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1366)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66화(1366/1387)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66화
구 다르블렝 시가지.
“…….”
기계 성녀 강림의 흔적을 보여주듯, 시가지는 온통 초토화되어 있었다. 빌딩이 무너지고, 온갖 건물 잔해와 파편들이 거리 곳곳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렇게 폐허가 된 도시 한가운데 유일하게 우뚝 솟은 빌딩 타워의 꼭대기. 그곳에는 머리와 몸에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인, 작은 체구의 여성이 서 있었다.
스르륵.
로브 소매 아래에서 매끄러운 사슬 끌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시계 하나가 내려왔다. 그것이 좌우로 흔들리고, 여섯 개의 시곗바늘이 뱅글뱅글 돌아갔다.
“으흠- 흠- 으으음-”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그녀는 시곗바늘들이 가리키는 수치를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정말 놀랍네. 이 정도로 순도 높은 파장을 채취하다니.”
그녀가 고개를 돌려 허공을 바라보았다.
“비결이라도 알려줘. 카이.”
그러자 분명히 아무도 없던 허공에, 아무런 기척도 없이 한 남자가 나타났다.
흑색 로브를 몸에 두르고, 후드 너머로 날카로운 콧대와 턱선이 드러났다.
“나는 관여하지 않았다.”
낮고 위엄 있는 목소리.
그 음성에는 다소 고풍스러운 느낌이 묻어나고 있었다.
“모든 것은 라이카 로버트의 광적인 욕망으로 비롯됐다.”
“그래?”
여성은 시계에 추가된 수치를 확인하며 오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타락의 구원자. 대륙의 바다를 혼란에 빠뜨리고, 다른 세계의 신적 존재를 끌어들인 장본인이자, 시몬과 레테가 쫓고 있는 바로 그 인물이었다.
“어중간하게 구원자를 달고 있는 녀석들보다 낫네. 걔들은 온갖 애를 써도 혼란은커녕 진압만 당하고, 사람들의 단결만 강화시킬 뿐이잖아.”
“그런 작은 혼란들도 필요한 법.”
카이가 말했다.
“원래 이번 일도 하늘섬의 간섭으로 저지됐어야 했다.”
“아, 그러네! 하늘섬은 지금 닥친 일로 정신없을 테니까. 굳이 준비가 덜 된 산의 몬스터들을 내려보내라고 한 것도 이걸 위해서였구나.”
“계획대로 우리는 대륙을 착실히 깎아나가며 자원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그가 고개를 들며 말을 이었다.
“‘저항’이 나타나고 있다.”
신체도 감기나 병에 걸리면 면역 체계가 생기듯, 대륙에서도 크고 작은 혼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젊은 영웅들이 예상보다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카이는 그것을 경계했다.
“새싹은 미리 밟아둘 필요가 있다.”
타락의 구원자가 훗 하고 웃으며 말을 받았다.
“안 그래도 이번엔 코르비니스가 갔어.”
“그라면 기대해 봐야겠군.”
카이는 자신도 소매에서 사슬 달린 시계를 늘어뜨려 바라보았다.
“이번 일로 모든 것이 크게 앞당겨졌다, 이제 바로 앞이다.”
* * *
시몬은 아록에서 영원의 성녀 아스페리아를 만났고, 다르블렝에서 천풍의 성녀 이렌을 만났다.
그 두 성녀의 정수의 잔재를 모두 손에 넣은 것으로, 현재 시몬이 보유한 왕좌는 총 6개.
이제 마지막 단 하나만 남았다.
시몬과 레테는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신성연방의 한 장소에 도착했다.
“여기는…… 어디지?”
평범한 시골길 같은 곳이었다.
잔비가 막 내리다 그친 건지 흙바닥에서 흙냄새가 물씬 올라왔다. 가끔 사람들이 짐마차를 타고 지나갔는데, 달그락거리는 마차 바퀴 소리가 귓가에 기분 좋게 울려 퍼졌다.
“어머나, 먼 길 고생 많았어요.”
등 뒤에서 들린 사근거리는 음성에 시몬의 고개가 돌아갔다.
눈에 띄게 큰 키와 길쭉한 팔다리, 물결처럼 찰랑이는 바다색 머리카락. 무엇보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여성의 모습.
