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398)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398화
“…….”
네프티스의 고민이 길어졌다.
눈은 꼭 감고, 두 손은 가지런히 무릎 위에 얹은 채, 동상이 된 것처럼 가만히 침대에 앉아 있었다.
샤라락-
벨벳처럼 부드러운 그녀의 은빛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휘날렸다. 그중 몇 가닥이 입에 들어갔지만, 그것도 눈치 못 챌 정도로 집중하는-
“푸훗! 아풉풉! 머야 이거!”
그 정도는 아닌 모양이다.
대충 손끝으로 머리카락을 쓱쓱 정리한 네프티스가 시몬을 바라보았다.
“음~ 좋아. 솔직하게 대답해도 될까?”
“네.”
시몬도 진지하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일단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건, 내가 ‘제7군단의 죄를 사하겠다!’고 선언한다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란 거야.”
그녀가 두 손바닥을 침대에 붙이고 몸을 뒤로 기울였다.
“프리스트를 위해 같은 동료 네크로맨서들을 죽인 사태잖아? 전례 없는 사태인 만큼 여론이 극도로 나빠. 장로들이나 고위계 네크로맨서들은 물론, 그 사태의 생존자들과 가족들까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지.”
“그, 그렇겠네요.”
시몬이 고개를 푹 숙였다.
역시 이 사실은 평생 숨겨야만 하는 걸까.
“다만!”
네프티스가 검지를 착 세웠다.
“안 된다는 대답은 아니었어. 시간이 걸릴 뿐이야. 들끓던 여론을 조금씩 잠재우고, 사람들의 인식을 밑바닥부터 바꿔나가면 가능해.”
그 말에 시몬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정말 인식을 바꾸는 게 가능할까요?”
“웅웅. 물론 리처드의 죄 자체는 쉽게 사라지지 않겠지만, 이번 ‘시몬 군단’과 ‘리처드 군단’은 엄연히 다르다! 하는 느낌으로 밀고 나가는 거야. 사실 에이션트 언데드들은 명령대로 따랐을 뿐이고, 과거 때문에 신성연방에 맞설 강력한 전력을 묻어버리는 건 문제가 있다는 어필을 슝슝 하는 거지.”
네프티스가 시몬과 눈을 마주하며 빵긋 웃었다.
“물론~ 네가 키젠에서 적응 못 하고 그저 그런 네크로맨서로 남았다면, 장로들도 널 없애고 다른 군단장을 세우는 데 거리낌이 없었을 거야.”
“……아.”
“하지만, 시몬 폴렌티아라는 이름이 갖는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어.”
그녀가 벌러덩 침대에 누웠다. 투명한 은빛 머리카락이 침대보 위로 부채처럼 펼쳐졌다.
“특례 1번 입학생에, 진급시험은 1위로 통과했지. 거기에 성녀와 싸웠고 혈천교의 암투를 막아내기도 했어. 넌 정말 잘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키젠 안에서 인정받는 건, 암흑연합 전체에 인정받는 거나 다름없지.”
네프티스의 호수 같은 눈동자가 시몬에게로 향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열심히 해~ 네 영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나도 제7군단에 대한 인식과 여론을 바꾸는 밑 작업이 쉬워질 테니까.”
사실상의 긍정이었다. 시몬은 속으로 환호하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네프티스 님.”
네프티스가 호잇 하고 일어나 시몬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응응, 착하지~”
시몬이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외견으로는 한참 어린 소녀에게 쓰다듬을 받는 기분은 묘했다.
‘어차피 한꺼번에 해결될 거라곤 기대도 안 했어. 하지만 네프티스 님이라면.’
이번 사태로 네프티스의 정치력과 언론장악능력은 잘 봤다. 그녀의 솜씨를 봤기에, 그녀가 직접 7군단 복귀에 대한 밑 작업을 해준다는 이야기도 신뢰할 수 있었다.
“물론.”
시몬의 머리에서 손을 뗀 네프티스가 뒷짐을 지고는 폴짝 침대에서 내려왔다.
“이걸로는 네 부탁을 완전히 다 들어준 건 아니니까. 나중에 내 개인적인 선물도 줄게. 괜찮지?”
“서, 선물요?”
“응! 그건 아직 비밀이야~ 신학기 선물로 줄 거거든!”
네프티스가 깜찍하게 윙크했다.
“암튼! 키젠 2학년으로 진급한 걸 축하해. 시몬!”
* * *
네프티스가 나간 후, 의료진이 들어와 시몬의 몸 상태를 세부 검진했다.
시몬은 당장에라도 나가고 싶었지만, 지금 건강 상태로 퇴원은 불가능했다. 의료진은 재차 ‘절대안정’을 강조하며 병실 밖으로 나갔다.
‘……이제 아무도 없지?’
의료진이 모두 나간 뒤, 시몬은 주위를 휙휙 둘러보고 있었다.
