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632)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32화
사박. 사박.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기분 좋은 아침. 레테에게 지목받은 시몬은 그녀와 나란히 공원 길을 걷고 있었다.
“……이게 이렇게 되네.”
“불만임까?”
레테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시몬이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니. 불만은 아닌데, 요원들이 지키는 마차 안에서 섬을 돌아보는 게 더 안전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했잖아요? 이 섬에 에버 키레는 없슴다.”
그녀는 특유의 시니컬한 목소리로 대꾸하며, 로브 주머니 안에 손을 찔러넣었다.
“네크로맨서 놈들이 내 별부림을 완전히 못 믿는 것 같으니까, 하는 수 없이 순찰에 응해줬을 뿐이에요. 그럼 순찰 방법이라도 내가 편한 쪽으로 정하는 게 공평하지 않겠슴까?”
“그래, 알겠어. 그런데 얼굴이 알려져도 괜찮아?”
레테는 처음에 입고 왔던 모험가 복장이었고, 로브에 달린 후드로 얼굴을 살짝 가리고 있을 뿐이었다.
“걱정 마십쇼, 얼굴 인지에 장애를 주는 아티팩트를 착용하고 왔으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축제 지도를 들어 올렸다.
“그렇게 됐으니 축제 안내 잘 부탁함다. 가이드.”
“열심히 할게. 어디서부터 돌아볼까?”
“일단 명목상 광신도를 찾아야 하는 순찰이니까, 사람이 많은 곳 위주로 도는 게 좋지 않겠슴까.”
레테가 지도 몇 군데를 툭툭 건들었다.
“노점광장, 해안가, 어. 동아리 부스 재밌겠다.”
“……방금 네 입으로 사람 많은 곳 위주로 돌자며?”
시몬이 옆으로 바짝 붙어서 그녀가 든 지도를 가리켰다.
“이 시간에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은 경기장이지! 바로 근처에 링캐슬 경기장이란 곳이 있는데, 여기로 가볼래?”
“…….”
레테가 걸음을 멈추고 시몬을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님다.”
그녀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까닥했다.
“한번 안내해 보십쇼.”
“응.”
두 사람은 경기장 근처로 걸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크로맨서 요원들은 먼 거리에서 지켜보고 있는지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야! 시몬!”
“시몬~”
그러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메이린과 카미바레즈가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메이린! 카미!”
“왜 이렇게 연락을 안 받아! 이 븅딱아!”
메이린은 도착하자마자 불같이 화를 냈다.
“학생회에 쉴 시간이 어딨어! 농땡이 피우는 거야? 지금 사건이 몇 개가 터진 줄 알아?”
“미, 미안해.”
시몬은 얼른 사과부터 하고는 덧붙였다.
“나도 할 일이 좀 있어서.”
“일이 있다는 놈이……!”
거기까지 말한 메이린이 시몬의 옆에 멀뚱히 서 있는 레테를 발견했다.
“누구?”
“아, 소개할게.”
이 순간이 이렇게 빨리 오게 될 줄이야.
지금부터 레테에게 네크로맨서 친구들을 소개해야 했다. 시몬은 긴장감이 훅 몰아닥치는 것을 느끼며, 미리 생각해 뒀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여기는 레나. 내 고향인 레스힐에 살았던 친구야. 암흑제에 놀러 왔는데 우연히 만났어. 로크섬은 처음 와봐서 내가 학교를 소개해 주는 중이야.”
고향 친구 레퍼토리.
진부하긴 했지만 17년 가까이 산에서만 살아온 산골 소년이 쥐어짜 낼 수 있는 최선의 스토리였다.
그리고 레나라는 이름은 저번에 신성연방에 갔을 때 그녀가 써먹은 가명이었다.
“그리고 여기는 내 동기들이자 학생회 멤버인 메이린 빌렌느, 카미바레즈 우르슬라라고 해.”
시몬은 두 사람을 소개한 뒤 레테의 눈치를 슬쩍 봤다.
친하게 지내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처음 로크섬에 방문했을 때처럼 네크로맨서에 대한 혐오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처음 뵙겠습니다.”
우려와는 달리, 레테는 예의 바르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잿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고개를 든 그녀는 생긋 눈웃음까지 지었다.
“레나라고 해요.”
“안녕!”
처음 보는 또래 여자애의 등장에, 메이린은 생기발랄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키젠 부회장 메이린이야. 시몬이랑 친구면 말 편하게 해도 되지?”
“그럼요.”
“서기인 카미바레즈 우르슬라예요!”
“잘 부탁드립니다.”
“너무 예쁘다! 머리 어디서 했어?”
“메이린 님도 아름다우세요. 머리는 암흑제에 오기 전에 들렀던 도시에서 손질했습니다. 저도 메이린 님을 보니 머리를 더 기르고 싶어지네요.”
