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842)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42화
-나는 벨제불이다.
시몬은 그 말을 듣고 전율했다.
이 언데드 다이브 설비는 ‘벨제불의 살점’을 이용해 타락계 마법을 구축하는 장치다.
그런데 그 벨제불이 내게 말을 걸었다고?
벨제불은 완전히 소멸된 것 아닌가?
-역시 내 말이 들리는 모양이구나. 나와 같은 고대의 존재를 다룰 수 있는 네크로맨서가 있다는 말이 사실이었군.
어둡고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시몬은 딱딱하게 굳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기다렸다. 이 비좁은 공간 속에서, 바로 너 같은 자가 찾아오기를!
목소리의 톤이 바뀐다.
조금 더 작고 은밀한 목소리, 마치 유령이 귓가에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로.
-자, 나와 계약하라. 그리고 이곳에 있는 모두를 죽여라!
단순한 말이 아니다.
뱀처럼 은밀하면서도 또렷한 음성이 뇌리를 파고든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저항하기 힘들었다.
‘설마 이게.’
마왕 벨제불을 잡으러 왔던 팔라딘들의 머릿속에 속삭인 이야기.
팔라딘들을 타락시켜 데스나이트로 만들었던 바로 그 힘.
타락의 언어.
‘크윽!’
시몬은 필사적으로 정신을 다잡으며 버텨냈다. 잠깐이라도 정신줄을 놓으면 그의 말에 홀리게 될 것만 같았다.
-나를 꺼내고 이곳에 있는 모두를 죽여라. 그리고 나와 함께 증오스러운 유스티아노를 없애도록 하라.
유스티아노라면 벨제불을 죽이고 신성연방의 기틀을 잡은 1대 교황을 말하는 것 같았다.
시몬이 이를 악물었다.
‘유스티아노라면 이미 옛날에 죽었어!’
-호오, 그런가? 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구나.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그가 일구어놓은 모든 것들을 파멸시킬 것이다. 바로 너의 힘으로 말이다!
시몬의 정신이 점점 흔들리고 있는 그때.
[꺼져라! 분수도 모르는 망령 따위가.]머릿속을 뒤흔드는 강렬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몬은 지끈거렸던 두통이 단숨에 깨끗이 해소되는 것을 느꼈다.
이 목소리는 틀림없이.
‘피어!’
[군단은 네놈의 손에 놀아나지 않는다, 벨제불의 찌꺼기. 분수를 알아라!]피어가 등장하자 곧바로 정신이 맑아졌다. 더 이상 귓가를 어지럽히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피어!’
[잠깐 쉬는 게 좋겠군, 소년.]* * *
다이브를 중지하고 잠시 밖으로 나온 시몬은 피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가 내 분신을 떼어놓는 바람에, 도우러 오는 게 조금 늦었다!]‘아.’
수영복 차림이라 피어의 분신을 달아놓을 곳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교복이랑 함께 탈의실에 두고 왔는데 그 때문에 벨제불의 목소리가 접근한 것 같았다.
‘다음에는 손에 쥐고서라도 다이브해야겠네요. 그런데 방금 목소리는 뭐였죠? 정말로 벨제불인가요?’
[그럴 리가, 벨제불은 완전히 소멸했다.]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피어의 목소리에 진득한 노기가 느껴졌다.
[아까 그건 살점에 남아 있는 잔류사념에 가깝다. 아니, 그보다도 더 저급하지! 자신을 벨제불이라 착각하고 있는 찌꺼기에 불과하다!]‘어쩐지.’
시몬이 고개를 돌려 유리관에 봉인된 벨제불의 살점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목소리를 계속 듣다 보니, 약간 타락의 효과가 남아 있던 것 같은데요?’
[크흐흐! 그건 굳이 쓰레기통을 열어서 코를 처박으면 냄새가 나는 것과 같다.]평소의 피어답지 않게 적나라한 표현이었다.
아무래도 그는 벨제불의 잔념 따위가 군단을 이용하려 했다는 사실에 심기가 불편해진 것 같았다.
[내가 억제해 두긴 했지만, 가끔 쓰레기 냄새가 날 수 있다. 그때는 놈의 간악한 헛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무엇보다 절대로 ‘대답’하지 마라. 그러면 알아서 냄새가 빠질 거다.]“명심할게요.”
시몬이 피어의 분신을 손에 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흐흐! 바로 다시 할 생각이군!]“네, 중요한 순간에 방해받았으니까요.”
시몬은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 작업대에 놓인 해골을 바라보았다.
벨제불이 말을 걸고, 자신을 타락시키려 하는 건 예상외의 사태다.
