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947)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47화
에프넬에는 키젠에는 없는 제도가 있다.
바로 ‘선발 입학’이라는 제도.
내년 신입생 중에서 가장 뛰어난 10명을 먼저 선발하여 입학식 전에 하늘섬에 불러들인다. 그리고 이들에게 ‘신인 예배회’라는 이름의 정규 합숙을 치르게 한다.
이때 ‘신인 예배회’는 경전(經傳)에 근거한 오래된 관례였다. 과거 낙원에 입성한 전도사들을 선배들이 가르친 것처럼, 에프넬에 재학중인 3학년과 2학년 선배들이 학교를 소개해 주고 전공 공부에 대해 알려주는 시간이다. 다양한 고위 관계자들이 직접 방문해서 선발 선발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그런데 바로 이 선발 선발생 10명 중에.
“성녀와 살인자가 한 명씩 숨어 있다는 사실이에요.”
레테가 팔짱을 끼고 한쪽 눈을 질끈 감았다.
“위에서는 살인 사건을 은폐하고 신인 예배회를 강행하라는 지침을 내렸슴다. 살인자가 떡하니 눈을 뜨고 설치는데 이게 다 뭐 하는 짓인지…….”
“굳이 강행하란 명령을 내렸다면 뻔하지.”
설명을 듣던 시몬이 입을 열었다.
“아까 말한 대로 살인자가 ‘위’와 연결되어 있고, 그들의 의뢰를 받아서 성녀를 죽이려고 한 거야. 여기 이 피해자는 안타깝게 사건에 휘말렸을 가능성이 크고.”
우연히 정보를 얻게 됐든, 혹은 성녀를 죽이려고 시도하던 모습을 발견하게 됐든, 이 남자 신입생의 죽음은 일련의 사태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레테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같은 생각임다. 아마도 피해자가 한 명으로 끝나진 않겠죠.”
살인자의 목적이 성녀라고 한다면, 아직 목적을 이루지 못한 셈.
그는 성녀를 죽일 때까지 계속 시도할 테고, 그 과정에 몇 명이 죽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기 전에 살인자를 찾아내는 건 물론, 성녀가 죽기 전에 우리가 먼저 성녀를 찾아내서 확보해야 해.”
“당연히 그러고 싶습니다만, 어떻게 함까? 어지간한 심층 수사 따위는 다 해봤지만 찾을 수 없었어요.”
“…….”
시몬이 다시 한번 죽은 피해자의 시신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 사람, 이름이 뭐라고 했지?”
“유클리드예요. 왜요?”
시몬의 눈빛이 번쩍였다.
“살짝 정신 나간 계획이 있는데, 들어줄래?”
***
다음 날.
미뤄졌던 선발 신인 예배회가 시작됐다.
“너무너무 떨려요!”
“요즘 뭔가 어수선한 분위기여서 걱정했는데, 하긴 하나 보네.”
“별의 성녀님이 아직 재학생이라는데, 볼 수 있겠지?”
숙소 앞 공터.
새하얀 에프넬 교복으로 갈아입은 선발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떠들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발생은 선발 1번부터 10번까지 총원 10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 에프넬 중등부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고 하늘섬에 올라온 진급 선발생이 8명. 외부에서 올라온 외부 선발생이 2명이었다.
중등부를 겪은 학생들은 이미 자기들끼리 친해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 여러분~ 착석 착석!”
에프넬 학생회 총무, 리리넷이 손뼉을 치며 다가왔다. 선발생들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에프넬의 새 얼굴들에게 여신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반가워요 형제 자매님들! 저는 여러분의 선배인 3학년 리리넷이라고 해요!”
선발생들도 ‘라우스!’ 하고 외치며 인사했다.
리리넷이 두루마리 서류를 펼쳐 들었다.
“그럼 여기서…… 선발 1번 사제님?”
그러자 키가 큰 여성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성연방 동남부 출신인지, 까무잡잡한 피부에 깔끔하게 민 머리카락, 커다란 귀걸이를 착용했으며 녹색 눈동자는 야망에 가득 차 있다. 인상이 강한 편이었지만, 두골이나 몸의 굴곡은 여성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겼다.
“예. 선발 1번, 메릴입니다!”
리리넷이 서류판을 들어 올렸다.
“총원 보고해 볼래요?”
“총원 10명! 현존 9명! 열외 1명! 열외 내용은 질병입니다!”
“네, 좋아요! 잘했어요.”
선발 1번 메릴이 콧김을 뿜으며 자리에 앉았다. 몇몇 여학생들은 멋지다며 속닥거리기도 했다.
