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1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화
다음 날 아침, 키젠에서 보내는 시몬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됐다.
오늘은 세 개의 수업이 예정되어 있었다.
첫 번째 수업인 칠흑역학을 담당하는 교수 ‘에릭 아우라’는 중장년의 남자였다.
이상적으로 자리 잡힌 주름살과 깔끔한 턱수염, 정장이 잘 어울리는 중후한 외모와 연륜에서 느껴지는 느긋한 태도까지. 누구나 그에게 호감을 느꼈다.
“칠흑은 네크로맨서의 기본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에릭은 노련하게 학생들을 이끌었다.
알아듣기 쉬운 설명과 머릿속에 쏙쏙 박히는 풀이. 저주학의 바힐과 같은 화려한 테크닉은 없었지만, 수업 자체가 깔끔 담백했다.
어느새 A반 모두가 에릭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칠흑은 어떻게 흑마법이라는 기적을 일으키는가.
칠흑의 흐름.
룬어의 이해.
마법진의 작동원리까지.
“룬어의 근원은 델 신전의 ‘영원히 불타는 성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에릭은 단순한 이론 설명에 그치지 않았다.
“사람들은 성화의 불이 꺼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았습니다. 신의 기적을 의심하는 행위 자체를 불경하다고 여긴 겁니다.”
때로는 룬어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과거의 역사까지 가지고 왔다.
“결국 그들은 성화에서 떨어져 나온 잿더미가 마치 ‘글자’와도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습니다. 그리고 고작 글자가 불타는 성화와 같은 기적을 이루고 있다는 진실에 경악했죠. 이게 바로 룬어의 근원입니다.”
에릭은 고대의 룬어를 칠판에 그리고, 이를 연구하던 마법사와 네크로맨서들이 어떻게 룬어를 개선해 왔는지 설명했다.
그러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현대 마법진의 풀이로 넘어왔다.
왜 이 마법진은 작동하고.
왜 이 마법진은 작동하지 않는가.
에릭은 마법진을 찬찬히 뜯어서 설명해 주었다. 그동안 시몬은 별생각 없이 교정도구를 써서 마법진을 그렸지만, 이제야 작동 원리를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시몬이 정신없이 필기하며 수업을 따라잡는 사이, 어느새 수업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에릭도 수업종료를 선언했다.
“다음 시간까지 해올 과제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배운 마법진 중에서 작동하지 않는 마법진을 예시로 놓고, 작동할 때까지의 수정 방안과 계산식, 사용한 공식을 기재해서 다음 시간에 제출하길 바랍니다. 제가 호명한 세 명은 직접 앞에 나와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칠흑역학은 필수 전공수업이어서 그럴까, 다행히 이번엔 앞에 불려 나오는 일이 없었다.
시몬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와, 이 수업 너무 어려워.”
왁자지껄하게 강의실을 빠져나가는 학생들 사이로, 역력하게 지친 표정의 딕이 기지개를 켰다.
“옛날에 아빠랑 산법(算法) 공부하는 기분이야. 그냥 평소처럼 마법진을 암기해서 쓰면 안 되나? 왜 시시콜콜한 발동 원리까지 다 알아야 하는 거야?”
“난 괜찮던데.”
시몬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못 알아들은 게 반이긴 했지만 원리부터 차근차근 설명해 주시는 게 좋았어.”
“넌 키젠이라면 마냥 다 좋잖아. 목욕탕 비누도 신기해서 손톱으로 긁어봤…….”
시몬이 팔꿈치로 딕의 가슴을 툭 때렸다. 그가 ‘억!’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 쳤지만, 그런 와중에도 한 번 터진 웃음보는 멈추지 않았다.
“엌! 목욕탕에 나오는 거품 보고 겁먹어섴! 나 여기 들어가도 돼? 푸훕!”
“먼저 간다.”
시몬이 부루퉁하게 대답하며 먼저 걸어갔다. 딕이 재빨리 농담이라며 그의 뒤를 따랐다.
A반은 휴식 없이 바로 다음 수업을 준비해야 했다.
