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243)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243화
“시몬.”
무도회장으로 가는 길, 로레인이 다가와 조용히 말을 걸었다.
“무도회의 전통에 대해 알고 있어?”
“……?”
시몬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몰리 공주가 손뼉을 짝 치며 끼어들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직접 설명해 드릴게요!”
이 전통은 옛 ‘탈헤른’ 제국이 드레스덴을 왕국을 정복하고, 그들의 궁전에서 무도회를 열었던 것에서 기인한다. 무도회는 전쟁에서 고생한 군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목적인 만큼, 끔찍하게 문란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무도회장 중앙에는 커다란 사형대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그곳으로 누더기가 된 옷을 입은 드레스덴 왕이 끌려왔다.
행사의 최고 하이라이트였다.
탈헤른 황제가 친히 사형대를 조작하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소원을 하나 말하라.
물론 황제는 소원을 들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건 일종의 유흥이었다.
이미 몇 명의 왕족 포로들이 여기서 죽음을 맞이했고, 그 고귀한 핏줄이란 것들이 하나같이 똥오줌을 지리며 제발 목숨만은 살려달라며 비는 꼴이 가관이었다.
황제는 껄껄 웃으며 사형을 집행했고, 이는 연회객들에게 좋은 구경감이었다.
동시에 황제는 드레스덴 백성들에게 교훈을 줄 생각이었다.
너희들이 떠받들던 자들은 사실 이렇게 하찮았다. 우리에게 정복당하는 건 필연이었다는 교훈을.
하지만 드레스덴의 국왕은 달랐다.
그는 스스로 처형대로 올라가 머리를 들이밀고 말했다.
-백성들의 밥 세 끼를 챙겨주시오.
그러고는 스스로 처형대를 작동시켰다.
황제는 그 모습에 진심으로 감탄했고, 수도 랭거스틴에서 무분별하게 이루어지던 약탈과 범죄 행위를 금지했다. 또한 정복국의 착취를 멈추고 구휼정책을 펼쳤으며, 왕국의 부분적인 자치 또한 인정했다.
이후, 모조리 목이 잘려 죽을 운명이었던 왕족들은 그 연회에서 살아남아 지금까지도 피가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백성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왕을 기리기 위해, 왕실에서는 매년 랭거스틴이 함락당한 그 날에 무도회를 열었다.
이때 왕의 피를 이어받은 왕족들은 무도회에 참가한 손님들에게 한 가지 ‘소원’을 빌 수 있었다.
물론 과하거나, 돈과 재산에 관련되거나, 무례한 소원은 없었다.
-로난 경은 건강이 걱정이오니 오늘 이 시간부로 금연하도록 하세요.
대충 이 정도의 수위였다.
소원을 비는 쪽도, 받는 쪽도 즐거워야 하는 게 암묵적인 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무도회에 참여했다.
‘그런 전통이 있었구나.’
사연을 알게 되니 시몬은 새삼 이 무도회가 새롭게 보였다.
처음엔 왕실에서 인맥과 부를 과시하기 위한 사치스러운 친목회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유서 깊은 행사였다.
무엇보다 제국에 나라가 함락당하고 왕이 죽은 건 틀림없이 자신들의 아픔일 텐데, 그걸 이렇게 전통으로 승화해서 즐기는 것도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럼 공주님은 무슨 소원을 비실까? 궁금하네.’
이내 세 사람이 무도회장의 문 앞까지 도착했다.
몰리 공주가 말했다.
“저는 마지막에 들어갈게요. 세 분이 먼저 입장해 주세요.”
“넵.”
시몬이 긴장한 눈으로 문을 응시하고 있는데, 은근슬쩍 세르네가 옆으로 따라붙었다.
그러고는 가느다란 손을 시몬 쪽으로 내밀어 보였다.
‘……왜 또 손잡아달란 거야?’
시몬이 가만히 있자, 세르네가 눈웃음을 치며 살랑살랑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나 팔 아파요 시몬~”
세르네가 이 귀찮은 무도회에 친히 방문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시몬과 상아탑의 이름이 함께 거론되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시몬과의 동반 입장을 노리고 있었다.
물론 그걸 내버려 둘 로레인이 아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그녀가 세르네를 붙잡으며 말했다.
“먼저 가. 시몬.”
시몬은 고맙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른 문 쪽으로 다가갔다.
세르네가 뒤쫓으려 했지만 로레인의 철저한 수비에 막혔다.
