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818)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18화
펄럭-!
커다란 천.
옷깃이 두 사람 사이에서 휘날린다.
시몬과 쥴의 동공이 확 커지며 즉시 공격을 중단했다. 이내 그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나타난 건 민트색 머리카락의 소녀였다.
전체 4위, 저주학과의 대표이자 판타서스의 여동생.
메리다 휴 이켈의 연두색 눈동자가 시몬을 가만히 응시했다.
“메리다?”
시몬의 입에서 당혹스러운 음성이 튀어나왔다.
“네가 어떻게……!”
“들었어.”
그녀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발락과 협상해서, 3학년부터는 네가 학생회장을 맡기로 했다면서.”
번뜩이는 눈빛.
무언가 오해가 있다고 여긴 시몬은 재빨리 그녀의 말을 정정하였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발락이 아니라 키젠 본부의 결정이었…….”
“결국 그건 오빠가 물려준 회장직이 아니야. 발락이 넘겨준 회장직이지.”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그녀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칠흑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단순한 방출만으로, 시몬은 심해 안으로 빨려드는 기분이었다.
“그러니 더 이상 네게 회장직을 양보할 이유는 없어. 나는 너를 인정했지만, 판타서스 오빠의 뒤를 잇는 건 나야.”
그녀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니까 나는…….”
쩌어어어어엉!
갑자기 그녀의 등 뒤로 거대한 검격이 부딪혀왔다. 칠흑의 단순 방출만으로 검격을 막아낸 메리다가 눈동자만 굴려서 뒤를 돌아보았다.
“미안하지만 선객이 있소.”
척.
쥴이 불쾌한 표정으로 검집을 붙잡으며 말했다.
“시몬에게 먼저 볼일이 있는 건 나요.”
“…….”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메리다의 입술이 열렸다.
“방해돼.”
퍼버버버버버버버버버벅!
지켜보던 시몬의 눈이 부릅떠졌다.
쥴이 뭔가 동작을 취할 틈도 없이, 수십 갈래의 ‘슬립(Sleep)’ 저주가 쐐기처럼 그의 몸에 꽂혔다.
인간이 반응할 수 없는 영창속도와 사출력이었다.
“다시 한번 말할게.”
연기 속에서 쥴의 몸이 쓰러지고, 메리다가 시몬 쪽으로 고개를 되돌렸다.
“나는…….”
쩌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또 한 번 연기 속에서 마검의 검격이 튀어나와 메리다의 등을 후려쳤다.
이번에도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칠흑이 검격을 막아내긴 했지만, 그녀가 발을 한 차례 헛디딜 정도로 강력한 위력이었다.
메리다가 표정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후우-!
놀랍게도, 쥴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마검을 붙잡고 서 있었다.
그는 멀쩡했다. 개인의 몸상태를 반영하는 라이프 게이지도 크게 깎이지 않은 모습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 마검에게 ‘잠’을 버린 지 오래요.”
쥴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몸의 회복을 위해 가사 상태로 들어가는 경우는 있지만, 평온한 숙면 따위 내게 존재하지도 않소. 그대는 상성상 날 이길 수 없소.”
“상성?”
메리다가 싸늘하게 대꾸했다.
“그게 뭐야.”
퍼버버버버버벅!
퍼버버버버버버버벅!
사방에서 일어난 슬립 저주가 장창부대의 창격처럼 쥴에게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쥴의 전신이 한없이 튕겨 나가길 반복하며 거친 스파크가 튀었다.
“메리다! 그만해!”
시몬이 말리려 했지만, 메리다는 쥴을 상대하면서도 시몬에게도 저주를 쏘아 보냈다. 시몬은 다급히 자세를 낮춰 저주를 피해야 했다.
“커헉!”
쥴의 입에서 피가 왈칵 쏟아졌다.
저주에는 한정된 ‘스택’이 있어서, 일정 수치를 넘어서면 10번을 쓰든 100번을 쓰든 효과는 동일하다.
