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952)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52화
둘째 날 일과가 마무리되었다.
일과가 끝나고 이제는 자유시간이다. 중등부에서 올라와 이미 서로 친해져 있던 선발생들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쫄래쫄래 하늘섬의 번화가로 떠났다.
그리고 시몬은 혼자였다.
홀로 숙소로 돌아와 숙소 주방에 음식을 주문했다. 큼지막하게 넓은 8인용 테이블에 홀로 앉아서 우두커니 기다리고 있으려니,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며 음식이 만들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 음식이 나왔다.
‘……음.’
음식들이 전부 하얗다. 안에 아무것도 안 들어 있는 잡곡빵이나 멀건 흰 수프 같은 것들. 고기는 찾아볼 수 없다.
연방의 신도들은 원래 이런 음식을 먹는 게 미덕일까? 시몬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흰 수프를 한입 떠먹어보았다.
‘밍밍해!’
아무리 선발생이 수련자 신분이라지만 이건 좀 너무하다. 아침 식사면 몰라도 저녁에 이런 음식으로는 배가 안 찰 것 같다. 활동량이 왕성하고 한창 먹을 나이인 시몬에게는 뭐라도 육류가 절실했다.
갑자기 자기들끼리 번화가로 떠난 선발생 동기들이 부러워졌다.
‘……어쩔 수 없지.’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게 있었다.
선발생 중 8명이 중등부에서 올라와서 이미 인맥 관계가 굳어졌다는 점, 그리고 선발생 중에 남자가 두 명뿐이라는 점도 그렇다.
에프넬이 종교 관련 조직인 만큼 낯선 이성에 대한 경계가 있는 편이다. 시몬이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다들 일단 긴장부터 했기에 친해지기 어려웠다.
……라는 자기 위안을 하며 시몬은 빵을 한입 깨물었다.
‘조사는 홀로 조용히 하는 게 편하니까. 내일은 레테한테 부탁해서 식당에 데려가 달라고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시몬이 외로운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그때.
달그락.
조금 떨어진 맞은편 자리에서 식판을 내려놓는 소리가 들린다. 레몬 빛깔을 띤 두 줄기 땋은 머리카락의 소녀가 자리에 앉았다.
시몬은 바로 얼굴과 인상착의를 떠올렸다.
‘9번 리사라.’
유클리드처럼 외부에서 온 선발생이었다.
그녀에 대해서 알려진 건 크게 없었다. 신성연방에서도 외곽 지역에서 온 소수민족 출신이라는 게 알고 있는 유일한 배경. 팔찌나 옷깃에 마름모꼴의 패턴 무늬가 있고, 코와 입술이 무척 작다.
달그락.
달칵.
식사가 계속되는 사이 어색한 정적이 내려앉는다.
같은 테이블에 앉았지만 그 거리감은 무척 멀게 느껴진다. 두 사람은 조용히 흰 수프만 떠서 입에 넣었다.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순 없어, 이건 기회야.’
친구를 만들고 정보도 얻을 기회.
시몬이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저기…….”
깜짝!
그녀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동작을 멈췄다. 수프를 뜨던 스푼이 크게 날아오르더니 바닥에 덜그럭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말았다.
“죄송해욕!”
“?”
시몬이 땀을 삐질 흘렸다. 사과해야 하는 건 이쪽인 것 같은데.
“갑자기 말 걸어서 놀랐지? 괜찮아?”
시몬은 스푼을 주워주려 의자에서 내려와 다가가고 있었고, 그녀도 어쩔 줄 몰라 하다가 팔을 아래로 뻗었다.
그리고.
타악.
두 사람의 손이 스푼 위에서 정확히 맞닿았다.
“흐끼야아악!”
손 하나 닿은 걸로 소스라치게 놀란 반응.
그녀가 제 손을 파들파들 떨며 말했다.
“고의가 아니여쓰믑다!”
자꾸 이쪽이 할 대사를 뺏어가는 느낌이다. 시몬은 쓰게 웃으며 스푼을 집은 뒤 주방으로 갔다.
이내 사정을 말하고 새 스푼을 받아 와 그녀에게 건네고, 헝겊으로 바닥을 쓱쓱 깨끗하게 닦았다.
“괜찮아?”
“괜찮…… 딸꾹! 쓰밉다!”
이게 대체 무슨 언어야.
시몬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까 놀라게 해서 미안해. 나는 유클리드야.”
“옛! 옛! 리사라…… 입니다!”
“우리 둘 다 외부에서 온 선발생이니까, 한 번쯤 이야기하고 싶었어.”
시몬은 최대한 그녀가 안심할 수 있도록 평범한 일상 이야기들을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늘어놓았다.
