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973)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73화
밤이 오면 레테의 능력으로 리사라를 찾을 수 있다.
현재 정식 명령으로 리사라를 수색 중인 건 총무주교와 팔라딘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리사라 수색에서 가장 앞서 있는 건 시몬과 레테였다.
하수도로 빠져나간 리사라가 적어도 밤까지는 잡히지 않기를 바라며, 두 사람은 흩어져서 움직였다.
우선 시몬이 제일 먼저 향한 곳은 에프넬 도서관이었다.
‘리사라의 저 이상한 모습에 대해 알아봐야 해.’
현재 악마 토벌전 명령이 떨어진 하늘섬은 전 구역이 폐쇄되었다. 도서관도 마찬가지였지만, 시몬은 매번 가던 은밀한 통로를 써서 어렵지 않게 진입할 수 있었다.
다만 오늘은 그 정체불명의 여자는 없었다.
늘 끝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는데, 늦은 새벽이 아닌 밝은 낮에는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시몬은 이제 익숙한 동작으로 책 사이에서 문서고 열쇠를 확보한 뒤, 비밀 문서고에 진입했다.
‘성녀의 정수, 성녀의 정수.’
문서고에 진입한 시몬의 눈이 빠르게 책장을 훑었다.
알아내야 하는 건 리사라가 어떤 성녀의 정수를 손에 넣었고, 어떤 힘을 보유했느냐다.
-싫어! 이런 모습은 이제 싫어!
그녀는 자신의 힘에 적응하지 못하고, 통제 불능인 상태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저 괴상한 모습이 정말로 성녀의 권능이라면 단서가 있을 터였다.
‘성녀의 정수는 사람마다 다른 힘이 발현된다고 했지.’
예를 들자면 1학년 때 키젠에서 성녀 사태를 일으켰던 정화의 성녀는 ‘백염’이라는 화염 기술을 사용했고.
그 정수를 물려받은 지금의 레테는 ‘별’의 힘을 사용한다.
‘화력’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형태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레테가 말하길, 이번에 살해당한 성녀의 별칭은 신모의 성녀라고 했어.’
그 성녀의 권능은 ‘머리카락’이다. 본인의 탐스러운 금발을 이론상 무한히 늘릴 수 있는데, 대륙의 끝에서 끝까지 이을 정도라고 한다. 어지간해서는 끊어지지 않고 탄력도 강해서 상대를 속박하거나, 아군을 휘감아 보호하거나, 혹은 머리카락을 매개체로 드넓은 광범위 백마법을 일으키는 게 가능했다.
아군을 머리카락으로 포근히 감싼 채 축복마법을 사용하면 머리카락에 닿은 모든 아군이 강화되고.
반대의 경우로 머리카락에 닿은 모든 적을 쓰러뜨릴 수 있다.
현장에서는 속도와 범위에서 독보적인 능력을 가진 성녀였다고 한다. 한 마을 전체를 머리카락으로 휘감는 데 초 단위조차 걸리지 않았다고.
‘……들어보면 대단한 힘이긴 한데, 리사라의 그 모습이 머리카락이 길어지는 성녀랑 무슨 공통점이 있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책장을 살피던 시몬의 눈이 커졌다.
‘찾았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일곱 성녀들의 명단과 호칭, 능력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시몬은 가장 뒷장에 있는 ‘신모의 성녀’에 대해 살펴보았다.
(현) 신모의 성녀, 아르디.
‘이미 죽은 사람이니까, 이 부분은 갱신되어야 겠네.’
시몬의 눈이 빠르게 그 위를 훑었다.
(전) 석상의 성녀, 라바나.
(전) 혜안의 성녀, 이브렐린.
(전) 날개의 성녀, 비르스노라
‘이게 다 뭐야?’
레테가 물려받은 정수의 권능은 화염을 일으키는 힘이나 별을 일으키는 힘. 즉 ‘화력’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에 이쪽 정수를 물려받은 성녀들은 뭔가 공통적으로 이어지는 느낌이 없었다. 시몬은 빠르게 성녀의 명단을 훑어 내려갔고.
‘…….’
