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173)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73화
시몬이 오늘 새로 산 로브를 탈탈 털고 뒤를 돌아보았다.
쓰레기 더미에서 ‘푸후!’ 하는 소리와 함께 메틴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얼굴을 덮은 그의 손에서 신성력이 일렁이더니, 코피가 멎고 뭉개진 코뼈도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무슨 수를 쓴 거냐?”
메틴이 벽을 짚으며 일어났다.
“칠흑의 냄새가 나는 건 확실한데, 어떻게 엑소시즘을 견뎠지?”
“저도 프리스트니까요, 사제님.”
시몬은 몸에 둘린 축복을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러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며 말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오해가 있으십니다. 제 이름은…….”
“듣고 싶지도 않다!”
메틴이 신성을 일으켰다.
다시 한번 그의 주위로 아공간이 펼쳐지며 각종 고문도구들이 그의 몸에 장착되기 시작했다.
“나는 악인의 혀보다 내 코를 더 신뢰해! 네놈은 틀림없이……!”
쩌어어엉!
난데없이 신성으로 이루어진 초대형 망치가 메틴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저 멀리서 망치 끝을 붙잡고 있는 건 뚱한 표정의 레테였다.
“신성연방 첫날부터 이게 무슨 꼴임까.”
“레테!”
그녀가 망치를 손에서 놓자 망치를 이루고 있던 신성이 대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정신을 잃은 메틴은 그대로 쓰레기더미 속에 파묻혀 주위의 경관과 일체화됐다.
“기껏 믿고 보내줬더니 바로 사고 치네. 뭘 어떻게 했길래 이 거머리들에게 들켜요?”
“진짜 아무 짓도 안 했어.”
시몬이 억울하다는 듯 옆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시장에서 물건 좀 사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 사람이 냄새 어쩌고 하면서 다짜고짜 덤벼든 거야.”
“그래요? 예리하네.”
레테가 메틴 쪽을 돌아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두들겨 패는 건 몰라도 이단 심문관을 죽일 수는 없다. 흔적이 남을뿐더러 일이 지금보다 몇십 배는 더 커져 버리니까.
여기서는 조용히 넘어가는 게 최선이었다.
“돌아가죠.”
“응.”
두 사람은 빠른 걸음으로 현장에서 벗어났다.
마침 맞은편에서 한 부부가 팔짱을 끼고 골목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이자 두 사람은 더욱 후드를 깊게 눌러썼다.
잠시 후 부부의 비명이 들렸고, 두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야시장 인파에 섞였다.
“근데 그 옷 뭡니까.”
“여기서 새로 샀어. 위장용이야.”
그녀가 곁눈질로 시몬의 로브를 위아래로 훑더니 말했다.
“당신 말고 옷이 꽤 예쁘네요. 당신 말고 옷이.”
“두 번 강조 안 해도 돼. 맘에 들면 한 벌 사줄까?”
그녀의 얼굴에 조금 놀란 기색이 어리더니 급히 싸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너랑 커플룩 맞출 바에 목매달고 죽을검다.”
그 말에 시몬이 큰 소리로 웃었다.
* * *
다음 날 아침.
이런저런 소란이 있었지만, 여관에서 푹 휴식을 취한 시몬과 레테는 무사히 역에 도착했다.
‘드디어!’
신성열차를 기다리며 시몬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이번이 생애 첫 열차 경험이다.
열차는 암흑연합에서 보편화 된 운송수단은 아니었다. 시몬도 살면서 평생 열차를 타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경험을 생판 타지에서 해보는구나.’
반면 신성연방에서 열차는 가장 핵심적인 운송수단이었다. 일반인들이 타기엔 부담스러운 요금이긴 하지만, 객실이 비는 일은 거의 없을 정도로 높은 이용률을 보였다.
‘괜찮을까 모르겠네.’
한편 레테는 시몬 쪽을 힐긋거리고 있었다. 사실은 목적지 ‘생명의 나무’까지 가는데 열차가 아니라 다른 이동수단을 쓰려고 했다.
그런데 시몬이 생각보다 수업을 잘 따라와 줬고 안나의 영향을 받았는지 문화에 대한 이해도까지 높았다. 수습사제를 연기하는 데 있어 전혀 모자람이 없는 수준이라 신성열차를 타기로 했다.
