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410)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410화
산뜻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이스라필의 모습.
예상치 못한 만남이라서 그럴까. 다른 의문은 제쳐놓고 반가움만 가득했다.
뭐라고 인사할지 고민하던 시몬이 살짝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라툴라 미 키빌리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이스라필 님.”
성녀와 고위 프리스트들에게 통용되는 인사. 물론 여기는 암흑연합이니 굳이 할 필요는 없었지만.
“아.”
이스라필은 감격한 눈치였다.
간단한 예의와 상대에 대한 존중만으로도, 커다란 호감을 얻을 수 있다.
만개하는 꽃처럼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두 팔을 벌렸다.
“이리 오세요. 시몬!”
“이스라필 님!”
두 사람이 부둥켜안으며 재회의 포옹을 했다. 성녀의 몸에 접촉하는 것도 신성연방에서는 커다란 불경이었지만, 이스라필은 파격에 파격으로 화답했다.
그녀는 키가 상당히 컸다. 아직 시몬도 다 자란 게 아니지만, 그의 키를 훌쩍 넘어서 있었다. 이스라필은 시몬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었다.
“시몬!”
언제나처럼 주방에 있던 시몬의 어머니 안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이번엔 두 사람이 포옹했다. 그녀의 앞치마에서 달콤한 애플파이 냄새가 났다.
“많이 배고프지? 앉으렴. 오늘 저녁은 힘 빡 줘서 준비했으니까!”
“네! 엄마!”
시몬도 무엇보다 집밥이 많이 그리웠다.
그렇게 네 사람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을 즐겼다.
오랜만에 먹는, 그리고 그 어디에서도 먹을 수 없는 안나만의 토마토 오믈렛을 떠먹으며 시몬은 진한 행복감을 느꼈다.
이스라필과 안나는 꺄르르 웃으며 수다를 떨어댔고, 리처드는 이스라필의 눈치를 보느라 대화에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저 두 사람은 그리 편한 관계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스라필 님이 여기까지 오신 거예요?”
시몬이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
식탁에 둘러앉아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키젠 본부의 입장에서 이 그림은 전례 없는 초대형 비상사태다.
무려 에프넬의 성녀가 연합의 영토 깊은 곳까지 들어온 상황. 전국의 ‘까마귀’들이 거품을 물고 몰려들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조금 번거로운 수를 썼답니다.”
그렇게 말한 그녀가 목에 차고 있는 검은색 초커 목걸이를 매만졌다.
“성녀의 힘을 봉인하는 아티팩트예요. 이걸 차고 있으면 암흑연합의 감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하, 하지만 힘을 봉인하면 너무 위험하지 않아요? 여긴 적진 한복판인데…….”
“괜찮답니다.”
그녀가 가느다란 두 팔로 안나와 시몬의 등을 쓸었다.
“우리 사랑하는 언니와 조카가 지켜줄 테니까요. 그렇죠?”
“무, 물론이죠!”
시몬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안나도 생긋 웃었다.
하지만 이 중에 가장 강력한 전력인 리처드는 쏙 빼는 이스라필이었다.
리처드는 익숙하다는 듯 웃어넘겼다. 당연한 대우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느낌? 리처드는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모든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레테나 이스라필 님이나. 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네.’
그래도 대놓고 적대적이었던 레테 정도는 아니었다. 이스라필은 가끔 리처드에게도 농담을 걸었고, 그때마다 시몬과 안나는 크게 웃으며 반응해 주었다.
두 사람도 이스라필과 리처드가 조금씩 친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식사가 끝났다.
“위험을 무릅쓰고 암흑연합에 오길 잘했어요. 이런 가족 같은 분위기는 오랜만이에요.”
이스라필이 우아하게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맛있었어?”
“네, 언니.”
언제나 눈을 감고 있던 이스라필의 눈이 살며시 떠지며, 심연을 연상케 하는 새까만 눈동자가 떠올랐다.
“확 연방으로 납치해서 매일 먹고 싶을 정도로.”
“오호호호! 얘도 참~”
안나의 입장에선 커다란 극찬이었기에 발그레해진 얼굴로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반면 리처드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농담이랍니다.”
이스라필이 다시 감은 눈으로 돌아오며 시몬을 향해 싱긋 눈웃음을 흘렸다.
“그럼, 처제.”
리처드가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가장다운 무게감을 뿜어냈다.
“이제 시몬에게 제안을 들려주시는 건 어떻겠소.”
“그러네요. 형부.”
이스라필이 몸을 틀어서 시몬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가지런한 몸가짐에, 시몬도 긴장하며 흐트러진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스라필 님. 무슨 제안을…….”
