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927)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27화
다음 날 오후.
학생회실.
“이 바보들아! 서류 섞이니까 테이블 어질러 놓지 말라니까!”
오늘도 메이린의 잔소리로 학생회 업무를 시작했다.
정신이 바짝 든 시몬은 얼른 테이블의 서류를 집어서 자리로 돌아왔다.
“헤이, 시몬! 이거 야외 화장실 설치 건은 어떻게 할 거야? 해도 되지?”
딕이 서류를 흔들며 말했다. 시몬이 대답했다.
“물론…….”
“보류해야지!”
메이린이 버럭 외쳤다.
“지금 그런 거에 할애할 예산이 없거든? 일단 감사 걸린 부분 개선에 집중하고! 종업식이랑 3학년들 졸업식 대비부터 해!”
딕에게 그렇게 일갈한 그녀가, 하늘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시몬을 돌아보고는 살풋 웃었다.
“그렇지? 시몬.”
“그, 그래.”
시몬이 땀을 삐질 흘리며 대답했다.
역시 메이린만큼 학생회 일에 진심인 사람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Top10에 필기 성적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걸 보면 초인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몬이 빠르게 서류를 넘기다가 말했다.
“그리고 우리 내일 작성해야 할 로크섬의 야생 몬스터 실태 보고서. 이건 어떻게 한다고 했더라?”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카미바레즈가 파라락 회의록을 넘기다가 한쪽을 딱 펼치고 말했다.
“파수꾼분들이 작년 자료를 제공해 준다고 했어요! 직속 하수인분들을 보낼게요!”
“고마워, 카미.”
그래도 같이 일하다 보니 나름대로 업무 분배가 딱딱 맞다.
오늘 하루 일정도 빠르게 마친 시몬이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다가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늦었다! 나 면담이 있어서 잠깐만 나갔다 올게.”
메이린이 푸른 눈동자를 깜빡였다.
“무슨 면담?”
“저주학 리포트 미달자 면담. 바힐 교수님 만나뵈러 가야 해.”
“아, 그거 나 먼저 갔다 왔어.”
딕이 손을 척 들어 올렸다. 시몬이 얼른 물었다.
“가보니까 어때?”
“어 음…….”
딕이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그냥 청소만 시키시던데.”
“?”
* * *
시간이 아슬아슬했기에 시몬은 헐레벌떡 달려서 바힐의 연구실 앞까지 도착했다.
다행히 그리 늦지는 않았다. 잠시 땀과 열기를 식히며 기다린 뒤, 약속 시간이 딱 되는 순간 문을 노크했다.
“바힐 교수님, 시몬 폴렌티아입니다.”
들어오세요.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시몬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랜만에 와보는 바힐의 연구실, 전반적으로 가구 배치가 바뀐 느낌이다. 고풍스러운 가구과 찻잔 세트가 놓여 있고, 벽면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칠판은 여전했다. 칠판에는 빼곡하게 적힌 저주 수식이 보였지만 알아보기 어려웠다.
“차 한잔하겠습니까?”
평소라면 거절하지 않았겠지만, 오늘은 어쩐지 마시고 싶지 않았다.
시몬이 ‘방금 마시고 와서 괜찮습니다’ 하고 답하자 바힐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차를 끓였다.
달칵 달칵.
차를 끓이는 소리와 무거운 정적.
왠지 모르게 긴장된다. 무릎 위에 올려둔 손에 살짝 땀이 맺히는 게 느껴진다.
이내 모락모락 연기 나는 찻잔을 한 손에 쥔 바힐이 다가와 자리에 앉았다.
사락.
그는 책상 한쪽에 놓인 종이를 펼치고는 ‘흠’ 하고 가만히 살펴보았다. 시몬은 그 종이가 저번 주에 자신이 제출한 저주학 리포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힐이 후루룩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
“이번 리포트, 평소의 시몬 학생답지 않은 내용이었군요.”
시몬은 더더욱 긴장하며 말했다.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 교수님. 고칠 점을 말해주신다면…….”
“사실 고칠 점은 크게 없습니다.”
시몬의 표정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이게 무슨 소리지?
“지극히 평범하디평범한 리포트라서 불렀습니다. 상식에 근거하여 이론적으로 답을 써 내려갔더군요.”
“그럼 제가 여기 올 이유는…….”
“있지요. 당신은 천재입니다, 시몬 폴렌티아.”
바힐이 들고 있던 찻잔이 천천히 내려가며 그의 입매가 드러났다.
“범재들과는 다른 바다에서 사는 생물이죠. 그런 천재가 범재처럼 리포트를 썼으니, 당신의 저주학을 전담하는 교수로서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타악.
