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182)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82화
열차는 멈췄다.
혈천교의 주교 알로켄은 완전히 무력화됐다.
메틴은 힘겨운 걸음걸이로 쓰러진 알로켄의 상태를 살피러 왔다.
‘……신성화 좀비로 인한 대폭발이라니. 엑소시즘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위력이다.’
알로켄이 입고 있던 헬하운드는 흔적도 없이 소멸했고, 알로켄 본인은 이성이 증발한 채 입에서 검은 액체를 토해내고 있었다.
코어가 파괴됐을 때의 전형적인 증상. 냄새를 맡아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이제 다시는 흑마법을 쓰지 못할 것이다.
‘이 녀석은 내가 붙잡고 싶었지만.’
결국 알로켄을 잡은 건 심문관의 메틴도, 에프넬의 레테도 아닌, 네크로맨서였다.
그 사실에 더없이 복잡한 심경을 느끼며 메틴은 알로켄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한편 여자 심문관을 꽁꽁 묶어서 객실에 처넣은 레테가 시몬에게 다가왔다.
“뭐어, 이번엔 당신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
그리고 시몬은 열차 천장에 엎드린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당신이 열차에 탄 모든 승객들을 구했…… 응?”
레테가 말을 멈췄다.
시몬의 상태가 이상했다. 힘겨운 듯 왕관을 내려놓은 그가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이내 떨리는 두 팔이 왕관을 집어서 다시 머리 위에 쓰려고 했다.
쿵!
시몬이 초월적인 인내심으로 왕관을 내려놓았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방울처럼 맺혀 있었다.
“뭐야, 왜 그래요?”
“가까이 오지 마!”
시몬의 외침에 레테가 움찔하며 걸음을 멈췄다.
저 사람이 저렇게 강압적으로 소리치는 건 처음 본다.
“이걸 가지고 멀리 떨어져!”
시몬이 왕관을 던졌다. 레테는 엉겁결에 왕관을 받아서 품에 끌어안았지만,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왜 그러는데요! 뭐라도 말을 해줘야 할 거 아님까!”
“끄윽……! 설명할 시간 없으니까 떨어져! 빨리!”
회복 마법이나, 그게 아니면 정신 안정계열의 축복이라도 걸어주고 싶었지만 시몬이 한사코 떨어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슬금슬금 물러나다가 이내 등을 돌려 타다닥 달렸다.
‘이 왕관이 뭐길래 그래?’
결국 시몬은 오래 참지 못했다. 그가 눈에 흰자를 드러내며 야수 같은 고함을 내지르더니, 짐승처럼 네 발로 뛰어서 레테에게 달려들었다.
“……!”
순식간에 따라잡혔다. 시몬의 팔이 왕관으로 향하자, 놀란 레테가 왕관을 더 품에 꽉 끌어안으며 몸을 돌렸다.
쩌어어억!
이어지는 충격음. 시몬이 그대로 날아가 열차 천장을 뒹굴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어느새 허리에 한 손을 올린 프린스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당신은……!”
시몬이 다시 일어나려고 하자, 프린스가 달려들어 그의 머리채를 붙잡아 쾅! 소리 나게 바닥에 처박았다. 레테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야! 무슨 짓이야!”
[프리스트는 빠져.]강한 충격을 받아서 그런지, 시몬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러고는 입술에서 흐흐 넋 나간 웃음이 새어 나왔다. 금빛이던 눈동자도 다시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고마워 프린스.”
[웃음이 나와? 니가 무리해서 다치기라도 하면 내가 피어한테 혼난다고!]“상대가 너무 강해서 어쩔 수 없었어. 그리고 왕관 좀 다시 들고 가줘. 나 미치겠어.”
그 말에 프린스가 등을 돌려 레테에게 다가왔다.
그녀가 잔뜩 경계하는 표정으로 왕관을 끌어안은 채 시몬과 프린스를 번갈아 보자, 시몬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그녀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왕관을 내밀었다.
그것을 홱 빼앗아 든 프린스가 자신의 머리 위에 썼다.
“그래, 고마워.”
스스스스스스.
이내 프린스의 전신이 왕관과 함께 새까맣게 물들더니,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몸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이내 자리에 남은 건 프린스가 아니라 그냥 일반 좀비의 몸뚱이뿐이었다.
“사, 사라졌어?”
