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875)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875화
“아으으! 이제는 칠흑도 없어!”
같은 시각, 메이린이 뒷걸음질 치며 흑마법을 쏴대고 있었다.
목숨을 걸고 길을 확보해서 로레인 일행을 먼저 보낸 뒤, 메이린과 세르네, 딕은 좁은 길목을 선점하고 끊임없이 몰려드는 그리모와르의 몬스터와 결사의 새빨간 거미 몬스터들을 막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결사의 거미 몬스터들이, 그리모와르의 몬스터들을 죽이고 그 신체에 알을 낳기 시작한 것이다. 이내 그 시체를 파먹으며 새끼들이 태어났고 이제는 순식간에 주위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렇게 몬스터들의 수는 불어나는 반면, 메이린 일행의 칠흑은 한계에 봉착했다. 메이린의 엘리멘탈 마스터 모드는 풀려 버리고, 이제 손바닥에서 헛바람만 나오고 있었다.
“못 살아! 이런 와중에 세르네는 어디 간 건데!”
메이린이 비명처럼 소리 질렀다.
“웃차!”
이런 와중에 딕은 영리하게도 아공간에서 온갖 고철들을 꺼내 벽을 쌓은 뒤, 인챈트로 굳혀서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였다. 빨간 몬스터들의 거미 다리가 벽의 틈 사이로 삐져나와 휘적대고 있었다.
딕이 뒤를 돌아보았다.
“슬슬 돌아올 때가 됐는…… 아!”
말하면 온다더니, 마침 카미바레즈와 로레인, 레오나드가 뛰어오고 있었다. 로레인은 부상을 입은 듯 절뚝거리며 카미바레즈의 부축을 받고 있었으며, 레오나드는 어깨에 기절한 시몬과 발락을 짊어지고 달리는 중이었다.
“여러부운!”
카미바레즈가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외쳤다.
“카미! 왜 이렇게 늦었어!”
메이린은 그들을 반갑게 반겨주다가, 기절한 시몬을 보며 입을 가렸다.
“시, 시몬?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설명하자면 길어.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는 데 집중하자.”
그렇게 대답한 건 일행 중 가장 피투성이가 된 레오나드였다. 그가 몸을 숙이며 말했다.
“그리모와르가 죽었어. 이제 이능으로 만든 공간은 사라져 갈 테고, 바깥에 균열이 생길 거야. 그 균열로 들어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어. 딕, 이 녀석들을 부탁한다.”
레오나드가 시몬과 발락을 딕에게 건네주었다. 딕이 ‘윽’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발락 이 자식은 뭐 하러 데려왔어요?”
“아직 살아 있으니까. 여기서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어. 적법한 절차에 따라 벌을 받게 할 거야.”
레오나드는 누구보다 발락을 싫어했지만, 적어도 같은 동기로서의 마음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이내 그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장애물 앞으로 나왔다.
“한 번에 돌파할게.”
레오나드는 아공간을 걸고 여섯 기의 언데드 미노타우로스를 한꺼번에 꺼냈다. 카미바레즈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다.
“아, 안 돼요, 레오나드 선배님! 아까도 너무 무리하셨잖아요!”
쿠웅!
쾅!
딕이 설치한 장애물들이 몬스터의 공격으로 구멍이 점점 더 뚫려갔다.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설령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좋아.”
쿨럭!
레오나드가 기침을 하자 피가 흘러나왔다. 온몸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초췌한 얼굴 가운데 눈빛만큼은 일렁이고 있었다.
“간다.”
키젠 3학년 수준의 초고위 장송마법이 연달아 펼쳐진다.
미노타우로스들의 피부색이 검게 변질되기 시작했다.
-우어어어어어어!
-우우우우우!
이내 혈관이 비대해지며 괴수의 상반신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순식간에 그들의 전면부를 전부 가릴 만큼 커졌다.
“크윽!”
레오나드가 무리한 흑마법의 반동으로 비틀거렸다. 모두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향했지만, 그는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이 순간.
이 시점에.
흐릿한 그의 시야로 교복 재킷을 휘날리며 서 있는 판타서스의 모습이 잠시 허상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팔에 소름이 쭉 돋는다. 죽기 직전의 허상이라도 좋았다. 레오나드가 결연히 중얼거렸다.