누가 있는지 몇 번이고 확인한 뒤에 창문을 닫고 커튼까지 쳤다.
‘좋아.’
사실 깨어난 뒤로 계속 초조했었다.
무려 5일이나 잠들어 있었다니!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다.
‘몸의 감각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는데.’
저번에 실라지 전에서 사용했던 보이드라는 힘.
-미안하지만 이 정보들은 돌아가면 잊혀질 거야. 기억하고 있으면 뇌가 그대로 타버릴 테니까.
보이드를 알려준 그 ‘존재’는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했다.
물론 그 ‘존재’에게 보이드를 선물로 받은 건 맞다. 하지만 보이드를 사용하려면 대륙에는 존재하지도 않은 초월적 이론을 활용해야했고, 상상도 못할 지식량이 필요하다.
다른 정보들이 전부 증발되고 5일 만에 깨어난 지금, 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비유하자면 운전대만 손에 잡은 채 열차를 통째로 잃어버린 기관사가 된 격이다.
‘뭐, 그래도 내가 한번 써본 힘이란 사실은 명백해.’
똑같이 재현하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 힘을 비슷하게나마 흉내라도 낼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하게 강해질 수 있다.
그리고 이 기술을 재현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이제 사람들 앞에서 헤르세바를 쓰지 못하게 됐으니까.’
시몬은 헤르세바를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결투평가에서 썼고, 연구자들 앞에서 논문을 써서 발표까지 했다.
그런데 독자적인 칠흑을 쓰던 헤르세바가 갑자기 시몬의 칠흑을 뿜어내며 능력을 구사하고, 거기서 나오는 미라까지 동일한 칠흑을 쓴다면?
군단장을 의심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좋아. 누워 있을 시간도 아까워!’
목표를 세운 시몬이 침대에 앉아 두 손바닥을 펼쳐 들었다.
‘칠흑.’
시몬의 오른손에서 칠흑이 솟구쳤다.
‘신성.’
그러나 왼손은 잠잠했다.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그때는 그냥 손바닥을 펼치는 순간에 나왔는데. 시몬은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
파아앗!
비로소 왼손에서 신성이 흘러나왔다. 시몬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오른손을 보았다.
“……미치겠네.”
이번엔 신성을 켜니까 칠흑이 꺼져 버렸다. 시몬이 풀썩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역시 어렵다.
칠흑과 신성 어느 쪽이든 다룰 수 있지만, ‘양쪽 모두를 동시에 다루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시몬은 눈을 감고 그때의 감각의 떠올려 보려 애썼다.
‘그래, 몸의 감각이 미세하게나마 남아 있는 지금 어떻게든 감을 잡아야 해.’
일단 차근차근 기초부터 정리해 보기로 했다.
칠흑은 대기 중의 마나를 호흡으로 끌어들인 다음, 코어에 마나를 통과시켜 만든다. 그것을 코어에 쌓아뒀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다.
그리고 신성은 살짝 원리가 다른 게, 정신적으로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체내의 마나를 체외로 꺼내는 순간 마나가 신성으로 발현하는 게 기본이다. 물론 정신력이 크게 소모된다.
‘그래 이거야!’
시몬이 무릎을 쳤다.
‘코어를 여는 순간 전신에 칠흑이 쫙 퍼져 나가잖아. 키젠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네크로맨서의 습관이 굳어진 거야.’
시몬은 이번엔 의도적으로 칠흑을 통제했다.
칠흑이 퍼지는 건 오른쪽뿐.
왼쪽은 신성을 위해 남겨둔다.
“칠흑.”
그리고 소량의 칠흑만 뽑아내 오른손에 일으킨다. 이걸 의식하고 유지한 상태에서.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
파앗!
왼손에 신성이 피어났다.
얼른 오른쪽을 보니 칠흑이 흐물흐물해져 있었지만, 심장으로부터 칠흑을 공급받아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됐다! 이제 이 두 가지 힘을!”
시몬이 양손을 맞부딪혔다.
“합치면……!”
꽈아아아아아앙!
“무, 무슨 일입니까!”
폭발음을 들은 병동 관리원이 기겁하며 시몬의 병실 문을 열어젖혔다.
후두두둑-
마치 마나 폭발. 침대가 박살 나고 천장에서 잔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 사이에 엎어져 있는 시몬이 ‘하하’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 아, 아무 일도 아니에요!”
이후 병동에서 흑마법을 쓴 거냐며 엄청나게 혼났다.
* * *
시몬은 다른 새 병실로 옮겨졌다.
다행히도 시몬의 편의를 무조건 최우선으로 봐주라는 네프티스의 명령이 떨어진 뒤였기에, 병동 측에서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일 처리도 상당히 빠릿빠릿했다.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거의 30분 내내 잔소리를 퍼부은 병동 의사가 돌아가려는데 시몬이 급히 붙잡았다.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말해보세요. 시몬 학생.”
