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143)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43화
랭 슈트라우스.
맹독학 교수.
87세의 나이에 오랜 지병으로 사망.
충격적인 소식에 키젠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그의 병세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건 세간에 널리 퍼진 이야기였다.
수업을 진행하는 도중 피를 토하고, 수석 조교인 프란체스카가 대신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지다가, 최근에는 몸 상태가 악화되어 아예 수업에 나오지 않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랭, 이만하면 됐지 않은가? 현장 일은 이제 포기하게.
-자네 정도면 원로회에 들어올 수도 있으면서, 왜 그렇게 무리하는 겐가!
키젠 교수들뿐만 아니라 절친한 지인들까지 랭에게 은퇴를 종용했지만, 그는 자신의 사명을 저버릴 수 없다며 하루하루 힘겹게 강단에 섰다. 과로는 병세를 점점 더 악화시켜만 갔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건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랭도 자신의 마지막을 자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필체로 적힌 유언장이 발견됐다.
[죽은 늙은이 하나 때문에 미래가 창창한 학생들에게 폐를 끼치는 건 적절치 못하다. 내가 죽고 ‘에레보스의 밤’이 열리거든, 학생들을 위해 계속 수업을 진행했으면 한다.] [내 뒤는 수석조교 프란체스카가 이었으면 한다. 경우가 없는 이야기인 건 알지만, 이 늙은이보다야 훨씬 위대한 네크로맨서가 될 인재다. 그 아이의 재능과 열정이 아깝다.] [장례는 영묘에서 하더라도 조촐하게 치러라. 번거로운 풍습들은 생략했으면 한다.] [위대한 전우이자, 스승이자, 내 절친한 벗인 네프티스여. 이렇게 또 그대만 남겨두고 떠나는 것을 용서해 주길 바란다. 시간의 저주가 애석하나, 너무 슬퍼 말라.]…….
랭의 사망 후, 키젠에서는 ‘에레보스의 밤’이 열렸다.
에레보스의 밤은 키젠의 명망 높은 네크로맨서가 사망했을 때, 고인을 애도하기 위한 키젠의 오래된 전통이었다.
언제나 변화와 발전, 실리를 추구하는 네크로맨서들이 유일하게 예외를 두고 고집하는 전통이 있다면 바로 ‘죽음’에 대한 것들이었다.
이 기간 동안 교수들이나 조교들은 검은 옷을 입는다. 학생들은 평소처럼 교복 차림이지만, 옷의 단추를 모두 잠그고 검은 넥타이를 맸다. 남학생은 검은 양말, 여학생은 검은 스타킹을 신어야 했다.
그리고 ‘에레보스 밤’의 3일 동안은 일체의 조명이나 불을 켤 수가 없는데, 고인이 포근한 어둠 속에서 편안히 눈을 감으라는 의미가 있었다.
그래도 랭의 유언을 따르기 위해 첫날과 둘째 날은 모두 정상수업을 진행했다. 교수들은 마나 투사기를 사용하는 대신 직접 칠판에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 자료를 활용했고, 불을 쓰거나 밝은 빛을 일으키는 흑마법은 자제했다.
수업이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온 학생들은 밤이 찾아오면 그대로 침대에 들어가 숙면을 취해야 했다.
기숙사에서는 아예 동력기를 차단한 상태, 모든 조명이 꺼졌기에 밤이 되면 키젠 전체가 어둠에 잠겼다.
어지간한 문제가 아니라면 촛불을 켜는 것도 금지되었다. 이 기간에 빛은 고인의 죽음을 모욕하는 행위였으니까.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 에레보스의 셋째 날 아침이 밝았다.
마지막 날에는 고인의 장례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키젠의 이름 높은 네크로맨서들은 죽은 뒤에 ‘영묘’라고 불리는 성지에 가게 된다. 바로 이곳에서 여러 의식들을 치르고 랭을 떠나보내면, 최종적으로 에레보스의 밤이 끝나게 된다.
키젠의 모든 교수들이 랭의 장례식에 참가했다.
학생들 중에서도 랭과 인연이 있는 몇몇은 선출되어 영묘로 올라갔다.
시몬이 아는 사람들 중에선 네프티스의 딸인 로레인과, A반의 맹독학 지망생인 클라우디아 멘지스가 영묘에 갔다.
특히 3학년들은 난리가 났는데, 맹독학 전공자 대다수가 임무고 뭐고 전부 중단하고 로크섬으로 귀환할 정도로 랭의 인지도는 대단했다.
하지만 수업을 계속해 달라는 랭의 유언은 무시할 수 없었기에, 에레보스 밤의 셋째 날은 교수 없이 조교들이 주관하는 자습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하필이면 딱 1교시부터 맹독학이네.”
검은 넥타이를 맨 딕이 자리에 앉아 짐을 풀며 중얼거렸다.
