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131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14화(1314/1318)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14화
행복에 심취한 아록의 중심부를 넘어, 마침내 시몬 일행은 아스페리아가 머무는 영원의 궁전에 당도했다.
궁전이라고 하지만, 주거라는 개념이 없는 아록답게 벽이 없었다. 순백의 바닥과 기둥으로 구성된 공간. 마치 뼈대만 남겨진 구조물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기둥 너머의 화단에서는 향기로운 꽃 내음이 풍기고, 넝쿨과 나무들이 조화롭게 꾸며져 있었다. 벽 대신 바람에 하늘하늘 흩날리는 프릴들이 커튼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궁전 주변에는 유독 연못이 많았는데, 자세히 보니 그 연못들은 자연 형성된 노천온천이었다. 투명하게 빛나는 물 위로 수증기가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모습이 마치 사람들의 영혼을 정화하는 듯한 신성한 느낌을 자아냈다.
현실을 잊게 만들 만큼 아름다운 풍경, 구경할 눈이 열 개라도 모자랐다.
“여기서 평생 살면 얼마나 좋을까…….”
등 뒤에서 하미엘의 푹 빠진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몬은 묵묵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야 며칠 몇 주 정도는 이곳에 머무르면 행복하겠지만, 평생 사는 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이 아스페리아의 궁전은 아록의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순백의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 올라갈수록 고도가 높아져 갔고 궁전의 화려함도 그에 비례해 더욱 눈부시게 변했다.
위쪽에는 아름다운 조각상들, 값비싼 성물들, 희귀한 제물들이 섬세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그보다 아록은 분명 집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했는데.’
시몬이 평지에 사는 아록인들이 볼 수 없는 높은 위치까지 올라오니, 어느새 궁전에 지붕이 들어서 있었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단단한 벽이 세워져 있었다.
그 내부로 들어오니 성녀의 집행자들이 창을 든 채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들 모두가 빛으로 몸을 감싼 채 경계를 서고 있었다. 조금 더 자세히 보니 머리 위에 소형 ‘극진’을 띄워두고, 그 극진에서 흘러나오는 빛으로 의복을 이루는 것 같았다.
시몬이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자신들을 인솔하고 있는 성녀의 집행자에게 말을 걸었다.
“아록에선 의복은 수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의복이 아니다.]그렇게 답하는 성녀의 집행자의 목소리에 내심 불편한 기색이 섞여 있었다.
[집행자들은 단지 백마법을 전개하고 있을 뿐이다. 위대한 아스페리아 성녀님과 아록에 봉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자들이, 자신의 헌신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지.]“헌신의 표현이군요.”
그렇게 말한 시몬이 힐긋 그의 머리 위에 둥둥 떠 있는 극진을 살폈다.
“저희도 그거, 사용해도 문제없겠죠?”
성녀의 집행자가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 쳤다.
[아무나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너희 수련자들이 수련하는 보통의 극진보다 훨씬 고차원적인…….]촤랑!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몬은 머리 위에 작은 극진을 펼쳤다. 성녀의 집행자가 움찔하며 말을 멈췄다.
‘극진의 응용형.’
시몬에게 극진을 처음으로 알려준 아리우스가 말하길, 극진은 공격용을 비롯해 온갖 방식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시몬의 사고가 빠르게 가속하며 극진에 새로운 효과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율혼, 연겁, 무설.’
샤아아아아아-
마법진이 빠르게 확장되었고 빛이 내려와 그의 몸을 가볍게 감쌌다. 깨끗한 마음과 신성, 그리고 극도의 집중력을 가진 자만이 전개할 수 있는 극진기.
<극진 – 영(領)>
“이러면 됐죠?”
지켜보던 성녀의 집행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처음에 시몬과 말을 나누던 집행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모제가 그 광경을 보며 눈을 빛냈다. 그리고 자신도 똑같이 머리 위에 극진을 전개했다. 성녀의 집행자들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촤아아아아아아!
그의 몸에도 빛이 내려와 몸을 감쌌다. 모제는 룬 리그니 학생이니 하는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은, 신성연방 전역에서 손꼽히는 축복학의 천재였다.
“아니, 잠깐만요……! 왜 다들 자기들끼리만 슬쩍 뭔가를 입는 건데요!”
뒤에서 목소리만 들리는 하미엘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벗을 거면 다 같이 벗든가요! 이러면 나만 노출증 환자가 된 기분이잖아요!”
“옷 아니라니까.”
모제가 태연히 어깨를 으쓱했다.
“단지 축복을 전개하고 있을 뿐이야. 부러우면 하멜 자매도 하든가.”
