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1393)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93화(1393/1417)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393화
아론의 한마디에 강의실 전체에 짙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다들 로레인에 대한 소문은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상태였다.
“로레인은 자퇴서를 제출하고 키젠을 떠났다.”
아론이 눈을 감은 채 말을 이었다.
“다만 학기 중이 아닌 방학 중에 벌어진 일이었고, 납득할 만한 구체적인 사유가 제시되지 않아 교수회의에서는 우선 로레인의 자퇴 처리를 보류하기로 했다.”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일의 경과가 밝혀지는 대로 다시 공지하겠다. 이상한 소문에 휘둘리지 말고 수업과 다음 주에 있을 DMAT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상.”
수업이 끝나고 아론이 조교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자마자 곳곳에서 폭발적인 웅성거림이 쏟아졌다.
교재를 챙기는 이 순간에도 시몬의 귀에 온갖 소문이 들려왔다.
-바로 총장직에 오를 예정이라 키젠을 다닐 필요가 없어진 거 아냐?
-사적인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지!
-던전에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거 아닐까? 걱정돼.
시몬은 애써 그 이야기들을 못 들은 척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 에슈. 괜찮아?”
토토가 걱정스럽게 묻자 감귤색 머리카락의 에슈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럼! 이야- 아론 교수님 덕분에 동기부여 제대로 했네! 성적은 열심히 해서 올려봐야지! 그리구 로레인 님 문제두 퇴학 처리가 안 됐다면 아직 희망이 있는 거잖아! 로레인 님은 분명 돌아오실 거야!”
그녀가 가방을 챙겨 어깨에 둘렀다.
“오후도 계속 전공수업이지? 오랜만에 다 같이 밥 먹으러 갈래?”
“좋아.”
학생들이 하나둘 강의실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시몬은 짐을 챙기고 나와 강의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피츠제럴드와 잡담을 나누었고, 토토와 에슈가 뒤이어 밖으로 나왔다.
“아! 맞다!”
그녀가 다시 강의실 쪽으로 몸을 돌렸다.
“깃펜 잉크 두고 온 거 깜빡했어! 금방 갖고 올게!”
“다녀와.”
그녀가 후다닥 자리로 돌아가는 사이, 피츠제럴드가 안경을 추켜올렸다.
“……심경이 복잡한가 보군. 가장 친한 친구가 자퇴하고, 본인의 성적 문제도 있으니. 뭔가 도울 방법이 있을지 생각해 봐야겠다.”
시몬이 의외라는 듯 눈을 깜빡였다.
‘피츠제럴드에게 저런 면도 있었나?’
시몬이 물끄러미 바라보자, 피츠제럴드는 갑자기 허리에 낀 책으로 얼굴을 슬며시 가리며 변명하듯 대꾸했다.
“……이제는 과대니까. 애들을 챙겨야지.”
시몬과 토토가 서로 마주 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늘 이상한 철학 관련 책만 읽는 그였지만, 이번 책 이름은 유독 눈에 띄었다.
<말 없이도 너를 이해할 수 있다면.>
바로 그때.
우당탕!
강의실 쪽에서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에슈의 찢어질 듯한 외침이 들렸다.
“너희 지금 말 다 했니?”
* * *
1분 전.
깃펜 잉크를 깜빡한 에슈가 빠르게 자리로 돌아왔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강의실 밖으로 나갔지만, 아직 몇몇은 자리에 남아 시시덕거리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에슈는 우울한 기분을 애써 꾹꾹 누르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흔들리지 말자, 이제 키젠의 마지막 학기잖아.’
그녀가 책상 서랍에 넣어둔 깃펜 잉크를 꺼내는 사이.
“아무리 네프티스 님의 딸이라지만 차별 대우가 너무 심한 거 아냐?”
멈칫.
그녀의 손이 움찔했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두 남학생이 책상 위에 걸터앉아 키득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만두겠답시고 자퇴서까지 제출한 학생을 왜 굳이 못 나가게 막아? 지금까지 800명을 떨어뜨린 학교가 말이야.”
