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569)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69화
시간의 탑 계획.
애당초 상아탑의 계획은 중립지대로 넘어가 제3지대를 형성하는 거였고, 실제로도 그렇게 준비를 해왔지만, 상아탑주와 그의 측근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같은 ‘급진파’라도 이 계획을 알고 있는 자들은 극소수.
상아탑주는 ‘얼어붙은 시계’의 봉인을 해제한 뒤, 게이트 사태 그 이상으로 폭주시킬 거라고 했다. 말 그대로 거대한 ‘시간폭탄’이 된 이 탑을 로크섬으로 이동시켜 터뜨린다는 게 계획의 골자였다.
이야기를 듣던 시몬은 멍해진 표정으로 물었다.
“그,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건데?”
“어떻게 되긴요.”
세르네가 싱긋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시간 폭탄’의 범위는 최소 로크섬 전역과 인근의 바다, 심지어 랭거스틴의 일부까지 닿아요. 키젠은 영원한 시간의 굴레에 붙잡혀 완전히 파멸하겠죠.”
지금 시간의 탑에서 과거가 재현되거나 하는 건 약과에 불과하다. 막 상아탑에 게이트가 열리고 던전이 활성화됐을 때는 그야말로 대재해였다.
이미 죽은 전대의 상아탑주들이 등장해 막아섰고, 심지어 미래의 인물들까지 출현했다. 현재에 붙잡혀서 아무것도 못 하고 같은 행위만 반복하는 자들도 있었다.
“이 계획의 가장 멋진 점은, 적어도 네프티스는 확실히 말살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두 손을 맞잡은 세르네가 해맑게 웃었다.
“시간의 이능을 가진 그녀이기에, 엉킨 실타래처럼 더더욱 시간에 얽매이겠죠. 어쩌면 네프티스를 잡을 유일한 기회일지도 몰라요. 마침 그녀가 로크섬에 복귀했다는 정보가 들어왔답니다.”
“…….”
“이 모든 죄는 공간계 마법의 대가인 ‘기르돈’에게 뒤집어씌울 예정이에요. 키젠의 원한을 가진 그가 100층을 탈취한 뒤 저지른 일로 치는 거죠. 그렇게 키젠이 사라진 뒤, 우리 상아탑이 암흑연합을 접수할 거랍니다.”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시몬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제안 하나 할게요. 시몬.”
“……?”
“당신을 위험천만한 로크섬에서 빼돌리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요. 키젠의 멸망은 기정사실이고, 이제 암흑연합은 우리 상아탑이 차지하게 될 거예요.”
그녀가 손바닥을 펼치며 웃어 보였다.
“상아탑으로 오세요. 시몬.”
“…….”
물끄러미 세르네를 응시하던 시몬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날 영입하려는 이유는, 저 ‘얼어붙은 시계’의 봉인을 해제하기 위해서야?”
시몬의 지적은 예리했다.
저들이 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 가지 중요한 난관이 있었다. 바로 던전주인 ‘얼어붙은 시계’의 봉인을 해제하는 것.
일단 봉인을 풀어야 폭주든 뭐든 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저 시계를 뒤덮은 얼음은 파괴할 수 없는 종류의 봉인이었다. 파멸의 대검으로도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설마요~”
세르네가 제 뺨을 감싸는 시늉을 했다.
“제아무리 군단장인 시몬이라도 저 봉인을 해제할 수는 없어요. 저건 300년 전 빙백의 마도사가 목숨을 바쳐 걸었던 ‘절대봉인’ 마법이에요.”
시몬의 눈이 커졌다.
‘……절대봉인?’
“사용자의 목숨을 희생하는 대신, 상대를 깨지지 않는 얼음 속에 가둬 영원히 봉인해 버리는 순수 원소 마법이에요. 그리고 절대봉인을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시 한번 똑같은 절대봉인 마법을 걸어서 해제하는 거죠.”
시몬의 입이 벌어졌다.
“잠깐만, 사용자의 목숨을 희생해야 한다고?”