“뭐예요! 이거 놔요!”
“부부 동반만 둘이서 들어가는 거니까 생떼 부리지 마. 학생들은 한 명씩 들어가는 게 맞아.”
“내 알 바냐!”
로레인은 오로지 세르네의 음모를 저지할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저 악독한 세르네가 시몬의 상아탑 영입을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는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시몬이 졸업 후에도, 나를 도와 키젠에서 일해줬으면 좋겠어.’
결국 2년 뒤 시몬의 결정을 존중해야 하겠지만, 갑 중의 갑인 키젠이라고 뒷짐 지고 서 있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몬은 장차 키젠에 필요한 인재로 성장하리란 확신이 있었으니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시몬을 상아탑으로.’
‘시몬은 키젠에.’
두 소녀가 서로 다른 미래를 그리는 사이, 혼자 앞서 나간 시몬은 무도회장 문을 열고 나아갔다.
‘와아아아……!’
사방이 온통 번쩍번쩍했다. 이렇게 크고 화려한 무도회장은 처음이었다.
무도회장은 1층부터 3층까지 있었고, 중앙이 뻥 뚫려 있어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였다. 층마다 다른 테마의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고, 춤을 출 수 있는 넓은 장소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때 확성 수정구를 든 집사장이 큰소리로 외쳤다.
“볼드윈 왕국의 현 키젠 특례 1번 입학생. 시몬 폴렌티아 경께서 입장하십니다!”
짝짝짝짝짝.
곳곳에서 귀족들의 박수 소리가 들렸다. 웅성거리는 목소리에는 ‘키젠’이라는 단어가 섞여 나왔다.
그리고 바로 다음에 문이 벌컥 열렸다.
“상아탑 공식 후계자이자 키젠의 특례 2번 입학생, 세르네 아인다르크 경께서 입장하십니다!”
기어이 시몬 다음으로 나온 세르네가 찬란한 상앗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걸어왔다.
같이 이름을 불리지 못한 게 짜증 나긴 했지만, 그녀는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슬쩍 시몬과 팔짱을 끼고 손을 흔들어 보였다.
“죽음의 마녀 네프티스 님의 딸. 로레인 아크볼드 경께서 입장하십니다.”
이번엔 점잖은 고위 귀족들 사이에서도 경악성이 튀어나왔다. 공식 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로레인이 검은 드레스 차림으로 나타난 것이다.
“네프티스의 딸까지 오다니!”
“스케일이 커졌군. 올해는 왕실에서 정말 큰맘을 먹은 게야.”
세 명의 키젠 학생들 등장은 파격적이었다. 위층에 있던 귀족들이 인사를 하러 내려오기 시작했다.
주위의 몇몇 사람들이 말을 걸거나 춤을 요청해 왔지만 세 사람은 미소만 지을 뿐 적극적으로 화답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현재 임무 중이었고, 여기가 임무지였다.
“몰리 공주님께서 입장하십니다!”
드디어 이번 무도회의 주인공인 왕족이 등장했다.
모든 귀족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몰리가 우아하게 인사했다.
“자리를 빛내주신 모든 내빈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녀는 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중앙으로 향했다.
시몬은 연회장의 중앙에 있는 게 뭔지 깨달았다.
‘저게 그 역사에 나온 처형대구나!’
처음엔 처형대인 줄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게 처형대에는 칼날이 빠져있었고, 넝쿨 식물에, 리본에, 조명까지, 엄청나게 호화롭게 장식되어 있었던 것이다.
왕족인 몰리가 그 처형대 위로 올라가 종을 울렸다. 청아한 소리가 들렸다.
“키젠 생활에 바쁘신 와중에도, 제 고집 때문에 방문해주신 학생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소원을 빌겠습니다.”
그녀가 낭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세 분은 경호 임무로 묶여 있지만, 오늘 밤만큼은 무도회의 초대객으로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이 시간을 즐기고 피로를 푸셨으면 합니다. 내빈 여러분께서 허락해 주시겠어요?”
귀족들이 유쾌하게 웃으며 잔을 들어 올렸다.
몰리 공주도 잔을 들었고, 시몬과 세르네, 로레인도 눈치껏 근처의 잔을 들어 올렸다.
“왕국의 번영을 위하여!”
“위하여!”
모두가 잔을 비우고는 몰리 공주가 다시 한번 종을 흔들었다. 곳곳에서 박수 소리가 쏟아진다.
