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956)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56화
“실례합니다. 성녀님!”
메릴이 빙글빙글 웃는 얼굴로 레테에게 다가왔다.
“아, 메릴 자매님. 무슨 일임까?”
“성녀님의 후배이자 선발생들의 대표로서, 이번 수업에 제안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서요.”
가슴에 손을 얹으며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한 메릴이 더 가까이 다가와 귓속말로 수군거렸다. 레테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이내 두 여자의 동공이 동시에 시몬을 향해 움직였다.
“?”
뭔가 서늘함을 느낀 시몬이 물음표를 띄우며 기다리고 있는데 레테가 훗 하고 웃으며 말했다.
“괜찮네. 생각해 보겠슴다.”
“감사합니다!”
메릴이 꾸벅 고개를 숙인 뒤 자리로 돌아갔고, 이내 레테가 손뼉을 치며 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선발생 전부 모이세요!”
각자 다른 곳에서 연습하고 있던 학생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일렬로 쭉 늘어섰다. 10번이라 가장 끝에 선 시몬은 뭔가 불안한 예감에 눈만 굴리고 있었다.
“신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중 하나는 신수의 ‘진정한 힘’을 이끌어내는 검다.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간단히 끝내면 재미없겠죠?”
그녀가 고개를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이며 웃었다.
“지금부터 신수전을 해보겠슴다.”
***
신수전. 간단히 말해 학생들이 신수를 이용해 모의 대련을 펼치는 것을 말한다.
신수의 존재 자체를 신성시하는 에프넬에서 흔히 하는 훈련은 아니었지만, 레테는 ‘진정한 신수의 힘’을 끌어내는 데는 실전만 한 게 없다는 명목을 내세웠다. 선발생들도 성녀의 말이라면 끔뻑 죽을 정도였으니 바로 동의했다.
하지만.
‘굳이 지금?’
시몬은 뭔가 꺼림칙했다. 할 거라면 조금 더 실력이 붙은 뒤에 실전을 벌이고 싶었는데.
하지만 뭐라 말할 틈도 없이 레테가 첫 번째 명단을 불렀다.
“당장 이번 신수학 수업에서 가장 평가가 높은 학생들끼리 해보겠슴다. 메릴 자매님, 유클리드 형제님 앞으로!”
오오오!
학생들의 환호 속에서 메릴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주위의 동기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여유까지.
‘메릴이 하자고 졸랐네.’
시몬도 고개를 푹 숙이고 걷다가, 레테가 팔짱을 낀 채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조그맣게 말했다.
“레테, 이건 또 무슨 속셈이야?”
레테가 어깨를 으쓱했다.
“신수의 사물화로 차크람까지 만들 수 있게 됐잖슴까. 바로 실전으로 들어가야 실력이 빨리 붙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리고.”
레테가 가까이 오라는 듯 휙휙 손짓했다. 시몬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한 걸음 다가오자 그녀가 까치발을 든 채 시몬의 귓가에서 속삭이듯 말했다.
“제게 소원 빌어야죠.”
“!”
레테가 히힛 웃고는 뒷짐을 쥔 채 등을 돌려 걸어갔다.
“자아, 그럼 시작하겠슴다.”
룰은 간단했다.
레테가 시몬과 메릴에게 간단한 수호마법을 걸어두었다. 이 수호마법이 먼저 깨지는 쪽이 패배.
전투에는 다양한 수단을 동원할 수 있었지만, 사용할 수 있는 백마법은 신수학 기술, 혹은 신수에게 사용하는 기술만 가능하도록 제한되어 있었다.
“메릴 자매님! 힘내요!”
“메릴!”
대부분의 선발생들이 메릴을 응원하고 있었다. 역시 잠깐 신수를 꺼내 환심을 산 정도로는 중등부 3년 동안의 추억을 이길 수는 없던 모양.
그리고 유일하게 시몬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선발생이 한 명 있었다.
“여, 10번. 실력 한번 보여봐.”
스웨이였다.