“……으, 잠을 너무 많이 자니까 오히려 더 피곤해. 8시부터 계속 잤나?”
옆자리에 의자를 뺀 시몬이 부드럽게 웃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이때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것도 괜찮지 뭐.”
맹독학 수업도 평소의 마법솥이 있는 실습관이 아니라, 책상과 의자만 있는 평범한 강의실이었다. 에레보스의 밤이 진행 중인 때에는 마법솥을 끓이기 위한 불도 금지였다.
“다들 안녕하세요~”
“굼벵이들이 웬일이래? 일찍 왔네.”
카미바레즈와 메이린도 강의실에 도착했다.
두 사람도 마찬가지로 검은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평소 맨다리로 다니던 카미바레즈는 검은 스타킹을 신었고, 메이린은 긴 머리카락을 검정 머리핀으로 묶어서 단정하게 했다.
“니들, 그거 알아?”
언제나처럼 딕이 입을 열었다.
“이번 맹독학 수업은 자습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진행될 거래.”
“뭐래, 교수님들이 안 계시는데 정상수업이 가능해?”
메이린의 물음에 딕이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말이야. 이번에 교수로 승급한 프란체스카 조교쌤, 사실 영묘에 안 갔대.”
세 사람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진짜? 왜?”
누구보다 랭을 따랐던 수석조교 프란체스카 벨몬드.
그녀에게는 새로운 일화가 있었다.
원칙대로라면 랭의 조교진은 해산되고, 다른 맹독학 교수와 조교진이 외부에서 들어올 예정이었지만, 네프티스는 오랜 전우였던 랭의 마지막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전례가 드문 일이긴 하나, 프란체스카는 조교 신분에서 바로 키젠 교수로 진급했다.
사실 절차가 문제였지, 능력적인 측면에서 그녀에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현장에서도 모두가 그녀의 실력에 만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딕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네프티스 님 말이야, 고인이 가장 아끼던 제자인 프란체스카 쌤한테 마지막 제사 장례 의식을 맡기려고 했는데.”
“프란체스카 교수님.”
메이린이 딱딱한 목소리로 정정했다.
“아, 옙. 아무튼 네프티스 님의 그 제안을 프란체스카 교수님이 거절했단 거야.”
세 사람이 놀란 표정으로 눈을 마주쳤다. 시몬이 물었다.
“왜 거절하신 건데?”
“마, 맞아요. 잘 이해가 안 돼요! 마지막에 고인의 유골을 흩뿌리는 건 명예로운 의식이라고 들었어요.”
“내가 들은 바로는 수업 진행 때문인…….”
또각또각.
네 사람이 동시에 입을 닫았다.
말을 하기 무섭게, 이제는 교수가 된 프란체스카가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강의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오전 수업을 들으러 온 A반 학생들은 그야말로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지, 진짜 장례식에 안 가셨어?’
키젠의 맹독학 교수라는 후광이 생겨서 그럴까, 랭의 뒷바라지를 하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올블랙. 검은 정장을 걸치고 검은 구두를 신었으며, 검은 목도리를 목에 둘렀다. 그녀가 걸을 때마다 붉은 머리카락과 목도리가 바람결에 이상적인 모습으로 휘날렸다.
처음으로, 그녀가 교수로서 A반의 앞에 섰다. 언제나처럼 찰랑이는 긴 머리를 끈으로 질끈 묶으며 각오를 다지는 루틴은 그대로였다.
“반장.”
프란체스카의 첫마디였다.
다들 멍하니 있는 가운데 제이미 빅토리아가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눈치 빠르게 움직였다.
“차렷! 교수님께 경례!”
“안녕하십니까!”
모든 학생들이 일제히 고개 숙여 인사하자, 그녀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어서들 오세요.”
제이미를 비롯한 학생들은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
랭은 다소 구시대적이지만, 학생들에게 경례를 시키던 유일한 키젠 교수였다. 바로 그 루틴을 젊은 제자가 계승하기로 한 것이다.
그녀는 후읍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랭 교수님께서는.”
학생들의 입이 벌어졌다.
“일상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녀는 누가 이야기도 꺼내지 않은 랭의 이야기를 먼저 말하고 있었다.
스스로 상처를 후벼 파는 것 같아서 더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병든 몸을 이끄시고 어떻게든 강단에 서려 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습니다. 랭 교수님께서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미래를 위하지 말며, 오로지 순간에 충실하라.”
그녀의 목소리가 나긋하게 퍼져 나갔다.
“과거는 현재를 얽매이게 하고, 미래는 현재를 지치게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충실한 현재가 쌓이면 그것은 윤택한 과거가 되고, 빛나는 미래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현재에 충실하셨습니다.”
그간 들었던 그녀의 어떤 수업보다 호소력 있는 목소리였다.