“더 이상 후배들은 못 건드려.”
마지막으로 등 뒤에 초대형 아공간이 펼쳐지며, 아까 킬로바니안을 때렸던 초대형 반인반우의 괴수가 튀어나왔다.
“가라!”
후우우우우우우우웅!
결사의 몬스터들이 장애물을 박살 내고 뛰어나오는 동시에, 초대형 괴수가 주먹을 내질러 충격파로 몬스터들을 튕겨냈다.
전방에 10미터 이상의 빈 공간이 벌어졌고, 폭주한 미노타우로스들이 함성을 쏟아내며 일렬로 서서 돌진했다.
퍼어어어억!
쩌어어억!
가히 전차와도 같은 돌진력이었다.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이 가루처럼 밀려나거나 미노타우로스의 발에 짓밟혀 박살 났다.
나머지 일행들은 뒤따르면서 빠져나온 몬스터들만 정리하면 되었다.
“대, 대단해! 진짜 뚫고 나가고 있어!”
메이린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딕이 와하하 웃으며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외쳤다.
“이게 3학년이지!”
아아아아아아아아!
레오나드가 피칠갑이 되어 부르짖었다. 미노타우로스들이 기어코 좁은 길목을 정면으로 돌파해 밖으로 일행들을 내보냈다.
힘이 빠진 미노타우로스들이 붉은 몬스터들에 붙잡혀 하나둘 쓰러졌고, 일행들은 그사이 더더욱 속도를 높여 빠져나왔다.
“12시 방향에서 와!”
“뒤에서도요!”
자극받은 다른 일행들도 최후의 칠흑을 쥐어짜 내 정신없이 싸웠다. 단검을 휘두르던 로레인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옆구리를 매만졌다.
‘부상만 아니었다면…….’
그녀의 이능은 강력하지만, 술사의 몸을 지속적으로 파괴하는 효과가 있었다. 온전한 몸으로 이능을 쓰는 건 상관없었으나 부상당한 상태에서 이능을 쓰면 자멸행위에 불과했다.
‘아니, 포기하지 말자.’
소환학과에 들어오고 나서 배운 게 있다.
반드시 이능이 아니어도 괜찮다.
이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그녀가 허공에 세 개의 마법진을 펼쳤다.
“부탁해!”
허공에 아공간이 벌어지고 로레인의 데스나이트가 튀어나왔다.
촤아아아아악!
촤아아아악!
데스나이트가 순식간에 오러블레이드를 켜고 몬스터들을 베어 넘기며 선두에 섰다. 데스오러로 이루어진 공격은 결사 몬스터의 튼튼한 장갑도 두부처럼 가를 수 있었다.
“살았어 로레인!”
칠흑이 없어서 마투로 몬스터를 상대하던 메이린이 외쳤다. 딕이 포션병을 사방으로 던지며 말했다.
“와, 데스나이트는 보면 볼수록 부럽네. 나도 소환학과나 갈걸!”
“밥팅아! 네 실력으로는 가도 못 만들거든!”
“여, 여러분! 앞에 한 무리가 더 있어요!”
거의 30마리가 넘는 결사의 거미 몬스터들이 우르르 쏟아지고 있었다. 이제는 그리모와르의 몬스터보다 결사의 빨간 몬스터가 더 많을 정도였다.
“옆에도 있어!”
그와 비슷한 규모의 거미 몬스터 무리가 좌우에서 포위하듯 몰려들고 있었다.
일행 모두가 절망감에 얼어붙어 있는 그때.
“뭘 그렇게 굳어 있어요?”
위쪽에서 들린 목소리에 그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눈처럼 새하얀 깃털이 휘날리는 것과 함께, 고혹적인 웃음소리를 흘리는 상앗빛 머리카락의 여자가 나뭇잎처럼 하늘하늘 내려왔다.
“세르네!”
“야!! 너 어디 갔다 이제 와!”