“크으윽!”
하미엘이 씩씩거리며 자신도 극진을 펼치려고 시도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며칠간 수련자 생활을 하며 아리우스에게 직접 극진을 전수받은 시몬이나, 축복 전공자인 모제와는 달리 그녀는 아직 극진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아으…….”
목소리를 들으니 실패한 모양.
모제가 낄낄 웃었다. 그가 장난을 치려는지 멋모르고 뒤를 돌아보았다가 바로 하미엘의 손바닥에 얼굴을 얻어맞았다.
“그럼 이렇게라도……!”
하미엘은 정령들을 불러와 빛을 내서 자신의 몸을 가리게 했다. 다른 성녀의 집행자들도 의복은 아니었기에 굳이 자제하진 않았다.
[궁에서는 조용히.]목소리에서 못마땅함이 가득 배어 나온 성녀의 집행자가 앞을 가리켰다.
[서둘러라. 성녀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 *
아록에서 가장 높은 곳.
아록의 모든 것을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 한 사람이 있었다.
“…….”
바로 아록의 지배자, 영원의 성녀 아스페리아.
이 아록의 가장 높은 곳에는 왕좌 대신 온천탕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바로 그곳에, 그녀는 등을 돌린 채 몸을 물에 담그고 있었다.
짙은 블랙베리색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바닥에 길게 늘어졌다. 그 위로 뽀얀 등과 둥근 어깨가 드러났다. 깜짝 놀랄 만큼 긴 팔을 뻗어 향료를 몸에 바르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 쟁반에는 과일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남녀 할 것 없이 모두를 빠뜨리는 그 아름다운 뒷모습에 시몬 일행은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처억!
척!
모든 성녀의 집행자들이 일제히 도열하며 창대로 바닥을 쳤다. 이내 시몬의 시선을 받은 모제가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앞으로 나오더니, 두 손을 모으며 예를 갖추었다.
“그라툴라 미 키빌리스. 여신의 가장 가까운 딸을 뵙습니다. 저희는 성물의 운반자들입니다.”
잠깐의 정적.
모두가 자세를 낮추고 성녀의 말을 기다렸다.
하미엘은 민망함에 몸을 가리듯 납작 엎드려 있었고, 시몬은 자세는 낮추었지만 눈 만큼은 그녀를 향해 강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너무 멀어.’
성녀의 정수를 손에 넣기 위해서라도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참방.
아스페리아는 바로 응답하지 않았다. 여전히 등을 돌린 채로, 기다란 오른팔을 쭉 뻗어 쟁반 위에 놓인 탐스러운 포도를 집어 올렸다.
녹색과 보라색의 탐스러운 포도알들이 찰랑거렸다.
이내 그녀가 포도 줄기를 잡은 손을 천천히 머리 위에서 아래로 내렸다. 이때 시몬이 보는 시야에서는, 포도가 그녀의 뒷머리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스윽-
그녀가 팔을 다시 머리 위로 들어 올리자, 포도알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포도 줄기만 앙상하게 남아 흔들렸다.
그녀는 그 포도 줄기를 쟁반에 내려놓았다. 이내 시중을 드는 성녀의 집행자가 손수건을 건넸고, 그녀는 그것을 받아 입가를 닦는 것처럼 보였다.
마침내.
“어서 오세요, 여러분”
영원의 성녀, 아스페리아가 입을 열었다.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았어요.”
신성연방의 베테랑이자 강경파 성녀.
그 유명한 심판의 성녀 ‘다나’와 비견되는 인물 중 하나.
좌중을 내리누르는 압도감이 있을 줄 알았지만, 그 음성은 너무나 맑고 청량했다.
“성물을 진상하겠다고요?”
“그렇습니다.”
모제가 신성 아공간을 열고, 성녀의 집행자에게 보였던 성물인 ‘엘사이르의 영종’을 꺼내 보였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게 느껴졌다.
“이 성물에 대해 설명드리자면 바울 지방에서…….”
모제가 성물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는 사이, 시몬은 여전히 성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이상해. 조금 더 가까이 가서 확인해 보고 싶은데.’
성녀의 정수는 기본적으로 상대와 접촉했을 때 반응이 일어나는 편이다.
모제가 성물을 작동시키고 금속을 흔들어 아름다운 소리를 냈을 때도, 아스페리아가 선물을 받아 만족스러운 듯한 대답을 했을 때도, 시몬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교황 성하께 감사 인사를 전해주시길. 성물은 두고 물러나도록 하세요.”