“진짜?”
어쩐지 이 두 사람, 죽이 잘 맞는다.
선 자리에서 쉴 새 없이 꺄아 꺄아 수다를 떨어대기 시작했다.
“시몬이랑은 무슨 관계야?”
“친구입니다. 고향 소꿉친구.”
“흐흥, 소꿉친구.”
“네, 어릴 때부터 봐왔던 시몬이 네크로맨서가 되겠다고 훌쩍 떠나 버려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학생회장까지 된 걸 보니까 좋네요. 시몬을 잘 부탁드립니다.”
“어머, 네가 왜 내게 시몬을 잘 부탁한단 소릴 할까?”
“부회장이시니까, 회장을 잘 보필하시라는 의미에서요.”
“아핳! 그 소리지? 그렇구나.”
“네.”
시몬이 긴장한 얼굴로 한 걸음 물러섰다.
뭐지.
평범한 대화고, 얼굴도 웃고 있는데, 왜 두 사람 사이에서 묘한 기류가 흐르는 것 같지.
“레나. 암흑제는 처음이에요?”
그때 카미바레즈가 귀를 쫑긋쫑긋하며 끼어들었다. 레테도 얼른 시선을 전환했다.
“네, 처음입니다.”
“그럼 여기 노점광장은 꼭 가보세요! 푸딩이랑 당근 케이크가 맛있어요!”
“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카미바레즈는 레테의 곁으로 다가와 재잘재잘 안내해 주기 시작했다. 학생회로서 본분을 다하는 모습.
레테는 물끄러미 카미바레즈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귀족분께 이런 말을 하는 건 실례일 수도 있겠지만.”
“?”
“귀여우심다.”
그 말을 들은 카미바레즈의 얼굴이 퐁 하고 붉어졌다.
“으, 그. 가, 감사해요.”
부끄러워하는 카미바레즈를 보며 레테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 티는 내지 않았지만 레테도 귀여운 걸 좋아했다. 카미바레즈와의 사이는 양호해 보인다.
“그, 그리고 이 해안가는 야경이 예뻐요!”
“야경은 거기가 최고 아냐?”
메이린이 불쑥 끼어들었다.
“텔레포트 마법진 옆의 산들.”
“아경은 괜찮습니다.”
레테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어제 시몬이 보여줬거든요.”
“!!”
메이린이 고개를 홱 돌리더니 눈에서 화르르 불꽃을 일으키며 시몬을 노려보았다.
카미바레즈도 신경 쓰이는지 시몬을 곁눈질로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퍼어어엉!
그때 근처의 공원에서 작은 폭발음이 일어났다. 메이린과 카미바레즈가 깜짝 놀라면서도 반사적으로 다리에 칠흑을 일으켰다.
“메이린! 빨리 가봐야 해요!”
“그러네.”
“무슨 일이야?”
시몬이 얼른 물었다.
“학과 애들끼리 싸움이 붙었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말리러 가는 중이었어!”
“죄송해요! 먼저 가볼게요!”
두 사람이 칠흑을 밟고 공원을 뛰어나갔다.
시끌벅적했던 주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안 도와주러 가도 괜찮겠슴까.”
어느새 평소의 차분한 분위기로 돌아온 레테가 로브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으며 말했다.
“응. 두 사람의 실력이라면 문제없을 거야.”
곧 얼음이 튀기고 핏방울이 흩날리는 모습이 보였다. ‘안 멈춰? 이 새끼들아!’ 하고 꽥 소리 지르는 메이린의 외침도 뒤따랐다.
그 직후 소란이 잠잠해졌다.
“흠.”
레테가 팔짱을 낀 채 묘한 미소를 지었다.
“제법인데요? 전장에서도 한번 붙어보고 싶네요.”
“……무서운 소리 하지 마. 그런 일이 안 일어나도록, 전쟁을 막으러 여기 온 거잖아?”
“네, 가죠.”
레테가 앞서 나가며 말했다.
“세계 평화를 지키러.”
* * *
링캐슬 경기장은 3학년들의 경기가 한창이었다. 자리를 가득 채운 관중들이 요란한 함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관중석 앞자리에 앉은 아저씨들이 맥주를 들이켜며 큰 소리로 껄껄 웃어대는 모습도 보였다. 온갖 자잘한 먹을거리가 사방에 굴러다니고 있었는데, 청소하는 하수인들의 허리가 휘는 게 보일 지경이었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시몬은 경기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꼼꼼히 에버 키레의 흔적을 살피고 있었다.
