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957)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57화
유클리드에 대한 평판을 바꿔 버린 압도적 승리. 학생들이 다가와 그와 살갑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발 10번이 1번을 이겼다. 다들 대단한 일이라며 난리가 났지만.
‘당연한 결과네.’
뒤에서 지켜보던 레테의 표정은 덤덤했다.
‘둘 다 에프넬의 정규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시몬은 타고난 신성량 괴물에 신수와의 유대감도 뛰어나. 무엇보다 차이를 가른 건 실전 경험. 메릴은 상대가 키젠의 학생회장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겠지.’
그녀가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풀밭에 털썩 주저앉아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메릴의 모습이 보인다.
사실 메릴이 시몬과 싸우게 해달라는 제안을 했을 때부터, 레테는 이런 결말이 되리라는 걸 예상했다. 거기에 보통의 결투도 아니고 시몬이 가장 잘하는 신수전이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락한 이유.
‘이 경험이 약이 되겠지.’
2년 전 선발 1번 시절, 레테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 자기 자신밖에 모르고, 스스로의 실력을 과신했다.
메릴은 살인자가 아니라면, 언젠가 자신의 뒤를 이어 에프넬의 학생회장이 될지
도 모르는 뛰어난 후배다.
이쯤에서 패배를 경험시켜 줄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고.’
레테의 시선이 다시금 시몬 쪽으로 향했다.
‘이걸로 동기들도 시몬을 조금은 다르게 볼 테니, 경계심이 풀어지고 수사가 더 쉬워지는 효과도…….’
“대단해요! 사제님!”
“아하하.”
여학생들이 둘러싸인 채 어설픈 웃음을 흘리고 있는 시몬을 보며, 레테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괜히 했나?”
“괜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레테 성녀님?”
언제 온 건지 리리넷이 불쑥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레테가 ‘윽’ 하고 뜨끔한 표정을 짓더니 얼른 미소를 꾸며냈다.
“아, 음! 아무것도 아님다.”
“?”
리리넷이 고개를 한 차례 갸웃했지만, 이내 두루마리 서류를 들고 말했다.
“어쨌거나 신수학 수업은 이걸로 끝났구요! 애들 20분 정도 쉬게 했다가 에프넬 광장으로 출발하겠습니다.”
“아, 거리 탐방이 있는 날이었죠.”
레테가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했다.
“리리넷, 지시 사항이 있슴다.”
***
위대한 ‘하늘섬’.
프리스트 학교 에프넬을 비롯하여, 교황청이나 광명의 대성당 등 에프넬의 핵심 시설들이 밀집된 신성연방의 수도다.
거대한 암벽 덩어리가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불가사의의 섬. 이 신비로운 땅에 순백의 도시가 세워졌다.
여신과 가장 가까운 곳이라는 상징성.
신학적 가치가 있는 고고학 유적들.
대륙에 보기 힘든 독자적인 신성 생태계까지.
이 하늘섬만큼은 여신이 직접 굽어보며 돌본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이 도시는 지난 100년 동안 도시 범죄율 0%를 기록했다.
오로지 선택받은 사람들이나, 그들의 직계가족들만 이 하늘섬에서 생활할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진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환경은 감히 비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 하늘섬의 최고 번화가.
시몬과 선발생들은 하늘섬 상업지구의 광장에 와 있었다.
‘와.’
시몬의 눈이 정신없이 휙휙 돌아갔다. 고전적인 백색의 건물들이 거리마다 가득 세워져 있었고, 지붕 위에는 십자가와 종들이 가득했다.
무척 예쁘고 흰 거리였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프리스트를 상징하는 예복 차림으로 길가를 거닐었으며 새들이 날아다니며 노랫말 같은 새소리를 흘렸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천국이라더니.’
정말 그런 표현이 어울릴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시몬뿐만이 아니라 다른 선발생들의 고개도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미 익숙해 보이는 2번 스웨이만이 따분한 표정으로 하품을 쩍쩍 하고 있을 뿐이다.
“자, 형제자매 여러분! 주목 주목!”
리리넷이 손뼉을 치며 선발생들을 주목시켰다.
“다들 기다리시던 시간! 지금부터 하늘섬 거리 탐방이 있겠습니다!”
와아아-!
선발생들이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손을 맞잡으며 환호했다. 눈이 얼마나 반짝거리는지 지켜보는 사람이 부담스러워질 정도였다.
“지금부터 2인 1조로 활동해서 거리를 돌아다니겠습니다! 세 시간 뒤 다시 여기로 돌아오면 돼요!”
리리넷이 노트를 꺼내 들었다.