팔을 붕붕 흔들며 화를 내는 메이린에게 눈을 찡긋한 세르네가 긴 손가락을 세워 앞을 가리켰다. 이내 낭랑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돌진~”
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좌우에서 밀려들던 새빨간 몬스터들 무리가, 갑자기 방향을 돌리더니 일행들은 내버려 둔 채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응?”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어요!”
딕이 하하 헛웃음을 흘렸다.
“자기들끼리 싸우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편인 것 같은데.”
몬스터들의 몸통 위에 세르네의 깃털이 꽂혀 있는 게 보였다. 딕이 고개를 들어 세르네를 보았다.
“저거 정신지배 안 통한다며?”
“처음엔 그랬죠.”
그녀의 눈꼬리가 살짝 휘었다.
“그래서 수식을 보완해 저 몬스터를 위한 정신지배 사양으로 바꿔서 걸었답니다. 간단하죠?”
모두가 세르네를 괴물 같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때 반쯤 기절해 있다가 정신을 차린 레오나드가 외쳤다.
“저기 도서관 밖에 균열이 보여! 저기로 빠져나가면 돼!”
붉은 거미 몬스터들끼리 서로 공격하며 동족학살이 일어나는 사이, 일행들이 모두 균열을 향해 전속력을 다해 뛰었다.
“시몬! 조금만 더 참아주세요!”
카미바레즈가 혈류탄을 쏘아 보내며, 딕에게 업혀 있는 시몬을 걱정스럽게 한번 바라보았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그때 저 멀리서 거대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여기서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냐!]일행들이 달리면서 뒤를 돌아보자, 그리모와르의 도서관에서 날린 듯한 산더미만 한 책장이 날아오고 있었다. 제인에게 발목이 묶인 킬로바니안이 하는 수 없이 책장을 집어 던진 것이다.
모두의 시야가 그늘로 덮였다.
“와, 이건 좀……!”
“계속 뛰어라.”
그 순간, 공중으로 훌쩍 뛰어오르는 남자가 있었다.
두 팔과 몸을 역C자처럼 펼친 자세에서 단번에 전신을 굽히며 두 팔을 내리그었다.
날아오는 책장에 무수한 회색 줄기의 손톱자국이 그어지더니, 이내 산산조각 나며 일행들의 반대 방향으로 우수수 쏟아졌다. 딕이 감격한 표정으로 외쳤다.
“카쟌! 역시!”
“시몬을 빼앗기지 마라.”
바닥에 내려온 카쟌이 몬스터들을 상대하며 말했다.
“결사와의 전쟁을 이길 핵심을 손에 쥐고 있을 거다. 나는 제인 교수님을 도우러 갈 테니 먼저 가라!”
“네!”
일행들이 모두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 달렸다. 그리고 일그러지는 균열을 향해 힘껏 뛰어서 몸을 던져넣었다.
* * *
쿠당탕탕탕!
균열 속에서 빠져나온 일행들이 땅바닥에 패대기쳐지거나 흙바닥을 나뒹굴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이제 일그러지고 음울한 하늘이 아닌, 푸른 하늘이 보였다. 그들이 늘어지듯 몸에서 힘을 빼며 숨을 몰아쉬었다.
살았다.
잠시 동안은 그런 생각밖에 안 들었다.
“시몬! 시몬은?”
로레인의 외침에 메이린과 카미바레즈를 비롯한 일행들이 벌떡 일어나 시몬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아. 살아 있어.”
“으윽.”
레오나드도 상태가 나빠 보였고 로레인의 옆구리는 계속 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카미바레즈가 외쳤다.
“도와주세요! 누구 없어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
그녀가 애타는 목소리로 외치자, 마침 주변 건물에서 하수인들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달려왔다.
“학생들! 상부에서 말했던 그 학생들입니다!”
“부상자도 있어!”
“빠르게 병동으로 옮겨! 서둘러!”
그들 모두 구급상자와 들것을 갖고 있었다. 미리 키젠 쪽에서 언질을 해두었던 모양.
하수인들은 학생들을 들것 위로 옮겼고, 부상 상태가 심한 학생들은 즉각 지혈을 비롯한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그제야 모두가 살았다는 듯 안도했다.
“제인 교수님은 괜찮을까?”