수업이 생각보다 어렵다느니, 음식 맛은 밍밍해서 아쉽다느니. 에프넬에 들어오던 신성열차는 커서 놀라웠다느니.
조금 진정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듣던 그녀가 문득 말했다.
“저기! 유클리드 사제님의 신성……! 수업 시간에 봤던 그 힘이요!”
“?”
그녀의 가느다란 입술이 약간 일그러지며 웃음을 그렸다.
“아름다워쓰믑니다……!”
“아.”
시몬도 웃었다.
“고마워. 리사라도 신성역학 시간에 잘하더라.”
“흐끄으으읍!”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다시 스푼을 떨어뜨리려 했다.
이제는 어디가 놀란 포인트인지 알아내는 건 포기하기로 한 시몬이 얼른 말을 이었다.
“편하게 부르거나 말해도 괜찮아. 아, 그래서 말인데 혹시…….”
“리사라!”
두 사람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위층에서 날카로운 녹색 단발머리의 소녀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밖에 나가서 같이 저녁 먹자니까 여기서 뭐 하고 있……!”
그렇게 말하던 그녀가 시몬을 보고 눈을 부릅뜨더니 인상을 확 굳혔다.
시몬도 그녀가 누군지 깨달았다.
‘3번, 마리첼로.’
하필이면 천재 메릴과 레이트의 아들인 스웨이와 같은 동기여서 선발 3번이지만, 재능은 두 사람에게 뒤처지지 않을 만큼 뛰어난 인물.
그런 그녀가 시몬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얼굴을 드러냈을 때 반응을 보였던 세 명 중 하나.’
그중에서 거의 분노에 가까운 적대감을 드러낸 사람이 그녀였다.
지금 보니 분노뿐만이 아니었다.
혐오감.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도 눈빛에 서려 있었다.
“리사라! 너 왜 저 녀석이랑 같이 밥 먹고 있어?”
“마, 마리첼로!”
“이리 와!”
그녀가 리사라의 손목을 붙잡더니 밖으로 끌고 나갔다. 나가는 중에도 살벌한 눈빛은 꺼지지 않았다.
이내 문이 쾅! 하고 닫혀 버렸다. 다시 혼자가 된 시몬이 눈을 깜빡였다.
‘친구를 만들 수 있었는데 아쉽네. 그보다…….’
수상하다.
10번 유클리드와 3번 마리첼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루빨리 알아내야겠다.
시몬이 수첩을 꺼내 끄적거리려는데.
“여기서 뭐 해?”
이번에는 위층 숙소에서 1번 메릴이 계단을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푹 쉬고 있었다.
‘나타났군.’
오늘 밤은 그녀와의 우수성사 약속이 있다.
시몬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 식사 중이었는데 방금 다 먹었어.”
“그럼 빨리 치우고 가자고.”
메릴이 귀찮은 표정으로 제 목을 매만지며 건물 밖을 가리켰다.
“시간 낭비하는 거 싫으니까.”
***
시몬은 미리 눈여겨보았던 근처의 숲으로 메릴을 데리고 왔다.
수업 시간 외에는 사람이 거의 드나들지 않을 만큼 인적이 드물어서 마음에 쏙 들었다.
“아니,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런 곳까지 데려온 건데.”
메릴은 투덜거리긴 했지만 잘 따라왔다.
명색이 선발 1번이니, 그녀의 입장에서도 주의를 받은 첫날부터 우수성사를 거절했다가 리리넷에게 찍히는 건 피하고 싶으리라.
“그럼, 여기서 하자.”
이내 두 사람이 나란히 무릎을 꿇었다.
“내가 대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냐…….”
그녀는 여전히 투덜거리고 있었지만 시몬은 웃는 얼굴로 두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그녀가 탁! 소리가 나게 제 손을 위에 올렸다. 꽤 손이 얼얼했다.
“시작할게.”
후으읍.
눈을 감은 시몬이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내쉬었다. 천천히 실눈을 뜨자, 살짝 긴장한 듯한 표정의 메릴이 보였다.
“자매님. 여신의 이름 앞에서 죄와 잘못을 낱낱이 거짓 없이 고할 것을 맹세합니까?”
“……맹세합니다.”
상당히 못마땅한 대답이 들려왔다.
시몬은 불쑥 물음을 던졌다.
“그럼 자매님이 열차에서 저지른 잘못, 기억나시는지요?”
움찔.
그녀의 손 끝이 살짝 떨렸지만 이내 불같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쩨쩨하게 지금 그런 것 때문에 남의 귀한 시간을……!”