20분을 걸어서 도착한 다음 수업 장소는 키젠의 외곽지역, 아무것도 없이 휑한 벌판이었다.
“아무도 없네?”
“어, 저기……!”
A반 학생들이 잡담을 나누며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숲에서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두두두두두두두!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지면이 흔들렸다.
다가오는 그것은, 다름 아닌 수십 마리가 넘는 하마 떼였다.
학생들이 놀란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 쳤다.
“아하하! 안녕하세요, 신입생 여러분!”
그때 하마 위에 올라탄 남자가 보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두툼한 입술, 호리호리한 몸, 전체적으로 팔다리가 짧은 복장에 발도 맨발이었다. 그는 능숙하게 하마 떼를 학생들 앞에서 멈추게 하고는 뛰어내렸다.
“홍펭 교수님께서 오늘 수업 장소는 로크산으로 결정하셨습니다! 자, 다들 하마에 타시죠!”
마투학 교수 ‘홍펭 툰 소쿰 마르라트’는 키젠에서 알아주는 별종이었다.
키젠에서 그녀의 연구실과 자택을 마련해 줬지만, 그녀는 로크섬 곳곳을 떠돌아다니고 야영하면서 지냈다. 그런 그녀의 성향 때문에 마투학 수업도 대부분은 야외수업이었다.
“……지금 우리더러 저거에 타라고?”
코를 벌름거리며 서 있는 하마들을 보며 한 남학생이 질색한 표정을 지었다.
“야, 하수인! 저 짐승 위에 깔개라도 깔아놔야 하는 거 아냐?”
그 말을 들은 남자가 빙그레 웃으며 학생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아, 아아아아악!”
한 손으로 학생의 얼굴을 움켜쥔 채로 들어 올렸다. 곳곳에서 놀란 음성이 튀어나왔다.
“무, 무슨 짓이야?”
“감히 키젠 학생한테!”
순진무구하게 웃는 남자의 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항의하러 오던 학생들은 주춤하며 걸음을 멈췄다.
“요즘 신입생들은 왜 이렇게 개념이 없지? 하수인이 아니라 조교 선생님이라고 해야지?”
그제야 상황파악을 마친 남학생이 다급히 소리쳤다.
“아악! 죄, 죄송합니다, 선배님!”
조교라면 높은 확률로 키젠에 다녔었던 선배였다.
게다가 교수 곁에서 수발을 드는 최측근인 만큼, 신입생이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선배가 아니라 조교 선생님.”
“죄송합니다, 조교 선생님!”
한바탕 벌어진 난리를 보며, 시몬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체 왜들 저러는 거야?”
“귀족들이잖아.”
딕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받았다.
“온실의 화초처럼 오냐오냐 커오다 보니 자기 하인들 다루듯 하는 버릇이 남아 있는 거야. 학기 초까지는 이런 일이 빈번할걸.”
너무나 납득 가는 설명에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다시 순진무구한 얼굴로 돌아온 조교가 팔을 흔들며 말했다.
“자, 시간이 조금 지체됐네요. 다들 하마에 올라타 주세요! 한 하마에 세 명까지 올라갈 수 있어요!”
학생들은 한층 빠릿빠릿해진 동작으로 하마에 올라탔다.
시몬은 능숙한 몸놀림으로 한 번에 올라탔고, 뒤이어 딕이 몇 번을 미끄러지면서 낑낑대다가 겨우 올라오는 데 성공했다.
“후우, 수업은 시작도 안 했는데 빡세다 빡세.”
딕이 소매로 땀을 훔치고 있는 모습 뒤로.
한 여학생이 쩔쩔매며 제자리에서 깡충거리는 모습이 시몬의 시야에 들어왔다.
“다 탔죠? 그럼 이제 출발합니다!”
조교의 말에 여학생은 다급해진 표정이 되었다. 시몬은 기꺼이 그녀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도와줄까?”
“아……! 고마워요.”
그녀는 마치 구세주라도 본 듯한 얼굴로 다가와 시몬의 손을 잡았다.