이걸 타면 모험에서 겪어야 할 수많은 고난과 역경, 야영, 길찾기, 몬스터와의 전투, 이딴 거 다 생략하고 5일 만에 목적지까지 한 방에 도착이다.
좋은 이동수단이긴 했지만, 역시 열차에 득실거리는 이단 심문관이 맘에 걸렸다.
‘그래도 그 냄새 맡는 놈은 열차 담당에 없었으니까.’
그녀는 통신 수정구로 지인 찬스를 써서, 오늘 탈 열차의 이단 심문관 리스트를 싹 다 확인해 본 뒤였다. 그 냄새 잘 맡는 ‘메틴’이란 놈의 이름은 없었다.
‘괜찮겠지.’
“아, 왔다!”
시몬이 말했다.
멀리서부터 철컹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뱃고동 소리를 연상케 하는 힘찬 경적이 들리고 열차에 보이는 굴뚝엔 신성 섞인 하얀 연기를 구름처럼 뿜어내고 있었다.
시몬이 아이 같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달려 나갔다.
“봐도 봐도 대단해!”
그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돌렸다.
“근데 너무 빠르지 않아? 이거 우리 앞에 서는 거 맞아?”
“……내가 다 부끄러우니까 목소리 좀 줄여요. 그리고 거기 있음 위험해. 뒤로 오라고요.”
레테가 흥분한 시몬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뒤로 물러나는 가운데도 시몬의 눈은 열차에 고정되어 있었다.
저 거대한 쇳덩이가 저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다니. 대체 바퀴가 몇 개일까? 몇 명이 탈 수 있는 걸까? 안은 어떨까?
이내 레테의 말대로 열차가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완전히 멈춰 섰다. 객차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쏟아지듯 빠져나왔다.
정차 시간은 널널하게 30분. 짐을 싣고 내리는 사람들 뒤로, 열차 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밖으로 나와 스트레칭을 하거나 먹을 것들을 사러 갔다.
기차에서 모든 인원이 빠져나온 뒤, 객차 승무원들이 나와서 탑승하는 승객들을 기다렸다.
“자, 들어가죠.”
시몬과 레테는 준비한 티켓을 들고 승무원들에게 다가갔다.
* * *
“……대체 무슨 속셈이냐.”
1631 신성열차 담당, 선임 이단 심문관 바카라가 기차역 앞에서 인상을 굳히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메틴이 열중쉬어 자세로 서 있었다.
“다짜고짜 우리 관할에서 일하게 해달라니?”
“말 그대롭니다. 급여는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정식으로 일하게만 해 주십쇼. 부탁드립니다.”
메틴이 고개를 숙였다. 바카라가 인상을 쓰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뭐 이렇게 막무가내야? 자네 관할은 어쩌고?”
“휴가 냈습니다.”
“……원 미친놈 다 보겠네. 휴가까지 내서 굳이 또 일을 하겠다고? 이유가 뭐야?”
“꼭 붙잡고 싶은 놈이 있습니다.”
그의 눈동자에 불똥이 튀었다.
“놈이 이 열차에 타고 있습니다. 위대한 여신의 이름으로 놈을 처단해야 합니다.”
“별 또라이 같은 새끼 다 보겠네.”
바카라가 한숨을 푹 쉬었다.
경우가 없는 젊은이였지만, 이 녀석의 아버지는 이단 심문관 출신의 고위 간부다. 그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결국 바카라가 심문관 리스트에 메틴의 이름을 올렸다.
“자네가 한 말이니 확실히 지키게. 나중에 힘들다고 찡찡대면서 열차에서 내리겠단 소릴 지껄이면 가만 안 둬.”
메틴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 * *
‘열차 내부는 이렇게 생겼구나.’
티켓을 내고 기차 안으로 들어온 시몬은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기차에 들어오니 의자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일반실이 보였다. 이 좌석은 열차를 딱 하루만 쓰는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다고 레테가 설명했다.
두 사람이 예약한 곳은 이런 일반 좌석이 아니라 침대까지 갖춰진 정식 객실이었다. 조심조심 다음 객차로 건너갔다.
‘……헉.’
객차 문을 열자마자 시몬은 깜짝 놀랐다.
