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611)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11화
사실 이번 ‘암흑제’는 비단 학생들만 열을 올리는 게 아니었다.
“학과 우승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니,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지요.”
때가 잘 탈 것 같은 세련된 하얀 정장을 입은 남자, 바힐이 커피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의 앞에는 3학년 대표를 포함한 저주학과 핵심인물들이 모두 열중쉬어 자세로 서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달칵.
바힐이 찻잔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다른 건 몰라도 소환학과만큼은 끌어내려야 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한 3학년 학생이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교수님! 사실 그놈들은 우리가 손쓸 필요도 없죠! 최근 암흑제 전적만 해도 6위, 5위, 7위, 7위, 7위.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그딴 소리나 지껄일까 봐.”
바힐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내. 가. 지금 너희들을 불러서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압도적인 위압감에 학생들의 표정이 바짝 얼어붙었다. 마치 공기가 묵직해져서 자신들의 머리와 어깨를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이런, 실례.”
그가 분위기를 거두고 빙긋 웃었다.
다시 많은 학생들의 존경을 받는, 젠틀하고 세련된 이미지의 바힐로 돌아왔다.
달칵.
바힐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눈을 감았다.
‘……판타서스 휴 이켈. 그 친구가 학과를 너무 무르게 만들었어.’
그가 3학년들을 가르칠 때만 해도, 저주학과는 철저히 승리와 성과만을 좇는 엘리트 광견들이었다.
그런데 학술연구 이후 잠시 1학년을 가르치러 내려간 사이, 판타서스가 저주학과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놨다.
저 승부욕도 없이 흐물거리는 웃음을 짓고 있는 3학년들을 데리고 우승을 노려야 한다니, 골치가 아팠다.
“특히 2학년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따악-!
바힐이 손가락을 튕기자, 꾸벅꾸벅 졸고 있던 메리다 휴 이켈이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애써 안 졸았던 척했지만 이미 입가에 침이 주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곳곳에서 ‘교수님 앞에서 미쳤냐!’하는 시선들이 쏟아졌지만 메리다는 스읍 침을 들이마시며 졸린 눈으로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2학년들의 목표는 시몬 폴렌티아. 반드시 그를 경기에서 쓰러트려야 합니다.”
졸린 얼굴로 게슴츠레 눈을 뜨고 있던 메리다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바힐도 그 모습을 캐치했다.
“호오, 그에게 관심이 있나 보군요.”
메리다가 반응을 보이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다른 학생들도 조금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메리다 학생은 나의…… 아니, 시몬 학생회장과 상아탑에 파견을 갔다고 들었는데.”
끄덕.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만 움직였다.
“이길 수 있겠습니까?”
“…….”
메리다는 동그란 눈을 몇 차례 깜빡거리다가 대답했다.
“못 이겨요.”
학생들이 경악한 얼굴로 그녀의 뒤통수를 쏘아보았다.
‘그래도 이긴다고 했었어야지!’
지금 학생들은 이 바힐의 연구실에서 무사히 살아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바힐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무릎을 당겨 앉았다.
“시몬 폴렌티아가 당신보다 한 수 위라는 걸 인정하는 겁니까?”
“원래라면 이겼을 거예요.”
그녀가 퉁명스레 말했다.
“하지만 판타서스 오빠가 시몬에게 나랑 같은 슬립을 가르쳤어요. 상아탑 파견 때는 시몬의 앞에서 ‘무아몽중’도 보여 버렸어요.”
“솔직해서 좋군요.”
바힐이 손가락을 흐느적거렸다.
“그가 강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특별한 저주저항이나 해주기술을 가지고 있진 않으니, 공략할 여지는 충분히 있지요. 여러분에게는 제가 새롭게 만든 특별한 저주들을 선사해 드리겠습니다.”
바힐의 새로운 저주를 배울 기회가 오다니!
메리다는 별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다른 2학년들은 흥분한 얼굴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바힐 교수님!”
“시몬 폴렌티아는 제가 책임지고 반송장으로 만들……!”
콰아아아아아앙!
마지막 발언을 한 학생이 난데없이 검은 번개에 직격당해 날아가 책장에 부딪혔다. 사방에서 끼익거리며 커다란 책장들이 무너져 내리고 각종 서류와 종잇조각들이 휘날렸다.
“독은 소량으로 다스려야만 약이 되지요.”
바힐이 세워 든 검지를 내렸다.
무너져 내리는 책장 사이로, 쥐 한 마리가 찍찍거리며 경련하듯 몸을 떨고 있었다.
“내 앞에서는 말을 가리도록 하십시오.”