“원래 장소로 돌아갔을 뿐이야.”
시몬이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 바로 앉았다. 그제야 레테가 허겁지겁 다가왔다.
“괜찮슴까? 치료 마법이라도…….”
“회복은 괜찮으니까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 정도만 부탁해.”
레테가 지속시간이 긴 축복을 걸어주었다. 그제야 시몬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레테가 옆에서 부축하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아, 무리하지 마십쇼. 힘들면 그냥 자는 게 어떻슴까.”
그때 갑자기 시몬이 레테를 거칠게 팍! 소리가 날 만큼 밀어냈다.
졸지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진 그녀의 눈이 커졌다가, 조금은 상처받은 표정을 짓더니, 이내 벌컥 화를 냈다.
“기껏 부축해 줬더니! 죽고 싶……!”
“그렇게 억지스러운 연기할 필요 없다.”
그녀가 등을 돌렸다. 어느새 이단 심문관 메틴이 체포한 알로켄의 몸뚱이를 질질 끌며 걸어오고 있었다.
“위대하신 여신님의 이름을 걸고, 당신과 레테 사제님께 어떤 피해도 가지 않을 거라고 약속하겠다.”
“…….”
하지만 시몬은 얼굴에 쓴 탈을 한번 만졌을 뿐, 여전히 정체를 드러내진 않았다. 레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시몬과의 관계를 부정해야 하나? 아니면 시몬을 도와서 이 녀석을 확 담가 버릴까?
그때 메틴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네크로맨서면서도 이곳의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결국 수백 명의 목숨을 구해냈다. 나를 포함한 심문관들은 형편없었다. 인정하지. 우리는 네크로맨서 한 명만도 못했다.”
그가 가슴에 찬 심문관 배지를 뜯어서 던져 버렸다.
“그러니 나는 너의 심문을 포기하겠다.”
뭔가 묘하게 흘러가는 분위기에, 시몬과 레테는 입을 다물었다.
“수백 명의 목숨을 구해냈으니 하늘섬에 올라가 큰 상을 받아 마땅하지만, 너는 네크로맨서다. 이곳에선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할 테고, 그 모든 걸 알면서도 사람들을 구했다. 이단 심문관 전체를 대신해서 인사하겠다.”
메틴이 허리를 굽혔다.
“고맙다.”
진심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시몬은 그제야 끌어올린 칠흑을 거두어들였다. 물론 그렇다고 경계를 풀지도 않았다.
“당신, 괜찮겠슴까.”
레테가 메틴을 보며 말했다.
“슬럼프가 강하게 올지도 모르는데.”
프리스트들의 신성은 믿음으로부터 기인한다.
그런데 신성의 매개로 내세웠던 ‘신앙’에 의심이 한번 생기기 시작하면, 의심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점차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믿음에 손상이 가고, 신성을 예전처럼 쓸 수 없게 되는 경우를 프리스트들은 ‘신성 슬럼프’라고 불렀다.
전쟁이나 상관의 무리한 명령 등으로 슬럼프를 경험하고 프리스트를 포기한 사람의 예가 신성연방에서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특히 메틴처럼 자신의 확고한 신념과 열정을 가진 사람일수록 슬럼프에 빠지기 쉬웠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아닌 건 아닌 거니까요.”
메틴은 그렇게 말하며 시몬을 바라보았다.
뭐라도 말을 해주길 바랐지만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정말 철두철미하다는 생각을 했다.
시몬은 등을 돌려 객실로 내려갔다.
* * *
얼추 사태가 수습됐다.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에프넬 학생인 레테와, 살아남은 유일한 심문관인 메틴은 힘을 합쳐 승객들을 안정시키고 남은 혈천교 신도 잔당을 정리했다.
붙잡은 혈천교 신도들은 꽁꽁 묶어서 화물칸에 일괄적으로 처박아 넣었고, 알로켄과 여자 심문관은 메틴이 직접 봉인마법을 건 다음 고문바퀴에 매달았다.
“어디 가지 말고 이것들 잘 보고 있으십쇼. 엘렌 선배.”
“그럼요, 맡겨주세요!”
엘렌이 경례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레테와 메틴은 다시 기관실로 들어왔다.
“두 분 오셨습니까?”
