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588)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588화
키젠 학생들을 태운 다섯 대의 전투마차는, 몬스터들을 뚫고 유유히 가할족의 요새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현장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
“……결국 뚫어냈군.”
이들을 지켜보고 있는 두 명의 남자가 있었다.
“니들 일 처리가 영 별론데.”
바위에 걸터앉아 있던 도살업자가 두 식칼을 쓱쓱 부딪치며 중얼거렸다. 그는 여전히 피 묻은 앞치마 차림에 장화를 신고 있었다.
“저기서 파란 머리만 떼어놓겠다며?”
“그 소년의 대처가 좋았소.”
얼굴에 한쪽 눈만 남은 외눈 신사가 망원경을 내리며 말했다.
“처음 계획대로, 요새에서 그들을 잡을 수밖에 없겠소.”
“나는 상관없어.”
도살업자가 휘리릭 식칼을 돌리더니 앞치마 옆의 허리춤에 꽂아 넣었다. 그의 앞에는 흉내잡이 한 마리가 정갈하게 도축된 채 놓여 있었다.
“얘는 살점이 없어서 그런가, 써는 맛이 영 별로야.”
“뭔진 모르겠지만 유감이오.”
도살업자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불빛이 나는 방향을 보았다.
“가할족 최후의 요새라.”
그가 이죽거리며 팔짱을 꼈다.
“저런 곳에 학생들을 데려가? 키젠의 교육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이해불능이라니까.”
“저쯤이야 유별난 것도 아니오. 자고 있는 아이들을 전쟁터 한복판에 떨어뜨리기도 한다더군.”
“근데 말이야.”
도살업자는 시선을 움직여, 요새를 포위하고 있는 무수한 몬스터 떼를 응시했다.
“이 정도 규모의 몬스터라면, 그냥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끝나는 거 아닌가? 우리가 낄 여지가 없을 것 같은데.”
“본래라면 가할족은 여기서 멸망했을 것이오.”
외눈 신사의 눈동자가 굴러갔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소. 키젠 2학년 52명, 키젠 교수 두 명, 그들이 데려온 조교진까지. 어지간한 대영지의 요새보다 저기가 더 안전할 거요.”
도살업자가 걸걸한 웃음을 흘렸다.
“전쟁놀이하러 온 애들을 너무 높게 평가하는 거 아닌가?”
“적에 대한 정확한 분석은 필수적이오.”
외눈 신사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 쪽의 준비도 만전이오.”
케에에에-
키이이-
주위의 흉내잡이들이 시뻘건 액체가 든 포션을 들이켜고 있었다. 다른 흉내잡이들도 그 모습을 따라 하며, 그들의 행위가 퍼져 나가고 있었다.
몬스터들의 입가에서 홍색 입김이 흘러나오고 눈동자는 벌게졌다.
몬스터들이 강화되고 있었다.
“좋아, 좋아.”
도살업자가 피 묻은 손끝을 제 혓바닥에 대고 훑었다.
“파티를 즐겨보자고.”
* * *
마차와 요새와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첫 번째 열차에 타고 있던 그레리온이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조교들! 깃발을 내걸어라!”
“예!”
조교들은 마차에 키젠의 문양이 그려진 깃발과, 파란 바탕의 깃발을 교차한 채로 내걸었다.
학생들은 초조한 얼굴로 굳게 닫힌 성문을 바라보았다.
“……만약 저쪽에서 성문을 안 열어주면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게 되긴? 다 뒈지는 거지 뭐.”
그 이야기를 들은 에슈가 피식 웃었다.
“너 죽으면 내가 언데드로 만들어줄게. 좀비? 스켈레톤? 골라 골라.”
“선택지 쓰레기 같네. 하다못해 리치로 만들어줘 봐라.”
“키메라 엉덩이로 안 쓰는 걸 다행으로 알아.”
아하하!
큰 전투를 치르고 분위기가 처져 있는 상황. 이럴 때는 에슈의 활기찬 성격이 도움이 된다.
쉴 틈 없이 재잘거리는 그녀의 말을 귀찮아서 한 귀로 흘리면서도, 어느샌가 긴장이 풀려서 피식피식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의 말은, 장소가 어디든 일상의 순간을 잊지 않게 해준다. 학생들도 긴장이 풀렸는지 한마디씩 했다.
“와, 저기 성벽에 궁수들 좀 봐. 징글징글하게 많아!”
“……우, 우리한테 쏘진 않겠지?”
물론 토토처럼 사서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시몬은 긴장을 풀라는 의미에서 그의 허벅지를 가볍게 툭 때렸다.
쿠구구-!
다행히 저쪽에서 깃발을 확인했는지, 가할족 요새의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열어주나 봐!”
“들어간다!”
학생들은 그제야 안도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좁은 해자와 다리를 지나, 다섯 대의 전투마차는 무사히 요새 안으로 진입했다. 마차가 멈춰 서고 학생들이 하나둘씩 내렸다.