학생들의 표정이 굳었다.
‘그럼 뭐 어쩌라는 거야!’
시몬 폴렌티아를 이기라고 한 건 본인이면서, 박살 낸다고 하니 또 광적으로 반응했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똑똑.
그때 마침 연구실 문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바힐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을 텐데.”
하지만 그 말을 무시하고 드르륵 문이 열렸다.
“실례합니다, 교수님”
저주학 수석조교 체헤클이었다.
그녀가 사태를 파악하는 데 걸린 시간은 5초.
무너진 책장, 쥐 한 마리, 그리고 우리 좀 살려주세요!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학생들까지.
뻔한 광경이었다.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기숙사 사감이 찾고 있을 테니 이만 학생들을 돌려보내겠습니다.”
그녀는 캔슬레이션 마법을 사용해 생쥐로 변한 학생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렸다. 학생은 단단히 겁에 질린 얼굴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어서 가세요. 이 학생 데리고.”
“네, 네!”
“실례하겠습니다!”
학생들이 도망치듯 바힐의 연구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이 와중에도 꾸벅꾸벅 조느라 홀로 남겨진 메리다를, 3학년 학과대표가 식겁하며 뛰어 들어와 번쩍 들고 떠났다.
달칵.
체헤클이 문을 닫고, 잠시 연구실엔 정적이 흘렀다.
“이런.”
바힐은 빙긋 웃으며 다시금 찻잔을 들었다.
“학생들에게 너무 온화하게 굴면 버릇이 나빠집니다. 체헤클.”
“선, 넘으셨잖아요.”
체헤클이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에 어떤 교수가 학생한테 저주를 걸어서 쥐로 만들어요?”
“그 점은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너무 주제 파악을 못 하기에 울컥했군요.”
체헤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눈썹 사이를 어루만졌다.
‘시몬 학생이 듀라한으로 활약한 걸 듣고 배가 아픈 거겠지.’
“시간이 너무 빠르군요. 넋 놓고 있으니 벌써 중간고사가 지났습니다. 이대로는 때를 놓치고 말 겁니다.”
바힐이 손끝으로 톡톡 팔걸이를 두들겼다.
“이번 암흑제가 찬스. 강경책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군요.”
* * *
펄럭!
오늘도 시몬은 학생회실에 출근했다.
옷걸이에 걸려 있는 학생회장 코트를 멋들어지게 걸치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럼 시작해 볼…….”
“시몬?”
쾅!
메이린이 서류의 언덕 하나를 책상에 내려놓고는 싱긋 웃었다.
“지각한 주제에 어딜. 폼 잡을 시간에 이거나 빨리 검토해 줘.”
“으, 응.”
바로 기가 죽은 시몬이 집무실 의자에 다소곳이 앉았다. 메이린은 다른 자료를 찾으러 달려가며 소리쳤다.
“아, 그 옆에 서류 먼저 봐줘! 지난 암흑제에서 학생들의 불편사항들을 종합한 거야. 한 시간 뒤에 그거 보고 회의할 거야!”
“아, 알았어.”
뭔가 자꾸 일이 들어온다.
시몬이 옆에 서류부터 들고 빠르게 눈으로 훑어보는 그때.
“일이요~ 일~”
쿵!
이번에는 딕이 또 다른 서류뭉치를 내려놓았다. 시몬이 입을 멍하니 벌리며 그를 보았다.
“……이건 또 뭔데?”
“이번 암흑제 스폰서 지원 목록.”
딕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시몬이 서류들을 팔랑팔랑 넘겨보았다.
“……아니, 잠깐. 이런 중요한 건 위원회분들이 검토할 문제 아냐?”
“그건 암흑제 공식 스폰서고, 이쪽은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지원해 주는 걸로 들어오는 스폰서라고나 할까.”
“뭔 차이야, 그게.”
시몬은 머리에 쥐가 나는 걸 느끼며 암흑제 관련 업무를 시작했다.
그동안 평시에 하던 학생회 업무와, 이번 암흑제 관련 업무는 그 업무량부터 난이도까지 차원이 달랐다.
그동안 별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들도, 그 아래에는 이렇게 구체적이고 세세한 절차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 공부가 차라리 제일 쉬웠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암흑제 업무는 벅찼다.
거기에 학생회장은 판단력이 중요했다.
일을 해오는 메이린이나, 딕이나, 카미바레즈나, 쓸데없는 건 쳐내고 몇 가지 중요한 것들만 추려서 시몬에게 제출했고 판단과 선택은 시몬의 몫이었다.
지도와 조사 자료를 훑어보던 시몬이 머리를 매만졌다.