그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리포트를 뒤집으세요.”
시몬이 리포트를 뒤집었다. 아무것도 쓰지 않은 하얀 뒷면이 나왔다.
“깃펜을 드세요.”
시몬이 옆에 놓인 깃펜을 집었다.
“주제는 뭐가 좋을까요, 음……. 그래요. 저번 시간에 배웠던 ‘단계 저주’에 대해 써보도록 하죠. 다음 주에 제출해야 할 리포트를 지금 미리 써본다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당장은 바힐의 의도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시몬은 그의 의도를 읽으려 노력하며 빈 종이에 리포트를 작성해 나갔다.
리포트를 평가할 교수 본인이 빤히 지켜보고 있었기에, 긴장해서 글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한 문장을 써 내려가니 그 뒤부터는 술술 써졌다.
시몬은 바힐이 앞에 있다는 사실도 잊고 리포트에 몰입했다.
“좋습니다, 잘하고 있어요.”
바힐은 중간중간 추임새를 흘리거나 호응했다. 이론적인 내용을 써 내려가던 시몬이 잠시 깃펜을 멈춘 뒤, 주석을 달고 자신의 생각을 가볍게 쓰자 앞에서 ‘음’ 하고 바힐의 만족스러워하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10분 정도 정신없이 써내려갔다.
“이렇게 잘 쓰는데 왜 이전 리포트는 범재 같았을까요. 아, 작성은 계속하세요. 글을 쓰면서 내 말을 듣고 있으면 됩니다.”
손을 멈칫했던 시몬이 다시 사각사각 뒤 문장을 이어서 썼다. 바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하지 못했다. 하지만 게으름이나 나태의 영역이라고 하기에는 시몬 학생이 그동안 보여준 행실로 미루어보면 적절하지 않은 것 같고, 전공에 집중하느라 그런 것치고는 펜타모니엄에 갔을 때 당신의 본 드래곤이 완성된 상태였을 테니 애매하군요. 그래서 나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습니다.”
바힐이 손짓했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할 만큼 큰 고민이 있다.”
“…….”
“그런 학생을 돕는 것도 교수의 역할이지요. 혹시 말 못 할 사정이라도 있는 겁니까?”
사각사각.
시몬은 여전히 리포트를 작성하면서 대답했다.
“최근에 결사로 대륙이 시끄러웠으니까요, 여러 경험들을 하면서 머릿속이 복잡했던 것 같습니다. 다음 수업부터는…….”
“진실이 아니군요.”
단정 짓듯 말하는 바힐의 목소리에 시몬의 쥐고 있던 깃펜이 한 차례 떨렸다.
달칵-
달칵-
달칵-
창가로 불어오는 바람에 선반 위의 찻잔이 비정상적인 각도로 흔들린다.
사아아아-
어느 순간 방 안에 독한 커피 향이 가득 차오른다.
‘이건 설마.’
시몬의 시선이 자신이 작성하고 있는 리포트로 향했다.
-타깃이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에 방문했을 때.
-특정 소리를 듣고.
-특정 냄새를 맡고.
-특정한 감정을 느낀 뒤.
-특정 동작을 취하면 저주가 걸린다.
자신이 작성하고 있는 단계 저주에 대한 리포트.
그랬다. 이건 전형적인 단계 저주의 구도였다.
특정 시간, 특정 장소에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바힐이 고민이 있었냐며 말을 거는 것도, 진실이 아니라고 단정 지은 것도.
‘설마.’
시몬이 고개를 들었다. 태연히 웃고 있는 바힐의 얼굴이 보인다. 깃펜을 쥔 손에 땀이 흥건했다.
“응? 손이 멈췄군요.”
바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쩔 수 없네요. 시몬 학생이 진실을 고하지 않는다면, 나부터 한 가지 진실을 말해볼까 합니다.”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어제의 그 수업은, 당신을 만난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였습니다.”
정말인가?
어디까지 설계한 거지?
목적이 뭐지?
깃펜을 든 손끝이 점점 떨린다.
그러다 시몬은 자신이 이 뒤에 쓰려고 했던 리포트 내용을 떠올렸다.
“이야기해 주세요, 시몬 폴렌티아.”
단계 저주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상대의 의도대로 하지 않는 것.
“진짜 고민이 무엇인지.”
정적이 흘렀다.
시몬은 땀을 뚝뚝 흘리며 필사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것도.
거짓말을 하는 것도.
부정하는 것도 모두 바힐의 계획 안이라면.
시간을 끈다.
단계 저주는 특정 시간에 특정 행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간단히 파훼할 수 있다.