“그러게나 말이다.”
말을 받은 다른 남학생이 귀를 후비적거렸다.
“이래나 저러나 교수님들도 총장 눈치 슬슬 보는 거겠지. 그게 다 특혜야. 로레인 걔, 1학기 말부터 수업도 제대로 안 나왔고, 수행평가도 못 쳤는데 나중에 시험 볼 기회까지 따로 줬다며? 우리 같은 보통 학생들이 그렇게 뻗댔다간 남아나겠냐.”
“괘씸죄로 바로 퇴학. 아니, 혈통이 미천한 죄인가?”
두 사람이 낄낄거렸다. 주위 몇몇 학생들도 동조하듯 웃었다.
“너희.”
그때 에슈가 싸늘한 눈으로 두 남학생 앞에 나타났다. 흥분해서 그만 손에서 잉크통을 놓치고 말았다.
신경 쓸 필요 없다.
상대할 필요 없다.
그렇게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되뇌고 있었지만 몸이 먼저 나가 버렸다. 두 남학생의 시선이 향하자 에슈가 말을 내뱉었다.
“지금 말 다 했니?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
“…….”
주위에 정적이 흘렀다.
남학생 중 한 명이 슬쩍 눈을 굴려 주변의 반응을 살폈다.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분위기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건 싫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다 ‘에휴’ 하고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입꼬리를 비릿하게 말아 올렸다.
“주인님 뒷담화 했다고 우리 하녀님이 열받았나 보네.”
움찔.
에슈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에슈 너, 어릴 때 돈 없어서 로레인 집에서 일했다며? 학교에서도 맨날 ‘로레인 님, 로레인 님’ 하면서 졸졸 따라다니는 거, 솔직히 별로 보기 안 좋았어.”
“너……!”
“어릴 때 섬기던 동갑내기 주인님을, 10년 뒤 학교에서 친구로 다시 만난 거잖아. 나라면 쪽팔려서 전과를 하든, 피해 다니든 했겠다. 자존심도 없냐?”
옆에 있던 친구가 킥킥거리며 웃는 소리에 에슈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남학생이 피곤한 표정으로 손목을 휘저었다.
“그러게 왜 말빨도 능력도 안 되면서 남의 말에 껴들었다가 수모를 당해? 이만 밥이나 먹으러 가셔.”
끄그극.
그녀가 이를 한 차례 갈았다.
반박하고 싶은 말이 수백 가지나 있었다. 정론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가능하고, 비꼬아 응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혀가 돌이 된 것처럼 입 밖으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상처 입었으니까.
마음이 칼에 찔려 피가 줄줄 흘러나오는 출혈이 생겼으니까.
말이 나오지 않았기에 주먹에 힘이 잔뜩 들어갔지만 필사적으로 참았다.
참아야 한다.
이딴 녀석들 신경 쓸 필요도 없다.
내 입만 아프다.
에슈는 필사적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등을 돌렸다. 말이 나오지 않는 이상, 여기서 더 감정이 거세지면 정말로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결심하고 뒤돌아선 그녀의 등을 패자의 나약한 뒷모습이라고 생각한 걸까, 남학생이 한마디 툭 덧붙였다.
“어차피 200위면서, 사실 마음속으로는 한 명 줄어들었다고 안도하고 있는 거 아냐?”
……뚝 하고.
마음속의 무언가가 끊어졌다.
에슈가 서슬 퍼런 눈으로 뒤돌아보며 가방에 달고 있던 저주 인형을 거칠게 손으로 잡아당겨 뜯었다.
‘죽여 버릴 거야!’
그녀가 진심으로 살의를 담아 저주 인형에 칠흑을 실었다. 그리고 낄낄대는 두 남학생에게 저주를 가하려는 그때.
푸욱! 푹!
갑자기 그 두 남학생의 목덜미에 깃털이 날아와 꽂혔다. 낄낄거리던 두 사람의 눈에 초점이 희미해졌다.