“마음 같아선 여러분 마음대로 이 거리를 즐기게 두고 싶지만, 명색이 교육 시간이니 그럴 수는 없겠죠? 이번 탐방 동안 여러분이 수행해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곳곳에서 아쉬움 가득한 소리가 들렸다. 시몬은 슬쩍 노트에 적힌 임무 내용을 살펴보았다.
[성물 잡화점에서 신성포션 사 오기.] [미레이아 분수대에서 동전 뿌리고 기념품 받아 오기.]대충 이런, 누구나 할 수 있는 임무들이었다.
“이 근처에서 해결할 수 있는 임무들과 조금 멀리 가야 하는 임무들! 여러 종류가 있답니다. 선배들이 동선을 고려해 코스를 짜느라 엄청 고생했어요! 이 임무들을 수행한 뒤에는 자유시간을 보장할게요! 그럼 제가 조를 정하겠습니다!”
리리넷이 두 명 두 명 빠르게 묶어서 한 조를 만들었다.
“1번 메릴 자매님과 9번 리사라 자매님이 한 팀! 그리고 3번 마리첼로 자매님과…….”
리리넷의 손끝이 갑자기 가장 옆으로 휙 돌아가더니 시몬을 향했다.
“10번 유클리드 형제님이 한 팀입니다!”
마리첼로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시몬은 무표정을 연기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웃고 있었다.
‘나이스, 레테.’
이건 이미 레테와 이야기해 둔 부분이다.
3번 마리첼로를 조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녀와의 접점이 전무했다. 마리첼로 쪽에서 자꾸 피하는 것도 문제였고.
‘그래서 리리넷을 이용해 이런 자리를 만들었지!’
시몬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고, 거리 탐방을 기대한 것으로 보이던 마리첼로의 표정은 굳어지다 못해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다 됐네요! 그럼 새로운 짝꿍끼리 같이 서볼까요?”
아무리 예배회 기간이라고 해도 선발생이 3학년의 지시를 거절할 수 없는 법.
리리넷이 정해준 짝들이 나란히 같이 섰다. 시몬과 마리첼로도 나란히 섰다. 시몬이 눈동자를 굴렸고, 마리첼로는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네가 싫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유클리드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반드시 알아내겠어.’
***
리리넷이 ‘거리 탐방’ 시작을 선언했고 선발생들은 신이 나서 흩어졌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리사라, 나랑 바꿔줘.”
“네?”
몇 걸음 가기 무섭게 마리첼로가 옆에 가고 있던 9번 리사라를 붙잡은 것.
“우, 우리끼리 임의로 바꿔도 될까요? 들키면 선배님들께 혼날 거예요.”
“뒤에 보니까 3학년들도 지금 다 자릴 비우고 없어. 그냥 우리끼리 바꿨다가 마지막에 조회할 때 다시 원래대로 바꾸면 돼. 부탁이야!”
마리첼로가 간곡히 애원했고, 리사라는 슬쩍 시몬의 눈치를 보았다.
‘거절해 줘! 제발 거절해!’
시몬도 마음속으로 빌고 있었다.
그런데 리사라의 반응이 이상했다. 시몬과 눈이 마주친 그녀의 뺨이 살짝 붉어지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고는 마리첼로를 향해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매님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네요.”
“고마워!”
시몬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게 이번 거리 탐방은 리사라와 같이하게 됐다.
“우리 열심히 해봐요옥!”
리사라가 열의 넘치게 말했지만, 남학생 앞이라 긴장했는지 삑사리가 나왔다. 시몬도 마음을 다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지. 세상 모든 일이 내 마음대로 풀리리란 법은 없지.’
이렇게 된 이상 9번 리사라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할 생각이었다.
그녀가 성녀일 가능성도 적지 않으니까.
물론 살인자일 가능성도…… 아마 아닌 것 같지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시몬 자신을 제외한 모든 선발생이 용의자였다.
리사라가 임무장을 가리키며 제안했다.
“그, 그럼 여기 성물 잡화점부터 가볼까요? 바로 앞이에요!”
“좋아.”
두 사람은 나란히 거리를 걸었다.
아직은 둘 다 서로가 어색했다. 오가는 대화라고 해봐야 시몬이 가끔 임무에 관해 묻고 리사라가 답하고, 리사라가 신수전 승리 축하한다고 했을 때 시몬이 고맙다고 답한 정도였다.
그러던 중.
“마리첼로는 날 싫어하지?”
시몬이 운을 뗐다.
리사라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어, 어어어?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옥?”
“이번에 같은 조가 됐는데 나를 피하는 것도 그렇고.”