하지만 메리다는 저주를 단순한 공격마법처럼 무자비하게 난사하고 있었다.
타인의 칠흑이 계속해서 꽂히는 데 인간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쥴의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놀랍소. 잠을 버렸는데, ‘졸음’이 느껴지고 있소.”
저주에 얻어맞으면서도, 쥴이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가 마검을 양손으로 붙잡아 가슴 위에 두었다. 두 눈을 봉한 붕대 사이로 피눈물 한 방울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고맙소. 내가 아직도 버릴 게 있다는 걸 알려줘서.”
그 핏방울이 마검의 칼자루에 빨려 들어가는 순간, 불길한 기운이 일렁였다.
쥴이 양손에 힘줄이 튀어나올 만큼 강하게 마검을 붙잡았다.
쥴에게 내리꽂히던 저주들이 잘게 썰린 식재료처럼 썰려 나갔다.
저주들을 검격으로 모조리 베어버린 쥴이 지면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자꾸 나와 시몬을 방해하지 마.”
메리다가 짜증을 냈다.
“그대야말로 방해되오!”
쥴도 소리치며 마검을 움직였다.
쿠구구구구구구!
콰콰콰콰콰콰!
졸지에 뒤에 물러나 있게 된 시몬은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왜 너희들끼리 죽어라 싸우는 건데?’
영문을 모르겠지만, 생각해 보니 이건 도망칠 좋은 기회였다.
굳이 Top10끼리 싸워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없다. 저주학과 대표와 마투학과 대표가 싸우는 사이, 시몬은 슬그머니 물러나려 했다.
그런데.
‘?’
시몬의 앞에 커다란 장난감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갑자기 뭐야?’
어느새 화산이나 바위지대가 펼쳐져 있던 풍경이 사라지고, 주위가 온통 장난감 도시의 거리처럼 변하고 있었다.
“자꾸 방해한다면-”
메리다가 공중에 펼쳐진 이불 위로 올라탔다.
“잘 때까지 때려눕혀 주겠어.”
주위의 황량한 지형에서 계속해서 장난감 집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시몬의 눈이 예리하게 주위를 훑었다.
‘메리다가 이제 판타서스 선배님의 무아몽중을 온전히 쓸 수 있게 됐구나. 그런데 이건……!’
판타서스의 무아몽중은, 주위를 바다로 바꾸고 수중 생명체들이 돌아다니는 이미지였다.
그런데 메리다의 무아몽중은 조금 달랐다. 주위를 온통 장난감 세상처럼 만들고 있었다.
장난감 집과 나무가 우후죽순 솟아나고, 황량한 공터는 장난감 블록으로 짜 맞춘 형태로 바뀌었으며, 하늘에는 아기들 방에나 있을 법한 끈 달린 모빌이 빙빙 돌아갔다.
전면에는 아이들이 휘갈긴 낙서와 같은 끔찍한 형상의 사람이 장난감 도시를 거닐었다. 이 모든 공간이 아이들의 장난처럼 변하고 있다.
‘거기에 이 연기는 뭔데.’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보랏빛 안개.
슬립의 저주효과가 담겨 있었다. 시몬은 졸음이 조금씩 쏟아지는 걸 느꼈지만, 기본적으로 시몬도 판타서스류 슬립 사용자라 내성이 있었다.
쿵-! 쿵-! 쿵-! 쿵-!
그때 도시의 한쪽 골목에서 발소리 같은 게 들렸다. 시몬이 고개를 돌리자, 골목 안에서 뭔가 이상한 것들이 뭉쳐서 다가오고 있었다.
장난감 목마, 눈알 빠진 동물인형, 장난감 병정 등 온갖 장난감들이 뭉쳐서 거대한 쓰레기 해일이 되어 몰려들었다.
시몬과 쥴은 즉각 등을 돌려 도망쳤다.
타다닷!
근처의 집 지붕에도 눈알 빠진 장난감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피아를 가리지 않는 흑마법인지, 쥴과 시몬에게 모두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중에 장난감 병정 하나가 훌쩍 뛰어올라 시몬에게 칼을 내리쳤다.