하지만 어떤 방해가 있더라도, 데스나이트는 반드시 완성할 생각이었다.
* * *
다행히도, 시몬이 각오했던 방해는 거의 없었다.
피어가 벨제불의 사념을 몰아낸 뒤로는 아무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시몬은 더더욱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언데드 다이브에 성공한 학생들은 로크섬과 그랜드포지를 내 집처럼 드나들며 데스나이트 제작에 몰두했다.
그랜드포지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기에, 아론은 그레리온 교수와 진 아르스칼트 교수에게 양해를 구해서 모든 전공수업 시간을 데스나이트 제작에 할애할 수 있도록 했다. 학생들은 시간에 쫓기지 않고 제작에 열중할 수 있었다.
‘소환 마법진을 그리는 것부터가 쉽지 않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프리스트’나 ‘팔라딘’을 언데드로 일으켜도 성능이 크게 떨어져서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된다.
이들은 칠흑을 쓰는 언데드가 되어서도 신성마법을 시전하는 패턴을 이용하려 했고, 수식이 꼬이고 칠흑의 흐름도 뒤틀리면서 고장 난 기계처럼 변해 삐거덕거리기 일쑤였다.
바로 이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게 ‘타락마법’이었다. 프리스트 시체의 칠흑 흐름을 뒤틀고 변이시켜서 일반적인 보통 언데드의 패턴으로 바꾸는 게 핵심 중의 핵심이었다.
‘언데드 다이브를 성공한 건 시작에 불과하네.’
프리스트들은 생전에 신성을 사용하는 패턴과 습관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아론이나 조교들이 교과서적인 용법을 가르쳐 줄 수는 없었다. 학생들은 그때그때 감각적으로 수식을 조율해야 했다.
수식과 회로를 맞춰놓은 뒤, 다음날까지 방치해 놨다가 다시 와보면 타락계 마법에 비틀려서 흐름이 일그러진 채로 남아 있다. 이것을 수정하고 고쳐야 했다.
끊임없는 작업.
피로감을 느낄 만했지만, 학생들은 기꺼이 데스나이트를 위해 모든 시간과 여력을 투자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이 작업에 가장 심취한 건 시몬이었다.
‘재밌다. 충분히 할 수 있어!’
마음 같아선 그랜드포지에 숙식까지 해결하면서 머물고 싶은 심정이었다.
밥을 먹을 때도, 다른 일반과목 수업을 들을 때도, 잠자리에 드는 순간마저도 타락계 마법진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심지어 꿈에서도 계속 마법진을 수정하고 있었다.
중간중간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수첩에 메모를 해두었다. 다른 수업 시간에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걸 적용해 보고 싶어 온몸이 근질거렸다. 몸은 강의실에 있지만 마음은 그랜드포지에 가 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늦은 칠흑역학 수업을 끝마친 시몬은 기숙사 창문으로 훌쩍 빠져나왔다.
‘가자!’
어깨에는 수영복을 챙긴 가방을 둘러맨 채였다.
오늘밤도 바로 그랜드포지로 떠나려는데.
“시몬?”
어디선가 시몬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시몬이 움찔하며 걸음을 멈추고는 어둠 속을 응시했다.
기숙사 정원에서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여학생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로, 로레인!”
“이 밤중에 어디가?”
시몬의 어깨가 떨렸다. 슬쩍 시선을 피한 그가 손끝으로 옆머리를 긁적였다.
“아, 그게…….”
“그랜드포지에 가려는 거지? 토토가 어제 기숙사에 네가 들어오지 않아서 걱정했어.”
그녀가 팔짱을 꼈다.
“기숙사 통금시간 전까지는 돌아와야 한다고 아론 교수님도 말씀하셨잖아.”
“미, 미안.”
찔끔한 시몬이 사과했다. 루비 같은 눈동자로 물끄러미 시몬을 응시하던 그녀가 이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같이 가.”
“그래, 같이…… 응?”
“혼자 가면 위험할지도 몰라. 그랜드포지는 치외법권이니까 둘이서 행동하는 게 훨씬 안전해.”
그녀가 성큼성큼 걸어가며 시몬의 손목을 붙잡았다.
“가자.”
“아, 고마워 로레인!”
두 사람은 즉각 금지된 숲을 빠져나와 텔레포트 마법진이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시몬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텔레포트 마법진을 작동시켰다. 보안 수식이 시몬과 로레인의 손등에 새겨진 보안키를 확인하고는 완벽하게 작동했다.
“진짜 괜찮겠어?”
