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656)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656화
대공의 성에는 사령마들의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성 전체가 언데드들로 가득 찼다.
철컹-!
둔중한 쇠문이 열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갑옷으로 무장한 대공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식솔들과 전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취했다.
절컥- 절컥-
대공은 쇳소리를 내며 계단을 올라갔고, 2층 본인의 집무실이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덜컹!
[고드릭!]집사의 이름을 부르며 대공이 집무실의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대, 대공!”
고드릭이 움찔거리며 서 있었다. 그리고 집무실 책상에는 대공 본인과 똑같은 새까만 갑주를 걸친 인물이 뒤를 돌아본 채 서 있었다.
[…….]갑옷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기사가 뒤를 돌아 대공을 마주 보았다. 똑같은 갑옷의 두 사람은 잠시 정적 속에서 서로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러다 창가 쪽의 기사가 두 팔을 들어 올리더니, 천천히 투구를 잡아서 올렸다.
푸른 머리카락과 함께, 아직은 앳된 기가 남아 있는 얼굴의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빙긋 웃는 미소에는 부드러운 선의가 흐르고 있었다.
“다시 뵙겠습니다.”
[……네놈.]투구 속에서 대공의 안광이 번쩍였다.
[낮에 본 그 녀석이군.]“네.”
암흑연합의 두 군단장이 제자리에서 서로를 응시했다. 중간에 껴든 꼴이 된 고드릭은 심장이 울렁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고드릭.]“예, 예! 대공 각하!”
[나가라.]시몬 쪽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고드릭은 하는 수 없이 집무실 문을 닫고 나갔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집무실은 정적이 찾아왔다.
절그럭.
절그럭.
대공은 걸음을 옮겨 갑옷이 걸려 있던 벽걸이로 향했다. 이번에는 대공이 두 손으로 투구를 붙잡더니, 천천히 투구를 벗어 올렸다.
탐스러운 머리카락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투박한 투구 사이로 깨끗한 피부와 미적인 이목구비가 드러난다.
시몬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투구 속에서 가려져 있던 건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미형의 얼굴이었다. 맹금류를 연상케 하는 부리부리한 눈매와, 눈 밑에 있는 눈물점이 보였다.
‘북부 대공이 여자였어?!’
“뭔가 불만 있느냐.”
그녀가 싸늘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시몬은 얼른 고개를 내저으며 아닙니다! 하고 대답했다.
후우―
그녀는 투구를 걸어놓고는 허리춤의 검을 풀어서 벽에 기대놓았다. 다시 저벅저벅 걸음을 옮겨 자리에 앉고는, 시몬에게는 맞은편 자리를 권했다.
“감사합니다.”
시몬이 긴장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듯했다.
툭. 툭.
금속으로 이루어진 글러브의 손끝이, 팔걸이를 두어 번 두들겼다. 이내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설명하거라. 왜 나로 변장하고 마을을 구원했느냐?”
고풍스러운 말투와, 티끌의 흠집도 잡을 수 없는 미성.
시몬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성에서 대공님을 기다리던 중, 전령이 반즈데일이라는 마을이 언데드들에게 공격당하고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아직 대공님께 정식으로 전투 허가는 받지 못했지만, 키젠의 네크로맨서로서 차마 못 본 척할 수는 없었습니다.”
시몬이 손을 깍지꼈다.
“하지만 보고 받은 병력의 수가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상대는 군대 규모였고, 저 혼자서 주민 전원을 지키며 싸울 자신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제 군세를 쓰기로 했습니다.”
“정확히는-”
그녀가 턱을 괴었다.
“네 ‘군단’이겠지.”
“맞습니다.”
네프티스는 이미 대공이 자신과 7군단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 귀띔했었기에, 그리 놀라지 않았다.
애초에 군단장 수업을 받으러 칼로스 북부에 온 거였고.
“북부분들은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것 같지만, 제가 이끄는 군단은 ‘배반의 죄’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대놓고 쓸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현역 군단장인 나인 척 분장하고, 네 군단으로 적을 쓰러트렸다.”
“예.”
시몬이 정중하게 사과했다.
“허가 없이 멋대로 날뛰어서 죄송합니다. 벌을 내리시겠다면 받겠습니다.”
“…….”
대공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절컥- 절컥-
걸음걸음마다 고민이 느껴진다. 그녀는 집무실의 책상으로 가 뒷짐을 지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건방진 것.”
시몬은 그게 자신을 부르는 말임을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너는 어떤 군단장이 되기를 원하느냐.”