“시몬, 한 가지 의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시몬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다. 성녀의 의뢰라니! 그것도 나한테?
이스라필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들었다.
“대륙의 북쪽에서 커다란 악(惡)이 느껴집니다. 이 기운은 신성연방에 가면 더 뚜렷해지죠.”
신성연방의 북부 지역, 사시사철 눈이 내리는 킨버 지방이라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 커다란 악의 기운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고 이스라필은 말했다.
“제가 직접 그 악을 퇴치하러 가보았지만, 실패했습니다. 그 악은 굳게 봉인되어 있었으니까요.”
이스라필의 감은 눈이 시몬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 봉인을 풀려면 신성과 칠흑이 함께 필요했습니다.”
“……아.”
“제가 아는 네크로맨서들 중, 정체를 숨기고 이단심문관도 따돌리면서 신성연방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죠.”
이스라필이 저렇게까지 말해주다니.
어쩐지 어깨에 힘에 들어가는 이야기였다.
“이 악은 언젠가 신성연방을 넘어 암흑연합까지. 대륙 전체를 위협하게 될 겁니다. 시몬, 부디 제 의뢰를 받아주세요.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그 악을 막아주었으면 합니다.”
시몬이 한결 진지한 얼굴로 턱을 쓸었다.
“음, 그 악이라는 게 조금 추상적인데요.”
“현장에 직접 가면 바로 알 수 있을 거랍니다. 우수한 길잡이를 붙여 드릴게요.”
‘……으으음.’
사실 시몬의 입장에선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첫째, 방학 동안 신성연방에 가 있으면 매그너스의 추적과 위협에서 완벽히 벗어날 수 있다. 어차피 집에서도 며칠만 쉬었다가 레스힐에서 벗어날 생각이었다.
둘째, 시몬은 대부분의 시간을 키젠에서 보냈다. 신성연방은 백마법과 신성을 훈련할 좋은 기회다.
칠흑과 신성. 양쪽 다 강해져야 시몬의 신기술인 ‘혼돈’도 더 강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셋째, 이스라필에게는 어머니 안나의 목숨을 빚졌다. 이건 무조건 갚아야 할 빚이다.
“좋아요.”
고민 끝에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스라필 님이 목숨을 걸고 암흑연합까지 부탁하러 오셨는데 모른 척할 순 없죠. 그 의뢰. 제가 맡겠습니다.”
이스라필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살며시 입을 가렸다.
“아직 의뢰 보수도 이야기 안 했는데요.”
“네? 아, 하하! 그, 그러네요!”
오히려 그런 반응이 이스라필의 호감을 역으로 더 올려 버린 것 같았다. 그녀의 고개가 리처드 쪽으로 돌아갔다.
“형부.”
“예, 처제.”
그녀가 빙긋 웃었다.
“……정말이지, 당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리처드는 허허 웃으며 당연하다는 듯 넘겼지만, 시몬 쪽으로 열렬하게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고 있었다.
“시몬, 레테에게 들은 바로는 신수학 쪽에 재능이 있다면서요?”
시몬이 무안한 듯 귓불을 긁었다.
“재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신수학이 제일 좋아요.”
“이 임무를 맡아주시면 포상금 1만 골드. 그리고 암흑연합에서는 절대 구할 수 없는, 최상급의 신수 전용 아티팩트를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1만 골드!!
거기에 신성연방에서만 구할 수 있는 신수 전용 아티팩트라니!
이건 무조건 해야 했다. 시몬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맡겨주시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 *
날이 깊어져 밤이 찾아왔다.
-야옹! 야옹!
-냥!
이스라필이 말 나온 김에 어떤 신수를 가졌는지 물어보자, 시몬은 신성 아공간에서 하양이와 까망이를 꺼내 보여주었다.
“귀여워!”
전 기적의 성녀와, 현역 신해의 성녀가 파자마 차림으로 새끼 고양이들의 애교를 감상하고 있었다.
안나가 장신구를 실에 매달아 휙휙 흔들자, 고양이들이 앙증맞은 앞발을 들며 사냥본능을 발휘했다. 꺅꺅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설거지를 마치고 돌아온 시몬이 그 모습을 보며 옅은 미소를 흘렸다.
‘엄마가 소녀 시절로 돌아가 있다는 아버지의 말이 저거였구나.’
안나와 이스라필은 함께 에프넬도 졸업한 만큼, 누구보다 절친한 사이였다.
한편 리처드는 바닥에 떨어진 고양이 털을 치우고 있었다. 그가 한숨을 푹푹 쉬었다.
