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1403)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03화(1403/1417)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03화
저주학 교수 바힐이 룰 변경을 선언했다.
“대단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실패의 소중함을 일깨워 드리기 위해서죠.”
그의 목소리가 힘 있게 울려 퍼졌다.
“실패는 축하받아야 할 일입니다. 실패를 되새기고, 고민하고, 성찰하는 과정에서 성공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여러분은 실패를 너무 가볍게 여긴 나머지, 정량적으로 찍는 과정에서 우연히 정답에 맞아떨어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는 키젠의 엘리트라고 하기에는 천박한 사고방식이죠.”
바힐이 제 이마를 손끝으로 두 차례 툭툭 두들기고는 말을 이었다.
“앞으로는 과제 도전에 실패할 시, 두 시간의 이론 수업과 미니 테스트를 수료해야만 다음 도전이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곳곳에서 학생들의 힘겨운 탄식이 흘러나왔지만, 바힐은 눈 한번 깜짝하는 기색이 없었다.
“여러분이 조금 더 실패의 무거움을 인지하고, 저주의 기본기를 다듬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용되는 저주를 지켜보니 위력과 겉모습에 얽매여 기본을 등한시하고 있더군요. 다시 마인드를 재정립하도록 하죠.”
그의 공지에, 과제 도전을 하려던 학생들이 망설이다가 물러나는 모습이 보인다. 아무래도 바힐의 말대로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본 뒤에 나서려는 것 같았다.
“그럼 그렇게 알고.”
바힐의 시선이 막 도착한 시몬에게 잠시 닿았다.
“모두가 천년향의 합숙에서 유익한 것을 얻어가길 바라겠습니다.”
* * *
“죄송해요, 시몬 학생.”
과제 시험장으로 향하는 길, 시몬을 안내해 주는 사람은 저주학과의 수석조교인 체헤클이었다.
그녀는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또 교수님의 장난에 말려든 셈이 됐네요. 되도록이면 그 인간의 헛짓거리를 막고 싶었는데…….”
“아하하, 아닙니다.”
시몬이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도전에 실패하면 수업을 듣게 하는 것 때문에 그러시죠? 저야 바힐 교수님의 수업을 좋아하니까 더 잘됐네요.”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는 사이, 두 사람은 함께 늪지대에 도착했다. 여기가 이번 저주학과 과제를 수행해야 할 장소였다.
-개글개글개글!
늪지대에는 대륙의 개구리와 흡사한 생물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성인의 무릎 정도 올 만큼 큰 몸집을 가졌으며, 피부를 뚫고 식물의 넝쿨 같은 게 자라나 있었다.
“저주학 과제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저 생물에 대해 먼저 설명하겠습니다.”
체헤클이 다시 사무적인 목소리로 돌아와 안경을 치켜올렸다.
“천년향에만 존재하는 ‘하루앓이’라는 몬스터입니다. 이들은 본래 알에서 태어나 수년 안에 성체가 되고, 성체가 되면 수명이 극단적으로 짧아집니다.”
설명을 듣던 시몬이 눈을 깜빡였다.
“성체가 된 뒤에 큰일을 치르나 보네요?”
“맞습니다. 그게 바로 산란이죠. 하루앓이는 정소와 난소를 양쪽 다 가진 생물로, 암수의 구분이 없습니다. 이들은 늪에 들어와 모든 에너지를 다해 알을 낳은 뒤 시름시름 앓다가 죽습니다.”
하지만 천년향에서 죽을 리가 없다. 시몬이 불안한 시선을 체헤클에게 보냈고, 체헤클은 말을 이었다.
“물론 이는 천년향에도 죽음이 있던 아득한 과거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죽음이 사라진 지금의 천년향에서는, 하루앓이는 알을 낳은 뒤 몸이 해체되고, 근처에서 소생하고, 알을 낳고 소생하기를 무한히 반복하죠.”
체헤클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묻어 있었다. 시몬도 표정을 굳힌 채 그 말을 곰곰이 곱씹어보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 생태계는 저 하루앓이가 전부 독차지할 것 같은데요.”
“애석하게도 천년향에서는 죽음이 없는 만큼, 더 이상 ‘새로운 생물’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알도 그저 거름이 될 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대로 행동합니다. 지난 1,000년간 죽고 사는 것을 하루에 무한히 반복할 뿐인 생물이 되었죠.”