중간쯤에 와서야 비로소 감을 잡고 손가락을 딱! 튕겼다.
“알겠어! 이 성녀들의 공통점은 ‘신체 변화’야!”
머리카락이 길어진다거나, 피부가 돌처럼 변한다거나, 두 눈의 능력이 강화된다거나, 어깨에서 날개가 솟아나기도 한다.
이제 알았다.
그렇다면 팔라딘들이 ‘악마’라고 주장하는 리사라의 모습도 형태 변화. 틀림없는 성녀의 권능이 맞다.
‘이건 리사라를 살릴 수 있는 중요한 근거야.’
리사라가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
그것은 그녀 스스로 각성하여 성녀임을 증명한 뒤, 남들에게도 인정받는 수밖에 없다.
하루라도 빨리 리사라와 접촉하고, 사람들에게도 그녀가 성녀란 사실을 알려야 했다.
물론 진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자들은 눈과 귀를 막고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리사라를 죽이려고 하겠지만.
‘혐오스럽고 징그러운 겉모습. 솔직히 누가 봐도 성녀보다는 악마에 가까워.’
시몬이 팔랑팔랑 책장을 넘겼다.
‘뭔가 힌트가 더 있지 않을까?’
***
같은 시각.
“갑작스럽게 방문해서 죄송합니다. 교수님.”
레테는 한 교수의 집에 방문했다.
치유학 교수 베리니티. 그녀는 에프넬의 여러 교수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았던 인물이었다. 레테는 1학년까지만 그녀의 수업을 들었는데, 현재는 은퇴해서 자택에 머물고 있었다.
“그라툴라 미 키빌리스. 어서 들어오시지요, 레테 성녀님.”
노교수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악마 토벌전으로 밖은 난리가 났더군요. 성녀께서도 그 일 때문에 오셨는지요?”
“아, 아니에요! 잠깐 이 근처에 산책하다가 교수님 생각이 나서…….”
레테가 뒷짐을 쥔 채 우물쭈물 말했지만, 사실 방금 전투 때문에 옷이나 머리카락에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
노교수는 그저 기쁘다는 듯 허허 웃었다.
“이 미약한 늙은이 생각이 났다니 더없는 영광이옵니다. 혹시 도와드릴 부분이라도…….”
“신모의 성녀, 아르디 선배.”
레테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교수님이 가르치셨죠? 어떤 분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그 말을 들은 노교수는 복잡미묘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노구를 끌고 지팡이를 짚으며 걸었다.
스륵.
그러고는 집 안의 책장에서 앨범 하나를 뽑아 들었다.
“신모의 성녀께서는 제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지요. 고향 친구의 따님이어서 더더욱 신경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그녀가 앨범을 펼쳤고, 레테는 얼른 옆으로 따라붙었다.
“아.”
신모의 성녀, 아르디의 어린 시절.
탐스러운 금발 머리의 일곱 살짜리 소녀가 앞니 하나가 빠진 채 씩 웃으며 V자를 그리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예쁜 머리카락이었네요!”
“후후, 그렇지요?”
사락-사락—
성장할수록 아르디의 금발도 길어지고 풍성해졌고, 그녀의 미모도 점점 더 아름다워졌다.
그리고 17살.
처음으로 에프넬 교복을 입은 시점.
“응?”
갑자기 아르디의 스타일이 바뀌었다.
“흑발?”
자랑하던 긴 금발은 어디로 갔는지, 뚝뚝 끊어지는 흑색 단발머리로 변해 버렸다. 심지어 사진을 찍고 있는 순간에도 푸석푸석해진 머리카락 몇 가닥이 어깨에 떨어지고 있었으며, 저 어린 나이에 커다란 땜빵까지 나 있었다.
인상이 완전히 달라져서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이게 무슨…….”
“별다른 전조도 없이 머리카락이 저렇게 변해버렸다고 하더군요. 누구도 답을 모르는 증상이라 아르디 성녀님도 마음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가장 예민할 나이에 자존감이 크게 떨어지고, 극도의 우울증에 시달리셨죠. 학급에서 따돌림도 당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노교수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뒤, 레테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마 이 무렵이었을 겁니다. 성녀의 정수의 선택을 받게 된 시점이요.”