“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나 할 수 없는 기술이에요. 정령의 가호를 받은 마법사나, 상아탑에서는 빙백의 마도사의 피를 진하게 물려받은 마법사만이 할 수 있는 기술이죠. 그런데 최근에 그런 재능이 한 명 태어났어요.”
그녀가 혀를 달싹였다.
“누군지 아시겠나요? 시몬도 아는 사람일 텐…….”
“세르네!”
시몬이 거칠게 소리쳤다.
“너 설마 메이린을……!”
“모두를 구할 수는 없어요. 불가피한 희생이죠.”
그녀가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었다.
“적어도 한 사람은 포기할 수밖에 없네요.”
시몬의 입술이 덜덜 떨렸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네, 진심이에요. 그런 것보다 시몬? 상아탑으로 오세요. 여기 오는 것만이 당신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에요.”
시몬이 이를 갈았다.
“목숨이나 연명하라는 그딴 제안은 거절하겠어.”
“아, 역시 안 되려나요.”
빙긋빙긋 웃고 있던 세르네의 얼굴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럼 어쩔 수 없죠.”
그녀의 머리칼이 휘날렸다. 주위로 무수한 순백의 깃털들이 날아다니며 빙글빙글 회전했다. 시몬도 파멸의 대검을 앞세웠다.
“우리가 싸운 건 1학년 때 섬 생존평가 이후 처음이죠?”
두 사람의 칠흑이 경쟁하듯 솟구쳐 올랐다.
세르네와의 전투.
군단장의 힘을 쓴다고 해도 우열을 가릴 수 없다. 시몬은 천천히 대검을 잡아당겼고, 세르네는 깃털을 마법진의 형상으로 바꾸었다.
“준비됐어요?”
“…….”
공기가 팽팽해지며 두 칠흑이 맞부딪혔다.
두 사람이 당장이라도 격돌하려는 순간.
“관두자.”
쾅!
시몬이 먼저 대검의 끝을 내렸다. 싸우려던 세르네가 의아한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세르네, 넌 너만 타인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줄 알겠지만 그건 착각이야. 다른 사람도 널 끊임없이 관찰하고 분석해.”
시몬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타인을 시험하려 할 때 넌 늘 그렇게 웃어. 장난을 칠 때, 반응을 보고 싶을 때, 메이린이랑 싸울 때, 그리고 나랑 싸울 때도 그랬지.”
“그런……가요?”
처음 안 사실이라는 듯 세르네가 눈을 끔뻑거렸다. 시몬이 팔을 펼쳤다.
“네가 진심으로 날 공범으로 만들 생각이었다면, 죽기 싫으면 상아탑에 들어와라. 이딴 멍청한 논리로 날 설득하진 않았을 거야. 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옆에서 충분히 지켜 봐왔을 테니까.”
“…….”
“적당한 거짓말로 날 이용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영입을 이유로 모든 진실을 까발리는 이유. 심지어 메이린을 희생한다고까지 말한 이유. 넌 이 정보에서 내가 뭔가를 알아봐 주길 바라는 거야. 내 말이 틀려?”
시몬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뭐지? 세르네.”
흐.
흐후후.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은 그녀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못 당하겠네요.”
그녀가 손바닥을 떼어 팔을 늘어뜨렸을 때, 그녀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내가 말했지 않나. 세르네.]갑자기 들린 제3자의 목소리에 시몬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토록 찾았던 ‘시간의 유령’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 강직한 친구를 떠보는 건 의미 없는 짓이라고.]두 사람은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시몬이 의아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자, 시간의 유령이 말했다.
[클클, 전에 말하지 않았나? 내 연구성과를 가져가는 사람에 대해.]‘아.’
-가끔 창가에 내 연구성과를 두고 가기도 한다네. 그걸 또 매일 와서 받아먹고 자기 연구랍시고 등록해 상아탑의 최상위에 오른 자도 있지!
그게 세르네였었나.
시몬은 이제야 좀 어떻게 상황이 흘러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의 유령이 탑의 참극을 막기 위해서라며, 왜 세르네와 메이린의 과거를 보여줬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의 손에 빛이 일렁였다.
[1분 정도면 충분할 걸세.]화아아아악!
