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864)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64화
대륙 서부, 이름 모를 밀림.
터벅. 터벅. 터벅.
로브를 뒤집어쓴 한 남자가 독으로 엉망이 된 밀림을 걷고 있었다.
맹독이 흘러나오고 시간이 꽤 지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인간에게 유해한 성분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남자 또한 화학 마스크를 쓰고 이곳에 들어왔다.
‘무시무시하네.’
이게 발락의 짓이라면 걸어 다니는 독의 재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빨리 끝내고 돌아가자.’
밀림을 수색하는 이 남자는 카쟌이 몸담고 있는 ‘도둑길드’의 일원이었다. 카쟌의 지시를 받고 행방불명된 키젠의 하수인을 찾으러 온 것이다.
하수인은 발락에게 정보를 전달하려다가 실종. 마지막으로 사라진 곳이 이 밀림이었다.
‘수상한 냄새가 나긴 하는데.’
삐빅.
삑.
그때 그의 손에 들려 있는 탐색 아티팩트가 반짝였다. 아티팩트를 확인해보니 미묘한 칠흑의 잔재가 이곳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었다.
‘어디 보자.’
그가 조심스레 몸을 낮추고 바닥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몇 분 지나지 않아 한숨이 절로 푹푹 나왔다.
온갖 것들이 뒤섞인 이 독의 늪에서 제대로 된 흔적을 찾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이게 곤죽이 된 생물인 건지, 그냥 나무와 풀이 녹은 건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돈 받고 하는 일이니, 인내심을 갖고 부지런히 주변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음?’
남자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이내 곤죽이 된 늪 안으로 팔을 쭉 넣어서 뒤적거리다가 뭔가를 들어 올렸다.
녹다 만 물건이 손에 붙잡혔다.
사람의 팔 같았는데, 진짜 사람의 신체는 아니었고 내부에 금속이 붙어 있었다. 죽처럼 변해 있는 그것을 본 남자의 동공이 흔들렸다.
‘설마……!’
그는 바로 증거물을 확보하고는 즉각 품에서 통신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 * *
경기장의 열기는 극도로 뜨거웠다.
드디어 교류전 행사가 모두 끝나고, 학생회장을 확정 짓는 두 남자의 진검승부만 남았다.
지금까지의 교류전 경기는 모두 사전 이벤트에 불과했다. 결국은 이 시몬과 발락의 승부에서 모든 게 판가름 날 것이다.
2학년은 완전한 세대교체를 위해, 3학년은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모두가 절실한 마음으로 응원했다.
-힘내라 시몬! 진짜 부탁한다!
-발라아아악!
경기가 가까워질수록 열기는 점점 더해갔다. 메이린은 가슴에 손을 올린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으으, 내 경기 때보다 더 떨려. 심장 터질 것 같아.”
“시몬……! 힘내세요!”
메이린과 카미바레즈는 서로 부둥켜안고 곧 시몬이 나오게 될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딕은 끌끌 혀를 차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아마도 핵심은 데스나이트겠지? 발락도 그동안 더 강해졌다고 들었는데, 경기 중반이 걱정이네. 아, 오늘 시몬이 컨디션이 좋아야 할 텐데……!”
“당연히 시몬이 이길걸요?”
이제는 아예 일행들이 있는 쪽에 자리 잡은 세르네가 우후후 고혹적인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남자니까요.”
메이린이 발끈했다.
“제발 개똥 같은 소리 그만 좀 나불대고. 저리 꺼져!”
“너무해~ 메이린. 세리는 조금 더 메이린 곁에 있고 싶은걸.”
세르네가 바로 표정과 목소리를 살갑게 바꾸며 메이린에게 들러붙었다. 메이린은 질색하며 그녀의 머리를 밀어냈다.
“저리 꺼지라고!”
“참, 메이린! 내 소원 하나 들어주는 거 안 잊었지?”
그 말에 메이린이 멈칫하며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세르네가 입꼬리를 올렸다.
“으음, 어떻게 할까? 방학 내내 하녀복 차림으로 내 시중을 들라고 해볼까? 아님 교류전 축하공연은 어때?”
“야!!”
메이린의 얼굴이 벌게졌다. 축하공연이라는 말에 반응한 딕이 자세를 바꿔 앉았다.
“혹시 아이디어가 필요하면 언제든…….”
퍼억!
그대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딕의 고개가 옆으로 꺾였다. 카미바레즈가 아하하 자그맣게 웃으며 입가를 가렸다.
타다닷!
그때 뒤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본 카미바레즈의 눈이 커졌다.
“카, 카쟌?”
“너희들.”
카쟌은 머리에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이내 그가 심각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 경기가 시작하진 않은 것 같은데. 시몬은 어디 있지?”