메이린이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리모와르가 죽고 균열을 통해 빠져나오긴 했지만, 이쪽에서는 그 균열이 보이지 않았다. 한번 넘어오면, 다시 저쪽으로 돌아갈 방법은 없는 모양이었다.
카미바레즈가 애써 웃었다.
“교수님이라면 괜찮을 거예요. 카쟌이나 다른 네크로맨서 요원님들도 도우러 갈 거고, 그리고-”
배신의 군단장의 그 언데드도 있다.
그렇게 말하려던 카미바레즈는 이내 입술을 달싹이며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시선이 잠시 기절한 시몬에게로 향했다.
이내 학생들은 모두 들것에 실려갔다. 시몬을 챙긴 한 하수인이 눈을 깜빡였다.
“이 학생, 손에 뭔가를 들고 있는데요?”
시몬의 손에는 여전히 그 나침판 아티팩트가 들려 있었다. 선임 하수인이 굳은 표정을 지었다.
“……이게 그 물건인가 보군.”
“예?”
“아무것도 아냐. 억지로 빼내려 하지 말고 시몬 학생이 손에 쥐게 한 채로 옮겨. 절대로 한눈팔지 마.”
* * *
시몬이 병동에서 눈을 뜰 즈음에는, 그리모와르 사태가 끝난 뒤 나흘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다행히도 그 끔찍하게 강했던 킬로바니안은 퇴각했다.
두 번째 포탈 장치로 까마귀 요원인 ‘알레이스터’가 들어오기도 했고, 결사 측에서도 더 이상 키젠 앞에서 능력의 밑천을 드러내지 않게 하기 위함인지 킬로바니안의 전투를 만류한 것 같았다.
싸움이 계속됐다면 부상을 입은 제인이 위험할 수도 있었기에, 시몬은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일행들도 모두 무사했다. 로레인은 상처를 치료받고 이틀 만에 퇴원했으며, 후배들을 위해 죽음까지 무릅썼던 레오나드도 오래 기다리지 않아 병동에서 깨어났다고 한다.
다만 문제는 발락이었다. 중상을 입은 채 의식을 잃은 그는 로크섬 병동의 시설만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펜타모니엄의 특수병동에 옮겨졌다.
그런데 펜타모니엄에서 특수병동으로 실려 가던 도중 갑자기 눈을 번쩍 떴고, 몸에 꽂혀 있는 관들을 다 뽑고 말리려는 의료진들을 제압한 뒤 도주했다고 한다.
결국 교내에서는 발락을 완전히 퇴학 처리하기로 했다.
“난리 났겠네?”
“난리 났지.”
병문안 온 딕이 과일을 능숙하게 깎으며 말했다. 시몬이 깨어난 뒤, 수업 땡땡이치고 놀러 온 그는 지금 상황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래도 뭐, 키젠본부에서는 이번 사태가 결사의 소행이라는 사실은 숨길 생각이 없는 모양이야.”
키젠본부에서는 세부적인 사항을 제외하고 결과만을 대중들에게 이야기했다.
발락은 명예로운 결투 패배 후,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키젠 학생 살해미수 혐의로 퇴학 명령을. 이를 도운 혐의가 있는 그리모와르는 공간 이능 사고로 실종처리. 그리고 이 모든 사건에서 ‘결사’와의 인과관계가 있는지 조사 중. 이라고만 밝혔다.
학생들은 당연히 난리가 났다.
본부에서 발표한 입장을 전부 믿는 건 아니었지만, 발락이 정신 이상증세를 보인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기도 했고 동시에 발락과 그리모와르의 묘한 관계도 3학년들 사이에서 제보가 쏟아지는 중이었다.
“이번 일, 밖에서도 이슈가 많이 됐을까?”
시몬이 물었다.
“당연히 그렇지. 근데 지금 키젠뿐만이 아니라 대륙 전체의 상황이 영 말이 아니라.”
“?”
“신성연방도 암흑연합도 다 터져가는 중이거든.”