“신성열차에서 있었던 일.”
시몬이 말을 끊고 엄숙하게 말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위대한 어머니 앞에서 낱낱이 고해줬으면 합니다. 자매님의 입장에서요.”
“이이익!”
그녀가 이를 가는 소리가 들린다.
“애초에 이건 반대잖아! 이건 네가 나한테 고민이나 잘못을 털어놓는 게 아니라! 내가 너한테……!”
“자매님. 위대한 여신께서 지켜보고 계십니다.”
이럴 때만큼은 신성연방 만세다.
어지간한 일에는 뭐든 여신을 들먹이면 해결된다. 그녀가 입가를 달싹이다가 결국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유클리드 살해 사건 전.
에프넬의 선발생들이 신성열차를 타고 하늘섬에 올라오던 때의 이야기였다.
그때 메릴과 유클리드는 같은 열차 칸에 타고 있었고, 서로가 선발생이라는 걸 바로 알아보았다고 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메릴은 유클리드가 ‘10번’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뒤 다소 깔보는 발언을 했고, 이에 유클리드는 울컥하며 화를 냈다고 한다.
-그렇게 분하면 네 실력을 증명해 보든가. 10번, 넌 이런 거 할 수 있어?
메릴은 겁도 없는지, 무려 열차를 돌아다니던 이단심문관의 주머니에 꽂혀 있는 수첩을 훔쳤다. 할 수 있겠냐고 도발하는 메릴의 말에 유클리드도 바로 또 다른 이단심문관의 등 뒤로 돌아갔지만.
신성 운용에 미숙해서 딱 들키고 말았다.
유클리드는 심문관에게 탈탈 털렸고, 그가 억울하다며 저 녀석도 훔쳤다고 메릴을 가리켰지만 이미 그녀는 수첩을 주인에게 돌려놓은 뒤 텅 빈 두 손을 내밀며 미소 지었다고 한다.
설명을 듣던 시몬이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애들이냐고.’
하긴, 저 나이면 애들이긴 했다.
시몬은 실눈을 뜨고 그녀를 보았다.
“그래, 네! 제가 잘못했습니다! 됐죠?”
메릴이 손을 떼어내려 했지만, 시몬은 더 강한 힘으로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이번엔 제 고민입니다. 최근에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저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도는 것 같습니다.”
“뭐?”
“그래서 제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상황을 되짚어가고 있는데, 혹시 열차에서 다른 일은 없었을까요?”
잠시 생각하는 듯 말이 없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기억 안 나?”
“?”
“너, 그 일로 열차장실까지 끌려가서 이단심문을 받고 다시 우리 칸으로 돌아오는데.”
3번 마리첼로와 난데없이 싸웠다고 한다.
마리첼로가 유클리드의 멱살까지 붙잡으며 죽일 듯이 쏘아붙였고, 유클리드는 실실거리며 도발했다고.
오는 길에 마리첼로의 객실 안에서 뭔가를 본 건지, 혹은 우연히 약점이라도 잡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메릴도 전혀 모르는 눈치다.
“그러다 결국 마리첼로가 당신을 바닥에 쓰러뜨리고 뺨까지 날렸잖아. 당신은 일어나려고 했지만 ‘성투’로는 마리첼로를 못 이기더라고. 얻어맞다가 승객들이 말려서 살았지.”
그녀의 목소리에 조소가 섞였다.
“그래, 그때 내가 살짝 도발하긴 했네. 10번은 죽어도 3번을 못 이긴다고. 넌 계속 바닥일 거라고. 아, 그래. 이걸 내 입에서 토해내려고 우수성사를 시킨 거구나?”
그녀가 손을 홱 놓고는 벌떡 일어났다.
“너, 짜증 나고 음습해. 유클리드.”
“…….”
“좀 대단한 신성을 가졌다고 잘난 척하지 마. 반드시 널 꺾고 말 테니까.”
저벅 저벅 저벅.
메릴은 빠르게 사라졌다. 시몬은 긴 한숨을 토해내며 눈을 감았다.
‘3번 마리첼로.’
시몬은 숙소 식당에서 마주쳤을 때 그녀의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그 분노.
충분히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눈빛이었다.
‘더 조사해 볼 가치는 있겠네.’
시몬은 수첩을 꺼내 이번에 새롭게 얻은 내용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자리에 일어나 보니 어느새 주위는 깜깜해져 있었다.
‘자, 수사는 여기까지 하고 이제 내 일을 해야지.’
쭉 기지개를 켠 시몬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는 오른손과 왼손을 움켜쥐더니, 탁! 하고 맞부딪히는 시늉을 했다.
‘신기술 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