시몬의 시야가 뒤덮었다.
* * *
-이대로는 곧 죽겠군. 날 따라오겠느냐?
-오늘부터 내가 네 아비다. 내가 널 대륙에서 가장 위대한 인간으로 만들어주마.
어린 세르네는 상아탑주를 따라, 상아탑에 들어왔다.
상아탑주가 경고했던 대로 이곳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녀를 혐오하고 비난했다.
하지만.
-안녕, 세르네! 난 메이린이야. 여긴 처음이지? 우리 같이 놀자!
이 낯선 공간에서, 메이린은 세르네에 있어 한 줄기 희망이었다.
가장 세르네라는 존재를 경계해야 할 이 아이는, 누구보다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했다. 정치적인 공세를 펼치던 어른들도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날카로운 여론도 한풀 꺾였다.
그렇게 세르네와 메이린은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됐다.
서로에게 서로가 가장 소중했다.
-난 커서 상아탑주가 될 거야.
메이린은 진지하게 상아탑주 자리를 목표로 했다.
-약속할게, 메이린. 내가 널 상아탑주로 만들 거야.
세르네도 그 꿈을 응원해 주었다.
그녀들은 이 우정이 영원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진실을 아는 순간, 모든 것이 깨졌다.
마법공부 외에 정은 주지 않고, 방치하듯 세르네를 내버려 두던 상아탑주는 어느 날 그녀를 제 방으로 불러들였다.
“훌륭하구나.”
상아탑주가 감탄하며 말했다. 그가 책상에 내려놓은 건, 세르네가 얼린 ‘빙제의 구슬’이었다. 구슬이 언 것도 모자라 삐쭉삐쭉 고드름이 솟아 있었다.
“이 빙제의 구슬이 어떤 물건인지 아느냐.”
상아탑주의 물음에, 세르네는 고개를 저었다.
“자세히 들은 적은 없어요. 그저 어른들이 이 구슬을 얼리면 대단한 마법사라고…….”
“그래.”
상아탑주가 빙제의 구슬을 덮은 얼음을 깨끗하게 없앤 다음,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이건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 시간의 탑을 봉인했던 ‘빙백의 마도사’가 자신의 빙결마법을 훈련하기 위해 만든 구슬이다.”
“아…….”
“이 구슬을 얼리기 위해선 선천적인 빙결 마법에 대한 재능이 필요하지. 아니, 재능이라기보다는 정령의 가호라고 하는 게 옳겠구나.”
상아탑주가 구슬에 빙결마법을 사용했지만, 어마어마한 마력이 움직여도 구술은 얼지 않았다. 애꿎은 아래의 책상만 꽁꽁 얼어붙었다.
“빙백의 마도사 이후, 마나로 이 구슬을 조금이라도 얼린 마법사는 단 두 명뿐이다.”
“…….”
상아탑주가 구슬을 내려놓았다.
“우리 상아탑은, 오랜 시간 동안 빙백의 마도사와 같은 축복을 가진 아이를 찾아 헤맸다.”
“어째서죠? 강한 마법사라면 꼭 빙결계가 아니더라도…….”
“빙백의 마도사가 건 ‘절대봉인’을 풀기 위해.”
상아탑주는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상아탑의 계획을 설명해 주었다.
중립지대로의 이전 계획. 그리고, 목숨을 대가로 사용되는 절대봉인 마법. 이 절대봉인은 같은 절대봉인으로만 해제할 수 있다.
설명을 들은 세르네는 놀라서 펄쩍 뛰었다.
“자, 잠깐만요! 그렇다면……!”
“그래.”
상아탑주가 눈을 감았다.
“메이린은 20세에 상아탑주가 된다. 그리고 탑을 지켜야 하는 존재로서, 탑의 고귀한 뜻을 받들어 스스로의 목숨을 희생해 시간의 탑에 있는 봉인을 풀게 될 게다.”
“……!”
굳어진 채로 입을 벌리고 있던 세르네가 벌컥 화를 냈다.
“어, 어째서죠? 용납할 수 없어요! 왜 메이린이 탑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데요? 메이린의 의사는요!”
