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946)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46화
시몬은 레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의 재회이거늘, 뭔가 이렇다 할 반응이 없다. 놀란 얼굴 그대로 꽁꽁 얼어붙은 것 같다.
이런 레테의 모습도 재미있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의 재회이니 조금은 색다른 모습을 끌어내고 싶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시몬이 다가갔다.
그러곤 망설임 없이 그녀의 발밑에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등을 붙잡았다. 은은한 백합향이 퍼지며 하얗고 뽀얀 손등이 아무런 저항 없이 들려졌다.
“야, 잠깐……!”
놀란 레테의 목소리가 채 들리기도 전에, 시몬은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시간이 멈추고.
완전한 정적이 공간을 장악한다.
창가로 불어오는 바람만이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라툴라 미 키빌리스(cíbĭlis).”
손등에서 입술을 뗀 시몬이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가장 가까운 딸을 뵙습니다.”
본래는 성녀에게 경의와 존경을 담아 올리는 형식적인 인사.
하지만 이 순간 성녀는 없었다.
시몬의 눈앞에 있는 건, 그저 양 볼이 희미하게 붉어진 채 부끄러워하는 평범한 소녀 한 명.
이때 지은 레테의 표정은 시몬이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놀란 것 같기도 했고 기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입가를 달싹이며 필사적으로 무표정을 연기하고 있었지만 철혈의 성채는 무너져 내린다. 가면이 사라지고, 봄눈 녹아내리듯 표정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겼다.
시몬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톡.
레테가 갑자기 두 팔로 시몬의 어깨를 살짝 밀었다. 중심을 잃은 시몬이 털썩 엉덩방아를 찧었고, 그녀는 홱 등을 돌려 버렸다.
‘레테?’
장난이 심했나?
당황한 시몬이 그녀에게만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녀는 등을 돌린 채 가만히 있었다.
아쉽게도.
성벽이 무너진 뒤의 모습은 시몬에게 보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등을 돌린 채, 키스 받은 손등을 쓱쓱 조용히 문지르는 그녀. 뒤돌아서 있었기에 표정을 볼 수 없었고, 조금 멀찍이 서 있던 팔라딘 한 명의 놀란 반응으로 그녀의 표정을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음, 그러니까…….”
마침내 표정을 수습한 성녀가, 발그레한 홍조를 띤 채 쑥스러운 미소로 반겼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
-레테 성녀님이 저녁 만찬을 사겠다고 하십니다!
-오늘 근무자 외에는 전원 참여하라는 명령이야. 움직여!
레테는 뜬금없이 그동안 내가 너무 고생만 시킨 것 같다며, 휘하 팔라딘들에게 저녁 식사를 사기로 했다. 물론 최고급 포도주까지 더해서.
부하 된 입장에서 결코 성녀가 내린 은혜는 거절해선 안 되는 법.
혈기 왕성한 팔라딘들은 성녀의 자애를 칭송하며 거리로 나갔다.
“성녀님은…….”
“먼저 가십쇼.”
레테가 살랑살랑 손을 흔들어 보였다.
“저도 눈치는 있슴다. 괜히 상관이 자리에 있으면 눈칫밥 먹을 거 아니에요? 나중에 얼굴 보일 테니까 먼저 가요.”
“성녀님의 은혜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다들 이게 웬 횡재냐는 반응이었다. 이른 퇴근에 행복해진 그들은 쓰고 있던 투구도 벗고 어깨동무하며 걸어갔다.
“성녀님 무슨 일 있나?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신 것 같네.”
“그러게. 최근엔 너무 싸늘해서 눈도 못 마주치겠던데. 안 그래?”
그렇게 말한 팔라딘이 동료 팔라딘의 어깨를 툭 두들겼다. 그런데 앞서 걸어가는 팔라딘은 여전히 멍한 얼굴이었다.
“자네, 왜 그러나?”
팔라딘은 다소 홀린 듯한 얼굴로, 낯선 청년의 키스를 받은 직후 보인 레테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등을 돌린 채 손등을 쓸어내리던 그녀의 빨개진 얼굴.
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성녀님을 사랑하면…… 중죄겠지?”
“저 새끼 ‘그거’ 시작됐다.”
“조져. 매가 약이다.”
팔라딘의 철칙 중 하나.
자신이 모시는 ‘위대한 자’에게 불순한 감정을 품어서는 아니 된다.
팔라딘들은 정신 차리라는 의미를 듬뿍 담아 동료를 정성껏 구타했다.
그리고 같은 시각.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부하들을 배웅한 레테가 휴우 하고 작게 한숨을 쉰 뒤 뒤를 돌아보았다.