시몬이 물끄러미 리사라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번에 우리가 같이 밥 먹고 있을 때 마리첼로가 널 데려갔잖아.”
“……아.”
“그때.”
시몬의 눈이 반짝였다.
“마리첼로가 나에 대해서 뭐라고 했는지 궁금해. 말해줄 수 있을까?”
“……그건.”
입을 달싹이던 리사라가 이내 눈을 감으며 실토했다.
“질이 나쁜 사람이니까. 저,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했어요.”
‘커흑.’
질이 나쁜 사람이라니! 평생 살면서 들어본 적 없는 종류의 말이라 꽤 상처였다.
‘대체 마리첼로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유클리드.’
죽은 사람에게 물어봐야 대답이 돌아올 리도 없고.
시몬이 다시 입을 열었다.
“조금 가슴 아픈데. 마리첼로는 왜 내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으으으-이, 이유까지는 이야기해 주지 않았어요.”
리사라가 고개를 숙였다.
“저도 물어봤지만 얼버무리시고. 그냥 진짜 나쁜 사람이라고. 그런 식으로…….”
근거도 말하지 않고 남을 ‘질 나쁜 사람’이라며 제3자에게 알리고 강요하다니.
마리첼로도 정상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 그래도.”
“?”
“저는 유클리드 사제님이 나쁜 사람 같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빨갛게 얼굴을 물들인 채 그렇게 말한 리사라가 갑자기 앞을 확 가리키며 말했다.
“와욱! 다 왔습니닷! 성물 잡화점 ‘네프탈리’!”
“응. 들어가자.”
첫 방문지는 성물 잡화점.
들어가는 순간 시몬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런 곳이 있었다니!’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던 사건 생각이 잠시나마 싹 사라질 만큼, 다채로운 프리스트 관련 용품들이 진열대마다 가득 들어차 있었다.
시몬은 물 만난 고기처럼 뛰어다녔다.
‘암흑연합에서는 절대 못 구할 물건들이야!’
하늘섬에서 파는 물건인 만큼 품질도 좋았다. 시몬은 근처에 놓여 있던 바구니를 들고 정신없이 물건들을 골라 담았다.
‘신수 사료! 까망이랑 하양이가 좋아하겠네! 이건 구약 경본 개정판! 파라한 교수님께 선물로 드리면 좋아하시지 않을까? 그리고 이건 엄마를 위해…….’
“엄청 많이 사시네요……?”
리사라가 말했다.
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아, 걱정 마. 내 개인적인 사비로 사는 거니까.”
“사제님은 부자신가 봐요!”
“조, 조금……?”
마정석 광산 주인이라는 사실은 말 못 한다.
어쨌거나 필요한 물건을 잔뜩 챙겨서 알뜰하게 쇼핑을 마친 두 사람은 계속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여기가 그 천년동굴이에요! 성인의 제자들이 왕국군의 박해를 피해 숨어 있을 때…….
-거대한 잉어가 이 연못에 산대요!
정말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늘섬에 올라온 뒤로 늘 가슴을 졸이던 시몬도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리사라가 살인자는 아닌 것 같은데.’
의심하는 것조차 커다란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순수한 소녀였다. 체크리스트를 빠르게 채워 나가던 그녀가 이내 앞을 가리켰다.
“저기에 잠시 가볼래요?”
그녀가 가리킨 곳은 규모가 크지 않은 평범한 성당이었다.
오늘은 예배일이 아니었기에 드나드는 사람은 없었다.
‘체크리스트에는 없었는데?’
그래도 워낙 기대하는 눈빛이었기에, 시몬은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아.’
그동안 큼직큼직한 성당만 봐서 그럴까, 무척 규모가 작고 아늑한 성당이었다.
이 근방에 사는 동네 주민들이 와서 예배를 보는 곳 같았다. 기분 좋은 나무 향이 난다. 유리창을 통과한 빛이 아름답게 퍼졌다.
그때 리사라가 바깥을 휙휙 훑어보더니, 쿵-소리가 나게 성당의 입구를 닫았다.
절걱.
그리고는 걸쇠로 걸어 잠갔다.
“유클리드 사제님, 부탁드릴 게 있어요.”
“?”
평소의 긴장감 가득한 목소리도 어느새 태연히 바뀌어 있었다.
이내 연단으로 올라간 그녀가, 천장의 빛이 내리쬐는 곳에서 교복 스커트를 붙잡고 가지런히 무릎을 꿇었다.
“고민이 있어서요. 우수성사. 부탁드려도 될까요?”
시몬의 걸음이 멈칫했다.
‘이 타이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