‘친위대!’
스릉!
근처에서 대기하던 친위대가 날아올라 장난감을 베었다. 그러나 장난감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솜 같은 게 삐져나와 폭발했다.
폭발력은 물론, 폭발에 ‘슬립 효과’가 걸려 있었다.
도시 안에서 숨만 쉬어도, 그리고 이곳의 장난감이나 지형지물을 공격해도 슬립에 걸린다.
억지스러울 정도로 강력한 흑마법이었다.
“모두 돌아와!”
시몬은 소환수들의 친위대 상태를 해제하고 아공간으로 불러들였다.
쥴과의 전투에서는 유용하겠지만, 메리다의 무아몽중 안에서 친위대를 쓰는 건 피해 범위만 늘려주는 꼴이었다.
“시몬!”
반대편 골목에서 달리던 쥴이 검격으로 메리다의 병정들을 베어내며 소리쳤다.
“내 마검과 승부를 내기 전에 먼저 당하면 곤란하오!”
‘이 상황에서도 뭐라는 거야.’
콰아아아아아앙-!
이번엔 바닥에 포탄이 떨어져 폭발했다. 움찔한 시몬과 쥴이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누구?’
완전히 새로운 칠흑을 느낀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
주위가 수면안개로 가득한 메리다의 무아몽중을 넘어, 그보다 더 위의 상공.
투명한 함선 두 척이 하늘에 떠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꺄하하하하! 찾았다, 시몬 폴렌티아!”
전체 7위이자 사령학과 대표.
이번에 난입한 건 유령선의 ‘엘리사’였다.
“멍-청하긴! 그렇게 요란하게 싸우면 다른 경쟁자들에게 위치를 알려주는 꼴 아냐?”
퍼어어엉!
퍼어엉!
유령선에 내장된 함포들이 동시에 불을 뿜으며 스피릿이 실린 포탄을 투하했다.
도시 전체에 무차별 포격.
메리다의 무아몽중으로 만든 환락과 장난감의 도시가 무너져내리고 있다. 도시가 포탄에 파괴되니, 불이 붙는 대신 솜 같은 것들이 튀어나와 허공에 어지럽게 휘날렸다.
[방해하지 마.]도시 어딘가에서 메리다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시몬과 먼저 승부를 내기로 한 건 이쪽이오!”
쥴이 마검의 손잡이를 붙잡자, 검격 한 줄기가 고공으로 치솟았다.
그러나 엘리사는 높은 상공에 있었다. 그녀는 배를 움직여 치솟는 검격을 간단히 피해냈다.
“지상에서 아무리 공격해봤자 소용없거든! 이렇게 된 이상, 1위, 4위, 10위를 어부지리로 한 번에……!”
거기까지 말한 엘리사가 급히 말을 멈추었다.
누구보다 가장 높은 하늘에 있어야 할 그녀인데.
그늘이 져 있었다.
“!”
엘리사가 다급히 고개를 들었다.
화르르르르르르륵!
상공의 자욱한 화산연기를 뚫고 나타난 뭔가가, 화염을 일으켜 유령선에 불을 붙이고 지나갔다.
“꺄아아아악! 뭐야!”
갑작스러운 위에서의 공격. 전혀 대처하지 못했다.
유령선 한 척이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어 타올랐다. 유령선은 엘리사의 스피릿에 감싸진 채 하늘을 날고 있지만, 몸체의 뼈대는 어디까지나 진짜 목재.
가장 큰 약점은 불이었다.
[쓰레기들이.]펄럭!
고공에서 구멍 숭숭 뚫린 날개를 펼친 용이 눈을 부라렸다.
[기어코 내 경고를 무시했나. 이제는 전쟁으로 알겠다!]시룡의 입에서 상대에게 공포를 일으키는 ‘드래곤 피어’가 울려 퍼졌다. 그 광범위 공포 저주에 당한 엘리사의 동작이 굳어졌다.
화르르르르르르륵!