“선발생 여러분은 한 달 동안 에프넬의 문화와 양식, 예절, 그리고 신앙에 대해 배우게 될 거예요! 물론 선배들이 직접 에프넬의 일곱 과목에 대한 선행 학습도 시켜줄 겁니다!”
리리넷이 새로운 신학 커리큘럼에 대해 이야기했고, 학생들은 모두 눈을 빛내며 내용을 들었다.
“여러분이 선발생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정식 에프넬 학생은 아니에요. 신앙과 예절에 어긋난 행동을 하면 선발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점! 명심하세요. 물론 선발 번호의 순서도 예배회 기간 동안 바뀔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메릴의 눈이 번뜩였다. 무조건 1번을 지켜내겠다는 다부진 의지가 보였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주의 사항이에요.”
리리넷이 손짓하자, 수도사들이 다가와 긴 두루마리를 나누어주었다.
그 방대한 양에 학생들이 입을 벌렸다.
“하늘섬에서 해서는 안 되는 금기들! 싹 다 외워야겠죠?”
과연 예법과 예절에 엄격한 신앙사회였다.
연차가 쌓일 대로 쌓인 프리스트들은 이런 규칙을 전부 지키지는 않겠지만, 선발생에게는 조기 교정을 위해서라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었다.
“특히 요즘 민감한 거! 내가 말 안 해도 알죠? 이. 성. 교. 제!”
몇몇 학생들이 찔끔한 표정을 지으며 눈알을 굴렸다.
“이건 예배회 기간뿐만 아니라 재학 중에서도 마찬가지! 남녀가 막 이상한 짓 하는 거 들키면 퇴학이에요? 아 물론-”
리리넷이 주위 다른 어른들이 듣지않나 휙휙 둘러보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 들키면 예술이지만요!”
꺄아아아악!
곳곳에서 열띤 반응과 함성이 쏟아졌다. 리리넷은 후후!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찡긋한 뒤, 입술 위에 검지를 올렸다.
“총무님.”
그때 한 수도사가 헐레벌떡 뛰어와 리리넷에게 뭐라고 이야기했다. 리리넷은 고개를 끄덕인 뒤 두 손을 곱게 모았다.
“아, 우리 에프넬의 학생회장이 오시네요. 여러분! 전체 기립!”
선발생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별의 성녀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아……!”
그들 모두 입을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에프넬 교복 위에 성의를 어깨에 두른 여학생이 걸어오고 있었다.
새하얀 머리칼이 파도치고, 눈에는 반짝이는 별빛이 박혀 있었다. 걸음걸음마다 별똥이 튀었다. 세상 모든 아름다움과 고아함을 한데 엮어 만든 듯한 광경.
정말로 눈앞에 성녀가 있다.
이제야 에프넬에 왔다는 자각이 들었다. 학생들이 경애와 존경을 가슴에 품은 채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그라툴라 미 키빌리스! 여신의 가장 가까운 딸을 뵙사옵니다!”
연단에 올라온 성녀가 부복한 후배들을 바라보았다.
선발생들은 두근두근 뛰는 가슴을 느끼며 기다렸다. 목소리는 어떨까. 어떤 신앙을 가진 사람일까. 과연 첫마디로 어떤 이야기를 해줄…….
“쟤들.”
그런데 목소리가 싸늘했다.
“제대로 가르친 거 맞슴까. 리리넷.”
선발생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었다. 성녀는 삐딱하게 짝다리를 짚고, 팔짱을 끼고, 눈은 불만인 듯 가늘게 뜨고 있었다.
“아 참!”
리리넷이 손을 휘휘 흔들었다.
“선발생 여러분! 에프넬 안에서는 성녀님도 우리와 같은 ‘학생’이에요! 과한 의식은 생략하…….”
“일 똑바로 안 하냐!”
레테가 리리넷의 옆구리를 콕콕콕 찌르며 달려들었고, 리리넷이 으햐햑 웃으며 제 옆구리를 붙잡은 채 도망쳤다.
선발생들은 멍하니 그런 모습을 바라보았다.
리리넷을 한 차례 응징한 레테가 허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전체 기상.”
선발생들이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다시피, 우리도 니들처럼 먹고 자고 떠들고 그냥 똑같은 사람임다. 니들이 나한테 어떤 동경을 품고 어떤 모습을 기대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니들의 기대에 부응해 줄 생각은 추호도 없슴다.”
리리넷이 의자를 대령했고, 그 의자에 걸터앉은 레테가 불량하게 다리를 꼬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피곤하거든.”
“……!”