그때 시몬이 발끝으로 모제의 발뒤꿈치를 살짝 건드렸다. 모제는 일순 멈칫했지만, 이내 시몬의 의도를 파악한 듯 씩 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더없이 송구스럽습니다만 성녀님.”
“?”
“운반자가 직접 성녀님의 ‘손’에 전해 드려야 하는 게 절차라서요.”
모제의 눈빛이 일렁였다.
“제 부하를 보내 그리해도 되겠습니까.”
“…….”
시몬 일행을 데리고 온 성녀의 집행자가 얼굴을 찡그렸다.
[네놈들 무슨 속셈인…….]“그렇게 하세요.”
뜻밖에도 성녀가 흔쾌히 동의했다. 성녀의 집행자도 즉시 말을 멈추고 성녀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내 모제가 시몬을 돌아보며 고갯짓했고, 시몬도 잘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벅 저벅.
시몬이 걸어가 모제가 내려놓은 성물을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생각보다 무거워서 팔이 파르르 떨렸다.
‘절대 떨어뜨려선 안 돼.’
시몬이 신성을 팔에 집중하고 있는데, 마침 모제의 오른손이 등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완력이 강해지는 축복이 걸렸는지, 갑자기 그 무거운 성물이 종잇장을 든 것처럼 가벼워졌다.
시몬은 감사의 의미로 눈짓한 뒤 천천히 성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시몬이 아록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아스페리아의 욕탕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기다리고 있다.
시몬의 손에 들린 성물이 흔들리며 ‘잘랑 잘랑’하는 금속 소리를 냈다.
‘영원의 성녀 아스페리아.’
그녀와의 거리가 점점 좁혀졌다. 그녀는 여전히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일행들이 온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얼굴을 보이지 않고, 그대로 욕탕에 들어가 있을 따름이었다.
‘큭!’
시몬의 정신이 일순 혼미해졌다. 갑자기 안도감이 훅 몰려오며 그대로 나른해져서 성물을 손에서 놓칠 뻔했다.
성물을 떨어뜨려 파손시키면 모든 게 허사다.
‘집중!’
시몬이 정신을 바짝 차리며 계단을 한 발 더 올랐다.
이번에는 온갖 쾌락이 온몸에 차올랐다.
‘아스페리아……!’
시몬이 이를 악물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나를 시험하고 있나.’
그녀가 가진 성녀로서의 권능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한 계단씩 오를 때마다 온갖 감정들이 엄습했다.
행복.
안도.
평안.
쾌락.
환희.
고통이나 분노, 슬픔 같은 극단적인 감정들은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자신했지만 이런 감정들은 저항하기 힘들었다.
그나마.
‘판타서스류 슬립을 익혀서 다행이야.’
아스페리아가 사용하는 것과 어쩌면 결이 비슷한 힘. 상대를 안락감에 빠뜨려 잠들게 하는 판타서스류 슬립 저주를 훈련해 둔 덕분에 버티기 수월했다.
마침내 시몬이 아스페리아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그녀에게서 풍기는 향기 같은 것이 훅 다가오며 더더욱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지만 가까스로 이겨냈다.
“후욱. 하아.”
마침내 그녀의 등이 바로 앞에 보인다. 시몬이 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성물을 내려놓았다.
“그라툴라 미 키빌리스.”
그러고는 자세를 낮추고, 그녀의 어깨 옆으로 손바닥을 펼쳐 내밀었다.
고위 프리스트 관계자의 의례인 손등 키스.
이건 성녀에 대한 예의를 차리는 것이니 수상하게 볼 행동은 아니다.
참방.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천천히 탕에서 손을 빼내어 시몬의 손바닥에 등을 보이게끔 올려주었다.
“!”
전율하게 된다.
그녀의 육체는 일종의 ‘감정’이고, 마치 거대한 감정을 형체화한 것과도 같았다. 마치 행복의 응축체 같다.
시몬은 온몸이 떨렸지만 정신을 집중했다.
‘버틴다!’
그의 눈이 충혈되었다. 천천히 그녀의 손을 끌어당겨 자신의 입 앞으로 가져다 댄다.
그리고.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
순간 시몬은 싸늘한 감각에 전신의 떨림이 멎어 드는 걸 느꼈다.
정신을 어지럽혔던 환희도, 쾌락도, 행복감도 모두 옅어지고, 하나의 ‘진실’만이 척추를 타고 뇌를 관통했다. 피가 차가워지고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제 절차는 다 끝났나요, 운반자님?”
아스페리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신.”
시몬이 낮게 깔린 음성으로 그녀의 뒷덜미를 향해 말했다.
“누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