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828)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28화
“앳취! 앳췩!”
재채기를 몇 번 하던 메이린은, 누가 들었나 싶어서 얼른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바로 근처엔 얼음에 파묻혀 움직임이 멎은 용암 몬스터들뿐, 따로 누가 있지는 않았다.
‘으으, 빨리 할 일이나 하자.’
타닥.
그녀가 빙하 위에서 뛰어내려 봉인석 앞에 착지했다.
화산성주가 용암 몬스터들을 보내 점령한 봉인석 중 하나. 메이린은 손을 얹어서 자신의 칠흑을 불어넣었다.
우우우웅-!
이상한 색으로 오염되어 있던 봉인석이 비로소 깨끗한 무채색으로 돌아왔다.
[도전자들이 봉인석을 추가로 점령했습니다.] [화산성주가 약해집니다.]그녀가 고개를 돌려 산을 올려다보았다.
‘이걸로 시몬에게 조금은 도움이 됐을까.’
메이린은 시험 초반 격렬한 전투에 휘말리는 바람에, 조금 늦게 중앙섬에 진출한 편이었다.
화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공략대가 출발해 버린 뒤였고, 처음엔 무리해서라도 따라잡아야 하나 생각했지만, 문득 캠프섬에서 들었던 앤돌라스 보드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화산성주를 약화시킬 수 있는 지물을 준비했습니다. 이 지물을 점거하거나 파괴하면 화산성주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죠!
앤돌라스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결국 봉인석을 점령하는 것 또한 누군가는 해야 할 일.
그녀는 고심 끝에 목적지를 바꾸기로 한 것이다.
“메이린!”
빙하 속에서 클라우디아가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동시에 머리카락을 뱀처럼 바꾸어서, 빙하에 갇혀 발버둥 치는 용암 몬스터의 목을 꿰뚫었다.
“다친 곳은 없어?”
“흥, 당연하지. 날 뭐로 보고.”
저 뒤에서는 메이린이 이끄는 키젠 학생들이 용암 몬스터 잔당을 상대하고 있었다. Top10인 그녀 또한 나름대로 전력이 될 만한 그룹을 갖춘 상태였다.
클라우디아가 말했다.
“봉인석도 점령했는데, 이제 어떻게 할래? 메이린.”
하아-
추위로 그녀의 볼이 빨갛게 변했다. 손바닥을 입가에 모은 메이린이 뽀얀 입김을 흘리며 고민에 감겼다.
삐쭉삐쭉 솟은 빙하 속에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는 소녀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여기에.”
마침내 결심이 선 그녀의 입이 열렸다.
“최소한의 인원만 두고 다음 봉인석을 점령하러 가자. 화산성에서도 퇴학을 무릅쓰고 싸우고 있을 텐데, 우리도 더 공격적으로 움직여야 해.”
클라우디아도 웃으며 말을 받았다.
“응, 위에서 싸우고 있을 시몬을 위해.”
“그렇…….”
말을 받던 메이린이 고개를 홱 돌렸다.
“?”
“?”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했다. 이윽고 메이린의 얼굴만 홍당무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무, 뭔데! 네가 왜 시몬을 위하니 그런 소릴 하는 건데!”
“예전에 좀 빚이 있어서.”
“무슨 빚?”
“까먹었어.”
클라우디아가 대충 얼버무리며 장난스럽게 메이린을 끌어안았다.
“우웅, 놀랐어? 귀여워라.”
“가, 갑자기 들러붙지 마 멍충아! 그리고 그 빚이란 게 뭔데에!”
“히히, 글쎄.”
* * *
촤아아아아악-!
눈처럼 새하얀 칼날이 투박한 몬스터의 살갗에 파고들었다. 이내 살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칼날이 체내 밖으로 튀어나오며 몬스터가 무너져 내린다.
쿵!
몬스터가 쓰러지고, 흑발의 여학생이 숨을 헐떡이며 단검을 고쳐 쥐었다.
“한 놈도 남기지 마.”
로레인이 마법진을 펼치고 흑마법을 사용했다.
그녀의 칠흑에 반응하듯, 커다란 덩치의 듀라한들이 뒤뚱거리며 용암 몬스터들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무려 다섯 기의 듀라한을 움직이는 로레인의 고유한 컨트롤계 흑마법.
시몬의 친위대를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이능을 쓰지 않고 이룩한 그녀의 순수한 성과이기도 했다.
듀라한 다섯 기가 몬스터들을 언어 그대로 도륙하기 시작했다.
“…….”
로레인은 눈에 힘을 준 채 듀라한의 컨트롤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사이, 파괴된 줄 알았던 용암 몬스터가 상반신을 일으켜 그녀의 등을 노렸다.