‘알레이스터 요원 쪽에서 뭔가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현재 극도의 인력난에도 불구하고, 네프티스 측근들만의 단독수사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들은 항구에서 탈출한 에버 키레의 흔적을 쫓는 중이라고 했다. 크고 작은 교전의 흔적까지 발견됐지만, 에버 키레는 계속 현실을 왜곡하며 도주하고 있으니 일반적인 수사방법으로는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 섬 밖에 있는 게 에버 키레 본인일까?’
레테의 별부림 결과도 그렇고, 알레이스터의 수사도 그렇고, 모든 정황이 에버 키레가 로크섬에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시몬은 찜찜함을 느끼고 있었다. 상대는 현실을 왜곡하는 이능 사용자인 만큼, 모든 경우의 수를 열어놓고 생각해야 했다. 아직은 완전히 마음을 놓을 때가 아니라는 게 시몬의 판단이었다.
‘후우.’
근방을 모두 둘러본 시몬의 시선이 잠시 경기장 안으로 향했다.
‘결국 여기서 보는구나.’
3학년 전체 2위, 발락.
철제마스크를 쓰고 입에서 독연기를 뿜어내는 남자.
두툼한 코트 같은 옷으로 몸을 감싸고 있었는데, 교복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꽉 감싸고 있었다.
바로 그가 학생들 사이를 단신으로 돌파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를 중심으로 독의 파장이 퍼져 나가며 학생들이 일제히 쓸려나갔다.
칠흑 방패고 방어마법이고 할 것 없이, 공평하게 배리어 게이지를 0으로 만들며 경기장 밖으로 텔레포트 시키는 압도적인 화력.
“으허헉!”
“깜짝이야!”
독구름이 출렁이며 경기장까지 접근하자 근처에 있던 관중들이 몸을 뒤로 뺐다.
관중석에는 보이지 않는 결계가 쳐져 있다. 하지만 독이 부딪히자 치익 치이익 소리를 내며 깜빡대는 모습이 곧 뚫리는 게 아닐까 생각될 만큼 위협적이었다.
가는 곳마다 독우물이 흘러넘치고 독무가 피어난다. 학생들은 목을 움켜쥐며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포기 버튼을 누르고 경기장 밖을 나가 버렸다. 경기장 내부는 순식간에 죽음의 땅으로 변했다.
-이, 이번 경기는 공을 넣어서 점수를 획득하는 룰입니다만…….
사회자가 얼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발락 학생 외에, 경기장에 남아 있는 학생이 없습니다. 경기를 속행하는 건 불가능해 보이는데요. 아, 마침 심판이 경기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최종 승자는 맹독학과입니다!
룰이고 뭐고 저렇게 경기를 끝내 버릴 줄이야.
지켜보던 시몬은 난감한 웃음을 흘렸다.
‘……대단하다. 우리 쪽 레오나드 선배가 저 사람을 이길 수 있을까.’
그리고 이어서 한 가지 더 드는 의문이 있었다.
2위가 저 정도면, 1위인 에이젤은 얼마나 강할까.
에이젤이 돌아오면, 시몬은 학생회장 자리를 걸고 그와 싸워야만 했다.
“한가하게 경기 구경이나 하고 있을 때임까.”
불쑥 끼어드는 목소리에 상념이 깨졌다.
옆으로 다가온 레테가 시큰둥하게 시몬을 노려보았고, 시몬도 정신을 차리고 웃었다.
“어땠어?”
“이 경기장엔 신성 반응이 느껴지지 않아요.”
그녀가 어깨를 으쓱하며 덧붙였다.
“다른 경기장도 마찬가지겠지만.”
“수고했어. 장소를 옮겨보자.”
“네.”
레테는 잠시 경기장 안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당신도 저런 경기에 참여하는 검까?”
“물론이야. 하루에 한 경기씩은 참가하기로 했어. 관심 있어?”
“오.”
레테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팔짱을 꼈다.
“재밌겠네요. 그 경기는 꼭 봐야겠슴다.”
“하하, 조금 부끄러운데.”
그렇게 잡담을 나누고 있던 시몬은, 바로 근처에서 익숙한 얼굴을 한 명 발견했다.
밤하늘을 바른 듯 찰랑이는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루비 같은 붉은 눈동자의 소녀.
시몬은 반가워서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로……!”
슥.
그때 시몬의 시야가 가려졌다. 레테가 시몬을 붙잡아 자기 뒤로 숨긴 것이다.
“왜 그래?”
“저 사람.”
잔뜩 긴장한 듯, 레테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뭔가 이상함다. 조심해야…….”
“아, 시몬!”
마침 그녀도 시몬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너도 3학년 선배님들 응원하러 왔구나?”
그렇게 말한 로레인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리고 옆에는…… 누구?”
“…….”
서로 아는 사이 같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이 뭔가 묘하게 일그러졌다.
어린 성녀와, 마녀의 딸이.
경기장에서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