저쪽에서도 사람들이 오고 있었다. 한 무리의 가할족 전사들과, 유난히 갑옷 장식이 돋보이는 장년의 남자였다.
이쪽에서는 소환 재료학 교수, 그레리온이 대표로 앞으로 나갔다.
“하하하! 오랜만이오!”
“ⴋⴘØⴆⴇÐ!”
두 사람은 한 차례 뜨겁게 포옹하고는, 뭐라 뭐라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몬은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놀랍게도 그레리온은 가할족의 언어를 아는지 말이 통하고 있었다.
그레리온은 알쏭달쏭한 표정의 학생들을 돌아보며 친절하게 통역해 주었다.
“이렇게 먼 외지까지 도와주러 와서 고맙다고 하는군.”
“!”
학생들도 본인이 아는 외국어를 무분별하게 내뱉으며 가할족에게 인사했다. 마지막에 에슈가 ‘휘바 휘바’하고 말했지만, 의미불명이었다.
그래도 만국 공통어인 악수는 통했다. 친화력 좋은 학생들은 병사들과 손을 맞잡거나, 주먹을 맞부딪히기도 했다.
“아론 교수.”
“예.”
교수들은 10분 정도 진지하게 회의를 했다. 그레리온은 다소 강경한 반응이었고, 아론은 그런 그레리온을 조금 진정시키는 분위기였다.
잠시 후 결론이 난 듯, 아론이 앞으로 나왔다.
“전체 주목.”
학생들이 즉시 입을 다물고 아론을 보았다.
“가할족의 말에 따르면, 몬스터들은 새벽에 공격해 올 예정이라고 한다. 학생들은 3교대로 성벽에 경비를 서고, 나머지는 안에서 휴식을 취한다. 가벼운 겉잠은 괜찮지만 너무 퍼질러져 있지는 말도록.”
“예!”
“그리고 지휘체계에 관한 건이다.”
아론의 수석조교가 옆으로 와서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통신수정구가 들어 있었다.
“기본적으로 자유전투 방침이지만, 최소한의 소통과 지휘체계는 필요하다. 학생 지휘관을 선정하겠다.”
아론은 통신수정구에서 빨간색 수정구를 들었다.
“여러 인재들이 많지만…….”
주위를 둘러보던 아론의 시선이 한 명에게서 멈춰 섰다.
“우리 학과에는 학생회장이 있으니.”
다른 학생들의 시선도 모두 시몬 쪽으로 향해 있었다.
은근히 기대하던 눈치였던 헥토르가 쯧 하고 혀를 찼다.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시몬이 손을 들었다.
“좋다.”
“평소라면 제가 지휘를 맡겠지만, 이번엔 학과 단위의 합숙이잖아요.”
그렇게 말한 시몬이 옆을 가리켰다.
“그러니 학과대표가 지휘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
헥토르가 부릅떠진 눈으로 시몬을 노려보았다.
이건 또 무슨 꿍꿍이냐는 눈빛이었다.
“적절한 의견이군.”
아론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빨간 통신수정구를 던졌다.
“오늘의 학생 지휘관은 헥토르 무어다.”
빨간 통신수정구를 받은 헥토르의 동공은 다소 흔들리고 있었다.
“전투가 벌어지면 학생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도록. 물론 듀라한의 재료인 ‘가디언’이 탐이 나겠지만, 너무 무리는 하지 마라. 특히 가디언을 쫓아 성벽에서 내려와 추적하는 건 자살행위니 이 점 유념하도록.”
“네!”
아론이 팔짱을 꼈다.
“교수진은 문제가 생긴 경우 통신하겠다. 교수진의 지시에는 하던 행동을 멈추고 최우선 순위로 따라라. 이상이다.”
* * *
절차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조교들이 교대조를 작성했고, 1교대팀 먼저 성벽으로 올라갔다. 나머지 학생들은 모두 가할족의 병영건물 안으로 안내되었다.
“안녕~”
에슈가 손을 흔들었다. 하반신만 대충 천으로 가린 어린아이들이 쑥스럽게 손을 흔들다가, 부끄러운지 자기들끼리 뛰어놀았다.
병영 내에는 여자나 아이들이 많았다. 왜 곧 전쟁이 벌어질 요새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걸까 의아했지만, 그들 모두 고향을 버릴 수 없다는 의지가 강해 보였다.
전사들은 모두 밖으로 나갔기에 남는 방은 많았다. 학생들은 아무 곳에나 들어가서 쉴 수 있었다.
중간에는 따뜻한 화톳불이 피워져 있었고, 천장의 기둥 대용인 구멍으로 연기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시몬과 10조 조원들도 한 방을 넷이서 차지했다.
“이 바보야! 진짜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에슈가 토토의 팔에 붕대를 감아주고 있었다.
“니가 뭐라고 회장을 구하러 뛰쳐나가? 어? 대갈빡에 뭐가 들었길래 그런 짓을 했냐고!”
