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959)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59화
늦은 새벽, 시몬은 무사히 에프넬 도서관에 들어왔다.
‘오늘도 계시네.’
모든 도서관 출입이 엄정하게 통제된 늦은 시간이었지만, 오늘도 저번과 같은 자리에 검은 머리의 창백한 여성이 책을 읽고 있었다.
‘대체 저 사람은 정체가 뭘까?’
시몬의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맴돌고 있었다.
-믿음이라는 레일에서 벗어나 또 다른 길을 찾는 개척자들. 그 사람들의 최후는 세 가지야.
‘실패자, 위대한 자, 이단이라고 했지.’
그럼 본인이 위대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둘러 말한 건가? 은근히 자기애가 강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시몬은 그녀가 잘 있는지 확인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도서관에서 해당 책을 펼쳐보니 이번에도 문서고 열쇠가 들어 있었다.
시몬은 열쇠를 들고 통제된 문서고로 향했다. 아직 교황 유스티아노 1세가 숨겨둔 딸의 정체에 대해 알아내지 못했다.
그렇게 문서고에 무사히 진입하여 전에 읽던 책을 펼친 시몬의 눈이 커졌다.
‘역시 이건……!’
책의 삽화에 갑옷 차림에 깃발을 들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얼굴은 묘사되어 있지 않다. 투구에 가려져 있다.
그런 여자의 주위에는 민중들이 환호하고 있었다. 조잡한 무기에 곡괭이 같은 농기구를 들었고, 방어구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걸 보니 민중군인 모양이다.
시몬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민중들을 이끌며 숱한 언데드들과 몬스터 무리를 물리치고, 심지어 전쟁에서 적 왕국군의 공세를 막아낸 인물.
이 무렵에는 ‘성녀’라는 개념 자체도 희미했다. 그저 특출난 힘을 가진 프리스트들이 있고 당시엔 주민들이 이를 ‘선택받은 자’라고 불렀다.
유스티아노는 필사적으로 이 성녀들을 모은 뒤, 전쟁터로 보내 갈아 넣었다. 성녀들은 유스티아노를 위한 승리의 도구였으며, 대부분은 전장에서 처절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렇게 많은 성녀들이 죽어 나가고, 유스티아노는 피로 이룩한 신성연방을 세웠다.
그러던 중 이번에도 새로운 선택받은 자가 나타났다. 그자는 군대도 쓰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일어나 민중을 결합한 뒤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어떤 장군들도 해내지 못한 업적. 유스티아노는 새로운 ‘도구’의 탄생에 기뻐하며 그녀를 만나러 갔고, 이내 그녀의 투구를 벗긴 뒤 경악했다.
그녀는 자신의 딸이었으니까.
비록 사생아였지만 자신의 피붙이다. 1대 교황 유스티아노는 여러모로 양면적인 모습을 보이는 인물이었는데, 수많은 성녀들을 전장에 갈아 넣은 것과는 달리 자신의 딸을 살리기 위해 그녀를 별궁에 가두었다.
하지만 성녀인 그녀는 별궁에 갇힐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탈출해서 새로운 민중군을 창설하고 전쟁을 이어나갔다.
결국 보다 못한 유스티아노가 그녀를 외가인 쉐일리 가문의 비밀 저택 어딘가에 가두었고, 그녀는 이후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쉐일리 가문의 저택!’
책을 읽던 시몬의 팔이 파르르 떨렸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데스나이트를 얻은 그 쉐일리 박물관이 아닌가?
시몬은 빠르게 책장을 넘기며 ‘민중의 성녀’라는 인물에 대한 기록을 확인했다.
유스티아노 1세가 2대 교황에게 제거당하기 직전, 2대 교황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갇혀 있는 내 딸을 꺼내다오.
유스티아노는 딸을 가둬놓은 저택의 위치를 말한 뒤 숨을 거두었다. 이내 2대 교황의 지시로 저택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도 그녀를 찾지 못했다고.
그 이후에도 그녀가 사용한 성유물 ‘필야(必也)의 깃발’을 탐내던 많은 사람들이 민중의 성녀의 시체를 찾으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신성연방의 오랜 전설로만 남았다.
책을 읽던 시몬은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역시, 내 데스나이트는 과거에 성녀였구나.’
어쩐지 이상하다고 했다.
