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919)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19화
“나는 너를 죽이러 이 학교에 왔어.”
화이트의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수만 가지 생각들이 시몬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이게 무슨 소리지?
왜 지금 그 사실을 밝히는 거지?
싸울 생각인가?
지금 여기서?
꾸욱.
시몬의 발뒤꿈치에 힘이 들어갔다. 쥐어진 주먹은 땀으로 번들거렸고, 이마와 목 아래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꺄르르륵!”
“야! 하지 마아!”
시몬의 동공이 돌아갔다. 바로 옆에는 동기들이 평소처럼 웃고 떠들며 장난치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내게 그 사실을 밝혀도 문제가 없다는 건…….’
주위에 화이트의 아군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곳의 학과생들이 전부 인질로 잡힌 셈이라면 위험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여기는 제2군단장 북부대공 진이 있다.
잠깐, 애초에 목적이 군단장인가?
군단장 사냥을 하던 매그너스와 관련이 있는 건가?
화이트와 매그너스는 대체 어떤 관계지?
온갖 생각들이 머리들을 어지럽혔다. 화이트가 지금 이 사실을 자신에게 밝힐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미지는 공포다.
1초, 1초가 느리고, 지옥 같았다.
시몬과 화이트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시몬은 식은땀을 뚝뚝 떨어뜨리면서도 그의 속내를 캐내듯 눈을 응시했다.
-너를 죽이러 이 학교에 왔어.
그 마지막 한 마디가 머릿속을 꽉 채워 버리는 바람에, 다른 생각이 나질 않았다.
일상과 친구들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시몬의 눈이 벌겋게 뜨였다.
‘이렇게 되면 내가 먼저 치겠어. 화이트의 이능은 칠흑을 빨아들이니까 마투로……!’
“네게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그 순간 화이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감정도, 색깔도, 개성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인간미가 거세된 듯한 음성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그 명령을 거부할 생각이니까.”
‘뭐?’
시몬이 입이 떨어지려는 순간.
대앵- 하고.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석조교가 신호하자 조교들이 학생들에게 짐을 챙기라는 지시를 내렸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끝났다 하고 안도하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스윽.
화이트는 말없이 종잇조각을 내밀었다.
시몬은 바짝 긴장한 채 그가 저주를 비롯해 이상한 짓을 하지 않을까 경계하며 그것을 받아들였다.
‘숫자?’
쪽지의 내용은 일곱 자리로 된 숫자였다.
자세히 보니 시간, 그리고 위치좌표다.
터벅 터벅.
화이트는 쪽지만 넘겨준 채 걸음을 옮겼다.
시몬은 한동안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다리에 힘이 빠져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시몬!”
“회장!”
토토와 에슈가 뛰어왔다.
“시몬! 표정이 왜 그래?”
“식은땀?”
에슈가 땀을 줄줄 흘리는 시몬을 보며 입을 가렸다.
“회장 너 괜찮아?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시몬이 애써 웃음 지으며 말했다.
“아무 일도 아니야.”
* * *
수업이 끝나고 로크섬에 돌아왔다.
텔레포트 마법진을 타고 돌아가는 순간까지 화이트는 학과생들에게 손을 대기는커녕,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냥 순순히 조교들의 안내에 따라 마법진을 타고 로크섬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정말로 화이트가 시몬을 죽일 속셈이었다면, 제 발로 호랑이의 입안으로 들어온 꼴.
시몬은 당장이라도 키젠 측 사람들에게 알려서 그를 체포할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학생회 멤버들과 직속 하수인들을 소집해서 그를 붙잡아 심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생각해 보면 기회는 많았다. 지금, 이제 와서 그런 사실을 말한 이유가 무엇인지 납득이 가질 않았다.
부자연스럽고, 비합리적이다.
-너를 죽이러 왔어.
말의 뉘앙스, 말하는 분위기는 협박이나 위협용이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오히려 털어놓는 느낌에 가깝다.