‘왜 자꾸 저 녀석이랑만 엮이는 거냐고.’
시몬이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고 있는데, 메릴에게 손을 흔들다 시몬과 눈이 마주치자 시몬 쪽으로도 기꺼이 손을 흔들어주는 여학생이 한 명 있었다.
‘힘내요.’
입 모양으로 말하고 쑥스럽게 손을 흔드는 그녀는 식사 시간에 만났던 9번 리사라였다. 시몬도 감사의 의미로 손을 흔들었다.
어쩐지 살짝 기운이 났다.
“두 사람 다 준비됐죠?”
레테가 앞으로 나와 호각을 입에 물었다.
시몬과 메릴이 자세를 낮추었다. 룰에 따라 두 사람 다 신성 아공간에 신수를 집어넣은 상태.
이내 숨 막힐 듯 팽팽한 분위기 속에서.
삐이이이이익-!
호각 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졌다.
시몬과 메릴이 동시에 신성 아공간을 붙잡았다.
“나와! 얘들아!”
“내 부름에 응하라! 아이오크!”
시몬이 두 새끼 고양이들을 꺼냈고, 메릴은 커다란 수사슴을 꺼냈다. 시몬은 즉시 신성을 손바닥 위에 만든 뒤 고양이들과 함께 하늘로 던졌다.
“변신해! 사물화야!”
-야옹!
-냥! 냥!
하양이와 까망이가 신성을 덥석 물더니 빙글빙글 회전했다. 시몬이 두 손을 뻗어 사물화된 신수를 붙잡으려는데.
“?!”
사물화가 실패했다.
고양이들은 공중에서 형태가 서로 얽힌 고리처럼 변한 채 시몬의 손안에 들어왔다.
“얘, 얘들아! 아까 그렇게 연습한 거 기억 안 나? 이 중요한 순간에…….”
“시시한 결말이네. 잘 가.”
이때를 놓칠 리 없는 메릴이 팔을 거칠게 휘둘렀다. 그녀의 수사슴 신수가 지면에 제 뿔을 처박았다.
쿠구구구구구구!
주위의 지면에서 나뭇잎들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듯하더니, 이내 흙을 파헤치고 커다란 나무뿌리가 솟구쳐 시몬을 향해 쇄도했다.
‘역으로 자라는 나무!’
신수, 아이오크의 능력인 ‘신성목’이었다. 나무뿌리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그 날카로운 끝을 시몬에게 들이밀었다.
시몬이 사물화를 해제한 하양이와 까망이를 안고 달렸다.
쿠쿠쿠쿠쿠쿠쿵-!
콰콰콰콰쾅!
주위가 온통 나무뿌리로 뒤덮이며, 들판이 정글처럼 변했다.
“와!”
가히 압도적인 화력 공세. 지켜보던 선발생들은 당연히 시몬의 수호마법이 깨졌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쓰윽.
빼곡하게 뒤덮은 나무뿌리 사이로 시몬이 멀쩡하게 서 있었다. 그가 고개를 숙여 나무뿌리 사이에서 빠져나왔다.
“운 좋게 피했나 보네? 아이오크! 한 번 더!”
아이오크가 긴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재차 신성목의 뿌리를 일으켰다.
지면에서 솟아난 나무뿌리들이 꿈틀거리며 다가왔지만, 시몬은 경쾌하게 스탭을 밟으며 고개를 꺾거나 허리를 젖히며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해 나갔다.
“움직임이 대단해요! 눈으로 따라가기도 힘들 정도예요!”
“유, 유클리드 사제님. 원래 저렇게 성투를 잘하던가?”
의외의 모습에 모두가 웅성거리고 있는 사이, 메릴이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아이오크의 등에 한 손을 올렸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주먹을 쥐는 시늉을 했다.
“움직임이 좋다면 피할 공간을 주지 않으면 그만이야!”
나무뿌리들이 주위를 잠식하듯 넓게 퍼져 나가 ‘돔’의 형태를 이루더니 단숨에 시몬을 향해 좁아져 가기 시작했다.