데스나이트는 시체를 언데드로 일으켜 지배하는 능력을 가졌고, 깃발의 힘으로 자신과 연결된 언데드들의 체력을 유지하는 힘도 보유했다.
보통의 팔라딘들이었다면 갖기 힘든 힘이다.
‘성녀의 정수 잔해가 나한테 생긴 것도 납득이 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큰 차이다.
시몬은 쭉 내용을 훑어 내려가며 이 비운의 성녀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보유한 정수가 ‘갑철의 정수’라는 것도 알아냈다.
그 정수를 현재는 신성연방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심판의 성녀, 다나’가 보유하고 있다는 것도.
‘아.’
고개를 들어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창가를 보니 날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엔 다른 정보들을 확인해 보자.’
시몬은 바로 책을 자리에 돌려놓고 통제구역인 문서고에서 벗어났다.
***
하루가 더 지나 예배회 3일 차.
시몬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신성연방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이제는 말을 튼 친구들도 많아졌고, 숙소의 주방장과 친해졌으며, 자주 가는 단골 가게도 생겼다.
하지만.
“여기, 또 실수했죠? 유클리드 형제님!”
리리넷의 신성역학 수업만큼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네크로맨서로서 갖고 있는 고질적인 흑마법 습관이 문제였다.
“형제님은 신앙이 너무 부족한 것 같아요! 하루에 경전 베끼기 두 시간씩 의무적으로 시킬까 봐요!”
“죄, 죄송합니다.”
시몬이 땀을 뻘뻘 흘리며 얼른 변명을 덧붙였다.
“찬트가 저한테는 좀 어려워서요.”
신성 마법진에 들어가는 찬트나 버드 같은 부가 요소들.
시몬이 보기에는 여전히 비효율적인 증폭 수식이었고, 이런 요소들은 배제해야 깔끔하다고 은연중에 여겼다. 그래서 마법진을 펼칠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찬트가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발생했다.
하지만 리리넷을 비롯한 프리스트들은 찬트를 무엇보다 중시했다.
그들은 여신에 대한 경의와 믿음을 찬트에 담는 게, 기적을 내려주는 여신과의 소통이라고 믿었다. 직접적인 백마법적 효과를 일으키는 룬어보다 찬트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프리스트들도 있었다.
“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시몬이 팔을 들고 질문했다. 리리넷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탐구심만큼은 높이 사겠습니다! 무엇이죠?”
“앞으로 상급 백마법을 익히게 될수록 점점 더 복잡하고 어려운 찬트가 들어가잖아요?”
리리넷이 ‘힉!’ 하는 소리를 내며 기겁하더니, 고개를 붕붕 내저었다.
“복잡하고 어려운 게 아니라-!”
“더 건실하고 절절한 믿음! 말실수했습니다! 아무튼 그런 더 건실한 찬트가 들어가면 신성마법의 시전 속도가 느려지고, 마법진 실패 확률도 높아지는 게 아닌가요?”
“아니죠 아니죠! 자아, 두 눈 뜨고 잘 봐요!”
그녀는 열등생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사명으로 똘똘 뭉친 선생님처럼 옷소매를 걷어붙였다.
이내 그녀가 허공에 백마법진 하나를 만들었다. 근력을 강화시키는 비교적 간단한 축복 마법이었다.
“이 아이랑.”
그리고 그녀가 바로 옆에 두 번째 마법진을 펼쳤다.
이번엔 근력뿐만 아니라 대상의 전반적인 신체 능력 향상은 물론 재생 능력까지 더한 복합 축복 마법이었다.
“이 아이랑! 어느 쪽이 더 완성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죠?”
시몬은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첫 번째 마법진이 근소하게 빠르긴 했지만, 사실 큰 차이가 없네요.”
“바로 그래요! 유클리드 형제님의 말을 빌려서, 처음에 만든 마법진보다 두 번째 만든 마법진이 찬트가 7~8배 정도 더 어렵고 복잡합니다! 하지만 시전 속도는 비슷하죠! 성공률도 비슷하구요!”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과연 이게 어떻게 된 걸까요?”
시몬이 턱에 손을 짚은 채 고민했다.
신성에는 ‘기억하려는 성질’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어려운 마법진을 펼쳐도 쉬운 마법진과 그리 시전 시간이 차이가 나지 않는 이유.
“정답은-!”