이어서 드래곤 폼 형태의 헥토르가 다시 한번 브레스로 유령선 한 척에 불을 질러 완전히 박살 내버렸다. 엘리사가 ‘히익!’ 소리를 내며 반대쪽 배로 건너갔다.
“감히 내 배를 불태웠겠다? 죽었어!”
엘리사가 반격을 시작했다. 포대를 돌려 헥토르에 포격을 퍼붓기 시작한 것이다. 헥토르는 날개를 앞세워 몸을 보호했다.
[쓰레기가!]이내 헥토르가 다시 두 날개를 펼치며 입에서 불의 숨결을 내뿜었다.
엘리사도 지지 않고 사령마법을 발동했다. 배 한 척의 전면부가 번쩍이더니 스피릿으로 이루어진 ‘주포’가 만들어졌다.
[사라져라!]“누가 할 소릴!”
용의 브레스와 유령선의 주포 공격이 허공에 부딪히며 맹렬한 폭발음을 뿜어냈다.
* * *
쿠콰콰콰콰콰-!
언어 그대로의 ‘난장’이었다. 공중은 공중대로, 지상은 지상대로 정신이 없다.
시몬은 포격으로 박살 난 장난감 집을 뛰어넘으며 거리를 내달리고 있었다.
[내 말 아직 다 안 끝났어, 시몬. 거기 서.]낄낄낄낄-!
끼이이이이!
눈알 빠진 인형과, 거대 목마, 장난감 병정들이 골목 한쪽에서 몰려들었다.
시몬은 허리에 손을 얹고는, 그 안에서 파직거리는 자줏빛 벼락을 꺼냈다.
콰르르르릉!
혼돈의 번개가 쏘아져 나가 좁은 골목의 장난감 병사들을 한 번에 쓸어버렸다. 한숨 돌리려던 시몬은 식겁하며 잽싸게 고개를 젖혔다.
스릉!
그가 뒤에 등을 대고 있던 집 한 채에 빗금이 그이더니, 단면을 드러내며 옆으로 밀려 내려갔다.
‘쥴!’
쥴은 다시 마검 때문에 정신이 혼탁해진 건지, 사방으로 검격을 쏘아 보내고 있었다. 장난감 세계가 두부 썰리듯 썰리기 시작했다.
‘위험해!’
시몬이 얼른 등을 돌려 빠져나가려는데, 이번엔 불에 타고 있는 유령선 한 척이 근처에서 떨어졌다.
후끈한 열풍이 불어닥치고, 시몬은 얼른 얼굴을 가린 채 뒷걸음질 쳤다. 아무래도 공중에서는 엘리사가 패배한 것 같았다.
“미안하지만!”
그런데 추락한 유령선 안에는 엘리사가 타고 있었다. 얼굴이 재로 새까맣게 뒤덮인 그녀가 팔을 뻗었다.
“나도 널 잡아야 하는 절박한 이유가 있거든!”
끼긱!
끽!
아직 불타지 않은 유령선의 화포들이 시몬의 방향으로 포문을 돌리고 스피릿 포탄을 발사했다. 시몬은 바닥에서 오버로드를 꺼내 포탄들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버러지 같은 것들! 방해 말고 꺼져라!]화르르륵!
입에서 뜨거운 화염을 뿜어내며, 드래곤 폼 상태의 헥토르가 장난감 시계탑 상부를 짓뭉개며 대지에 내려앉았다.
[판타서스 오빠의 뒤를 잇는 건 나야.]공중에서 이불을 방벽처럼 두른 채 잠들어 있던 메리다의 본체도 지지 않고 모습을 드러냈다.
무려 다섯 명의 Top10이 혼잡하게 서로 얽혀 있는 상황.
“아하하.”
그 순간 시몬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에 서로를 견제하던 다른 Top10들이 눈알을 굴려 시몬을 바라보았다.
스으.
“너희들, 이럴 거면.”
건물 벽에 등에 기댄 채 시몬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다 한꺼번에 덤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