쿠쿵-!
순식간에 나무뿌리가 좁은 공의 형태로 시몬을 가두었다. 승리를 확신한 메릴이 입꼬리를 올렸지만.
스릉!
스릉!
청아한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나무뿌리에 백색으로 금이 가고, 이내 쩌저저저적! 소리를 내며 목제 감옥이 박살 났다.
그 사이로 빠져나오는 건 오른손에 하얀 바퀴, 왼손에 검은 바퀴를 쥔 시몬의 모습이었다. 물론 바퀴의 옆에 달려 있는 건 신성으로 이루어진 칼날. 즉 차크람의 형태였다.
오오-!
학생들이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착지한 시몬을 향해 함성을 토해냈다.
시몬이 두 손에 쥔 사물화 신수를 움켜쥐자, 바퀴의 겉면에 신성으로 이루어진 날카로운 칼날이 더더욱 커지며 예리하게 번뜩였다.
“으으, 날파리 같은 자식!”
초조해진 메릴이 두 팔을 번쩍 하늘 위로 들어 올렸다.
공중에 연달아 신수 강화 마법을 펼친 그녀가 그것을 모조리 눈앞의 아이오크에 때려 박았다.
너무 강한 신수마법이 연달아 적용되자 아이오크가 부담스러운지 몸을 파르르 떨었다.
“아이오크! 자꾸 날 실망시킬래? 이번엔 죽어도 놓치지 마!”
촤아아아아아아아악!
아이오크의 맹공이 시작되었다. 수십 갈래로 쇄도해 오는 나무뿌리를 향해, 시몬은 제 발로 느긋하게 걸어갔다.
“얘들아, 차근차근 해보자.”
그러곤 양손에 쥔 바퀴 모양의 차크람을 들어 올렸다.
“무리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실수가 나와도 내가 전부 커버할게.”
-야오옹!
-냥!
부웅!
가볍게 고개를 기울여 나무뿌리를 피해낸 시몬이 하얀 차크람을 휘둘렀다. 쩌적! 소리와 함께 시몬의 발목을 휘감으려던 뿌리가 갈라졌다.
스륵.
이내 앞발을 미끄러뜨리고 등을 보인 채 회전하듯 차크람을 휘둘렀다. 양쪽에서 날아오던 뿌리가 가뿐히 절단되었다.
스릉! 스릉! 스릉! 스릉! 스릉!
쇄도하는 뿌리들, 그 안에서 시몬이 팔을 휘두를 때마다 섬광이 번갯불처럼 번쩍인다. 마치 뿌리가 의도적으로 시몬을 지나친다고 생각할 만큼 완벽한 몸놀림. 뿌리들이 시몬의 몸을 건드려 보지도 못하고 바닥에 잘려서 떨어졌다.
‘저 움직임은……!’
지켜보던 3번 마리첼로가 벌떡 일어났다.
‘분명히……!’
춤사위를 연상케 하는 움직임. 긴 팔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손목을 이용한 차크람의 휘두르기.
틀림없었다. 저 차크람 기술은 마리첼로의 가문에서 계승되는 성투기였다.
‘아까 조금 본 정도로 카피한 거야?’
스릉! 스릉! 스릉! 스릉! 스릉!
시몬의 움직임이 완전히 물이 올랐다. 한번 기세를 타면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메릴과 신수의 공세도 끈질겼지만, 시몬은 어떤 각도에서든, 자세가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차크람을 휘둘렀다.
‘신수들과의 호흡이 좋아!’
그렇담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다.
시몬이 빙긋 웃으며 왼팔을 내질렀다.
“까망아!”
촤라라라라라락!
시몬의 손에서 쏘아진 검은 차크람이 격렬하게 회전하며 타원을 그렸고, 그 범위에 들어온 나무의 몸통을 모조리 베어버렸다.
신성목도 결국은 식물. 아무리 뿌리가 여러 갈래로 쇄도한다고 해도, 앞쪽의 몸통을 베면 더 자라지 않는다.