‘우릴 위해 소원을 써주신 거구나.’
이런 소원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경호원들이 연회에 와서 놀았다더라 하는 비아냥을 들을 이유도 사라졌고, 키젠에서도 의뢰자의 명령이니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다.
시몬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몰리의 시선은 슬쩍 시몬 쪽으로 향해있었다.
‘사실은 다른 소원을 빌고 싶었어.’
시몬이 졸업하고 드레스덴 왕국에 와달라고 빌고 싶었다. 그게 안 된다면 나도 코어를 개방해서 네크로맨서가 되게 해달라고 빌고 싶었다.
하지만 이건 개인적인 바람일 뿐이었고, 무도회 전통의 소원으로 빌 수는 없었다.
그렇게 무도회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 갔다.
몰리의 소원 덕분에 세 사람도 이제 주위의 내빈들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음식을 맛보고 대화를 즐길 수 있었다.
“시몬 폴렌티아라고 합니다.”
“그대의 활약은 잘 봤소. 나도 아들놈이 1학년이라 로크섬에 있었지.”
왕실 무도회에 초대받은 만큼, 여기 있는 한 명 한 명이 대단한 사람들이니 잘 보여서 나쁠 건 없었다.
시몬은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식견을 넓혔다.
로레인은 원체 이런 파티 분위기와 안 맞는다며 슬쩍 빠져나갔고, 세르네는 주위에 몇몇 사람들과만 이야기했다.
그들은 세르네에게 말을 걸려고 하는 다른 사람들을 원천 봉쇄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세르네에게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게 파티 분위기 절정에 가까워졌을 때.
쿠르르르릉!
천둥 소리와 함께 연회장의 조명이 꺼졌다.
사람들이 놀란 소리를 내며 웅성거렸다. 화사하던 행사 분위기가 차분히 가라앉은 뒤에, 밖에서는 쏴아아아- 하는 빗소리가 들렸다.
‘비?’
시몬이 창밖을 보니 굵은 장대비가 주륵주륵 내리고 있었다.
“집사들이 마나 발전기와 마법진 상태를 보러 갔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오래된 성에 빛이 사라져서 그런지 음침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손님들은 춤을 추는 것을 멈추고 조용히 근처의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몬도 다리가 아파서 의자에 앉았는데, 언제 왔는지 세르네가 시몬의 팔을 붙들고는 착 달라붙었다.
“나 무서워요~”
어쩐지 팔에서 소름이 끼친 시몬이 차분하게 대꾸했다.
“난 네가 더 무서워.”
“너무해!”
어느새 테라스에 나가 있던 로레인도 시몬의 옆으로 합류했다.
그녀는 루비 같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눈동자는 더 붉게 빛났다.
“무슨 일 있어? 시몬.”
“조명에 조금 문제가 생겼나 봐.”
로레인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아 와인을 마셨다.
찰박! 찰박!
그때 입구 쪽에서 물에 젖은 군화 소리가 들려왔다. 연회장이 조용해진 뒤라, 복도에서 걸어 들어오는 그 소리는 유난히 크게 들렸다.
쿠르르르르르릉!
다시 한번 내리치는 번개에 사람들이 움찔했다.
어느새 1층의 손님들 모두가 찰박거리는 군화 소리가 나는 입구 쪽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쾅!
문이 열렸다.
뚝뚝.
온몸이 물에 젖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넝마 같은 옷을 걸쳤고, 뺨은 야위었으며 퀭한 눈으로 발작적인 웃음을 흘리며 어깨를 움찔움찔하고 있었다. 입에서는 술냄새가 가득했고 한쪽 눈은 풀려 있었다.
“다들 행복해 뵈십니다 그려. 으흫흐흐흫흐.”
짝. 짝. 짝.
물에 젖은 남자가 박수를 세 번 쳤다. 그러고는 싸늘한 눈으로 주위를 훑었다.
“나는 그렇지 않은데.”
콰르르르르르릉!
번개가 치며 주위가 잠시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 그사이 남자의 얼굴을 본 사람들은 입을 틀어막으며 기겁한 소리를 냈다.
그는 다름 아닌 키젠에서 쫓겨난 셋째 왕자이자, 키젠의 2학년이자 노블의 회장이었던 인물.
바로 안드레 왕자였다.
“근데 이것 참, 상상도 못 했던 사람이 여기 와 있네.”
그가 시몬 쪽을 보며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시몬 폴렌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