“아.”
부스스-
수업이 끝날 무렵부터 엎드려 자고 있던 상앗빛 머리카락의 여학생이 헝클어진 머리를 흩뜨리며 고개를 들었다.
세르네 아인다르크.
주위 학생들에게는 마치 그 모습이 잠에서 깨어나는 사자처럼 보였다.
“원숭이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잘 수가 없네.”
끼긱!
끼기기긱!
목덜미에 깃털이 꽂힌 두 남학생이 바닥에 쪼그려 앉아 ‘우끼기’ 소리를 내며 목과 턱을 긁기 시작했다.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우스꽝스럽게 몸을 흔드는 두 사람의 눈에는 공포심이 서려 있었다.
세르네가 자리에서 일어나 또각또각 걸어왔다.
“어떤 벌을 내려볼까요?”
이제 강의실에 남아 있던 모두가 깨달았다.
로레인이 없다는 건 즉, 세르네의 세상이 왔다는 뜻이라는 걸.
“이대로 금지된 숲에 보내서 짐승들이랑 평생 살게 해볼까요?”
“세르네.”
이때 시몬이 나타났다.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린 시몬이 고개를 저었다.
“교내에서 정신지배를 함부로 쓰는 건 용납할 수 없어.”
그의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온화했다. 그제야 세르네가 싱긋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고, 원숭이 흉내를 내는 그들도 정신을 차리고 행동을 멈출 수 있었다.
남학생들은 숨을 헐떡이며 땀범벅이 된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얘들아.”
시몬이 다가와 그들 앞에 쪼그려 앉았다. 서늘한 시선이 두 학생을 꿰뚫었다.
“그런 역겨운 생각은 너희 머릿속에서만 해. 강의실에서는 자제하고.”
둘에게만 간신히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
하지만 제대로 전달이 된 걸까. 두 남학생이 미친 듯이 고개를 휙휙 끄덕였다.
‘하아.’
시몬은 피곤한 표정으로 뒷목을 주물렀다. 이런 열불이 터지는 때 모두를 지켜야 하는 학생회장이라는 직위를 가진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에슈…….”
시몬이 그녀를 부르려 했지만 에슈는 이미 도망치듯 사라진 뒤였다.
* * *
에슈를 다시 만난 건 식사 시간이 지나고 오후 수업을 앞둔 시점이었다.
그녀는 마치 이전의 사건이 없었던 사람처럼 행동했다. 여전히 밝고 활발했으며 툭툭 농담도 던졌다.
걱정이 된 시몬이 그녀에게 넌지시 괜찮냐고 물어보니, 그녀는 웃으며 답했다.
-난 괜찮아 조장! 에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나 원래 안 좋은 일은 빨리빨리 잊어버리는 타입이거든. 걔들도 아까 나한테 진심으로 사과하러 왔구. 그래도 신경 써줘서 고마워!
시몬은 마음이 걸렸지만, 뭔가 생각할 틈도 없이 이다음의 현실이 훅 하고 닥쳐왔다.
앞으로 일주일 뒤에 벌어질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대체하는 2차 DMAT.
아론은 수업 시간 내내 브린어를 비롯한 소환학 공식의 응용법을 가르쳤고, 학생들은 입에 단내가 나도록 따라가기 바빴다. 수업이 다 끝난 뒤에도 시험공부에 매진하느라 서로 말을 붙일 틈이 없었다.
모든 키젠 학생에게 이 시험은 대단히 중요했다. 지금까지 아무리 성적이 좋다고 하더라도 DMAT에서 ‘과락’이 나오면 학생회장이든 Top10이든 무조건 퇴학이었으니까.
1분 1초가 숨 가쁘게 지나갔고, 공부 외의 잡념들은 자연스레 밀려났다. 에슈 본인도 시험공부를 하느라 모든 일을 까맣게 잊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러다 시험을 이틀 앞둔 때에는 학생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몇 달 동안 밤을 새워도 모자랄 판에 시험을 당장 치르는 게 말이 돼? 이걸 어떻게 일주일 만에 다 외워?