시몬이 텔레포트 마법진 위로 올라가며 말했다.
시몬 본인이야 1학년 시절부터 금지된 숲과 피어의 유적에 나가는 등 밥 먹듯이 학칙을 어겨왔지만, 로레인은 달랐다. 그녀는 미래의 암흑연합 총수이기도 했다.
“괜찮아.”
로레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시몬의 옆으로 걸어왔다.
“네 걱정하느라 속 앓는 것보단 나아.”
우우우우웅-!
이내 두 사람의 발이 동시에 허공에 떠올랐다.
이후 눈을 뜨니 익숙하고 웅장한 광경이 펼쳐졌다.
매연과 연기가 가득한 지하도시. 천장에 커다란 석순들이 매달린 그랜드포지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동시에 로브 후드를 머리 깊게 눌러썼다.
“얼른 가자, 시몬.”
어쩐지 목소리가 밝아진 로레인이 시몬의 손목을 붙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칠흑까지 일으키며 뛸 듯이 달려나갔다. 입가에 살짝 미소도 맺혀 있었다.
‘뭐, 뭐지?’
생각해 보니, 그녀도 가끔 나이 또래 같은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여줄 때가 있었다. 대부분 키젠이 아닌, 야외나 먼 곳에 나갔을 때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신나게 거리를 내달렸다. 가끔 드워프들이 힐긋 쳐다보곤 했지만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았다.
이곳은 그랜드포지. 허가받지 않는 사람은 들어오지도 못하는 대륙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 중 하나였으니까.
이내 연구실에 무사히 도착했다.
“오늘 밤은 아무도 없네.”
시몬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로레인이 놀란 눈으로 시몬을 홱 돌아보았다.
“그럼 어젯밤에는 다른 애들도 있었단 소리야?”
“아하하.”
시몬이 대충 웃음으로 넘겼고, 로레인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학과 애들도 정말이지……. 그럼 얼른 준비해. 밖에서 지켜봐 줄게.”
“로레인 넌 안 들어가려고?”
“수영복 안 가져왔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시몬이 들어갈 실험관 옆에 의자 하나를 끌어와 앉았다.
“그리고 내 데스나이트는 문제없으니까 괜찮아. 보조는 내게 맡겨.”
“고마워, 로레인.”
시몬이 바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뒤 실험관에 들어갔다. 로레인이 덮개를 닫아주었고, 이내 언데드 다이브를 시작했다.
이제는 이것도 익숙해졌다. 처음에 느껴졌던 그 묘한 이질감과 거부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나를 여기서 꺼내라. 모두를 죽여라. 그리고 유스티아노의 왕국에 복수해라!
가끔 그 벨제불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시몬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으니 금방 사라졌다.
이후 시몬은 정신없이 작업에 몰두했다.
‘드디어 흐르는 방향의 문제를 알겠어.’
다른 수업 내내 생각했던 아이디어를 적용해 볼 때다.
현재 막힌 부분은, 룬어를 작동시키니 자꾸 칠흑이 정방향으로 흐른다는 것. 알고 보니 타락계 마법의 용법이 잘못되었다. 룬어를 거꾸로 배치하고 흐름을 유도하니 드디어 역제어 흐름의 실마리가 보였다.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었네.’
시몬은 정신없이 하던 작업을 잠시 멈추고 앞을 보았다.
의자에 다소곳이 앉은 로레인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무릎 위에 얹어둔 책을 읽고 있었다. 그녀는 늘 그렇듯 의젓하고 어른스러운 모습이다.
그때 시몬의 언데드 팔이 움직이지 않는 걸 발견한 로레인이, 근처의 빈 노트를 집어서 글자를 써내려간 뒤 시몬 쪽으로 들어 보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한 차례 갸웃했다. 검은 머리카락이 고개가 기울어진 방향으로 살짝 흘러내리는 모습까지 그림 같았다.
시몬은 얼른 언데드 팔의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다, 다시 작업하자.’
그녀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자각하니 괜히 긴장했다.
시몬이 다시금 작업에 집중하려는데.
‘?’
시야 내에 보이는 로레인이 갑자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다이브한 상태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고, 시야도 옆으로 돌릴 수 없다. 그녀가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뒷걸음질 치는 모습이 보이더니 시야 밖으로 나가 버렸다.
‘무슨 일이지?’
키젠 학생이 왔다면 반갑게 맞이했을 테고, 아론 교수나 조교들이었다면 죄송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명백히 당황하고 있었다.
‘설마.’
아무래도, 이곳에 와서는 안 되는 누군가가 연구실에 들어온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