퍽!
그러나 팔이 닿기 전에, 몬스터의 머리가 먼저 수박통처럼 깨져 버리고 말았다.
촤악!
촤아아악!
주위의 다른 용암 몬스터들도 모조리 할퀸 자국이 그어지며 바닥에 흩뿌려졌다. 이내 하늘에서 공중제비를 돌던 누군가가 바닥에 내려왔다.
“듀라한 다섯 기를 동시에 컨트롤하는 건 대단하지만, 자신의 방비는 허술해지는 게 단점이군.”
카쟌이었다. 로레인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선배는 무슨, 그냥 카쟌이라고 불러라.”
그는 그렇게 대꾸하며 눈 밑에 난 상처를 긁적였다. 이내 고개를 돌려 분화구 쪽을 응시했다.
로레인도 봉인석에 손을 올려 봉인석 점령을 마치고는 고개를 돌렸다.
“선…… 아니, 카쟌이라면 저기 올라가실 줄 알았어요.”
“내가 갈 이유가 없다.”
카쟌이 용암 몬스터 하나를 걷어차며 그렇게 대답했다.
“이건 그들의 싸움이니까.”
“여러부운!”
피로 이루어진 커다란 망토를 두른 카미바레즈가 앞을 가리켰다.
“저기 언덕에 다음 봉인석이 보여요!”
* * *
-메리다, 이것 봐!
오빠에 대한 기억은 좋은 기억뿐이다.
엄마와 아빠가 일을 하러 도시에 나가면, 집에 남은 그녀를 돌봐주는 건 늘 그녀의 오빠인 판타서스뿐이었다.
-이럇! 목마 나가신다! 나는 하늘을 나는 말을 탄 기사야!
오빠가 장난감 목마를 타고 발길질을 해대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기억에 선명하다.
비록 가난해서 장난감은 다 해지고 눈이 빠진 것들뿐이었지만.
그 시기, 그 짧은 순간의 행복.
메리다는 잊을 수 없었다.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던 시절이었다.
-왜 그래 메리다? 힘들면 업힐래?
근처 뒷산에 올라갔다가, 내려가기 싫다고 주저앉아 있으면 오빠가 앉아서 등을 보였다.
행복했다.
둘뿐인 세상.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따뜻했던 등이 그립다.
“…….”
찬 바람을 맞은 메리다는 잠에서 깨어났다.
누군가의 등이었다.
아까의 등보다 조금 더 등이 커진 기분이다.
아까는 불편해서 자꾸 잠에서 깼던 것 같은데, 지금은 무척 편안했다.
‘찬 바람만 아니면 좋을 텐데.’
고개를 돌려보니 덜렁거리는 이불이 보인다. 이불이 찢어져서 찬 바람이 들어와 잠에서 깬 것 같았다. 주위도 유독 시끄럽다.
-끄아아아악!
-올라가! 계속 올라가!
시끄러운 건 참을 수 있지만, 안락하지 못한 건 참을 수 없다. 메리다가 찢어진 이불 부위를 붙잡고 몸을 더더욱 웅크렸다.
-끼이이이이이!
위에서 찬 바람이 밀려온다. 알고보니 날개를 단 몬스터가 이쪽으로 쇄도하고 있었다.
또 이불을 찢을 셈인가. 숙면을 방해받는 건 질색이다.
“메리다!”
바로 그즈음.
시몬은 하늘에 떠 있는 지형지물을 밟고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
“혹시 일어났어? 일어났다면 이제……!”
그때 시몬과 메리다를 노리고 비행형 몬스터 하나가 쇄도해 왔다.
시몬이 즉각 본 스피어를 조립해 반격하려는 순간.
“숙면을 방해하지 마.”
시몬에게 업혀 있던 메리다가 눈을 치켜떴다.
[……!!!]후두둑.
후두두둑.
후두두두두두두두둑-
비가 내린다.
몬스터들의 눈이 감기더니, 그대로 모든 동작을 멈추고 기우뚱하며 아래로 추락한다.
위기에 몰려 있던 학생들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 갑자기 뭐야?”
“누, 누가 한 거지?”
시몬도 놀란 얼굴로 메리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그녀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쿨쿨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이스. 메리다.’
역시 데리고 다니면 무조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시몬은 다시 하늘에 고정된 지면을 딛고 뛰어올랐다.
‘이제 거의 다 왔어.’
부지런히 올라가다 보니, 드디어 하늘에 떠 있는 화산성의 자태가 눈앞에 보였다.