“혹시 1학년 신성 방어학의 ‘파라한 교수’님을 불러주실 수 없으실까요?”
그 한 마디에, 병동 의사의 몸에서 열화 같은 분노가 뿜어져 나왔다.
“……지금 이 신성한 병동에 프리스트를 부르겠단 겁니까!!”
그렇게 잠시 후.
“허허허! 자네, 무사해서 참으로 다행이네!”
하얀 도복 차림에 흰 수염을 길게 기른 파라한이 정말로 시몬의 병실에 찾아왔다.
그 위로 ‘야옹!’하고 두 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고개를 빼꼼 들었다.
“하양아! 까망아!”
고양이들은 시몬을 보자마자 내려와 호들갑을 떨고 난리를 부려댔다. 만져달라 안아달라 비비적대고 야옹야옹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 신성한 병동에 프리스트에 애완동물까지 데려오다니! 크으윽!”
병동 의사가 부들부들 떨었고, 관리원들이 애써 웃으며 그를 달랬다.
아무리 그래도 네프티스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탁.
이내 병동 문이 닫히고 파라한과 시몬이 마주 보았다.
“이런 민감한 장소에 부르다니, 허허!”
파라한이 수염을 쓸었다.
“보다시피 나는 프리스트라 행실을 조심해야 하는 입장이네.”
“죄, 죄송합니다. 사실 급하게 상담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서요.”
시몬은 파라한에게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
바로 공허에 대한 이야기.
실라지와 싸우는 도중 바힐에게 배운 ‘콤펠로니아’라는 저주를 스스로에 걸었고, 어떻게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분명 칠흑과 신성을 합쳐서 실라지와 싸웠다고 말했다.
“……이 늙은이의 머리로는 도저히 믿기 힘든 이야기군.”
파라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 긴 세월 살아오며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네. 의식을 잃었던 동안 허상이나 환상을 본 게 아닌가?”
파라한은 전혀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전에 실라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보고도 못 믿었다.
네크로맨서든 프리스트든, 오랜 세월 한 분야에 종사한 사람일수록 더더욱 그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파라한을 믿게 하고 말고는 문제가 아니었다.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시몬은 파라한이 본인의 집과 연구실에 설치했던 그 신성의 기척을 없애는 마법진을 설치해 달라고 부탁했다.
파라한은 흔쾌히 나섰다.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침대 뒤편이나 벽 구석에 그렸고, 소음 마법진까지 추가로 설치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
시몬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자네가 본 것이 진짜인지는 모르겠으나, 새로운 것을 탐구하려는 생각 자체는 나쁜 게 아니지. 부디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구먼.”
어느새 파라한의 머리 위로 올라온 하양이가 ‘야옹~’하고 울었다.
* * *
칠흑과 신성의 결합.
이 정신 나간 실험도 계속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겼다.
전체적으로 두 속성의 화력을 약하게 설정한 다음, 신성의 비율을 전보다 더 낮춰서 부딪히면 약간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상성의 우위는 신성 쪽에 있기에, 신성을 비율을 낮추는 게 핵심이었다.
그러나.
퍼어어엉!
또 실패를 맛보았다. 칠흑과 신성이 부딪힐 때 0.1초도 되지 않는 극도의 짧은 시간 동안만 공존했고, 두 속성이 폭발하거나 신성이 칠흑을 잡아먹거나 했다.
사실상 두 힘의 공존은 불가능했다.
‘……피곤하네.’
어느새 시간도 저녁이었다. 완전히 녹초가 된 시몬이 침대에 대자로 퍼질러 누웠다.
‘진짜 내가 환상이라도 봤던 걸까.’
시몬은 두 손을 움직여 감각에 의존했다.
이렇게. 이렇게. 막 두 힘을 이렇게 섞으니까 됐었는데.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시몬이 잽싸게 잔존해 있던 신성의 흔적을 없앴다. 파라한이 설치해 준 배수로 같은 마법진에 신성이 빨려들어 갔다.
“네. 들어오세요.”
달칵.
문이 열리며 병동의 관리원이 들어왔다.
“시몬 학생? 주사 맞을 시간이에요.”
관리원이 주사기를 들어 올린 채 혀를 달싹였다.
“자! 어서 바지와 속옷을 내리고 침대에 엎드리도록 하세요!”
“…….”
시몬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마. 에르제.”
[히잉.]관리원이 아쉬운 탄성을 흘렸다.
이내 그녀의 전신이 흘러내리더니, 키젠 교복을 입은 분홍 머리 여학생으로 변했다. 오랜만에 보는 ‘엘리자베스 웨퍼’의 모습이다.
“들킨 사람은 없지?”
[그럼요! 저를 뭐로 보시고~ 키젠의 감시 결계도 뚫는 유능한 스파이랍니다!]“좋아, 그럼 가자.”
시몬이 아공간에서 로브를 꺼내서 겉에 두르고는 몸을 일으켰다.
“내일 아침까지는 돌아와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