시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인물이었다.
“이스라필 이모!”
에프넬 온건파의 거두, 신해의 성녀 이스라필 크로스였다.
시몬이 반가움에 그녀에게 달려갔다.
“보고 싶었어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시몬이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올려다보며 인사했다. 평소라면 두 팔을 활짝 벌려 반갑게 안아주던 그녀였지만, 오늘은 어딘가 어색했다. 살짝 시선을 내리깐 채 오호호 웃으며 쭈뼛거리는 모습이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그럼요! 우리 조카. 고생 많았어요. 저도 보고 싶었답니다. 호호!”
“……이스라필 님?”
팔짱을 낀 채 뚜벅뚜벅 걸어온 레테가 수상하단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오늘 유독 의상에 힘 많이 주셨슴다?”
“오호호호! 그게 무슨 말인가요, 레테. 저는 평소와 같답니다?”
“…….”
레테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풀지 않은 채 뒤에 있는 하미엘을 바라보았고, 하미엘은 얼른 고개를 저으며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여긴 어디예요?”
오랜만에 이모를 만나 신이 난 시몬이 반짝이는 눈으로 물었다.
평소 같았다면 시몬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을 이스라필이 새침하게 헛기침을 한 차례 하고는 답했다.
“우리 조카는 처음 와보겠네요. 여기가 바로 제 본가예요. 크로스 가문의 미엘로네 영지랍니다.”
시몬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엄마가 살았던 곳! 여기가 내 외가구나.’
* * *
리처드와 결혼하기 전, 안나 폴렌티아의 이름은 ‘안나 크로스’였다.
크로스 가문은 신성연방에서도 특히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대가문으로, 여러 성녀들을 배출한 것으로 유명했다. 안나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안나는 ‘어떤 사건’ 이후 전쟁에서 사망했다고 알려지게 되었다. 물론 고위 프리스트들이나 일부 신성 명가는 그녀의 진실을 알고 있었고, 안나는 배신자의 낙인이 찍히게 됐다.
물론 성녀가 적의 군단장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입 밖에 낼 수 없어서 쉬쉬하고는 있지만, 안나의 이름은 엄연히 신성연방의 상류사회에서는 금기어였다.
‘……이해는 하지.’
지금이야 생각이 달라졌겠지만, 2년 전 처음으로 레테가 레스힐에 왔을 때 리처드에게 보인 적개심을 생각하면 프리스트들이 이 사태에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알 수 있었다.
어쨌거나 안나 크로스가 리처드와 결혼해 암흑연합으로 떠난 뒤, 이스라필이 그녀의 정수를 물려받아 다음 성녀가 되었고, 이스라필은 크로스 가문에 정식으로 입양되어 안나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안나 언니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거예요.”
이스라필이 시몬과 함께 나란히 걸으며 말했다.
“평생 은혜를 갚아도 모자랄 은인이랍니다. 동시에 제 스승이죠. 지금도 저는 안나 언니의 발뒤꿈치라도 따라가려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네요.”
“저도 똑같슴다! 은인 겸 스승!”
레테가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이스라필이 귀엽다는 듯 레테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가만히 쓰다듬을 받고 레테가 일순 눈을 치켜떴다.
“어, 네일 새로 하셨네요.”
그 말에 이스라필이 샥 하고 손을 숨기며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나, 오호호호! 잠깐 졸던 사이 시종이 외출한다고 손톱에 신경 써줬나 봐요. 이쪽이에요.”
여자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지만, 시몬은 주위를 살피는 데 여념이 없었다.
‘엄마는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겠지?’
신성연방에서 온 그녀가 보냈던 어린 시절을 상상하니 어쩐지 신비롭고 싱숭생숭한 기분이었다. 지나가며 보이는 낡은 그네나 돌담에도 그녀의 손길이 스며들어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이스라필을 따라 도착한 곳은 아치형 철제문이었다. 자물쇠가 걸려 있고, 부드럽게 휘어진 철제 곡선의 몸체 곳곳에 넝쿨과 꽃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마치 동화 속의 숨겨진 화원 같은 입구였다.
“외부인이 이곳에 들어오는 건 처음이네요.”