시몬이 고민에 잠겨 있는 사이, 리리넷이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위대한 어머니께서, 기적을 일으키겠다는 저희들의 믿음에 부응했기 때문이랍니다.”
아.
내면에서 다시 네크로맨서로서의 반발심이 꿈틀거린다.
시몬은 억지 웃음을 지으며 ‘라우스’ 하고 추임새를 달았다.
“백마법은 여신께서 내려주신 기적이에요! 어려운 기적, 쉬운 기적이 어디 있나요? 여신께서 응답하셔서 이번에도 우리에게 기적을 내려주실 거라는 단 하나의 믿음! 중요한 건 그거예요!”
‘!’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시몬의 심장이 벌렁거렸다.
‘어려운 기적, 쉬운 기적이 어디 있냐고?’
왔다.
혼돈과 보이드에 대해 살짝 더 감이 온 것 같다. 시몬이 수첩과 깃펜을 들고 깨달은 내용을 적어 내려갔다.
‘칠흑에는 ‘기억하려는 성질’이 있어. 칠흑은 해당 수식이나 흑마법을 반복해서 사용하면, 머리로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빠르게 완성할 수 있지.’
하지만 신성은 기억하려는 성질이 없다.
그렇다면 백마법을 사용할 때 일일이 모든 요소를 기억해서 정확하게 재현해야 한다는 건데, 프리스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중요한 건 믿음.
백마법을 어느 정도 숙달한 뒤에는, 그 백마법의 핵심 요소와 효과를 떠올린 뒤 완성될 거라는 믿음을 갖는다. 그러면 알아서 그 요소들이 조합되어 신성마법이 완성되는 것이다.
모든 요리 재료를 준비해서 테이블 위에 올려두면 알아서 요리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머릿속으로! 팟 해서 팟 하면! 그러니까 위대한 여신과 제가 통해 있으니까…….”
시몬은 리리넷의 설명을 들으며 점점 더 깊게 고찰했다.
‘단순히 믿는다는 걸로는 안 돼. 구체적인 심상과 자신감이 필요하구나.’
숙련도가 부족한 상태에서 백마법을 펼치려고 하면 당연히 실패한다.
그러면 프리스트들은 ‘아, 아직 여신께서 내게 이 기적을 허락하지 않으셨구나. 수련이 부족해’라고 여기며 더더욱 열심히 백마법 훈련에 매진한다.
그렇게 백마법에 숙련도가 붙는 순간, 드디어 여신께서 내게 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허락해 주셨다며 감사기도를 올린다.
이후에는 여신께서 허락해 주신 기적이니, 이것을 쓸 수 있다는 절대적인 믿음을 갖는 것으로 마무리.
이 절차를 걸쳐야 백마법은 비로소 프리스트의 것이 된다.
‘왜 보이드를 실패했는지도 알겠어. 그냥 다짜고짜 믿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닌 거야.’
“자! 이제 아시겠죠, 형제님?”
리리넷이 턱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뭔가 엄청 장황한 설명을 한 것 같은데, 생각에 잠겨 있느라 못 들어서 미안했다. 시몬이 얼른 말했다.
“네, 역시 대단하세요. 선배님의 신앙을 존경합니다!”
“우후훗!”
시몬이 띄워주자 리리넷의 콧대가 한층 더 높아졌다.
***
최근 뭔가 문제가 없는지, 수업이 없어도 선발생들을 지켜보러 온 레테는 얼떨결에 한 선발생의 ‘우수성사’ 요청을 받았다.
우수성사는 하늘섬의 누구도 거절할 수 없는 막강한 혜택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성녀인 레테에게 우수성사를 신청한 당돌한 선발생은 없었다.
레테는 기특한 마음에 흔쾌히 승락했다.
그렇게 조용한 강단에 앉아 귀여운 후배의 고민을 들을 준비를 마쳤다.
대상은 9번 리사라였다.
“저, 정말 말해도 괜찮을까요.”
“괜찮슴다. 사소한 무엇이라도 잘 들어줄게요.”
레테가 리사라의 손을 감싸쥐고 말했다.
혹시 살해자에 대한 힌트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저, 저……!”
“?”
“신앙공부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인데, 갑자기 그……!”
그녀가 확 목소리를 높였다.
“자꾸만 유클리드 사제님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악!”
레테의 눈에 초점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