“미안해 에슈. 파, 팔 아파!”
토토가 울상을 지었다.
그리고 두 사람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시몬과 로레인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러는 에슈, 너도 토토를 구하러 무리하게 뛰어나갔잖아?”
로레인이 게슴츠레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에슈의 표정에 뜨끔한 기색이 어리더니, 이내 더듬거리며 변명했다.
“어, 어쩔 수 없었어요! 토토가 위험…… 아, 아니! 이탈자가 나오면 수행평가 점수가 다 날아가니까!”
시몬도 한마디 했다.
“토토 구하러 갈 때, 너 엄청 화낸 거 기억나?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나 혼자서라도 갈 거라…….”
“아아아아아아! 안 들려! 안 들림! 조용히 해!”
시몬과 로레인이 마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에슈는 ‘크윽’ 하고 분한 반응으로 고개를 돌려 버렸고, 토토는 얼굴에서 빨간 물이 뚝뚝 떨어질 지경이었다.
“저, 정말로…….”
있는 용기 없는 용기 다 쥐어짜 내 고개를 든 토토가 개미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나, 날 구해주려고 한 거야?”
“아, 아니라니까! 네가 너무 멍청하게 뛰어드니까!”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로레인이 조용히 말했다.
“어쩐지 저 두 사람, 사이가 좋아진 것 같네.”
시몬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보다 눈 좀 붙여, 로레인. 시간 되면 깨워줄게.”
“괜찮아, 나도 잠이 안 와.”
두 사람은 벽에 기대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금 벌였던 전투 이야기.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
듀라한 제작에 대한 이야기.
바로 그즈음에.
“안녕~ 시몬. 둘이 사이가 좋아 보이네요.”
상앗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세르네가 들어왔다.
시몬은 웃으며 인사했지만, 로레인은 일단 경계부터 하며 미간을 좁혔다.
“깃털 쓰지 말랬지.”
어느새, 토토와 에슈는 옆 방으로 건너가고 있었다. 세르네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썼다는 증거 있어요? 자기들끼리 좋은 일 하러 갔나 보지.”
“네가 왜 여기 있어? 1교대 아냐?”
세르네는 교복 치마를 추스르고 시몬의 맞은편에 다소곳하게 앉더니, 시몬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웃었다.
“그냥 내가 하기 싫어서요. 다른 사람한테 바꿔달라고 부탁했죠.”
대놓고 땡땡이쳤다고 말하는 세르네를 보며, 로레인은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벌렸다.
“넌 진짜……! 상아탑 사건 이후 조금은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변하긴 뭘 변해요. 그쵸 시몬?”
“그래. 여전하네.”
킥킥 숨죽여 웃는 두 사람을 보며, 로레인의 입술이 댓 발 튀어나왔다.
“시몬, 우리 상아탑은 준비가 끝났어요.”
세르네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상부에 시몬이 군단장이라는 걸 아는 사람도 없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어요. 편하게 들어오면 돼요. 나와 메이린이 이끌 새롭고 젊은 상아탑에―”
“무슨 소릴.”
로레인이 끼어들었다.
“시몬은 키젠의 학생회장이야. 본부에서도 시몬을 좋게 평가하…….”
“그깟 키젠 본부의 평가가 뭐가 중요할까~ 본인의 선택이 더 중요하죠. 작년 판타서스 선배님 영입도 그랬죠? 까마귀 자리를 미끼로 건네봤지만 놓쳐 버렸잖아요.”
아픈 곳을 찔린 듯, 로레인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실은 판타서스 선배님도 우리 상아탑에서 모시려고 하고 있거든요. 시몬과 판타서스가 선배님이 상아탑에 들어오면, 그때야말로 진정한 상아탑의 전성기가 아닐까요?”
“글쎄,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쉬울까? 우릴 피해서 중립지대로 넘어가려 했던 상아탑이.”
세르네의 웃는 얼굴에 살짝 균열이 일어났다.
“흠~ 그 바보 같은 계획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워진 일인데 어쩌겠어요. 중요한 건 지금이죠.”
그렇게 말한 세르네가 시몬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다 손을 들어 시몬의 인중에 대보았다.
“흐흐흠-”
세르네의 얼굴에 옅은 홍조가 떠오르며 입술을 달싹였다.
“앞으로 10년, 10년만 더~ 맘 같아선 확 납치해 버릴까 보다. 탑에 가둬놓고 물만 주고 키우고 싶다.”
시몬이 어깨를 떨었다.
세르네는 진짜로 그렇게 할 것 같아서 조금 무서워졌다.
“아 참~ 당신은 직접 본 적 없죠?”
세르네가 고개를 돌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미래의 시몬의 모습을.”
로레인이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 또한 ‘얼어붙은 시계’에 대해선 보고받은 상태였다.
“나는 시간의 탑에서 다 큰 시몬의 모습을 잠깐이나마 봤었거든요.”
로레인은 긴장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침을 꼴깍 삼켰다.
“……어, 어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