선발생들이 다소 놀란 얼굴로 입을 벌렸다. 레테가 턱을 괬다.
“멋대로 기대했다가 멋대로 실망하지 말고, 그냥 편한 언니 누나라고 생각하십쇼. 도움이 필요하면 부담 갖지 말고 얼마든지 오고. 아시겠슴까?”
“네!”
“목소리가 작다.”
“알겠습니다!!”
레테가 앉으라는 듯 휙휙 손짓했다. 선발생들이 얼른 자리에 앉았다.
‘이 정도면 알아들었겠지.’
레테가 속으로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런데.
-대박! 너무 멋있어!
-심장 아파!
여학생 쪽은 하나같이 벌게진 얼굴로 웅성거리고 있었고.
-……매력 미쳤네.
남학생 쪽은 사랑에 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턱을 괴고 있던 레테가 ‘윽’ 하는 표정을 지으며 리리넷을 바라보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뭠까 이거. 역효과인데?”
“음훗후. 요즘 애들 중에 보수적인 성향은 거의 없다고요? 오히려 레테 성녀님 같은 성격이 수요가 있을지도?”
“아우, 또 더러운 소리 한다.”
“성녀님!”
그때 또 다른 수도사가 레테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레테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은 소식이 하나 있슴다.”
선발생들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한 명이 없는 채로 예배회를 진행했는지 궁금해하는 선발생들이 많았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그녀가 연단 뒤를 돌아보더니 고개를 까닥했다.
“들어오십쇼.”
저벅 저벅.
연단으로 에프넬 교복 차림의 학생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선발생들 모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교복 위로 걸친 하얀색 로브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였다.
바로 그 소년이 천천히 후드를 붙잡았다.
‘퍼스트 임팩트. 첫 반응을 보는 게 가장 중요해.’
소년이 머리를 가리고 있는 후드를 서서히 들어 올렸다.
***
이 모든 계획이 시작되기 하루 전날.
-네? 피해자인 유클리드로 변신해서 예배회에 참가하겠단 말임까? 말도 안 되는 소리!
레테는 시몬의 계획을 듣고 펄쩍 뛰었다.
시몬은 태연히 설명했다.
-내 에이션트 언데드 중에 쓸 만한 녀석이 있어. 살점의 일부만 있으면 해당 인물의 얼굴을 만들어 덮어씌울 수 있거든.
-아니, 사람이 살해당했잖아요! 그 사람인 척하면 당신이 위험……!
-궁금하지 않아?
시몬이 차분히 말을 이었다.
-본인이 죽였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갑자기 예배회 당일에 떡하니 나타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
-그리고 ‘계시’가 맞다면 성녀는 선발생들 중에 있고, 위협을 느낀 건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어. 외부에서 찾아내려고 하면 할수록 더더욱 움츠리기만 할 거야. 우리가 직접 내부에 들어가서 조사해야 해.
시몬이 레테에게 다가와 눈을 빛냈다.
-허락해 줘. 레테.
그렇게 긴 설득 끝에, 시몬은 에이션트 언데드 알라제의 힘으로 피해자인 유클리드로 변신했다.
‘퍼스트 임팩트.’
시몬은 그 어떤 반응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을 부릅뜬 채 천천히 후드를 벗었다.
‘놓치지 않아.’
후드를 벗은 시몬의 눈이 빠르게 선발생 열 명의 눈을 살폈다.
대부분이 ‘어 왔구나’, ‘저 녀석이구나’ 하는 정도의 반응.
하지만 그중에서도.
경악하고.
분노하고.
두려워하는 반응이 보인다.
누가 봐도 수상한 반응이다.
마치.
‘죽은 사람을 본 것처럼.’
시몬의 시선이 그 세 사람에게로 향했다.
‘1번, 메릴.’
시몬의 동공이 한 학생에게로 돌아갔다.
‘3번, 마리첼로.’
그 옆의 한 학생에게로도 향한 뒤.
‘그리고 4번, 베르시.’
마지막 뒷자리의 학생에게로 향했다.
이미 명단과 사진을 보고 외워둔 얼굴을 완벽히 기억했다.
소년은 다시 후드를 눌러쓴 뒤, 천천히 가장 뒷자리에 앉았다.
‘100% 장담할 수는 없지만 첫 임팩트로 용의자는 세명.’
1번은 경악한 표정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4번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쓰고 있다.
그리고 3번은 심지어 째려보고 있다.
모두 인상 깊은 반응들이다.
‘이 중에 있겠지. 예배회 기간 동안 찾아내겠어. 성녀, 그리고.’
시몬의 눈이 가라앉았다.
‘살인자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