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196)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196화
시몬과 조원들은 아침에 일어난 뒤, 빵 한 쪼가리도 못 먹고 방학 숙제에만 매달렸다.
키젠의 과제는 본인 의견을 논문 형식으로 답해야 하거나, 객관식 문제도 값을 다르게 주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숙제를 봐도 크게 효과가 없었다.
그래도 메이린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시몬과 카미바레즈는 어떻게든 끝이 보였지만, 문제는 딕이었다.
“……저, 저기. 메이린 경.”
우물쭈물하며 말하는 딕은 어느새 메이린에 대한 호칭이 바뀌어 있었다.
“뭐, 망할 평민.”
메이린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차가운 표정으로 딕의 문제풀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 인간적으로 밥은 좀 먹고 합시다.”
“넌 인간적이라서 과제를 이따위로 했냐? 이 금수 같은 놈아.”
“크흡.”
지은 죄가 있었기에 한마디도 이길 수 없었다.
극장에서와는 완전히 반전되어 버린 관계.
시몬도 얼른 자신의 숙제를 다 끝내고 딕을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칠흑역학 과제인 창작 마법진을 써 내려 가고 있었다.
“아.”
쓰다보니 글씨가 옅어졌다. 깃펜을 들어 살펴보니 잉크도 없고, 너무 오래 써서 펜촉이 너덜너덜했다. 잉크통도 어느새 텅 비어 있었다.
시몬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메이린이 다리를 꼬고 앉아 무서운 눈으로 딕을 노려보고 있었다.
“메, 메이린?”
“응.”
다행히 방학 숙제를 무사히 마칠 기미가 보여서일까, 시몬을 대할 때만큼은 메이린의 목소리는 조금 부드러워져 있었다.
그 사실에 용기를 얻은 시몬이 입을 열었다.
“새 깃펜이랑 잉크 좀 사러 나갔다 와도 될까? 돌아오는 길에 먹을 것도 좀 사 오고.”
먹을 거란 말에 숙제 중이던 딕이 슬쩍 엄지를 세우는 모습이 보였다.
메이린이 한숨을 쉬었다.
“내가 조장이지, 니들 엄마냐? 그런 건 눈치 보지 말고 다녀와.”
“저도 같이 갈게요!”
옆에서 카미바레즈가 손을 번쩍 들었다.
이번엔 딕이 입을 뻐끔거리며 ‘나를 이 몬스터랑 혼자 내버려 둘 셈이야!’라고 말하며 간절한 눈으로 카미바레즈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메이린을 보느라 눈치채지 못했다.
“……흐음, 카미는 좀 애매한데. 오늘 안에 다 끝낼 수 있지?”
“네! 약속드릴게요!”
그렇게 메이린의 허락을 받은 두 사람은 함께 시계탑을 빠져나와 랭거스틴 시내로 나왔다.
“후으으, 이제 좀 살 것 같다.”
시몬이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며 말했다. 카미바레즈가 조그맣게 웃었다.
“메이린 너무 무서웠어요.”
시몬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우릴 위해 자기 시간을 쓰고 있는 거잖아. 좀 미안하네. 돌아가는 길에 메이린이 좋아하는 음식들 위주로 사 가자.”
“네!”
시몬은 그녀와 나란히 랭거스틴 거리를 걸었다.
이곳은 언제와도 복잡하고 미로 같은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골목으로 들어오면 빠져나가는 골목길이 네 개가 있고, 표지판으로 어지럽게 표시되어 있었다.
“일단 캠밸로드로 갈까?”
“깃펜이랑 먹을 걸 사러 가는 거니까 캠밸로드보다는 쇼핑거리 쪽으로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 그게 좋겠다.”
시몬은 기억을 더듬어가며 걸음을 옮겼다.
랭거스틴의 미로 같은 거리를 걷다 보니 건물 배치가 참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한 채가 있으면, 그 집의 연장선처럼 딱 붙어서 옆집이 지어졌다. 다른 집의 벽을 자기네 집 벽처럼 쓰거나, 남의 마당을 맘대로 침범해서 집을 지어버리는 등 일체의 규칙성이 없었다.
마치 아이들이 블록으로 집 쌓기 경쟁을 한 것처럼 엉망진창으로 쌓아 올린 형태다.
“그거 아세요? 드레스덴 왕국의 10대 미스테리 중 하나가 랭거스틴의 집세래요.”
카미바레즈가 말에 시몬이 웃음을 터뜨렸다.
“응. 엄청 비쌀 것 같긴 해. 이렇게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 있는 것도 땅값이 비싸서 그럴까?”
“아뇨! 건물 양식이 이렇게 된 건 이유가 있어요. 옛날에 산에 살던 드래곤이 브레스로 도시 전체를 불태웠던 적이 있었대요! 그땐 왕국의 행정이 엉망이어서, 토지가 아니라 집을 기준으로 사유재산과 부동산을 측정했거든요. 랭거스틴이 폐허가 되고 측량도 엉망이 되니까, 사람들이 일단 무작정 집을 크고 넓게 짓고 보기 시작했대요! 그게 미친 듯이 유행하고, 경쟁에 불이 붙다 보니…….”