간신히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는 무척이나 좁은 복도가 보였다. 그 복도를 중심으로 바닥과 벽에 침대들이 쭉 들어차 있는데, 한 객실에 최대 7명이 누울 수 있는 7인실이었다.
1층, 2층 침대는 물론, 누우면 천장에 배가 닿을 것 같은 3층 침대가 있다. 저기에 사람이 들어갈 수는 있나 싶었다.
거기에 모든 침대가 다 트여 있는 구조여서, 시몬은 좁은 복도를 지날 때마다 무수한 시선과 마주해야 했다.
곳곳에서 코 고는 소리, 이 가는 소리, 떠들고 음식물을 씹는 소리가 들린다. 땀 찌든 냄새와 지린내가 코를 찔렀다.
“여기가 3등실임다.”
레테가 설명했다. 그러다 침대에 누운 아저씨가 바지 안에 손 넣고 사타구니를 벅벅 긁는 모습을 목격한 그녀가 질색하며 고개를 돌렸다.
“살짝 좁긴 한데 생각보다 아늑해 보여.”
시몬이 눈을 빛내며 레테를 돌아보았다.
“우리도 여기서 자는 거야?”
“……미쳤습니까? 이런 땀내 나는 곳에서 어떻게 자겠냐고.”
레테를 따라 3등실을 지나 2등실로 넘어왔다.
여기는 숨통이 좀 트이는 기분이었다. 꽤 널널한 복도, 그리고 한 칸에 4인실이다. 그 숨 막히는 3층 침대가 사라지니 공간에 활기가 도는 느낌이다.
천장에는 은은한 조명이 설치됐고, 제대로 된 베개나 이불도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확실히 사람들의 옷차림부터가 달랐다.
“2등석은 클레릭이나 모범 신도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부터 사용할 수 있슴다.”
“뭐야, 신분에 따라 칸이 나뉘는 거였어?”
“그럼 뭐라고 생각했는데요?”
“지불하는 돈에 따라서 다르다고 생각했지. 3등실보다 2등실이 더 비싸고 뭐 그런…….”
“그쪽 사람다운 마인드네요. 뭐, 제가 생각해도 그게 합리적이긴 합니다.”
두 사람은 2등실도 지나갔다.
마지막 1등실.
“와……!”
여기서부터는 호화롭다 못해 사치스럽기까지 했다.
열차가 아니라 연회장에 들어온 기분. 은은한 조명에 바닥에는 레드 카펫이 깔려 있다.
칸을 보니 2층 침대마저 사라졌다. 한 칸에 2인실이고, 푹신하고 넉넉한 침대 두 개와 창가에는 와인색 커튼이 달려 있다.
책상엔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각종 다과 거리와 과일, 포도주가 놓여 있었으며 벽에는 거울과 시계, 수납공간과 책 몇 권이 있다.
바로 이 1등석이 두 사람이 5일간 지낼 곳이었다.
“A2. 우린 여기네요.”
두 사람은 객실 안으로 들어왔다.
푹신한 침대에 앉은 시몬이 놀라워하고 있는데, 레테는 문 앞에서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인상을 구겼다.
“왜 그래?”
“원래 1등석에는 문도 달려서 프라이빗하게 지낼 수 있었는데, 문짝을 아예 떼버렸네요. 아마 이단 심문 때문이겠죠.”
시몬이 팔짱을 꼈다.
“여긴 원래 이렇게 이단 심문이 심한 거야? 어제 야시장에서 일어난 일은 좀 충격이었어.”
“당연히 이렇게까지 심하진 않았죠.”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전에 말했다시피 이단들, 혈천교인가 뭔가 하는 것들이 주민들을 죽이고 납치하고 난리라서 경계가 극도로 강화된 상태임다. 놈들은 평소엔 일반인으로 분장하고 다니니까요.”
“아하.”
두 사람이 자리에 앉고 잠시 후, 열차의 경적이 들렸다. 창밖을 보니 역 밖에서 스트레칭을 하던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1등실에도 밖에 나가 있던 승객들이 떠들썩하게 들어왔다. 몇몇 승객들은 복도를 걸어가다가 호기심이 생긴 듯 이쪽을 힐끔거리기도 했다.
철컹!