-교수님들의 생각을 도저히 모르겠네.
하지만 시몬은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린어는 단순 암기하는 언어가 아니라, 원리를 파악하는 능력이 가장 크게 필요했다. 흐름과 원칙을 이해해야만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언어에 문외한인 알라제도 알아듣게 된 게 바로 브린어.
아마 2차 DMAT는, 단순 암기보다는 이런 통찰력을 평가하는 시험이 될 거라는 게 시몬을 포함한 상위권 학생들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갔다.
눈 깜짝하니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펜타모니엄으로 이동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고.
또 한 번 눈을 깜짝하니 시험장을 나서는 자신을 발견했다.
“끄, 끝났다…….”
다리에 힘이 쭉 빠진 시몬이 터덜터덜 다른 수험생들과 함께 걸어 나왔다. 멍한 표정으로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설마 20문제 전부 원리 파악형 문제일 줄이야.”
그렇게 멍하니 걸어가던 시몬이 비로소 하늘을 바라보았다. 학자의 도시 펜타모니엄의 하늘은 밝았고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그동안 하늘을 볼 여유가 없었는데, 이제야 좀 숨 돌릴 틈이 생긴 기분이었다.
“헤이, 시몬!”
그때 다른 시험장에서 딕이 손을 흔들며 뛰어들어 왔다. 시몬이 웃으며 인사했다.
“딕! 시험 잘 쳤어?”
“나야 늘 망쳤지! 하하! 그래도 암기뿐이던 1차 DMAT보다는 괜찮았어.”
딕이 인중을 쓱쓱 훑더니 이내 시몬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러고는 은밀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보다 1급 정보가 있는데 들어볼래?”
“뭔데?”
딕이 슥슥 주위에 누가 듣는지 확인한 뒤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곧 있을 3학년 전체 ‘단체 합숙’ 장소에 대해서야.”
* * *
로크섬.
키젠 교수 회의실.
“역시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일곱 명의 교수들이 회의실에 모여 있는 가운데, 사령학 교수 스테이시 세잔이 발언했다.
“다른 세계에서 제안이 온 경우도 처음이고, 어떤 위협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거기에 이 얼토당토않은 요구까지.”
“나는 괜찮아 보이는데?”
별야가 이를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위험 요소는 이미 그곳에 들어갔던 녀석들이 다 파악했잖아. 뭣보다 이 정보가 전부 사실이라면, 우리 애들이 훈련하기엔 이만한 장소가 없어. 앞으로의 차원전에 대한 적응도 미리미리 시켜놔야지!”
“…….”
제인은 눈꺼풀을 내리깐 채 긴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입을 열었다.
“……네프티스 님이 계시지 않으니, 결국 결정은 저희가 내려야겠군요. 이곳으로 가는 것에 대해 찬성하시는 분.”
별야, 아론, 그리고 눈치를 보던 아보가 손을 들었다.
“반대하시는 분.”
제인 자신과 홍펭, 스테이시가 손을 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자연히 한쪽으로 향했다.
“……부디 찬반 의사를 밝혀주시겠습니까? 바힐 교수님.”
바힐이 빙글빙글 웃으며 자리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하여간 주목받기 좋아하는 분이네요’ 하고 홍펭이 한숨을 쉬었다.
“우리 교수진과 학생들이-”
바힐이 입을 열었다.
“그곳까지 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아보 교수님.”
졸지에 지목당한 아보가 흠칫하며 자신을 가리켰다.
“저, 저요?”
“예. 아보 교수님의 의견은 아직 못 들었군요.”
“그, 그야…….”
아보가 눈을 데구르르 굴리다가 이내 조심히 말했다.
“우,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나요?”
하하하하!
바힐이 입까지 벌린 채 쾌활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가는 걸로 하시죠.”
테이블에 적힌 글귀에는 어설픈 대륙어로 한마디가 적혀 있었다.
<저희에게 죽음을 내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