“교수님께서는 돌아가셨지만, 저는 현재를 살겠습니다. 여러분을 가르치는 하루하루에 온 힘과 정열을 쏟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러면 랭 교수님도 저를 보며 웃어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짧은 연설이었지만 프란체스카는 학생들의 마음을 크게 울렸다.
평소부터 그녀를 존경하던 메이린은 두 눈이 그렁그렁해졌고 카미바레즈도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강의실 곳곳에서 코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그럼,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원래도 프란체스카의 수업은 역동적이었지만, 오늘은 훨씬 더 업그레이드된 느낌이었다.
그녀는 땀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며 강의실을 활보했고, 분필로 디테일하게 그림을 그려가며 독성분의 구성요소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조교 출신이라고 얕보는 학생이나 조교들은 아무도 없었다.
수업의 연설이 워낙 감명적이어서 그럴까, 다들 진심으로 그녀를 키젠 교수로서 따랐다.
그렇게 세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차렷. 교수님께 경례!”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어요. 다음 주에 또 만나도록 하죠.”
여운이 길었는지 학생들이 천천히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특히 프란체스카와 친한 몇몇 맹독학 지망생들은 그녀에게 직접 찾아가서 위로의 한마디를 남겼다. 프란체스카도 상냥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받아주었다.
스으.
그때 시몬은 조용히 품에서 카쟌의 안경을 꺼냈다.
이 물건을 받은 뒤로 교수나 조교들이 생체얼굴을 쓰고 있는지, 혹은 뺨에 흉터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시몬은 안경을 끼고 프란체스카를 바라보았다.
“…….”
이번에도 역시 아무 차이가 없었다. 뺨에 흉터도 없다. 시몬이 안경을 벗으려 안경테를 붙잡으려는데.
“……카미?”
홀린 듯한 표정으로 시몬을 바라보고 있던 카미바레즈가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붉혔다. 그러곤 두 팔을 바둥바둥 흔들었다.
“아, 아앗! 아무것도 아녜요!”
“응?”
가방을 아공간에 챙겨 넣은 메이린이 다가왔다.
“야, 뭔데 그 한물간 안경은? 옛날 범생이 같아.”
“철 지나긴 했는데 그런대로 느낌 있는데.”
옆에서 샥 다가온 딕이 시몬이 쓰고 있던 안경을 가뿐한 동작으로 벗기더니 본인이 썼다. 그러곤 세 사람을 돌아보며 똥폼을 잡았다.
“어때?”
“토 나와.”
메이린이 헛구역질하는 시늉을 했고, 카미바레즈는 무표정한 얼굴로 짝짝 손뼉을 쳐주었다.
“어.”
그때 딕이 멈칫했다. 그러곤 메이린의 몸을 위아래로 슥슥 훑기 시작했다.
가만히 서 있던 메이린이 갑자기 얼굴 확 붉혔다.
“야 씨! 그 시선처리 뭔데?”
“음? 뭐가?”
“그 안경 내놔!”
메이린이 다가왔다. 재빨리 옆으로 빙글 돌며 피한 딕이 시몬의 손에 안경을 들려주며 어깨를 두들겼다.
“크으, 시몬 역시 너도 남자구나!”
“……?”
“아, 그 안경 뭐냐고오!”
시몬은 다시 안경을 써보았다.
생체얼굴 너머를 보는 안경이라 그런지 미세하게 투시 효과 같은 게 있었다. 물론 딕이 생각하는 극적인 효과는 없었고 교복 너머로 뭔가 희끄무레한 게 보이는 정도였다.
“야!!”
메이린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안경을 빼앗았다.
뭐라도 걸리면 당장에라도 물어뜯을 기세로 안경을 써보았지만…… 생각보다 별것 없었다.
그녀는 한심하다는 듯 쯧쯧 혀를 차며 안경을 시몬에게 돌려주었다.
“근데 이거 어디서 구했냐?”
딕의 물음에 시몬이 어깨를 으쓱했다.
“카쟌이 줬어.”
“와! 치사해! 두 사람만 그렇게 친하기냐? 나 요즘 기숙사에서 따돌림당하는 기분이라고. 나랑도 친해지게 좀 도와줘 봐!”
시몬이 빙그레 웃었다.
“일단 잘 때 조용히나 좀 하래.”
“크윽.”
“흥, 뉘신진 모르겠지만 무조건 딕이 잘못했네.”
“히, 힘내요 딕! 곧 친해질 수 있을 거예요!”
네 사람은 사이좋게 이야기하며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A반은 다음 혈류학 수업시간까지는 두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딕은 기숙사 창고로 갔다. 오늘 사업 관련 물량이 많이 들어와서, 일손이 부족하다는 것 같았다.
메이린은 동아리 친구들이랑 마법기술관에 들렀다 온다고 했다. 시몬이 수업을 들은 맹독학관 바로 옆에 위치한 건물이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둘만 남았네요~”
두 뺨이 상기된 카미바레즈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시몬도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밥 먹으러 가자 카미.”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