현재, 대륙에서는 키젠을 포함해 결사에 의한 여러 사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특히 3대 네크로맨서 학교 중 하나인 알란드의 총장이 결사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사실에 대륙 전체가 들썩였다. 볼드윈 왕국에서는 알란드 총장 사태를 숨기기 급급한 모습을 보였으며, 몇몇 거대 길드들은 결사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기까지 했다.
에프넬에서도 지금 눈이 시뻘게져서 결사를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현역 성녀인 이스라필이 피격당할 뻔하고, 에프넬에서 테러가 발생해 학생들이 다쳤다고 한다.
대륙의 분위기는 전례 없이 흉악해졌다. 전쟁설은 끝도 없이 튀어나오고 있고, 배후에 있는 결사라는 세력까지.
뭔가 큰 사태가 터져도 제대로 터질 것 같은 화약고의 느낌마저 들었다.
“교내 분위기도 살벌해.”
딕이 팔짱을 꼈다.
“원래는 학생들의 인권 문제 때문에 금지했던 전교생의 ‘정신마법 조사’도 다시 실시한다고 하더라. 그리고 이번에 제인 교수님 지시 어기고 결계에 들어간 우리 애들 있잖아.”
“응.”
“징계는 면하는데, 교내 차원이 아니라 암흑연합 차원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1급 비밀 유지 명령이 내려졌어.”
“아, 그건 나도 알지.”
사실 시몬도 병동에서 깨어나자마자, 평소처럼 본부 직원이나 교수들이 아닌 무려 암흑연합의 원로들 앞에서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단순히 결사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문제에서 끝나지 않고, 이번 사태가 결사의 본거지에 대한 위치 확보와, 그들의 본거지를 공격할 ‘군사 계획’이 엮여있었기 때문에 일종의 군사적 이유로 비밀엄수 계약이 걸린 셈이다.
딕이 하품을 하며 팔을 뒤로 보내 머리를 받쳤다.
“뭐어, 사실 키젠 본부의 발표가 거짓말은 아니잖아? 물론 발락과 그리모와르의 관계, 구원자 킬로바니안이라는 강적의 등장, 결사의 본거지. 그런 핵심 정보들은 현장에 있던 우리 8명만 알고 있는 거지.”
“그렇겠네.”
그렇게 말한 시몬이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딕이 눈을 깜빡였다.
“뭐 맘에 걸리는 거라도 있어?”
“발락 말이야.”
시몬이 눈을 떴다.
“중상을 입은 몸으로 펜타모니엄을 탈출했다는데, 그게 가능할까?”
“음흐흐! 안 그래도 나도 그 부분이 의심스럽긴 했어.”
딕이 실실 웃었다.
“여러 음모론이 가득하던데, 진실은 키젠 측만 알겠지.”
* * *
셀론트 지방.
이름 모를 산골 도시.
거적때기를 몸에 두른 한 남자가 집 앞의 계단에 걸터앉아 있었다.
이른 아침, 사람들이 마차를 타고 바쁘게 지나가고 있었지만 그는 자리에 앉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에구머니나, 깜짝이야.”
막 집에서 나오던 여부인이 그 모습을 보고는 놀라서 숨을 몰아쉬었다.
“이보세요! 어젯밤부터 남의 집 앞에서 뭐 하는 거예요?”
“…….”
“벙어리예요? 뭐라 말이라도 해보라고요!”
그러자 거적때기가 움직이며 음침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안하게 됐소.”
그 목소리가 워낙 어두워서일까, 여부인은 흠칫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슬금슬금 옆으로 물러나며 말했다.
“저녁에도 안 비키고 있으면 경비병을 부를 테니 그리 아세요!”
그녀가 짜증스럽게 떠났다.
남자는 미동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을 뿐이다.
그러는 사이 도로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빗길에 마차가 지나가며 온몸에 진흙이 튀어도, 흙먼지를 뒤집어써도, 아이들이 이상한 괴한이라며 돌을 던지고 가도, 남자는 그저 넋을 놓은 것처럼 우두커니 있을 뿐이었다.
그때.
스윽-
어느샌가 그의 옆으로 길쭉한 빵 한 쪽이 나타났다. 거적때기를 쓴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들지. 식사를 못 한 지가 며칠 됐을 텐데.”
음식을 건넨 자는 검은 깃털 망토를 몸에 두르고 있었다.