[느리다. 시몬 폴렌티아.]그 위에는 시룡으로 변해 있는 헥토르가 보였다. 제일 먼저 화산성 1층에 도달한 그는 브레스를 뿜어내어 날아오는 몬스터들을 불태우고 있었다.
뒤이어 시몬이 메리다를 데리고 두 번째로 화산성에 안착했다.
“지금 변신해도 괜찮겠어?”
[내가 이 모습으로 싸우지 않았다면 진작에 전멸이었다.]헥토르가 코에서 열기를 뿜으며 말했다.
[기다려라. 내려갔다 오겠다.]헥토르가 다시 화산성 아래로 비행하며 브레스를 일으켜 적과 싸웠다.
그사이 시몬은 메리다를 다시 제대로 둘러 묶고는 앞을 응시했다.
‘여기가 화산성.’
보기보다는 상당히 거대했다.
성의 구조는 5층. 하늘을 날 수 있는 헥토르가 바로 꼭대기 층으로 가지 않은 걸 보면, 외부로부터의 통로는 모두 막혀 있고 1층에서부터 직접 올라가야 하는 구조이리라.
‘당연하지만 화산성주는 꼭대기 층에 있겠네.’
시몬이 턱을 짚고 고민하는 사이, 하나둘 다른 학생들이 화산성으로 기어들어 왔다.
“으으, 허리가 박살 난 것 같아.”
우는소리부터 하면서 모습을 드러낸 건 유령선의 엘리사.
배를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역시 Top10다운 저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뒤이어 마검 사용자 쥴이 몬스터를 갈라버리며 등장했고, 성적 상위권 학생들도 씩씩하게 올라섰다.
‘어디 보자. 지금 남은 생존자는…….’
무사히 성까지 올라온 학생들을 훑어보던 시몬의 손이 움직였다.
고작 21명.
370명이 시험에 투입됐지만, 몇 시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화산성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고작 21명이었다.
[두 명 더 추가다.]헥토르가 날개를 펄럭이며 나타났다. 그의 등에 탈진한 듯 엎어져 있는 신디 비바체와, 처음 보는 남학생이 보인다.
도합 23명.
[더는 못 올라올 거다.]헥토르가 인간형으로 돌아오며 말했다. 시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자!”
* * *
공략대 최후의 생존자, 시몬을 포함한 23명은 빠르게 화산성 1층을 내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2층까지 올라올 때까지 아무런 적의 공격을 받지 않았다.
“저항이 거셀 줄 알았는데 아무도 없네. 안을 지킬 경비병까지 다 밖으로 보내서 그런 건가?”
엘리사의 말에 헥토르가 눈살을 찌푸렸다.
“방심하지 마라, 유령선.”
“네네.”
층수는 총 5층.
적의 공세가 없는 틈을 타 빠르게 전진하던 그들이었으나, 얼마 안 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자들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춰야 했다.
“!”
화산성주의 병력이 아니었다. 그들을 가로막고 선 건 놀랍게도 같은 키젠 학생.
“어서 와.”
갈색과 주황색, 낙엽색이 뒤섞인 각진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인물.
전체 6위의 여왕벌 메르디아나였다.
“…….”
그리고 그 옆에는 찝찝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전체 5위, 아세라즈 미켈도 보였다.
“오, 우리보다 먼저 올라온 녀석들이 있었네?”
공략대의 한 학생이 웃는 얼굴로 앞으로 걸어 나왔다.
“우리랑 합류하…….”
“멈춰라.”
헥토르가 팔을 들어 그를 막았다.
“저들은 아군이 아니다.”
“뭐?”
“그건 아직 모르는 일이지.”
메르디아나가 그렇게 말하며 독사 같은 혓바닥을 낼름거렸다. 시몬은 미간을 일그러뜨린 채 그녀들의 뒤를 응시했다.
‘벌써 대비해 뒀네.’
두 사람의 뒤로 벌집들이 우후죽순으로 깔려 있었다. 어둠 속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낮게 윙윙-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수한 말벌 몬스터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세라즈는 등 뒤에 커다란 골렘 세 기를 소환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마치 투명한 유리와도 같은 푸르스름한 외형의 골렘이었는데, 곳곳에 셀 수도 없을 만큼의 많은 마법진들이 그려져 있었다. 아세라즈의 주력기인 ‘마도 골렘’이었다.
‘어떻게 우리보다 빨리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싸울 생각인가.’
저기를 통과해야 화산성주가 있는 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메르디아나가 앞으로 걸어왔다.
“키젠 학생의 한 사람으로서, 329기의 동기로서, 너희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할까 해.”
“?”
“우리 여기서-”
그녀가 두 팔을 벌렸다.
“그만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