“그래서 이런 도시풍경이 만들어진 거구나! 대단한데? 그런 이야기는 어떻게 아는 거야?”
카미바레즈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었다.
“박사님이 이야기해 주셨어요.”
“아, 방학 때 혈류 마법을 가르쳐 주셨다는 그분 맞지?”
“네!”
두 사람은 깃펜을 파는 곳을 찾으면서, 여유롭게 관광하는 기분으로 랭거스틴의 거리를 돌아다녔다.
하지만 여유로운 두 사람과는 달리, 랭거스틴 현지주민들은 뭔가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 있나?’
“자, 속보입니다! 속보!”
랭거스틴 지역지를 파는 상인이 신문을 흔들며 소리치고 있었다. 정장 입은 신사들이 돈을 주고 신문을 구매하는 모습이 보였다.
“카미, 잠깐만.”
시몬도 뛰어가서 신문을 한 부를 구매해 보았다.
접혀 있는 신문을 보기 좋게 쭉 펼치자, 1면에 끔찍한 시체 사진이 보였다.
“…….”
시몬은 카미바레즈에게 돌아가면서 기사 내용을 디테일하게 훑었다.
일주일 전부터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나, 갑자기 도시에 쥐나 벌레들이 들끓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신경 쓰였다. 전체적으로 주민들의 분위기가 뒤숭숭한 것도 아마 이 사건들 때문인 것 같았다.
‘카쟌이 맡았다는 임무도 이쪽이겠지?’
“시몬~”
카미바레즈가 생긋 웃으며 다가왔다.
“뭘 그렇게 심각하게 보세요?”
“랭거스틴 지역지야. 사람이 죽었대.”
“저, 정말요?”
카미바레즈가 옆으로 다가와서 신문을 읽으려고 하자, 시몬은 사진을 살짝 손바닥으로 가렸다.
“?”
그녀가 물음표를 띄우며 시몬을 올려다보았다.
“아, 이거 좀. 사람이 심하게 징그럽게 죽어 있어서 가렸는데…… 괜한 짓이었어?”
“아!”
그녀가 살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크, 큰일 날 뻔했어요. 저 징그러운 거 보면 꿈에 나와서…… 고마워요 시몬!”
“이 정도야 뭘.”
신문을 접어서 아공간에 넣는 시몬을 보며 그녀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시몬은 역시 상냥하네요.’
“도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봐.”
시몬이 그녀를 위해 간단히 정리했다.
“피해자는 평소의 지병이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병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서 사망했다고 해. 맹독학 전공 네크로맨서들의 말로는 독살 같은 건 아니라고 하네.”
“뭐, 뭔가 무섭네요.”
떽!
갑자기 옆에서 들리는 괴성에 카미바레즈가 기겁하며 시몬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와, 깜짝이야.’
시몬도 진심으로 놀랐다.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고개를 돌리자, 흰자를 드러낸 눈에 얼굴의 반이 기괴하게 비틀린 할머니가 목발을 짚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무섭긴 뭐가 무섭다는 게냐! 모든 건 합당한 심판이야! 질병의 정령께서 내려오신 게야!”
“……질병의 정령?”
“떳떳하지 못한 자들은 모두 돌림병이 돌아 죽을 게야! 깔깔깔!”
슥슥.
그때 반대편 술집 앞에서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있던 퀭한 얼굴의 남자가 하품해 댔다.
“여행객들이지? 저 할멈은 무시해. 워낙 헛소리를 지껄이는 사람이라 랭거스틴에선 유명해.”
“…….”
“그리고 이번 사건은 질병의 정령 같은 게 아냐. 랭거스틴에서 다섯 명 죽은 게 뭔 대순가? 갱들의 분쟁으로 하루에 열 명씩 죽어 나가는 도시에서 무슨.”
“그, 그럼 뭔데요?”
시몬이 관심을 보이자 남자가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궁금하지? 놀라지 마! 이건 사람들의 시선을 끌려는 왕국파 놈들의 정치공작이야! 이걸로 시선을 끌고 정책을 날림으로 통과하려는 수작을 내가 모를 줄 알고?”
바닥을 쓰는 아저씨가 ‘어림도 없다 이놈들아!’ 하고 소리치고, 흰자를 드러낸 할머니는 중얼중얼 이상한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가자 카미.”
시몬이 카미바레즈를 챙기며 조용히 말했다.
“이상한 사람들이니까 신경 쓰지 마.”
“……아, 네.”
골목으로 들어가면 이런 게 문제였다.
두 사람은 조금 넓은 대로가 있는 쪽으로 나왔다.
이제야 주위가 탁 트이며 많은 여행객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고작 골목 한두 개 차이로 분위기가 천차만별로 바뀌는 게 신기했다.
‘역시 대도시는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니까.’
시몬이 쓰게 웃고 있는데 카미바레즈가 손으로 표지판을 가리켰다.
“시몬. 저기 햄턴로드가 보여요!”