결국 시몬은 화이트를 만나보기로 했다. 모든 수업이 끝난 그 날 저녁, 시몬은 화이트가 적어둔 장소로 직접 가고 있었다.
위치는 로크섬 내 구 로체스트 거리가 있는 폐허. 365일 인적이 전무한 곳이었다.
[크흐흐흐! 딱 봐도 함정의 냄새가 풀풀 나지 않나? 소년!]피어의 목소리가 말했다.
[맞사와요. 너무 위험해요. 차라리 소녀가 군단장님의 모습으로 가는 걸 제안드리옵니다.]에르제베트는 자신이 대신 가겠다고 했다. 시몬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마.”
아공간에서는 피어가 대기하고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거미부대의 에르제베트가, 반대편에서는 미라부대의 헤르세바가 따라오고 있었다.
[신호를 주시면 소신이 위에서 습격하겠습니다, 도련님.]푸드덕!
저 멀리 지붕에서는 스컬윙 부대의 대장인 아케뮤스까지. 그가 검은 깃털을 흩날리며 비행하고 있었다.
“자, 다들. 내가 걱정되는 건 알지만 여기까지만 따라오세요.”
들키면 모든 게 허사였다.
시몬은 걱정이 많은 에이션트 언데드들에게 단단히 일러둔 뒤,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폐허의 저택 뒤, 인적이라곤 전무한 이곳.
화이트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대로 왔어, 화이트.”
시몬이 말했다.
“수업시간에 했던 그 이야기,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은데.”
“…….”
화이트는 생기 없이 흐린 눈으로 멍하니 정면을 응시할 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떤 움직임이나 동작을 취하지도 않는 모습.
인적 없는 폐허의 거리에, 두 소년은 10분간 제자리에서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고 서 있었다.
‘무슨 의도로…… 아.’
시몬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은 채 조심스레 뒤를 돌아보았다.
산새 한 마리가 짧은 다리로 뛰어다니며 수풀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날개를 펼치고 푸드덕 날아올라 사라졌고, 그 새를 멍하니 눈으로 좇으며 바라보던 화이트가 이제야 시몬을 보았다.
“……왔네.”
‘온 건 진작에 왔지만.’
이제는 결판을 내야 할 때다.
시몬이 다시금 말했다.
“날 죽이러 왔다고 했지? 그 사실을 당사자인 내게 말한 이유가 뭐야? 그리고 명령을 거부할 생각이라는 건 무슨 의미고?”
시몬은 궁금한 걸 속사포처럼 쏟아냈지만, 화이트는 무뚝뚝한 반응이었다.
답답함을 느낀 시몬이 다시 말했다.
“왜 이러는 건데? 넌 대체 정체가 뭐야!”
“그들은 나를 ‘왕자 후보’라고 불러.”
드디어 화이트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실상은 실험체에 불과해. 그리고 내 목적을 순순히 말한 이유는, 그들을 배신하려고.”
그들.
그리고 실험체라.
대충 익숙한 그림들이 머릿속에 그려지지만, 시몬은 보채지 않고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 나갔다.
“왜 갑자기 ‘그들’을 배신할 생각을 하게 된 거지?”
화이트가 천천히 눈을 감고 대답했다.
“임무평가 때, 일이 있었어.”
계기는 있었다.
그가 임무평가 동안 간 곳은 ‘크로포드’라는 지역.
결사가 일으킨 사건으로 사막에서 몰려드는 무수한 몬스터들을 막아내야 했는데, 이를 위해 근방의 네크로맨서란 네크로맨서는 모두 동원되었다.
그곳에서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던 중, 한 용병과 만나게 되었다.
강력한 힘.
커다란 덩치.
그리고 수백의 몬스터를 손길 한 번에 녹여 버리는 맹독마법.
-키젠에 있을 때 한번은 이야기하고 싶었다.
시몬이 리버론에서 판타서스와 에이젤과 만난 것처럼, 화이트는 임무평가 지역에서 ‘발락’을 만났다.
-우리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 결국 결사의 실험체로 쓰이고 놀려지다 폐기될 운명이지.