딕이 손을 들었다.
“시몬 지금 경기장 밑에 선수 대기실에 있을걸요.”
“고맙다.”
그 말을 들은 카쟌이 휙 몸을 날려 사라졌다. 네 사람은 서로 마주 보았다.
“……카쟌이 무슨 일이지?”
“글쎄요.”
“워낙 바쁜 사람이니까.”
* * *
그렇게 경기장 밖의 열기가 고조되고 있는 그때. 시몬은 대기실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채 홍펭이 가르쳐준 명상법을 하고 있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정신이 맑아진다.
그동안 이미지트레이닝을 했던 여러 모습들이 시몬의 머릿속을 부유했다가 사라진다.
어떤 전략으로 갈 것인가. 차분히 머릿속이 정돈된다.
똑똑.
그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아직 경기가 시작하기엔 이른 시점이었기에, 시몬은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떴다.
“네, 들어오세요.”
이내 달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푸드득!
푸덕!
그런데 사람 대신 올빼미 몇 마리가 날갯짓하며 대기실 안으로 날아왔다. 그것들은 옷걸이나 테이블 등에 제집처럼 태연히 걸터앉았다.
“늦지 않게 오셨네요, 선배님.”
시몬이 허공에 대고 말했다.
이내 바닥이 일렁이더니, 검은 연기와 함께 한 여학생이 모습을 드러냈다.
교복 겉에 회색의 거적때기를 두르고 있고, 어깨에는 올빼미가 올라가 있는 모습.
3학년 전체 2위의 그리모와르였다.
“미안하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그녀는 가볍게 숨을 헐떡이며 후드를 매만졌다. 딱 봐도 피곤해 보였는데, 머리카락이 헝클어져 있었으며 얼굴도 전에 봤을 때보다 더 핼쑥해졌다.
“받아라.”
그녀가 건넨 것은 목걸이 형태의 아티팩트였다. 은색 목걸이 줄에, 특별한 장식 없는 보석 같은 게 매달려 있었다.
대신 보석 뒷면을 보니 상당히 복잡하게 세공된 마법진이 빛나고 있었다.
“겉보기엔 쉴드 아티팩트지만, 발락의 ‘암서’에 반응해 펼쳐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시몬이 목걸이를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칠흑을 흘려보내 작동시켜 보았다. 전면에 투명한 막이 시몬의 앞을 가리듯 펼쳐졌다.
“암서를 완전히 막아내는 건 불가능하다만, 다른 방향으로 흘려보내 안전하게 지면에 부딪히도록 설계했다.”
“좋네요! 요긴하게 잘 쓸게요.”
“다만.”
그녀가 검지를 세웠다.
“이 아티팩트로 발락의 암서를 막을 수 있는 건 딱 한 번이다.”
“음.”
“아무리 발락이라도 필살의 각오로 사용한 암서가 막히면 당황하겠지. 그때가 유일한 기회다. 그때 발락을 잡지 못하면 네가 죽는다.”
그녀가 눈을 감았다.
“발락은 암서를 여러 권 꺼낼 수도 있으니까.”
시몬이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목걸이를 목에 맸다.
“명심할게요. 가보겠습니다.”
“시몬 폴렌티아.”
그녀가 시몬을 돌아보며 말했다.
“죽지 마라.”
“네.”
* * *
와아아아아아아아!
경기를 앞두고 곳곳에서 열띤 함성이 쏟아졌다.
낮에 했던 교류전과는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경기장에 수업을 마친 1학년들이 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소식을 듣고 온 고위계층의 거물들이나 노인들까지 하나둘 자리를 잡고 앉고 있었다.
누가 진짜 키젠의 학생회장이 될 것인가.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슈였다. 이내 사회자 콘라드가 팔을 펼쳤다.
“네! 두 학생 모두 준비가 끝났다고 합니다! 그럼 먼저 도전자 시몬 폴렌티아 학생부터 경기장으로 모시겠습니다! 큰 함성과 박수 부탁드립니다!”
이어지는 뜨거운 함성과 함께, 시몬이 당당한 걸음걸이로 경기장에 나오고 있었다. 시몬은 태연한 얼굴로 주위에 손을 흔들어 보였다.
“저기다!”
“시몬 선배님!”
기어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온 1학년들은 극도로 흥분한 반응을 보였다. 방금 막 수행평가를 마친 건지 교복에 흙이 조금 묻어 있었지만, 그들의 눈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시몬 오빠-!”
가장 앞자리에는 특례 1번 사샤가 두 손을 번쩍 들며 응원했다. 그 옆에는 2번인 아서와 10번인 몰리 공주를 비롯한 돌연변이 1학년 멤버들이 모여서 환호하는 중이었다.
[크흐흐! 터무니없는 인기로군!]피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놀리지 말아주세요, 피어.’