‘……끔찍하네. 그러고 보니.’
시몬은 근래 만난 류운이 해준 말을 떠올렸다.
인간들도 새로운 사람이 태어나지 않고, 존재했던 사람들 그대로 영생을 가진 채 계속 유지된다고 말했다.
“그럼 이제, 저주학 과제 내용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시몬이 상념에 잠겨 있는 사이, 체헤클이 입을 열었다.
“알을 낳고 ‘해체’되기 직전의 하루앓이에 저주를 거십시오. 하루앓이가 해체되어 다시 ‘소생’한 뒤에도 저주의 영향이 남아 있다면 과제 성공입니다.”
‘와.’
시몬이 아찔한 표정을 지었다.
맹독학과는 50㎖의 소량 독액만으로 끊임없이 수복되는 단목마를 완전히 해체하는 시험이었는데.
저주학과는 한술 더 뜨고 있었다. 몬스터에게 저주를 걸고, 그 몬스터가 해체되고 다시 소생됐을 때 저주가 남아 있도록 해야 한다니.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건가?’
시몬이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체헤클이 말했다.
“지금까지 합격자는 0명이에요. 많은 학생들이 열정적으로 새로운 저주를 창작하여 도전했지만 4일 차인 지금까지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죠. 결국 지금은 바힐 교수님의 말씀대로, 저주를 남발해서 하나만 얻어걸리길 바라는 학생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바힐이 이런 상황에 제동을 걸었으니, 정량적으로 밀어붙이는 건 한계가 생겼으리라.
시몬은 고민에 빠졌다.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사용할 저주를 조금 더 신중히 생각해 보고 다시 올게요.”
“그럼요, 편하게 고민해 보세요.”
* * *
시몬이 하루앓이 늪에서 설명을 듣고 돌아오는데, 누군가가 그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시몬-!”
두 손을 꼭 모은 채 앙증맞은 박쥐 날개를 파닥거리며 달려오는 소녀는 다음 아닌 카미바레즈였다.
도도도 뛰어온 그녀가 시몬의 앞에서 멈춰 서며 활짝 웃어 보였다.
“이렇게 만나서 반가워요! 이전 과제를 통과하고 오신 거예요?”
“반가워 카미. 응, 맹독학을 막 끝내고 오는 길이야.”
카미바레즈도 마투학 과제 성공 이후, 저주학 과제에서 발이 묶여 있던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
곳곳에서 학생들이 마법진을 펼치거나, 풀밭 위에 누워 저주 도면을 그리는 모습이 보였다.
맹독학 과제처럼 여기도 개인 공방이 있었는데, 곳곳에서 불길한 칠흑이 풀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엄청나네.’
이 모든 게 전부 다 죽음의 저주를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었다. 류운이나 천년향 사람들이 보면 기겁하지 않을까.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마왕의 소생 의식을 연상케 했다.
“이것 보세요 시몬!”
카미바레즈가 노트를 활짝 펼쳐 보였다.
“그동안 하루앓이들에게 시험해 본 저주들이에요! 왼쪽 페이지는 제가 직접 해본 저주들이고, 오른쪽 페이지는 다른 동기들이 실패한 저주예요! 다들 정보를 공유하고 있거든요!”
“그래?”
시몬은 흥미로운 눈으로 노트를 살펴보았다.
카미바레즈는 확실히 혈류 쪽 저주를 많이 사용해 본 듯했다. 그 외에도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학생들이 많은 걸 보니, 경쟁하는 걸 넘어 힘을 합쳐 한 명이라도 이 과제를 통과하는 사람을 배출하려는 분위기였다.
반짝 반짝-
카미바레즈가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처럼 동그란 눈을 뜨고 바라보고 있자, 시몬이 웃었다.
“이렇게 정보를 공유해 줘서 고마워 카미. 하지만 나는 이제 막 여기 와서 알려줄 게 없는데…….”
“괜찮아요!”
카미바레즈가 생글생글 웃었다.
“시몬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충분해요!”
저 순수한 미소에 시몬은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자칫 머리를 쓰다듬을 뻔했기에 얼른 손을 제자리에 두었다.
“하지만 결국 이 많은 저주들이 실패했다는 거네. 카미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아, 음.”