시몬은 무너지는 뿌리의 옆을 유유히 걸으며 오른손의 차크람만을 휘둘러 다른 뿌리들을 막아냈다.
보지도 않고 앞뒤 후방 전체를 감지한 채 팔을 휘둘러 베고 있다. 시몬의 눈뿐만 아니라 신수의 눈이 차크람에 달려 있기에 가능한 묘기였다.
“돌아와!”
타악!
검은 차크람이 돌아와 시몬의 왼손에 붙잡히는 동시에, 이번엔 하얀 차크람을 날렸다.
탁월한 신수 컨트롤. 무수히 흩날리는 나무뿌리의 빗속을 시몬이 산책하듯 태연히 걸었다.
“아이오크! 대체 뭘 하는 거야!”
좀처럼 맞질 않는다.
극도로 초조해진 메릴이 지면에 뿔을 박고 있는 제 신수의 등 뒤로 올라타더니 뿔을 거칠게 붙잡았다.
“차라리 내가 직접 하겠어!”
터엉!
신수의 고개가 들렸다. 이내 사슴 신수의 입이 크게 벌어지더니 커다란 하얀 신성의 구체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신성에서 직접 나무뿌리가 수십을 넘어선 수백 갈래로 쏟아져 나와 지면을 폭격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나무뿌리들이 지켜보던 학생들까지 덮쳤다. 지켜보던 선발생들이나 선배들까지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1번 저거 말려야 하는 거 아냐?”
“너무 흥분했어요!”
하아! 허억!
메릴이 거친 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들었다. 뿌옇게 흙먼지가 일어난 전면을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
빼곡한 나무뿌리에서 ‘빛’이 일었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일순 다가온 섬광이 빼곡한 나무들을 모조리 태워 버리며 메릴의 옆을 지나친 채 멈췄다. 이어지는 광풍에 메릴의 머리카락과 옷깃이 뒤로 확 밀렸다.
‘뭐야 저게……!’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빛을 휘감고 있는 바퀴 달린 전차 같은 게 보인다.
순식간에 그 위에서 뛰어내린 시몬이 전차의 몸통을 붙잡고 팔을 잡아당겼다. 전차의 형태가 무너져 내리며 칼날의 형태로 변해가고 있었다.
‘사물화의 연속 변화! 말도 안 돼!’
고학년 전공자들이나 쓰는 고급기술.
하지만 질 수 없었다. 메릴도 바닥에 나무뿌리를 붙잡고 목창의 형태로 내질렀다. 순식간에 시몬과 메릴의 몸이 서로를 교차했고.
스릉!
경쾌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잠시 쥐 죽은 듯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뒤이어.
카차아아아아앙-!
메릴의 몸을 감싸던 수호마법이 산산조각 나서 부서졌다.
하얀색과 검은색 차크람을 든 시몬이 빙긋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결판이 났네요.”
레테가 손뼉을 쳤다.
“10번, 유클리드 형제님의 승리임다!”
떠나갈 듯한 함성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첫 패배를 경험한 메릴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음.’
동기들의 환호에 손을 흔들며 화답하던 시몬이 슬쩍 메릴을 바라보았다.
방금 결투의 승패와는 별개로, 수사에서도 성과가 있었다.
‘메릴은 성녀가 아니야. 확실해.’
마지막 순간.
시몬이 돌진하고 메릴이 뿌리를 붙잡아 목창으로 바꾸어 내지르는 그때.
메릴의 표정이 눈앞에 선했다.
그것은 순도 100%의 분함이었다. 패배를 직감하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창을 내지르는 그녀는 눈물을 글썽일 정도로 분해했다.
만약 그녀가 성녀였다면, 숨겨진 힘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이때 나왔어야 했다.
‘전투 중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도 있으니까.’
시몬은 신수로 돌아온 하양이와 까망이를 끌어안은 채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메릴은 고개를 숙인 채 움직임이 없었다.
‘첫 패배,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메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