“아! 혹시……!”
“네, 아르디 성녀님은 본인이 성녀란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반년을 지냈습니다. 그러다…….”
앨범 책장이 넘어간다.
이제 2학년이 된 시점,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에 윤기가 더해지며 길이도 더 길어졌다.
조금 더 뒤에는 그 거무죽죽한 흑발이 아닌, 예전보다 훨씬 더 길고 눈부신 금발로 돌아왔다. 그녀도 자신감을 되찾은 게 표정으로 느껴졌다.
“이후 성녀의 자리에 오르셨죠. 이 대륙에서 가장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가진 분이 되셨습니다.”
앨범을 넘기니 성녀가 된 시점부터는 사진이 많았다.
그녀가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포즈를 취하는 모습, 동기들을 끌어안고 환하게 웃는 모습. 머리카락을 손처럼 만들어 아이스크림 다섯 개를 동시에 쥐고 하나씩 맛보는 모습.
마지막에 마력 촬영기로 찍은 졸업사진에서는 더없이 길어진 금빛 머리로 동기들을 휘감은 채 활짝 웃고 있었다. 머리카락에는 예쁜 꽃이 자라났고 새와 동물이 와서 앉기도 했다.
“아르디 성녀님은 아름다운 백조였던 게죠.”
레테는 머리가 길어진 아르디의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뭔가 깨달은 듯 눈을 반짝이더니 노교수에게 달려들어 와락 끌어안았다.
“완벽하게 궁금증이 해결됐어요!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그때 창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저기 찾아봐!
-집 안 내부를 수색해야 하니 문을 열어라!
악마 토벌 명령이 내려지고, 팔라딘들이 일반 주거지까지 수색하는 모습이다.
레테가 성큼성큼 걸어가 3층 창문을 열고 발을 올렸다.
“죄송해요. 가봐야겠네요! 이 일이 끝난 뒤에 제대로 인사드릴게요!”
“그라툴라 미 키빌리스.”
노교수가 두 손을 맞잡으며 미소 지었다.
“성녀께서 하는 모든 일에 여신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
날이 저물어갈 무렵.
각자 조사를 모두 마친 시몬과 레테는 약속 장소인 인적 없는 숲에 도착했다.
시몬이 혼돈과 보이드를 연습하던 바로 그곳이었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얻은 정보들을 교환하며 퍼즐들을 맞춰 나갔다.
“정리할게, 레테.”
시몬이 손에 쥔 깃펜을 빙빙 돌리며 말을 이었다.
“리사라는 신모의 성녀가 가진 정수를 물려받았다. 그 권능이 가진 힘은 특정 신체 부위의 강화 및 변화. 그리고 성녀의 힘을 받은 초창기에는 일시적인 부작용이 존재하는데, 신모의 성녀 건을 미루어 보면 충분히 극복할 여지가 있다.”
“맞슴다.”
풀밭에 앉은 레테가 이마를 쓸어내렸다.
“뭐, 리사라 본인은 충격이었겠죠. 감정이 격해지면 괴물 같은 모습으로 변하고, 통제도 안 되고요. 연방 사람들은 다들 ‘성녀’로 선택받는 걸 위대한 여신의 축복으로 생각해서 우러러보고 떠받들잖아요? 그런 성녀가 됐는데 이런 꼴이라니. 세상이 자기를 저주하는 것 같았겠죠. 성녀 살해에 대해서도 들어봤을 테니 필사적으로 정체를 숨길 수밖에 없었을 검다.”
시몬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아무리 성녀의 상징성이 중요하다지만, 연방에서 지나치게 모든 정보를 통제하고 은폐하는 것도 문제야. 신모의 성녀도, 리사라도, 이런 진실을 진작에 알았다면 고통받을 일도 없었을 텐데.”
“백번 동의함다.”
레테가 한숨을 푹 쉬었다.
“숨기는 게 쓸데없이 지나치죠. 제가 에프넬을 졸업해서 정식 성녀가 되면 싹 다 바꿀 거예요.”
“포부가 대단하네.”