특정 시간에 특정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은, 저주의 특성상 조건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가만히 있는 것.
술사의, 바힐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겠다.
그대로 약 1분간의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음.”
시몬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바힐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역시 시몬 학생입니다. 정답입니다. 상당히 좋은 대처지만-”
바힐이 손바닥을 펼쳤다.
시몬의 시선이 바힐의 손을 따라 움직였다.
“!!”
어느새 흰 종이에 글이 적혀 있었다.
“사실 처음부터 단계 저주를 쓸 생각은 없었습니다.”
‘이럴 수가.’
시몬의 동공이 황망하게 흔들렸다. 그의 손에 힘이 풀리며 깃펜이 달그락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단순한 저주 아티팩트였습니다. 상대가 들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강하게 먹는 순간, 그 속마음을 쓰게 되는 물건이죠.”
바힐이 천천히 깍지를 끼며 말했다.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수님이 제게 이러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진정하세요, 시몬 폴렌티아 학생.”
그가 살가운 웃음을 지으며 손바닥을 펼쳤다.
“나는 당신을 돕고 싶을 뿐입니다.”
“예?”
“이럴 필요도 없이 사실 전부 다 알고 있었습니다. 화이트의 정체가 무엇인지, 누구를 본떠 만들어진 자인지. 그리고.”
그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졌다.
“그가 누구를 노리고 있는지.”
“…….”
“당신은 화이트를 없애는 게 아닌, 그를 도와 결사를 무찌르는 것을 택했군요. 그렇다면 좋습니다. 결사를 공격하러 가는 그때.”
바힐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바힐 아마가르가 함께 가도록 하죠.”
“…….”
시몬은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고 있었다.
“거절한다면요?”
“키젠 교수로서 학생의 독단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으니 교수회의를 열 생각입니다.”
그렇게 되면 처음에 이야기했던 화이트와의 약속이 깨지는 건 물론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된다.
시몬의 고민이 길어지자, 바힐이 자리에서 일어나 새하얀 중절모를 머리에 썼다.
“잠시 걸을까요.”
* * *
시몬과 바힐은 밖으로 나와 거리를 걸었다. 바힐이 어떤 저주를 걸어둔 건지, 주위 사람들은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여기입니다.”
“?”
이곳은 소환학과 기숙사 근처.
금지된 숲이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법진의 구성이 잘못됐다. 조금 더 회로를 우회하는 식으로 구축하도록.”
아론의 목소리였다.
누군가의 수업을 봐주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구지?’
시몬과 바힐은 수풀을 걷고 근처까지 가보았다.
그리고 목격했다.
‘화이트!’
아론이 화이트를 가르치고 있었다. 화이트는 영 하기 싫다는 표정으로 흑마법을 펼치고 있었고, 아론은 꿋꿋이 수업을 강행했다.
‘그러고 보니.’
화이트 또한, 시몬이나 헥토르와 마찬가지로 아론의 직속제자였다.
평소 직속제자를 호출할 때는 화이트가 출석하지 않았기에, 이렇게 아론이 직접 찾아가서 그를 가르치는 것 같았다.
담당교수가 직속제자를 개인적으로 가르친다.
겉으로는 이상하게 보일 건 없는 광경이었지만.
“당신의 눈에는 보입니까?”
그렇게 묻는 바힐의 목소리에는 무거운 감정이 담겨 있었다.
“아론 선배가 끔찍한 지옥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이요. 저렇게 스스로의 정서를 학대하는 인간은 저 선배 말고 이 세상에 없을 겁니다.”
“…….”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 굴러갔다.
매그너스를 닮은 화이트를 가르치는 게, 왜 아론이 자기 자신을 학대하는 일인 걸까.
1년 전 1학년 시절, 제5 군단장 매그너스가 시몬을 잡으러 로크섬에 들어왔을 때, 시몬을 지키러 온 아론이 매그너스와 대면한 적도 있었다.
그때 두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수년 만이야. 아론 교수.
-학생이 키젠 교수를 살해한 죄는 씻을 수 없다. 그런 일을 벌이고도 감히 이 섬에 들어올 생각을 하나.
그렇게 말하던 아론은 정서적으로 크게 흔들려 보였다.
그리고 또 하나, 그보다 더 크게 흔들렸을 때는 매그너스를 똑 빼닮은 화이트가 키젠에 편입으로 들어왔을 시기였다.
시몬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아론 교수님의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들어본 적 없어요.”
“네, 아마 선배는 앞으로도, 영원히 그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겁니다.”
시몬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 바힐 교수님이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두 사람 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바힐이 굳은 미소를 지으며 턱 끝에 손을 올렸다.
“알고 싶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