“영광스러운 일이지. 인간의 수명은 짧지만, 그녀의 이름은 영원히 상아탑에 남을 거다.”
“억울하게 죽는데 이름을 남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요! 그건 희생이 아니라 살인이에요!”
세르네가 이토록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는 건 처음이었기에, 상아탑주는 내심 놀랬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했다.
“희생은 불가피하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우리 상아탑은 키젠에 휘말려 갈기갈기 찢겨 나갈 거다.”
그가 세르네의 머리에 천천히 손을 올렸다.
“넌 영특한 아이니까 잘 알아들으리라 믿으마. 그리고 앞으로는 빙제의 구슬을 얼려서 어른들의 시선을 끄는 짓은 하지 말아라. 얼어붙은 시계의 봉인을 푸는 건 메이린이다. 그녀가 죽은 뒤에 네가 상아탑주가 되면…….”
타악!
세르네가 상아탑주의 손을 거칠게 치우고는, 빙제의 구슬을 손에 쥐었다.
“아뇨, 아버지. 메이린은 그럴 실력이 안 돼요.”
촤르르륵!
그녀가 빙제의 구슬에 힘을 주자 얼음이 마구 솟구쳐 올랐다.
“이거 보세요! 제가 빙제의 구슬을 이만큼 얼렸다구요! 메이린은 이렇게 못 해요!”
애초에 모든 건 메이린이 절대봉인을 풀 수 있다는 전제다.
단순히 빙제의 구슬을 겉면만 얼리는 수준으로 절대봉인을 풀 수 있을까? 만약 실패하면 애꿎은 메이린의 목숨만 날아가는 거였다.
세르네는 바로 그 맹점을 어필하고 있었다.
“세르네, 넌 우리의 희망이다. 그 불량품 대신 완벽한 네가 희생하는 건…….”
그녀가 시뻘게진 눈으로 외쳤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어요!”
“세르네!”
“제가 상아탑주가 될 거예요!!”
그녀가 지지 않고 소리 질렀다.
“절대봉인을 푸는 건 제가……!”
타다닥-
그때 멀리서 발소리 같은 게 들렸다. 세르네가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지만 발소리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그 말, 진심이냐. 네가 그 애 대신 죽겠다는 게냐?”
상아탑주가 무거운 시선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네, 진심이에요.”
세르네가 이를 악물었다.
“저는 지금부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아탑주가 될 거예요. 그리고 제 손으로 절대봉인을 풀겠습니다.”
* * *
샤아아아아아-
이것으로 과거의 회상은 끝이었다.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시몬은 커다란 혼란에 빠졌다.
‘그러면 세르네는 처음부터…….’
모든 건 메이린을 위해서였다.
그녀가 상아탑주가 되려 했던 건, 절대봉인을 풀 자격을 얻어서 메이린 대신 본인이 희생하기 위해서였다.
세르네가 메이린을 도발하고 자극한 것도, 칠흑화염계를 주력으로 썼던 것도, 메이린이 자신에게 얽매여 주특기인 빙결마법을 더 이상 성장시키지 않게 하기 위한 자구책.
-약속할게. 내가 널 상아탑주로 만들 거야.
세르네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희생해서 사라지면, 자연히 다음 상아탑주 자리는 메이린에게 가게 된다.
‘그런 건……!’
시몬이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이내 흐려졌던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오고.
“!”
시몬은 자신의 팔다리가 벽에 고정되어 있는 것을 느꼈다. 몸에 깃털이 꽂혀 있어서 칠흑도 나오지 않았다. 언데드와의 사념도 느껴지지 않는다.
앞을 보았다. 시간의 유령은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고, 세르네는 빙긋 웃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짓이야? 세르네!”
“미안해요, 시몬. 잠시만 그렇게 있어주세요.”
세르네가 그렇게 말하고는 ‘얼어붙은 시계’를 향해 다가갔다.
“자유롭게 놔두면, 시몬은 날 뜯어말릴 테니까요.”
“너, 설마……!”
그녀가 얼어붙은 시계에 손을 올렸다.