“털이 많이 날리는구나. 네 엄마랑 처제가 데리고 노는 게 끝나면, 얼른 신성 아공간에 넣어두어라.”
“아버지는 안 보러 가요?”
“난 인간 외의 그 어떤 동물에도 관심 없다.”
그렇게 말한 다음 날 아침.
바닥에 엎드린 채 장난감으로 고양이들의 관심을 끌던 리처드가, 물을 마시러 내려온 시몬과 눈을 마주쳤다.
“…….”
“…….”
-야오옹!
새끼 고양이들은 리처드를 외면하고 시몬에게 우다다 달려왔다.
* * *
이틀 뒤.
시몬은 이스라필과 함께 신성연방으로 출발했다.
초장거리 텔레포트 마법진을 준비해 놓았다기에, 슝슝 이동해서 눈을 뜨면 신성연방에 도착해 있을 거라고 시몬은 생각했지만.
달그락달그락.
현실과 이상은 매우 달랐다.
“…….”
마차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 상인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좁고 어둡고 흔들리는 상자 속, 시몬과 이스라필은 극도로 좁은 공간 안에 서로 몸을 포개듯이 해서 마주 보고 있었다.
‘이거 어디선가에서 겪어본 상황인데!’
시몬의 뒤통수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심지어 오래 버티려고 서로의 다리에 다리가 껴 있는 자세였다. 여기서 조금만 잘못 움직이면 최악의 경우, 서로의 무릎이 고간에 닿을 수도 있었다.
마차 바퀴가 돌부리 같은 것에 부딪혀 들썩들썩하면 시몬의 심장도 같이 철렁철렁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도 이스라필의 아름다움은 빛이 바래지 않았다. 밀착한 그녀의 몸에서는 은은한 휴양지의 바다향이 났다.
애써 다른 곳을 보고 있던 시몬이 눈을 떴다.
이스라필은 빤히 시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생긋 눈웃음을 짓자, 시몬이 얼굴을 붉히며 얼른 고개를 돌렸고, 이스라필의 자잘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 이스라필 님.”
“네~”
“성녀시잖아요. 꼭 이런 방법으로 가야 하나요?”
상단 짐 마차의 나무상자에 들어가서 국경 통과하기. 시몬은 몇 번 겪어봤지만 상당히 고되고 힘들었다.
그녀가 후훗 웃었다.
“신성연방 측에도 들키면 안 되니까요.”
“…….”
“올 때도 지금처럼 똑같이 짐 마차에 실려서 들어왔답니다.”
짐 마차 상자에 성녀를 구겨 넣고 옮기고 있다.
만약 이 마차를 옮기는 상인 중 데바교 신도가 있다면, 죄책감과 배덕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제 곧 신성의 문을 통과하나 보네요.”
신성연방의 국경에 있는 신성의 문.
부정한 물건이나 숨어 있는 네크로맨서를 걸러내는 곳이다.
이스라필이 팔을 뻗었다.
“지켜줄게요. 우리 조카.”
그러곤 시몬을 꼭 끌어안아 주었다.
그녀의 몸에서 퍼져 나가는 은은한 신성이 시몬의 몸을 덮었다. 시몬은 민망함에 얼굴에 피가 쏠려 죽을 지경이었다.
“아.”
그때 이스라필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 강하게 안으면 곤란하답니다. 엄밀히 말하면 저와 시몬은 피 한 방울 안 섞였으니.”
“!!!”
시몬의 얼굴이 화아악 달아오르는 순간, 신성의 문을 통과한 게 느껴졌다.
비로소 이스라필이 시몬을 놔주며 말했다.
“농담이랍니다.”
두 번 농담했다간 진짜 죽겠다.
시몬이 혼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자, 이스라필은 장난스러운 어른처럼 쿡쿡 웃었다.
“저기…… 이스라필 님.”
이대로 침묵하고 있으면 더 어색해질 것 같았던 시몬이 애써 말을 걸었다.
“그런데 저랑 같이 간다는 그 길잡이는 누구예요?”
이스라필이 생긋 웃었다.
“궁금한가요?”
* * *
“에, 엣취!”
잠이 덜 깬 표정의 소녀가 기침을 했다. 하얀 머리카락을 빗겨주던 하인이 웃었다.
“왜 그러세요? 레테 성녀님.”
소녀가 무안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아, 음. 잘 모르겠슴다. 감기라도 걸린 것 같아요.”
하인이 오호호! 웃었다.
“성녀가 어떻게 감기에 걸려요? 농담도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