‘언덕에 대로를 뚫겠다고? 또 비 오는 날 산사태 일어나는 거 아냐? 행사는 일주일도 안 되는데…….’
물론 판단을 하고, 책임지는 것도 자신이다.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배보다 배꼽이 크면 안 되니까.’
시몬은 반려 도장을 찍고, 다음 서류로 넘어갔다.
그러다 보니.
“자, 회의하자!”
한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일, 회의. 일, 회의. 늦은 밤인데도 좀처럼 업무가 끝나질 않았다. 본래 통금시간 전까지는 기숙사에 들어가야 했지만, 제인이 손을 써줘서 특권을 받았다.
물론 이쯤 되니 이게 특권인지는 잘 모르겠다.
“와, 캠퍼스 으스스하네.”
창밖을 보던 딕이 말했다.
“불 다 꺼졌어. 우리 건물만 불 켜진 것 같은데?”
퍽!
날아온 종이뭉치에 얻어맞은 딕이 휘청했다.
“자꾸 딴짓하지 말랬지!”
메이린이 소리쳤다.
“와, 진짜. 숨 좀 쉬자 숨 좀! 악덕 고용주냐? 사람 잡아먹겠네!”
“아까부터 계속 틈만 나면 딴짓하고 있었으면서 뭐래!”
그렇게 말하던 메이린이 이마를 짚었다.
“아, 당 부족해. 달콤한 거 땡겨.”
“저도 그래요!”
똑똑똑.
바로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직속 하수인 리더 모조가 학생회실에 들어왔다.
“제인 교수님이 보내셨습니다. 먹고 하시지 말입니다.”
네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갓 구운 파이와 치킨 요리, 그 외에도 먹음직스러운 각종 음식들을 하수인들이 가져왔다.
메이린이 후닥닥 어질러진 책상을 치웠다.
“모조 씨도 좀 드세요!”
“말씀은 감사하지만, 저희도 하수인 휴게실에서 먹고 있습니다. 그럼, 맛있게 드십시오.”
멤버들은 잠시 업무를 중단하고, 테이블에 둘러앉아 야식을 즐겼다.
“으으음-”
꿀 잔뜩 바른 피자를 입에 넣은 메이린이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살 것 같애애.”
“너무 맛있어요!”
시몬과 딕은 우걱우걱 전투적으로 음식을 집어 먹고 있었다.
“와, 저녁 많이 먹었는데 이게 또 들어가네.”
“그러게.”
네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즐겼다. 딕이 닭다리를 질겅질겅 씹으며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먹을 땐 좋긴 한데, 이런 철야를 3주 가까이 해야 한다고? 차라리 죽여라 죽여.”
“전 지금이 너무 행복해요!”
카미바레즈가 박쥐날개를 파닥파닥 흔들며 말했다.
“이렇게 세 분이랑 같은 공간에 모여서, 늦게까지 같이 일하고 맛있는 거 먹고 떠들고! 나중에 돌아보면 정말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요!”
이렇게 학생회로서 일하는 것도 다 학창 생활의 일부란 뜻이었다.
시몬과 딕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미바레즈는 결연한 눈으로 작은 두 주먹을 꼬옥 쥐고 흔들었다.
“저,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할 거예요!”
메이린은 결국 참지 못했다.
“카미이! 귀여워어엉!”
대뜸 달려들어 카미바레즈의 품에 얼굴을 폭! 하고 묻었다.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 카미바레즈가, 이내 눈꺼풀을 살짝 내리깔고 메이린의 머리를 슥슥 자상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메이린, 요즘 왜 이렇게 응석받이가 됐어요?”
“헤헤, 나 원래부터 구랬는뎅.”
시몬은 속으로 조용히 웃었다.
메이린은 최근 사건들 때문에 정서적으로 흔들릴 일이 많았는데, 다시 회복하고 안정세를 찾은 것 같았다.
“어우, 혀 짧은 목소리 극혐이다, 진짜.”
딕이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실실 웃다가 메이린의 뒷차기에 얻어맞았다. 시몬과 카미바레즈의 웃음소리가 환하게 방을 울렸다.
* * *
그로부터 이틀 후.
시몬과 학생회 멤버들은 산언덕 위로 올라왔다.
“왔다!”
강한 조류와 높은 파도가 치던 키젠의 로크섬.
하지만 어느 때와 달리 오늘의 바다는 잔잔해졌다. 앞으로 몇 주간은 그럴 것이다.
“기대돼요! 암흑제!”
“응. 이제 진짜 시작이지.”
그리고 그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수천 척의 배가 물살을 가로지르며 로크섬으로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