시몬도 웃음으로 넘기며 자리에 멈춰 섰다. 이내 콘라드가 반대쪽으로 팔을 펼쳤다.
“다음으로 현 학생회장이 등장할 차례입니다! 3학년 전체 1위에 키젠 최강! 발락 학생회장입니다!”
이에 질세라 3학년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를 터뜨렸다.
시몬은 앞을 응시했다.
거대한 덩치에 철제 마스크를 쓰고 검은 학생회장 코트를 휘날리는 남자. 발락이 걸어오고 있었다.
숨결마다 독연기가 피어오르고, 걸음걸음마다 경기장 바닥의 잔디가 시들었다.
이내 두 남자가 마주 보고 섰다.
[시몬 폴렌티아.]철제 마스크 사이로 쇠로 긁는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죽음을 한 번 비껴간 것에 만족하지 않고, 기어코 내 앞에 다시 섰나.]시몬이 삐딱하게 웃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당신에겐 선배대접 할 생각이 없어.”
그의 눈에는 은은한 분노가 일렁이고 있었다.
“에이젤 선배를 대신해서, 이 경기에서 당신을 쓰러트리겠어.”
[기고만장하군.]발락이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우악스럽게 솟은 힘줄이 꿈틀거렸다.
[네게 진정한 죽음을 경험하게 해주마.]심판이 과도한 신경전을 자제시키고, 두 사람에게 악수를 하게 했다. 시몬과 발락은 가까이 걸어와 악수했다.
가볍게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이 한 걸음 한 걸음 멀어져 갔다. 환호성은 점점 더 커지고 두 사람이 적당한 거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럼 지금부터, 발락 학생회장과 시몬 폴렌티아 학생의 ‘명예로운 결투’를 시작하겠습니다! 승자는 키젠의 학생회장 직을 손에 넣게 됩니다!”
심판이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준비됐습니까?”
“네.”
시몬이 대답했다.
끄덕.
발락은 말없이 고개만 움직였다.
이내 심판이 두 학생이 준비가 된 것을 확인하고는 팔을 내렸다.
“경기 시작!”
두 남자가 동시에 몸을 움직였다. 먼저 공격을 감행하는 쪽은 시몬이었다.
‘바로 공격해야 해!’
그동안 딕과 함께 발락의 공략법을 철저히 공부해 왔다.
발락의 특기는 ‘데스아머’로 불리는 독으로 전신을 감싸는 공방일체의 맹독갑주마법. 독의 갑옷 속에 파묻혀 적을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강력한 기술이다.
갑옷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두꺼워지고 견고해지는데, 갑옷이 쌓이면 쌓일수록 더 강력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즉.
‘초반 공세로 밀어붙여야 해!’
교류전 첫 경기였던 에이베스의 전술을 보고 느낀 점이 많다.
시몬은 단숨에 주먹에 칠흑을 끌어모아 돌진했지만.
[뻔하다.]발락은 제자리에서 가볍게 발을 굴렀다.
쏴아아아아아-!
주위가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뒤흔들리더니 그의 발을 중심으로 독극물이 석유 터지듯 올라오기 시작했다.
시몬은 급히 걸음을 멈추었다.
[내가 똑같은 수에 당하는 아류라고 생각했나.]발락이 손을 뻗자, 맹독이 살아 있는 것처럼 시몬을 향해 쏟아졌다.
시몬은 즉각 교복 벨트 한쪽에 달려 있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발락은 매 전투마다 독의 배열을 바꾸지만, 한번 맹독마법을 사용한 뒤로 성분은 거의 고정되어 있어.’
그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빈 병과 종이가 튀어나왔다.
‘단번에 저항을 쌓고 간다!’
퍼어어어엉!
퍼어어엉!
시몬은 범람하는 독극물을 피하면서 빈 병에 독을 조금 담았다. 이내 반대쪽 손에 쥔 시트지와 분석용지를 그 안에 쑤셔 박았다.
“꺄하하하하하! 그렇지!”
관중석 어디선가 별야의 신이 난 외침이 들렸다. 시몬은 시트지의 색상이 바뀌는 걸 파악하자마자 주머니에서 몇 개의 배합된 성분제를 입에 집어넣었다.
‘똑같은 수에 당하는 아류는 아니지.’
시몬은 발락과의 승부가 끝나고, 독 때문에 고통스럽게 골골거렸던 적이 있었다. 이것을 대비하기 위해 지금까지 별야의 맹독학 시간에 저항계를 준비한 것이다.
저항계를 끌어올리며 시몬이 두 팔을 앞으로 뻗었다.
동시에 발락 또한 팔을 뻗었다.
초반 압박으로 끝날 수준의 경기가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경기 중반 이상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