시몬이 힘주어 잡아당기자 그녀의 몸이 종이 인형처럼 확 끌려와 단번에 하마의 등으로 올라왔다.
“자, 출발합니다!”
여학생이 올라오기 무섭게 조교가 하마의 엉덩이를 박찼다. 선두의 하마가 함성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고 나머지 하마들도 일제히 선두 하마를 따라 내달렸다.
아슬아슬하게 올라탄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시몬을 돌아보았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저는……!”
그녀가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갑자기 하마들의 달리는 속도가 빨라지는 바람에 대화가 끊겼다. 다른 학생들도 겁이 나는지 하마의 등에 몸을 바짝 붙였다.
진동이 온몸으로 올라오는 느낌, 탑승감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한 학생이 부르짖듯 외쳤다.
“조, 조교 쌤! 떨어지겠어요! 뭘 붙잡아요?”
“아무거나요.”
“너무 빨라요!”
“근성! 근성으로 이겨내세요! 이것도 단련의 일환입니다!”
두 다리만으로 밸런스를 잡은 조교가 오른팔을 척 세우며 말했다.
“물론 이대로 떨어져서 하마 떼에 밟히면 죽겠죠? 꼭 일 년에 한두 명쯤은 사고가 난다니까요?”
“……네?”
학생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버티세요! 버텨! 고작 하마 등에 타는 것도 제대로 못 하는 학생은 키젠에 필요 없습니다!”
“으앗, 우와악!”
“엄마아아아!”
“야, 멈춰! X발 이거 멈추라고!”
“하하하하하하!”
광기의 이동 수업이었다.
* * *
드디어 수업 장소에 도착했다.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을 지나, 산 한복판에 탁 트인 들판이 펼쳐진 곳. 태양은 모두를 반겨주듯 숲의 한가운데에 떠 있고, 지저귀는 새소리와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연주회의 음악처럼 조화롭게 흘러나왔다.
더없이 아름다운 장소였다.
“헥…… 헥…… X발…….”
“으으, 허어어억…….”
물론 보는 사람이 풍경을 감상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말이다.
학생들 전원 진이 빠진 얼굴로 들판에 나뒹굴고 있었다. 하마들은 다시 산비탈 아래로 내려갔고, 조교들은 엎어진 학생들에게 물통을 내밀고 있었다.
‘이게 뭐지?’
시몬이 마셔보니 무척 오묘한 맛이었다.
달콤한데 살짝 매운 뒷맛이 나는 음료. 그런데 먹자마자 갈증이 한 번에 해소되고 피로도 풀리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도 조금씩 표정이 돌아왔다.
푸드드드득!
이번에는 하얀 새떼들이 날아와 학생들의 머리 위를 지나가기 시작했다. 모두가 눈을 깜빡이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제 주업에 온 걸 환영해요. 여러분!”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날아오르는 새떼들 너머로, 장신의 여성이 두 팔을 벌린 채 걸어오고 있었다.
건강하게 그을린 갈색 피부에 근육이 드러나는 탄탄한 몸. 머리카락은 끈 같은 것으로 몇 겹이나 꼬아놓은 특이한 스타일이었다.
학생들이 벌떡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사람이…….’
홍펭 툰 소쿰 마르라트.
네 개 영지를 초토화시킨 초대형 언데드 몬스터 ‘쿤다르 히드라’를 단신으로 상대하여, 닷새 동안 100개의 목을 꺾어버리고 극적인 승리를 거머쥔 네크로맨서계의 전설이었다.
홍펭은 그 전투 이후 키젠에 스카웃됐고 현재까지 학생들에게 마투학을 가르치고 있다.
괴짜긴 하지만 실력에 있어서만큼은 논란의 여지가 없었고, 그게 바로 그녀의 기행을 학교에서 눈감아주는 이유이기도 했다.
푸드덕!
그녀가 뻗은 손가락 위로 숲새들이 날아와 앉았다.
“그럼, 모두 일어나 주제요.”