거적때기를 두른 남자는 말없이 손끝을 움직여 빵에 댔다. 그러자 빵이 그대로 녹아서 곤죽이 되어 바닥에 뿌려졌다.
“……키젠의 정보망에서 빠져나가기 쉽지 않군.”
“그렇게 칭찬해 주니 고맙네, 발락.”
까마귀 요원이 그렇게 말하며 근처에 슥 쪼그려 앉았다.
“애초에 자네가 도망친 것도 우리가 그러도록 놔둔 것이네만.”
“…….”
“자네 몸에서 나온 ‘암서’가 담겨 있는 아티팩트. 자네가 가지고 있겠지? 현장에서 찾을 수 없어서 말이야.”
꾸드드득.
꾸드득.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발락의 몸에서 맹독이 흘렀다. 앉아 있던 계단에 고약한 녹색 액체가 떨어지며 주위가 녹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전투 태세였다.
“믿기 어렵겠지만 암서를 빼앗을 생각은 아닐세.”
그러나 까마귀 요원은 태연하게 반응했다.
“원한다면 오히려 자네의 몸에 다시 넣어줄 생각일세.”
발락의 표정이 해괴하게 일그러졌다. 그 반응을 본 까마귀 요원이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결사에 복수하고 싶지 않나?”
“…….”
“자네의 인생을 망친 자들에게, 자네를 실험체로 쓴 자들에게, 그리고.”
그의 손끝이 가슴으로 향했다.
“그리모와르를 죽인 자들에게.”
발락의 눈이 회까닥 돌아갔다. 거적때기가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거대한 맹독의 팔이 까마귀 요원을 덮쳤다.
퍼어어어어어엉!
맹독의 공격은 까마귀 요원을 지나 그 근처의 빈집을 몇 채나 녹이며 지나갔다. 까마귀 요원이 미소를 지으며 내려왔다.
“암서를 뽑고 성격이 조금은 온화해진 줄 알았더니, 아니었군.”
“네놈이 입에 담아도 될 이름이 아니다.”
발락이 이를 빠득빠득 갈며 말했다.
하지만 까마귀 요원은 그 말을 무시했다.
“우리는 그리모와르의 시체와 연구자료를 확보했네. 그녀가 암서의 사용법을 꼼꼼히 필기해 두었더군.”
발락이 찢어 발길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원하는 게 뭐냐.”
“자네의 복수를 완성시키는 것.”
그가 팔짱을 꼈다.
“자네도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건 알지 않나? 학생 대접, 아니. 인간 대접은 더 이상 없을 걸세.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훈련을 거쳐 사냥개로 사는 것만이, 이 땅에서 자네에게 허용된 유일한 신분일세.”
팔락!
까마귀 요원이 그리모와르의 연구노트를 꺼내 보였다.
“그리모와르가 자네를 살리려 했던 의지는 우리 알 바가 아닐세. 자네는 다시 암서를 집어삼켜야 할 테고, 그 힘으로 결사와 싸우다 비참히 죽어줘야겠네.”
“…….”
“어떤가?”
끔찍할 정도로 잔인한 말.
모순과 모순의 연속.
-발락, 당신이 살길은 이것뿐입니다.
그리모와르의 복수를 하는 일이, 그리모와르의 의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일이다.
“선택지는 없네. 지금 내 손에 죽거나, 살인귀가 되어 복수에 성공하고 죽거나. 하지만 우리가 하라는 대로만 한다면-”
그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 ‘어르신’이라는 자에게, 암서를 꽂고 죽게 해주지. 그것 하나만큼은 약속함세.”
“………….”
발락의 고민이 길어졌다.
정적과 침묵.
그리고 길고 긴 고민 끝에, 그의 입가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다고 했나.”
“차라리 죽을 확률이 더 높겠지. 왜? 갑자기 죽음이 두려워졌나?”
“죽음 따위-”
한때 자신의 후배였던 자가 내뱉었던 말.
하지만 머릿속을 통째로 뒤흔들던 그 말을 떠올리며 발락의 입이 악귀처럼 벌어졌다.
“극복할 수 있는 난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