이스라필이 품에서 커다란 금빛 열쇠를 꺼내 자물쇠에 넣었다. 철커덩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동시에 결계 같은 게 사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크로스 가문의 비밀 화원에 어서 오세요.”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시몬과 레테, 하미엘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형형색색의 식물과 꽃이 심어져 있었고, 나비들이 유유히 그 위로 날아다녔다. 이 정원을 가꾸는 데 얼마나 많은 정성과 시간이 들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곳에 처음 와본 일행들은 정신없이 주위를 돌아보았다.
“진짜 숲속 왕국에 들어온 기분이에요!”
“후후, 이쪽이에요. 너무 정신 팔리진 말구요.”
사람보다 키가 큰 꽃에서부터, 연꽃이 떠다니는 맑은 연못. 곳곳에 신전의 하얀 기둥들이 세워진 장소도 보인다.
‘확실히 이런 부분은 암흑연합이 따라오기엔 아직 멀었네.’
암흑연합의 왕궁 정원도 가보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신성 농업도 그렇고, 신성연방의 신성력은 생명을 다루는 힘이라는 걸 다시금 실감했다.
무엇보다 이 화원을 보며, 어린 시절 이곳에서 춤추며 뛰어노는 안나의 어린 시절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까요. 이모.”
시몬이 눈을 깜빡이며 이스라필을 올려다보았다.
“이곳이 크로스 가문의 영지라면, 제 할머니나 할아버지도 근처에 계시겠네요?”
그 말을 들은 이스라필이 흠칫하더니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시몬을 바라보았다.
“으흠, 그렇네요. 아버님…… 그러니까 우리 조카의 할아버지 되는 분은 일찍 여신의 품으로 가셨고, 할머니는 아직 계시지만…….”
잠시 말을 멈춘 이스라필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크로스 가문의 가주이신 만큼 엄격하고 무서운 분이라서요. 제가 정원에 외부인을 들이려는 것도 반대하셨으니, 아마 만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렇군요.”
이스라필은 잠시 그 ‘할머니’를 떠올리는 듯 안색이 파랗게 질린 채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동안 상당히 많이 시달린 듯한 반응이었다.
“자, 다 왔어요.”
정원의 중심에 우뚝 솟은 신전이 보인다. 자연과 신전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풍경은 장관이었다.
“크로스 가문의 원천이 된 ‘황도(黃道)의 신전’이에요.”
이스라필이 한결 진지해진 표정으로 시몬을 돌아보며 말했다.
“조카와 저는 이미 여러 번 만났었지만, 여전히 제 정수는 조카에게 깃들지 않았죠. 성녀의 정수가 성자에게 깃드는 원리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평범한 방식으로는 어렵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이곳에 데려온 거예요.”
시몬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가볼까요?”
이스라필이 시몬과 함께 황도의 신전으로 들어갔다. 바로 여기서부터는 철저한 외부인 통제 구역. 근처에는 크로스 가문의 신도들이 주위를 엄중히 지키고 있었다. 성녀인 이스라필마저도 한 사람만 데려갈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레테와 하미엘은 근처에서 대기해야 했다.
“…….”
레테는 어딘가 불편한 표정으로 눈발 같은 하얀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감았다. 힐긋 그녀의 눈치를 본 하미엘이 조심스레 말했다.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레테 성녀님! 단순한 의식일 뿐이니까요! 그리고 마지막 단계까지 가기 전에 끝날 테니…….”
“누가 걱정했다는 검까.”
눈을 꾹 감은 레테가 시큰둥하게 중얼거렸다. 그러다 그녀가 눈을 뜨자, 어느새 이스라필을 따라갔다고 생각했던 시몬이 바로 코앞까지 성큼 다가와 있었다. 레테가 깜짝 놀라서 토끼 눈을 뜨고 있는 사이.
“다녀올게.”
시몬이 웃으며 인사했다.
그 모습을 본 레테가 놀란 듯 눈을 뜨더니, 이내 표정을 숨기듯 애써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다, 다녀오세요.”
시몬이 이내 이스라필과 함께 황도의 신전으로 향했고, 입을 가리며 감탄성을 흘리던 하미엘이 이내 후후 하고 웃었다.
‘성녀들의 관심을 받는 게 성자의 힘 때문만은 아닐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