“띄워주는 건 됐슴다.”
레테는 콧방귀를 뀌고는 다리를 꼬았다.
“아, 그리고 저 8번 에이툴라 병문안도 갔고, 4번 베르시랑도 접촉했슴다.”
“베르시? 왜?”
“이제 살인자랑 성녀의 정체가 누군지 다 나왔으니 조심할 필요도 없잖아요. 싹 다 불게 했슴다.”
역시 레테의 행동력은 대단했다. 시몬이 감탄하며 물었다.
“뭐 좋은 정보라도 나왔어?”
“베르시에게 왜 신인 예배회 첫날, 갑자기 튀어나온 유클리드를 보며 두려워했냐고 대놓고 물어봤죠.”
베르시는 숙소 매원에 있을 때, 유클리드가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과 이야기하고 돈을 주고받는 걸 목격했다고 한다.
딱 봐도 그 남자들은 높으신 분들, 혹은 음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같아서 엮이면 안 될 것 같으니 필사적으로 모른 척했다고.
“성녀 살해는 90%가 권력 비리형 살해고, 이번에도 암살자는 위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그 예상이 틀렸던 게 아니었슴다.”
레테가 말했다.
“다만 그 암살자의 정체가-”
“나, 유클리드였던거고.”
시몬이 자신을 가리켰다.
“유클리드가 리사라의 정체를 알아내서, 그녀를 협박하거나 살해하려고 했을 거다. 그러자 그녀의 성녀의 권능이 폭주해 역으로 유클리드를 살해했다.”
“네, 그렇게 성녀와 살인자 둘 다 리사라가 된 거겠죠.”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스커트를 툭툭 털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추측. 정확한 건 리사라를 찾아내서 확인해 보면 되겠죠.”
그녀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이 많이 뜬 밤. 그녀가 두 팔을 올렸다.
“별들의 행진을 시작할게요.”
***
에프넬 도서관.
“…….”
인적이 끊긴 늦은 시간의 도서관이었지만, 오늘도 검은 머리카락의 창백한 여성은 똑같은 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정적과 어둠 속에서 사락사락 책장 넘기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그러다.
또각 또각.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역시 여기 계셨군요.”
발소리를 내며 등장한 건 유클리드 사태의 총책임자, 에프넬의 총무주교였다.
“…….”
굴지의 권력자가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의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책장을 넘기고만 있었다.
그렇게 한 마디도 없는 무거운 정적 속에서.
불현듯 총무주교가 서서히 몸을 낮추었다.
“그라툴라 미 키빌리스.”
그러고는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위대한 여신의 가장 가까운 딸을 뵙사옵니다.”
“…….”
사락—
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음 책장을 넘기며 말했다.
“무슨 일이지?”
“송구하옵니다. 개인 시간을 방해받는 걸 극도로 싫어하시는 점은 알고 있지만,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총무주교의 그 말을 들은 그녀가 천천히 안경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안경을 벗어서 내려놓았다.
“어떤 심각한 일이지?”
“다음 성녀에 대해 알아냈사옵니다.”
그렇게 말한 총무주교가 송구하다는 듯 더더욱 자세를 낮추며 고개를 조아렸다.
“우리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 자이옵니다.”
드르륵.
드디어.
검은 머리의 여성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어떤 자인지 궁금하구나.”
깜빡. 깜빡.
도서관의 어두운 조명들이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했다. 여성이 머리카락을 길게 쓸어넘겼다.
그녀의 손끝이 지날 때마다 머리카락의 검은 물이 빠지며 붉게 물들고, 테이블 서랍에 넣어둔 립스틱을 꺼내 입술에 짙게 발랐다.
조명이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그녀가 신성을 일으켰다. 눈부신 빛은 그녀의 몸을 감싸더니 순백의 갑주의 형태로 갖춰졌다.
그녀가 걸음을 옮기자 신성이 퍼져나가며 도서관 전체가 번개가 친 채로 시간이 멈춘 것처럼 하얗게 일변했다.
“적어도 일격에 죽을 정도는 아니었으면 좋겠구나.”
심판의 성녀, 다나.
신성연방 최대 전력 중 하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