그때 차체가 흔들렸다. 발에 느껴지는 진동을 느끼며 시몬이 눈을 빛냈다.
“레테! 이제 출발하나 봐!”
“아, 목소리 줄여요 촌놈아! 쪽팔리니까.”
레테의 핀잔에도 시몬은 그러거나 말거나 창밖에 딱 붙어서 바깥 경관을 보고 있었다.
역에 앉아 있던 몇몇 사람들이 시몬을 보며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시몬도 신이 나서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신성열차가 조금씩 속도를 높인다. 차체가 덜컹거렸고 바퀴와 열차 궤도가 마찰하여 일어나는 공명음이 들린다. 창밖의 풍경이 빠르게 뒤로 밀려난다.
그때 방송음이 들렸다.
-잠시 후 열차가 떠오를 예정이오니 승객 여러분은 자리에서 안전띠를 매주시길 바랍니다.
“떠오른다고?”
“공중 궤도로 진입하는 검다. 이거 띠 매세요.”
두 사람은 침대에 앉아 침대 끝에 연결된 안전띠를 맸다. 잠시 후 덜컹이는 소리와 함께 차체가 위로 향했다.
“……!”
두 다리로 전해지는 묘한 감각을 느끼며 시몬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무려 선로가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열차는 그 위로 올라타며 하늘길이 만들어졌다. 순식간에 주위가 까마득해지며 집들이 작아졌다.
열차는 그 기세로 높은 산마저 넘어섰다.
“와아아!”
연신 탄성을 흘리는 시몬을 보며 레테도 조금은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을 느꼈다. 기분이 좋아진 그녀가 손가락을 흔들며 설명했다.
“신성의 성질 중에는 ‘부유력’이란 게 있슴다. 이걸 극대화해서 철로나 요새를 공중으로 띄우는 것도 가능하죠.”
“그 유명한 에프넬의 하늘섬도 신성 때문인 거야?”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시몬이 엄지를 살짝 깨물었다.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네.”
“……미친 소리. 당신은 거기 가면 죽어요.”
그렇게 말한 그녀가 슬쩍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전쟁이 나면 또 모를까~ 당신이 하늘섬에 갈 일은 모르겠지만, 언젠가 내가 로크섬에서 여신의 깃발을 꽂을 날이 올지도 모르겠네요.”
은근슬쩍 도발해 보았지만, 시몬은 창밖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연신 ‘와 와’ 소리를 내며 감탄하는 촌놈을 보며, 레테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어 피식 웃었다.
잠시 후, 산을 뛰어넘은 신성열차가 다시 지상의 철로에 안착했다. 다른 좌석의 사람들이 안전띠를 풀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몬도 안전띠를 풀고 말했다.
“진짜 혹시나 해서 하는 소린데, 열차 안에 화장실도 있…….”
“있슴다. 저기 복도 밖으로 나가서 쭉 가면 있을 검다.”
시몬이 감탄성을 터뜨리며 화장실로 갔다. 레테가 쿡쿡 웃으며 테이블에 놓인 와인을 뜯으려 할 때였다.
복도 쪽에서 꺄르르 하고 왁자지껄하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언니, 언니! 우리 칸에 새로운 애들 왔어요!”
“먼저 언니한테 인사도 안 하러 오더니 괘씸해요!”
얼씨구 놀고 있네.
레테는 다리를 꼰 채 잔에 와인을 따랐다.
잠시 후, 흰 교복을 입은 소녀가 밀려나듯 레테의 객실로 들어왔다.
그녀의 주위엔 고개만 빼꼼 내민 채 낄낄거리는 소녀들이 보였다. ‘넌 이제 죽었다’ 하는 표정이었다.
“흠흠, 안녕 자매님! 잠시 시간 괜찮을까요?”
저게 그 언니 언니 하던 그 사람인가.
고개를 든 레테의 시선이 빠르게 그녀의 차림을 위아래로 훑었다.
‘에프넬 교복? 근데…….’
레테는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짝퉁 티 풀풀 나네. 저걸 속는다고?’
객실로 들어온 에프넬 교복의 여학생은 머리카락을 우아하게 쓸어올렸다.
“반가워요. 나는 신성 대학 에프넬 2학년, 엘렌 자일이라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