“타라도스에서 같이 싸웠던 거 기억나시나요? ‘결사’들이 장악한 던전에 들어갔을 때, 나는 깃털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어요.”
“세르네! 잠깐! 이거 풀고 말해!”
그녀가 혓바닥을 달싹였다.
“쭉 보니까~ 시몬이 들고 있는 파멸의 대검에 새로운 기능이 추가됐더라고요. 던전주를 흡수하고, 던전을 장악하는 능력이었죠 아마?”
“……!”
“지금부터 절대봉인을 풀면, 나는 죽을 거예요. 내가 죽으면 시몬을 봉쇄한 그 마법도 풀리겠죠. 그때-”
세르네가 환하게 웃었다.
“시몬의 그 검으로 봉인 속의 던전주를 흡수해서 이 던전을 장악해 주세요.”
그것만이 상아탑주의 계획을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세르네는 판단한 것이다.
시몬의 표정이 괴롭게 일그러졌다.
“키젠을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왜……! 왜 그렇게까지 해서 상아탑주를 배신하는 거지?”
“왜냐하면-”
세르네가 빙긋 웃었다.
“상아탑주인 우리 아버지는 ‘결사’의 끄나풀이었으니까요.”
“……뭐?”
“타라도스 던전에 있던 자료들, 시몬과 로레인이 반반 가져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도 슬쩍 몇 가지 챙겼거든요. 거기 있는 회원리스트에 재미있는 사람의 이름이 있었어요.”
그녀의 눈에 냉기가 치밀었다.
“고작 그것밖에 안 되는 인간. 이번 기회에 키젠을 부술 수는 있겠지만, 그건 우리 상아탑이 위대해지는 길이 아니라 ‘결사’에 써 먹히고 놀아나는 짓이에요. 그런 건 참을 수 없어요. 우리가 키젠을 없애면, 아마도 그들이 암흑연합을 먹으려고 하겠죠.”
“세르네……!”
“무엇보다.”
세르네가 생긋 웃었다.
“그 인간이 자꾸 시몬을 죽이자고 하잖아요? 짜증 나게.”
-희생은 불가피하다.
“희생은 불가피해요. 당신과 메이린. 두 사람 모두를 살릴 길은 이것뿐이에요.”
세르네가 얼어붙은 시계에 손을 떼고 천천히 시몬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으며 시몬의 뺨을 매만졌다.
“시몬, 우리가 1학년에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요?”
“…….”
“섬 생존평가에서, 나랑 로레인이 싸우고 있는데 시몬이 끼어들어서 당돌하게 도움을 구했잖아요. 그때 우리 셋이 힘을 합쳐서 그 커다란 거인 언데드를 쓰러트렸죠.”
“세르네……!”
“아, 그리고 마투학 시간 때, 체내칠흑분화를 가르쳐 준 것도 기억나요? 그때 내가 슬쩍 백허그했었는데.”
함께 정화의 성녀와 싸워준 걸로 한 장.
함께 타라도스에서 결사를 무너뜨린 걸로 두 장.
세르네는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덤덤히 말을 늘어놓았다. 세르네가 쿠폰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그녀와의 추억이 파노라마처럼 새록새록 떠올랐다.
“마지막 부탁이에요. 아직 10장은 다 채우진 못했지만, 이 쿠폰을 모두 쓸게요.”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시몬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제가 죽으면 시몬이 상아탑주의 계획을 막아주세요. 알겠죠?”
그녀가 시몬의 뺨에서 손을 떼고 걸어가자 시몬이 거칠게 발버둥 쳤다.
“세르네!! 잠깐만!”
시몬이 소리쳤다.
“하지 마!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거야! 네가 여기서 죽을 필요는 없어! 제발……!”
“미안해요.”
세르네가 준비한 흑마법을 발동시켰다. 그녀의 전신에 마법진이 펼쳐지고 천장과 벽면에도 마법진이 공명하듯 흔들렸다.
그녀가 마법진이 범벅이 된 몸으로 ‘얼어붙은 시계’를 끌어안았다.
“잘 있어요, 시몬.”
“세르네에에에에!”
눈부신 광채와 굉음이 얼음을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