가면을 벗고, 다시 흰 로브로 뒤집어 입어서 수습사제 신분으로 돌아온 시몬이 손바닥을 붙이고 인사했다.
“아, 죽을래요? 개 빠져서 진짜.”
레테가 쿡쿡 웃으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제님.”
“싸움 다~ 끝난 뒤에 뻔뻔하게 얼굴에 철판 깔고 등장하네. 그동안 어딨었슴까?”
“제가 낄 데 껴야죠. 꼬리 칸에서 잔당들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둘 다 얼굴에 철판 깔고 사이좋게 거짓말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며, 메틴이 헛웃음을 흘렸다.
“자, 들어가시죠.”
세 사람은 기관실로 들어왔다. 이미 시체들을 치워둔 뒤라 깨끗했다. 기관실 중앙에는 열차를 컨트롤할 수 있는 영구 신성 마법진이 보였다.
“레테 사제님. 조작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한번 볼게요.”
시몬은 보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움을 느낄 만큼 복잡한 마법진이었지만, 레테는 해볼 만하다고 느끼는지 천천히 구성을 뜯어보기 시작했다.
그사이 메틴은 설명을 시작했다.
“열차는 다시 우리가 장악했습니다만, 아직 혈천교의 위협은 끝난 게 아닙니다.”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혈천교 본부에서 언제 추격대를 보낼지 모르니까요.”
“예, 놈들은 이 열차에 탄 승객 전원을 제물로 바치려 하고 있습니다. 알로켄 주교와의 연락이 끊겼다는 걸 본부에서도 알아챘을 테니, 틀림없이 추가 병력을 편성해 보낼 겁니다.”
“그래서 열차를 움직여서 도망치려고 하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메틴이 손에든 가방을 흔들어 보였다.
“레테 사제님이 열차를 움직일 수 있는지 보는 동안, 우리는 이 혈천교의 정보들을 확인해 보죠.”
서류가방의 안에는 혈천교의 기밀문서들이 들어 있었다. 시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런 건 어디서 구했어요?”
“알로켄의 아공간에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뭐라도 힌트가 될 만한 걸 찾기 위해 서류의 내용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서류들을 쭉 펼쳐놓은 시몬은 바로 이상한 점을 하나 캐치했다.
“여기 있는 모든 지령서에 주교급의 서명이 들어가 있어요. 그런데 정작 본인이 ‘주교’라고 주장했던 알로켄의 서명은 아니네요.”
모든 지령서에는 알로켄이 아닌 다른 주교의 서명이 휘갈겨 있었다.
“하지만 딱 한 장.”
시몬이 오른쪽 가장 끝에 있는 지령서를 손으로 짚었다.
“신성열차 탈취에 대한 임무 요청서. 이것만 알로켄의 서명이네요. 심지어 이것도 승인은 다른 주교에게서 받았어요.”
“그렇군요.”
알로켄은 바지사장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같은 주교라도 급이 있거나, 혹은 이제 막 주교 자리에 오른 신인인 알로켄이 무리하게 공을 세우려다 이런 짓을 꾸몄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으음.’
시몬은 찬찬히 자료를 뜯어보았다.
-이단 심문관 ‘사라 크로퍼드’ 회유.
-사라 크로퍼드가 담당하는 1631호 신성열차를 탈취 준비.
-사라 크로퍼드의 가짜 애인인 ‘오델 맥퍼딘’ 심문관의 암살, 생체얼굴 확보.
-…….
사라 크로퍼드는 레테가 붙잡은 그 배신자 심문관이었다. 여기까지는 시몬도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바로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신성열차 탈취 완료. 본부로 운송.
-사로잡은 승객들을 블러드 좀비로 제작.
-이단 심문청에 정보를 흘림. 전 본부 인원은 대피.
여기서 시몬의 손이 멈칫했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의도적으로 이단 심문관 본부에 정보를 흘린다고?
시몬이 급격히 진지한 표정으로 다음 장을 넘겼다.
-심문청장이자 전쟁 강경파 ‘레이트’가 사건 현장을 급습.
-레이트가 본부에서 혈천교의 배후가 암흑연합이라는 증거 확보. 반 네크로맨서 강경 여론 형성.
-신성연방과 암흑연합의 전쟁유도.
‘……와, 이거.’
시몬은 입술이 바짝 마르는 것을 느꼈다.
‘스케일이 미친 듯이 커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