시몬이 웃는 얼굴로 서 있었다.
“레테, 있잖…….”
“쉿.”
레테가 휙휙 주위를 둘러보고는 말했다.
“잠깐 나 좀 봐요.”
그녀가 시몬의 손등을 홱 잡아채더니 저벅저벅 무서운 걸음걸이로 걸어갔다. 시몬은 거의 끌려 나가듯 허우적대며 균형을 잡아야 했다.
“자, 잠깐만!”
밖의 경계하고 있는 팔라딘들을 지나 인적 없는 곳까지 걸어 들어온 레테가 대뜸 시몬의 멱살을 휘어잡더니 쾅! 소리와 함께 벽으로 밀어붙였다.
“무슨 짓…… 흡!”
따지려던 시몬이 헛숨을 들이켰다. 시몬의 앞에 바짝 밀착한 그녀가 까치발을 세우고 자기 얼굴을 들이밀었다.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
레테의 향기가 주위에 가득 차오른다. 그녀의 살짝 상기된 뺨과 분홍색 입술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하아.
후우.
잠시 두 사람은 말하는 것도 잊은 채 숨만 쉬었다. 이내 레테 쪽에서 먼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여긴 어떻게 왔슴까.”
“이스라필 님이 도와주셨어. 가짜 신분이랑 열차표도…….”
“왜 왔슴까.”
“네가 레스힐에 편지를 보냈잖아.”
마치 심문하는 듯한 질문이었지만, 시몬은 미소를 잊지 않고 대답했다.
“도와주세요. 라고.”
“…….”
타악!
그녀가 멱살을 놓더니 시몬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고 벽에 딱 붙였다.
“고작 그런 걸로 여기까지 온 검까! 죽으려 환장했냐!”
“오라고 한 건 너잖아.”
“그, 그때는 쫌 힘들어서 약한 소리 했을 뿐이고! 네 신분이랑 직위를 생각해야지 병신아! 다른 곳도 아니고 어떻게 하늘섬까지 기어들어 와? 진짜 죽고 싶어서 환장했지?”
“네가 도와달란 말을 쉽게 할 사람도 아니고, 딱 봐도 힘들어 보여서 온 것뿐이야! 그리고 너도 전에 우리 학교에 들어온 건 마찬가지잖아!”
아까완 달리 갑자기 서로 왁왁 화를 내기 시작한 두 사람이었다.
레테가 크윽. 소리를 내며 제 이마를 붙잡았다.
“안 그래도 신경 쓸 일 많아 죽겠는데 당신까지…….”
그렇게 툴툴대는 레테의 목소리는 이미 훤히 풀려 있었다. 시몬도 그 사실을 깨닫고는 손바닥을 펼쳤다.
“걱정 마.”
웅웅—
그의 손바닥에 눈부신 신성이 피어올랐다.
“신성을 쓰는 네크로맨서. 이건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야. 신성만 보이면 연방에서는 의심받을 일이 없잖아?”
“그렇긴 하지만…….”
레테가 허리에 손을 얹었다.
“안나 선생님의 허락은 받으신 검까?”
“당연하지.”
“알겠어요. 그럼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
그녀가 등을 휙 돌렸다. 그러고는 아주 작은, 개미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와줘서 고마워요.”
이내 후다닥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나갔다.
시몬이 미소 지었다.
‘솔직하지 못하네.’
“아, 빨리 안 오심까!”
어느새 저 멀리 앞서 나간 레테가 빽 소리 질렀다. 시몬이 고개를 흔들고 정신을 차린 뒤 그녀의 뒤를 따랐다.
***
잠깐 숨 돌릴 시간을 가진 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이스라필 님께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급박하다고 들었어. 전부 이야기해 줘.”
시몬이 손에 깍지를 끼며 말했다.
그런데 레테는 새초롬한 표정으로 하얀 머리카락을 배배 꼬기만 했다.
“왜 그래?”
“아니, 뭐.”
그녀가 무릎을 끌어안은 채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오자마자 일 이야기나 하나 싶어서요.”
“……?”
“아-아! 됐슴다!”
레테가 버럭 소리 질렀다. 이내 본인도 진지한 얼굴이 되어 시몬을 바라보았다.
“전후 사정은 얼마나 알고 있죠?”
총명하게 빛나는 황금색 눈동자.
그리고 그 안에 비치는 반짝이는 별빛.
흔히 알고 있던 레테로 돌아왔다. 시몬은 안도하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선 성녀가 살해당했지.”
“네.”
시몬이 차례대로 손가락을 접었다.