그녀는 공용어에서 살짝 어긋난 듯한 어눌한 발음을 구사했다.
“자열 종대로 헤쳐 모이제요.”
“……?”
학생들이 알아듣지 못하고 멍하니 있자, 홍펭의 조교들이 익숙한 듯 다가와 말했다.
“4열 종대로 헤쳐 모여주십시오.”
“빨리빨리 움직입니다.”
학생들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줄을 섰다. 선두에는 홍펭이, 줄을 선 학생들의 좌우에 조교들이 위치했다.
“그럼 출발하겠어요.”
아니, 그럼 수업은 언제 하는데?
시몬이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홍펭이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선두의 학생들도 허겁지겁 그녀를 따라 달리기 시작하며 난데없는 러닝이 시작됐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진이 깃들어요! 마투학의 기본은 튼튼한 체력이 필요한 거예요!”
대륙어를 배운지 얼마 안 된 듯 어눌한 말투였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확실했다.
그녀가 속도를 점점 높이기 시작하자 선두 학생들도 힘겹게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세 번째 줄에서 달리고 있는 시몬은 그녀의 몸을 살피며 감탄했다.
‘대단해.’
저렇게 달리는 사람은 처음 본다.
달릴 때 내딛는 발의 각도, 근육의 움직임, 어깨와 상체의 흔들림까지. 소름이 돋을 정도로 군더더기가 없고 그림 같았다.
똑같은 두 팔과 두 다리를 가지고 뛰는데 왜 그녀만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외계인처럼 느껴지는 걸까? 이질감이 느껴질 만큼 이상적이었다.
“허억! 허억!”
“후우욱! 후욱!”
모두가 정신없이 달리고 있는 가운데, 홍펭은 달리는 페이스를 조금 늦추면서 수업을 진행했다.
마투학의 기본, 정신, 의의.
요약하자면 마투학은 칠흑을 둘러서 신체를 극도로 강화시키고, 그것을 이용해 싸우는 전투기술을 배우는 수업이었다.
마투학은 어느 정도 수준의 경지에 오르면, 비단 같은 칠흑이 몸에서 흘러나와 의복의 형태를 이루게 되는 ‘흑의’를 입을 수 있는데, 배틀 네크로맨서들의 상징과 같은 기술이었다.
많은 남학생들이 이 기술에 로망을 가지고 있었고, 흑의를 위해 마투 전공을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나무가 많즙니다. 조심하제요!”
러닝은 수풀과 잎이 빼곡한 나무 지형에서도 계속되었다. 4열 횡대가 무너지며 다들 나무를 피해 각자의 방식으로 홍펭을 따르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허겁지겁 수풀을 헤치며 뛰는 와중에, 아예 위로 올라가 나뭇가지를 딛고 뛰는 학생들도 몇 명 있었다.
이들 전원이 마투 지망생들. 기다렸다는 듯 장기를 발휘하고 있었다.
조교 한 명이 나무로 뛰어올라 그들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지망생들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마투 애들 부럽네. 쓰읍!”
나무줄기에 얼굴을 얻어맞은 딕이 투덜거렸다.
‘으음.’
시몬은 그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몸을 쓰는 격투 전문 흑마법이라, 제법 흥미가 동하는 것을 느꼈다.
“으헉! 허억! 야, 시몬! 넌 괜찮냐?”
딕이 시뻘게진 얼굴로 말했다. 시몬이 눈을 깜빡이다가 대답했다.
“응? 아, 난 괜찮아.”
“허억! 흐억! 넌 무슨 체력이……! 콜록콜록!”
“이 정도 러닝은 다들 하지 않나?”
레스힐의 험난한 남쪽 산맥을 동네 산책로처럼 휙휙 넘어다니는 시몬이었다.
조교들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가운데, 시몬의 표정만큼은 더없이 편안했다.
‘이 수업도 재밌어!’
간만에 몸을 쓰는 수업에 시몬이 물 만난 고기처럼 즐기고 있는 가운데, 홍펭이 눈을 빛내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