카미바레즈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천년향 생물의 ‘소생’은 몸 전체가 흩어졌다가 다른 장소에서 다시 붙어 부활하는 개념이잖아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상이 사라지면 대상에 걸린 저주도 사라지는 게 문제네요.”
“어렵네.”
팔짱을 낀 채 으음- 하고 한동안 고민하던 시몬이 손끝을 세웠다.
“전이 마법진을 펼쳐서 대상에 저주를 걸고, 그 대상이 해체되는 즉시 저주가 소생한 대상을 새롭게 찾게 하는 식으로 구성하면 어떨까?”
“아, 그 방법을 사용한 분도 계신데요. 결국 그것도 저주를 두 번 거는 방식이라 실패로 취급됐어요.”
이미 누군가 시도한 모양이었다.
“그럼 늪 자체에 저주를 거는 건 어때? 하루앓이가 알을 낳고 해체된 뒤, 소생해서 다시 늪에 돌아오면 저주가 걸릴 테니까…….”
“이미 시도해 본 분이 계신데 조교 선생님이 장소가 아닌 ‘정확한 대상’에게 저주를 걸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실패를 선언하셨어요.”
“그, 그렇구나.”
즉석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 정도는 이미 다른 학생들이 시도해 봤을 것이다.
시몬이 곰곰이 고민에 빠진 사이 카미바레즈가 두 주먹을 꼭 쥐고 날개를 파닥였다.
“우리 천천히 같이 생각해 봐요 시몬! 아직 시간은 남아 있으니까요!”
“응, 알았어.”
시몬은 바로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저주 제작을 시작했다.
그러나 몇 가지 수식을 끄적끄적하는 과정에서, 타깃에 대한 실험을 해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시에 하루앓이라는 생물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리고, 과거에는 천년향에도 죽음이 있었다고 했지?’
시몬이 턱을 쓸며 고민에 빠졌다.
‘다음에 류운을 만나면 물어볼 게 더 생겼네.’
* * *
그래도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시험 삼아 한번 과제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시몬은 한 가지 저주를 만들어낸 뒤, 수석조교 체헤클을 찾아갔다. 그사이에 벌써 실패자들이 생겼는지 여러 학생들이 체헤클의 수업을 듣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시몬.”
그리고 도전자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건 바로 바힐 본인이었다. 그가 깊은 미소를 지으며 손바닥을 펼쳤다.
“학생의 과제 도전은 제가 직접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가볼까요?”
그렇게 시몬은 바힐과 함께 하루앓이 늪을 향해 걸었다. 혹시나 실수하지 않기 위해 시몬이 수식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있는데.
“보석 일족들을 이끌던 구원자, 코르비니스를 잡았었을 때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바힐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그들의 ‘덫’을 흉내 내기 위해, ‘센서리 널’과 ‘슬로우’ 저주를 조합해서 구사했다더군요. 거기에 1군단의 에이션트 언데드를 잡을 때 사용한 ‘예방 저주 이론’까지.”
아니, 그걸 대체 어떻게 아는 거야.
깜짝 놀란 시몬이 입을 벌린 채 바힐을 바라보자 바힐은 그저 그윽한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아주 훌륭합니다. 번뜩이는 기지는 여전하군요.”
“가,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졸업논문으로 작성한 코랄 언데드 말입니다. 내용을 샅샅이 읽어봤습니다만-”
시몬이 흠칫했다.
졸업논문 주제를 소환학으로 했으니, 저주학 주제를 권했던 바힐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마 코랄 섬광을 맞히기 위해서는 리치가 사용할 만한 강력한 속박이 필요할 겁니다. 속박 저주를 리치들에게 훈련시키는 방법을 제가 고안해 줄 수도 있습니다.”
시몬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하,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바힐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제 관심사는 제자인 당신의 성장뿐입니다. 그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도구가 무엇이든, 결과와 실적이 있다면 괜찮은 것 아니겠습니까.”
“가, 감사합니다.”
대체 못 보던 사이에 바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시몬이 조금 얼떨떨한 사이에 늪에 도착했다. 무수한 하루앓이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자, 무엇을 준비해 왔을지 궁금하군요.”
바힐이 팔짱을 끼며 미소지었다.
“이번에도 당신의 천재성을 한번 구경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