화이트와 발락. 두 사람은 같은 ‘실험체’라는 점에서 동일한 처지였다.
하지만 화이트와는 달리, 현실에 순응하지 않은 발락은 실험실에서 탈출하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다.
암서에 면역을 가진 인간이라는 특수성은 물론, 키젠의 학생회장이라는 권력까지 보유했지만, 결국 결사는 그를 일개 실험체 취급했고, 죽이려 했다.
-‘너희들’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돌아봐라.
발락은 그 말만을 남긴 채 다른 전선으로 넘어갔고, 그 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같은 실험체 처지로서 통하는 게 있을지도 몰랐겠지만, 발락의 말은 당장 화이트에게 큰 울림을 주지 못했다.
화이트는 욕심이나 미래에 대한 기대가 제거되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냥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살다가 죽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냥 하라는 대로 하다가, 폐기되면 끝나는 인생.
하지만 계속 생각하다 보니.
-‘너희들’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돌아봐라.
자신의 미래가 아닌, 모두의 미래를 걸고 생각하면 조금 다른 결론이 나왔다.
“나는 지금, 10개체 정도 남아 있어.”
“……?”
화이트의 말에 시몬은 잠시 뇌정지가 온 듯 멍해 있다가 이내 더듬거리며 말했다.
“으, 음, 그러니까 너랑 똑같이 생긴 실험체가 10명이 남아 있다는 의미야?”
끄덕.
화이트가 고개를 움직였다.
“원래는 200개체, 전부 죽었어.”
숨이 막혔다.
지금 눈앞에 있는 화이트와 똑같이 생긴 실험체들이 200명이나 있었고, 하나둘 폐기되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마지막 남은 10명의 목숨도 보장할 수 없었다.
죽으라고 하면 죽어야 하는 말 그대로 파리목숨.
화이트는 이런 운명에 비관적이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사라져도 상관없지만, 나와 다른 나들이 전부 폐기되는 건 두고 볼 수 없어.”
“…….”
그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일정 시간 뒤, 그들의 연구소로 돌아가야만 하고 또 다른 ‘나’로 교체돼.”
“아.”
“너는 결사와 싸우고 있지? 내가 그들의 연구소로 안내할 수 있어. 그곳을 파괴하면 결사는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게 돼.”
화이트는 자신이 태어난 시설을 안내해 준다고 말하고 있었다.
혹하는 이야기인 건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의심을 걷을 수는 없었다. 시몬이 팔짱을 꼈다.
“그럼 네가 원하는 건 ‘너희들’의 자유야?”
“잘 모르겠어.”
그가 눈을 감았다.
시험 초기부터, 그들은 실험관에 갇혀 있었다고, 화이트는 말했다.
깜깜하고 어두운 관.
수천, 수만 시간 동안 이곳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연구자들이 화이트의 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들여다보던 투명한 유리. 그 유리로 보이는 광경이 그들에게 허락된 자유였고, 세상의 모든 것이었다.
그 너머로 연구자들이 몸상태를 물으면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가끔.
아주 가끔.
그 유리 너머로, 투명한 천장에서 훨훨 날아가는 새들이 보였다.
새들은 자유롭게 드넓은 하늘을 날아다녔고,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200명의 실험체들은 모두 그 하늘에서 나는 새들을 기억했다.
“내가 자유를 원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새들처럼 어딘가로 날아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
지금까지 시몬은, 화이트를 결사가 다음 사건을 일으킬 ‘문제점’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오히려 화이트를 이용해 이쪽이 공격할 수 있는 기회라면?
전황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크흐흐! 소년! 평정을 되찾아라.]‘아.’
너무 긍정적인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아직 의문은 깨끗하게 풀리지 않았다.
“제5군단장, 매그너스 알지?”
화이트가 결사의 실험체라는 건 중요한 정보지만, 사실 화이트에 대한 ‘핵심’은 아니다.
지금의 질문이야말로 핵심.
“매그너스와 넌 무슨 관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