“그 후 ‘성녀의 정수’가 대륙을 떠돌아다니다가 하늘섬에 안착한 것으로 파악된다. 성녀를 찾아내서 포섭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예정이다. 실제로 하늘섬에 살인 사건도 일어났다. 그리고.”
시몬이 그녀를 보며 덧붙였다.
“이 모든 흐름의 중심에 네가 있다. 뭐 이 정도?”
“뭐, 굵직굵직한 이야기는 다 들었네. 조금 보충 설명만 하겠슴다.”
신성연방에서는, 에프넬 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이 존재한다.
흔히 ‘계시의 수녀’라고 불리는 인물인데, 신성연방에서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살아오며 무수한 계시를 내렸고 그것이 전부 현실로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빗나간 경우는 단 1건에 불과했다.
그런 놀라운 적중률 덕분에 계시의 수녀가 내리는 ‘계시’는 신성연방 사회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내려진 계시는 다음과 같다.
“매원?”
“하늘섬에서도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호화로운 숙박 시설임다.”
레테가 팔짱을 꼈다.
“그리고 당시 그 숙박 시설은 통째로 임대된 상태였는데, 누가 있었는지 아심까?”
“……?”
“이제 곧 에프넬에 입학하게 될 미래의 1학년들.”
레테의 눈에 드러난 별빛이 예리해졌다.
“10명의 선발 신입생들이 ‘신인 예배회’ 행사를 앞두고 하늘섬에 올라와 짐을 풀고 있었어요.”
“……흥미롭네.”
성녀의 정수는 의지가 있고, 그들이 생각하기에 가장 신성 잠재력이 높은 여성을 선택하여 ‘성녀’로 만든다.
수녀의 계시까지 있었다면, 그 10명의 선발 신입생들 중에 성녀가 있다는 사실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그들이 신성연방 전역에서 가장 재능이 뛰어난 아이들일 테니까.
“그런데 계시가 내려진 뒤, 바로 다음 날 밤.”
레테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매원에 머물고 있던 신입생 한 명이 살해당했슴다.”
“……!”
“매원의 경비를 극도로 강화했는데 보란 듯이 이런 일이 벌어진 거예요.”
시몬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외부에서 암살자가 왔을 확률은?”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은 없슴다. 상부에서는 99% 내부자의 소행이라고 판단하고 있어요.”
교황청에서는 선발 신입생들을 불러다 조사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애초에 선발생들조차 그날 밤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현재는 선발생들의 숙소를 더 안전한 곳으로 옮긴 뒤 팔라딘들이 현장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단심문관이나 조사원이 들어오지 못하는 하늘성의 일이기도 하고, 윗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사실을 은폐하려 하고 있어서 큰 성과는 없었다.
“타이밍이 지나치게 공교로워.”
시몬이 눈을 감으며 생각에 잠겼다.
“계시가 벌어진 다음 날 내부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고? 이건 누군가가 신입생들 중 한 명을 매수했고, 그자가 성녀 후보로 추정되는 사람을 살해한 것 같은데.”
성녀라는 건 종교가 뒷받침되는 거대한 권력 덩어리.
초기 포섭에 실패한다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전에 성녀를 죽이는 일은 신성연방에서 비일비재했다. 시몬도 안나에게 들어서 익히 알고 있었다.
“그렇게 보기에는 또 살짝 안 맞는 부분이 있슴다.”
“?”
“보여줄게요.”
레테가 따라오라는 듯 고개를 까닥했다.
***
피해자의 시체가 보관된 장소는 바로 이곳 지하에 있었다.
삼엄한 경비를 지나 계단을 걸어 내려가니, 희미한 조명의 방이 있었다.
“아.”
이내 시신을 확인한 시몬의 표정이 굳었다.
관 안에 들어 있는 에프넬 교복을 입은 피투성이 시체.
그런데.
“죽은 사람이 남자였어?”
“맞슴다.”
레테가 어깨를 으쓱했다.
“살인자가 성녀를 죽였다고 보기에는 남학생이 죽었어요. 여러 추측이 가능하죠. 정말로 신입생끼리의 다툼으로 인한 사고일 수도 있고, 혹은 성녀를 죽이려다가 이 사람한테 들통나서 그를 먼저 죽였을 수도 있죠. 하지만 확실한 건 두 가지.”
그녀가 한숨을 푹 쉰 뒤 시몬을 바라보았다.
“성녀는 아직 살아 있다.”
시몬이 침을 꿀꺽 삼켰고, 레테가 두 번째 손가락을 펼쳤다.
“그리고 올해 신입생 10명 중에, 성녀와 살인자가 한 명씩 숨어 있다는 사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