햄턴로드는 대규모 쇼핑단지로 이루어진 랭거스틴의 핵심이자 젊음의 거리였다.
두 사람은 표지판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찾았다!”
그리고 햄턴로드로 가기도 전에, 찾고 있던 깃펜 가게를 발견했다.
“새 깃펜은 저기서 살까요? 완전 중심지까지 가서 사면 비쌀 테니까요.”
“좋아.”
두 사람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고 있는 그때였다.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가게 안에서 두 명의 남자가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시몬의 걸음이 멈칫했다. 질병의 정령이나 반 왕국파의 흉계보다 더 귀찮고 마주치기 싫은 사람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하필 여기서 저 녀석이랑 마주치냐.’
그의 불같은 성격으로 미루어 볼 때, 만나면 100% 싸우자고 할 것이다.
괜히 부딪히는 건 싫었기에 시몬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등을 돌렸다.
“카미, 잠깐만.”
“네?”
그녀의 손목을 잡고 티 나지 않게 옆의 골목을 향해 걸어갔다.
“왜,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시몬 폴렌티아.”
그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잠깐 보고 바로 고개를 돌렸는데 그걸 눈치채다니.
시몬은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며 뒤를 돌아보았다.
“헥토르.”
시몬과 같은 1학년 A반인 헥토르 무어. 그리고 그의 파벌 남학생 한 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헥토르의 입꼬리가 쭉 올라갔다.
잇새에서 흘러나오는 그 음침한 웃음소리만으로 시몬은 잘못 걸렸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학기 중이 아니었고, 여기도 로크섬이나 키젠 캠퍼스가 아닌 완전히 외부지역이었다. 키젠 학생 간의 분쟁을 막을 교직원들도 없었다.
“네놈도 랭거스틴에 있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여기서 딱 마주치다니!”
터엉!
헥토르가 오른발을 강하게 디디고 주먹을 불끈 쥐며 시몬 쪽으로 세웠다.
“방학 내내 이 순간을 기다렸다! 승부다, 시몬 폴렌티아!!”
“카미.”
시몬이 그녀에게 들릴 정도로만 조용히 말했다.
“도망치자.”
“네?”
그러곤 즉시 카미바레즈를 안아 들고 두 발에 칠흑을 일으키며 몸을 날렸다.
타닷! 탓!
부우우우웅!
순식간에 수십 미터를 주파한 시몬이 그대로 건물 지붕을 밟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카미바레즈의 놀란 비명과 함께 거리에서 사람들이 이쪽을 가리키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주위의 배경이 뒤로 밀려났다.
‘저건 도저히 말이 통할 상대가 아냐.’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헥토르의 투쟁심은 폭발적일 정도로 커져 있었다. 구구절절 ‘싸움은 나쁜 짓이야’를 설명해 봐야 입만 아프다. 미친개는 그냥 피하고 보는 게 답이다.
“시, 시몬!”
그때 시몬의 품에 안겨 있던 카미바레즈가 손을 뻗었다.
“위에서 와요!”
“!”
시몬이 급히 뒤를 돌아보자 시룡(屍龍)의 날개를 매단 헥토르가 상공에서 낙하하며 팔꿈치를 내려치는 모습이 보였다.
시몬도 급히 한쪽 팔을 들어 가드를 세웠다.
투콰아앙!!
시몬의 몸이 거칠게 내려가 어딘가의 거리로 떨어져 판잣집을 무너뜨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크윽!”
움푹 파인 바닥에 꽂힌 시몬이 앓는 소리를 냈다. 키젠 교복 덕분에 다친 곳은 없었지만, 충격으로 온몸이 쑤셨다.
“괘, 괜찮으세요?”
“난 괜찮아.”
바닥에 사뿐히 내려온 헥토르가 저벅저벅 걸어왔다.
“일어나라. 시몬 폴렌티아.”
그가 고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 기회에 나와 제대로 승부해라.”
카미바레즈가 벌떡 일어나 두 팔을 펼쳤다. 헥토르의 눈썹이 꿈틀했다.
“비켜.”
“지금 제정신이세요? 다짜고짜 사람을 공격하다니!”
거구의 헥토르 앞에 겁을 먹고 다리를 후들후들 떨면서도 그녀는 더 목소리를 높였다.
“키젠 학생은 외부에서도 품위를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당신은 그저 질 나쁜 양아치일 뿐이야!”
헥토르가 차가운 얼굴로 대꾸했다.
“난 두 번은 경고 안 한다. 잔챙이는 관심 없으니 비켜.”
“정 그렇게 시몬과 싸우고 싶으시다면.”
그녀가 배 위에 손바닥을 올리자 찰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쿠우우우우우!
그녀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며 등 뒤의 날개가 커졌다. 그녀가 엄지손가락을 까득 깨물자 거기서 피어오른 핏물이 그녀의 몸을 중심으로 격렬하게 회전했다.
“절 먼저 상대하세요!”
“……카미?”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그녀의 기세가 변했다. 충격에서 벗어나 상체를 일으킨 시몬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야, 너.”
놀란 건 헥토르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못 본 사이에 꽤 재미있어졌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