고대의 언데드를 부릴 수 있으며, 그 어떠한 제한 없이 무한한 병력을 이끌 수 있는 대륙에 단 일곱뿐인 네크로맨서들.
그러나 네크로맨서라는 족속들이 흔히 그렇듯, 바른길로만 나아가지 않았다. 매그너스가 그러했다. 자신의 스승을 죽였으며, 더 강해지기 위해 일반인들을 휘말리게 했고, 다른 군단장과의 전투도 서슴없이 벌였다.
“제가 가진 이 힘을 올바르게, 그리고 사람들을 위해 쓰고 싶습니다.”
시몬은 반즈데일을 구원하러 갔을 때, 주민들의 뜨거운 환호와 눈물을 떠올렸다.
“대공님처럼요.”
뒷짐을 쥐고 창밖을 보던 그녀가 픽 하고 웃었다.
“남부놈답게 아첨으로 절여져 혓바닥이 길구나. 영웅은 그렇게 팔자 좋은 일이 아니니라.”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처음 만났을 때 비해 많이 온화해져 있었다. 그녀는 걸어가서 창가 근처에 올려놓은 병을 집었다.
마개를 따고, 얼음을 띄우고, 병에 든 음료를 컵에 부은 다음 다가와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술은 아니니 마음 놓고 마시거라.”
그녀도 다시 소파에 앉아 한 모금 마셨다. 시몬도 향을 느끼며 음미했다.
북부의 차인가? 쌉쌀한 맛이 일품이었다.
“네프티스 님께 이야기는 들었느니라. 내가 중간에 통신을 끊긴 했지만.”
그녀가 삐딱하게 턱을 괴었다.
“군단장 수업을 듣는 게 목적이겠지.”
“네.”
“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 네놈에게 했던 이야기는 사실이니라.”
-풋내기 따위를 가르칠 만큼 북부의 상황은 한가하지 않다.
“현재 북부는 전례 없는 적의 공세를 받고 있다.”
잔을 들어 올린 대공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놈도 슬슬 승부를 내고 싶어 하는 모양이야.”
“그놈이라면요?”
“혹시 이런 관용구를 알고 있느냐?”
그녀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북신이 눈보라 일으키듯.”
“아, 네! 당연히 알죠.”
사실 연합뿐만 아니라 대륙에서 널리 쓰이는 관용어였다.
“북신은 실존한다. 프로스트 필드를 장악하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언데드 중 하나지.”
‘지, 진짜로 있었어?’
북신(北辰)은 관용구로 쓰일 만큼 전설적인 존재였다.
어떤 고고학자는 인류가 유인원인 시절부터 존재해 왔다고 주장할 만큼, 이제 에이션트 언데드라는 카테고리조차 부적절한 괴물. 그 능력의 특성상 오랫동안 북부에 존재하며 힘을 축적해 왔고, 이제는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서로의 영역이 인접해 있기에, 칼로스 북부를 다스리던 대공들은 북신과 연이어 싸워왔다.
역사상 최고의 2군단장이라고 평가받는 현재의 대공 또한 긴 전쟁을 벌였으나 승부를 내지 못했다.
“북신은 그동안 야생 몬스터를 언데드로 만들어 북부에서 자신의 세력을 확고히 하는 데 주력했다만, 이제는 전방위 공격을 지휘하고 있지. 곧 결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느니라.”
[크흐흐. 그 말대로다!]시몬의 머릿속에서 피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그 ‘미식가’라는 녀석을 군단에 거두어들였을 때 코어가 폭발하려 했던 것도, 북신이 그 녀석을 대공에게 빼앗기지 않으려 손을 써둔 거였을 거다!]‘그러네요.’
시몬이 차가운 차를 한 모금 더 마시고는 생각에 잠겼다.
결론을 말하자면 북부는 전쟁 중이며, 대공은 시몬에게 할애할 시간이 없다.
그런 거라면.
“거래를 제안하겠습니다.”
시몬의 말에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부탁이 아니라 거래?”
“예. 군단장 간의 동등한 거래입니다.”
시몬이 가슴에 손을 올렸다.
“앞으로도 대공의 변장을 허락해 주신다면, 제 파견 기간 동안 저와 7군단은 북부에서 북부인들과 함께 싸우겠습니다.”
“…….”
“저는 강해지려고 이곳에 왔어요. 대공의 몫만큼 제가 더 싸우겠습니다. 대신 시간과 여유가 생기는 만큼 절 지도해 주세요.”
