되니 그렇게 해온 것이다.
그래서 메이린은 흑철성채에서 확보하는 마정석 광산의 마정석 40%를 상아탑에 고정적으로 납품하는 대신, 상아탑에서 폐기하거나 중립지대로 넘길 흑철을 전부 받아내는 계약을 준비했다.
당연히 내부에서 반발이 있었다.
-상아탑 마법사 쓰레기들과 손을 잡을 일은 없네!
-우리의 경제권을 상아탑에 종속시키란 뜻이지 않나! 차라리 전쟁을 감수하겠네!
메이린은 그런 이들이 답답했다.
‘애초에 상아탑은 너희를 큰 적수로 보고 있지 않다니까!’
현재 상아탑은 키젠을 라이벌로 여기고, 중립지대를 꼬드겨 제3세력이 될 준비를 하고 있는 대세력이다. 흑철성채는 마법으로 부술 수 없는 요새에 틀어박혀 귀찮게 하는 존재일 뿐이다.
상아탑에 원하는 건 흑철성채가 자신의 세력에 종속되거나, 혹은 조금 더 온건해지는 것.
메이린은 끈질기게 물밑 작업을 하면서 전쟁을 막기 위한 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타이밍도 나쁘지 않았다. 자세히 알아보니 마침 상아탑은 대형 프로젝트를 동시에 벌이는 바람에 다량의 마정석이 급히 필요해진 상황.
메이린은 준비한 계약 내용을 상아탑 측 인맥으로 슬쩍 찔러보았다.
-상아탑은 마정석 독점권과 흑철을 교환하는 계약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상아탑이 상당히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
흑철성채 측은 어리둥절했다.
-지, 진짜로?
마정석과 관련된 문제면 극도로 감정적으로 굴던 그 고개 뻣뻣한 상아탑이, 마정석을 주겠다고 하니 먼저 손을 잡자며 나선 것이다.
그 뒤로 메이린의 계약은 순풍을 만난 배처럼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급기야 4년 장기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심지어 양측 갈등 때문에 손대지 못했던 마정석 광산의 발굴 작업도 재개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나는 천재야! 천재!”
준공식이 끝난 뒤, 메이린이 폴짝 폴짝 뛰어다니며 복도를 걷고 있었다.
‘흑철성주한테 정체를 들키지도 않았고! 최고 적대 세력이 중립으로 돌아왔으니 이 정도면 조직 내 거대한 변화 맞지?’
이제 키젠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이 숨 막히는 성채에서 하루라도 빨리 빠져나가고 싶었고, 시몬과 동기들의 얼굴이 너무나 그리웠다.
그녀가 사뿐한 걸음으로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데.
“어머, 안녕하세요.”
메이린이 뒤를 돌아보았다. 상아탑의 정복을 입은 여성이 부드럽게 인사했다.
“흑철성채의 귀족분 맞죠?”
촐랑대던 메이린이 급히 자세를 바꾸더니, 이내 가슴에 손을 얹고 느끼한 남자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뵙겠습니다 레이디. 에라스 발모어입니다.”
“소르빌이라고 해요.”
그녀도 가볍게 인사한 뒤, 우아하게 손등을 내밀며 촉촉한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제가 몇 달 전에 상아탑 마법연구부에 취업했거든요. 길을 잃어서 그런데, 연회장으로 안내해 주시겠어요?”
‘뭐라는 거야.’
메이린은 찜찜한 기분을 느꼈다. 아무리 상아탑의 신입이라 해도 외부인인 자신한테 길을 안내해 달라니.
남장을 한 메이린은 뭔가 속셈이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지금까지 성채의 귀족영애들에게 고백받은 것만 해도 무려 48차례였다.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에스코트해 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성주께서 부르셔서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칼같이 철벽을 친 메이린이 성큼성큼 소르빌을 지나쳐 걸어가는 그때.
덥석!
소르빌이 대뜸 뒤돌아 걸어가던 메이린의 허리를 꽈악 끌어안았다. 너무 놀란 메이린이 ‘꺅!’ 하고 비명을 질렀다가, 다급히 제 입을 틀어막았다.
“어머나?”
소르빌이 미소를 지었다.
“신사분께서 그런 하이톤의 비명을 내지르다니, 이상하네요.”
메이린은 불안함에 심장이 쾅쾅 뛰는 걸 느꼈다. 뒤늦게 남자처럼 ‘어억-’ 하고 비명을 질러보았지만 오히려 더 어색해졌다.
“몸도.”
소르빌이 메이린의 허벅지를 가볍게 쓸었다.
“근육이라곤 없이 말랑하네요.”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메이린이 그녀의 손길을 강하게 뿌리쳤다.
“레이디께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제 명예를 짓밟으시려는……!”
쿡쿡쿡.
조용히 입을 가리고 있는 소르빌의 모습을 본 순간, 메이린의 머리가 파바박 하고 돌아갔다.
저 웃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았다.
‘설마!’
“남장한 모습도 너무 귀엽네, 메이린!”
샤아아아-
깃털이 휘날리는 효과와 함께, 소르빌의 얼굴의 절반이 익숙한 여성의 모습으로 변했다.
“수백 년간 이어진 갈등을, 정말 네 힘만으로 다 해결한 줄 알았어?”
메이린의 얼굴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서, 서서, 설마 너어……!”
세르네 아인다르크.
그녀의 취업평가 취업처가 바로 상아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