가만히 듣고 있던 대공이 픽 웃었다.
‘자신을 가르칠 시간은 스스로 벌겠다는 건가.’
가소롭고 당돌하지만, 재미있는 제안이었다.
“아첨하는 건방진 것. 네크로맨서가 된 지는 얼마나 됐느냐?”
“1년 반 정도입니다.”
“짧구나. 군단장의 힘을 얻었다고 하나, 아직 학생에 불과한 네가 이 ‘전쟁’에 도움이 될 거라고 자신하느냐?”
“그 대답은.”
시몬이 입꼬리를 올렸다.
“대공께서 절 가르치시기에 따라 달라지겠죠. 전 어떤 혹독한 가르침이든 따라갈 겁니다.”
“뭐라?”
대공이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을 가르칠 시간은 자신이 벌겠다는 발상에 더해, 자신이 전장에서 활약하길 원한다면 알아서 성장시켜 놓으라는 이야기까지.
이런 소리를 떳떳하게 지껄일 수 있는 놈이 있다니.
이놈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미쳐 있다.
“다소 건방지지만, 마음에 들었느니라.”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뻗었다.
“교섭은 성립되었다. 막내 군단장.”
시몬도 일어나 손을 맞잡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 * *
7군단과 2군단의 공동전선이 펼쳐졌다.
대공과는 몇 가지 합의를 보았다.
첫째, 시몬이 갑옷을 입으면 그녀의 대리로서 활동하며, 시몬의 명령은 대공의 명령과 동일한 효력을 발휘한다. 이에 발생하는 모든 문제 또한 대공이 감당한다.
둘째, 북부에서의 모든 전투를 허가하며 자체 지휘권을 가진다. 언데드와 시체의 소유권은 각각 쓰러트린 군단 측이 갖는다.
셋째, 북부에서 7군단의 언데드는, 대외적으로는 2군단의 언데드이며 대공 본인이 보장한다.
큰 틀만 논하자면 이 정도였다. 시몬은 대공의 갑옷을 아공간에 넣어놓고, 필요할 때마다 쓰기로 했다.
우선 전투 직후였고 날도 늦었으니, 대공의 군단장 수업은 내일부터 하기로 했다. 그녀에게 네프티스가 보낸 편지를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일 아침부터 성에 출근하거라.
성은 그녀의 언데드들로 다소 번잡해서 시몬이 잘만한 곳이 되지 않았기에, 간단히 근처의 여관에서 묵기로 했다.
시몬은 대공과 헤어져 밖으로 나왔다.
웅성 웅성!
북부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답게, 야간에도 사람들이 와글와글거렸다.
다양한 인종과 종족이 섞여 사는 곳.
칼로스 북부는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곳인 만큼, 죄를 지은 사람들이나 탈출한 노예들, 박해받던 이종족들이 몰려왔다. 이곳에선 과거나 신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고, 오로지 강함과 실력이 미덕이었다.
따라서 용병 출신들이나 치기 어린 귀족 자재들이 북부에 찾아와 제 명성을 드높이려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의 차림새는 하나같이 좀 그랬다.
특히 몇몇 전사들이 혹한은 영혼을 꺾을 수 없다며, 살갗이 훤히 보이는 괴이한 갑주를 입고 다니는 꼴은 미관상 좋지 않았다.
저게 다 가슴털인지 갑옷인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소녀도 북부의 스타일에 맞춰보았사와요!”
밖에 바람 쐬고 싶다고 아공간에서 튀어나온 에르제베트가 말했다. 시몬은 볼 필요도 없다는 듯 자신의 로브를 벗어서 그녀의 몸에 둘렀다.
“……제발 시선 끄는 짓은 하지 마.”
“어머나, 아까워라.”
에르제베트는 내심 좋은 듯 시몬의 로브를 두르며 킁킁 냄새를 맡았다.
“아! 모처럼 학교 밖에 나왔는데, 숙소에서 와인 한잔하시겠어요? 소녀가 따라드리겠사와요!”
“…나 새벽에는 학교 공부 해야 하는데.”
그 말은 가볍게 무시한 에르제베트는 금방 오겠다며 와인과 먹을 걸 사러 제멋대로 떠났다. 시몬은 하는 수 없이 근처의 벽에 기대어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잠시 멍하니 있는 그때.
“어이쿠, 여기서 또 만나네, 이쁘장한 레이디.”
털이 수북한 험상궂은 북부인이 시몬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