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981)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81화
“…….”
심판의 성녀 다나는 레테와의 전투를 중단한 채,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반면 이마에 피를 줄줄 흘리며 간신히 자리에 서 있는 레테는 전투는 몰라도 전쟁의 승리를 직감했다. 방금 리사라의 등장으로, 가장 중요한 전쟁의 ‘명분’을 제거했으니까.
‘이제 어쩔 거지?’
스릉.
다나가 손목으로 검을 빙그르르 돌리더니 우아한 동작으로 칼집에 집어넣었다.
“총무주교가 나를 속였구나.”
그녀가 등을 돌리자 망토가 힘껏 펄럭이며 솟구쳤다.
“리사라가 정말로 성녀였다니, 거짓을 고한 죗값은 마땅히 치러야 할 것이다.”
그 말을 마친 뒤 절그럭절그럭 갑옷 소리를 내며 걸어갔다. 레테가 ‘하’ 하고 냉소했다.
“결국 꼬리 자르기? 댁들은 늘 그딴 식이야.”
다나의 걸음이 멈췄다.
“댁들 유리할 때만 믿음이니 개똥이니 온갖 명분을 다 갖다 붙이고, 거짓으로 밝혀지면 그제야 여신의 뜻을 곡해한 자를 색출하겠다며 꼬리를 잘라. 더러운 방식으로 그 위치까지 오른 게 부끄럽지도 않아?”
“나를 도발해서 총무주교와 같이 엮을 생각이라면.”
다나의 붉은 입술이 미소를 그렸다.
“무모해. 조금 더 네 목숨을 소중히 여겨.”
“뭐?”
“이곳의 목격자 전원을 참살한다는 선택지도 있어. 그러지 않는 건 단순한 변덕. 약소한 승리를 만끽하고 자잘한 전리품을 챙기도록 해.”
다나가 ‘전리품’을 이야기할 때, 저 멀리 주저앉아 있는 총무주교를 한번 주시했다.
“패배한 개가 폼 잡기는.”
그렇게 말한 레테가 척 하고 중지 손가락을 세웠다.
다나가 후훗 하고 미소 지으며 다시 걸어갔다.
“기대 이상이었다, 레테 샤르데나.”
그 한마디를 남긴 다나가 잔상과 함께 사라졌다.
그녀는 다나가 사라진 뒤에도 한참을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가, 다나의 신성이 완전히 사라진 걸 느낀 뒤에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레테!”
마침 사태를 수습한 시몬이 그녀가 있는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괘, 괜찮아? 많이 안 다쳤어?”
레테는 온통 피투성이였다. 입고 있는 옷은 엉망으로 찢어져 있고 이마와 한쪽 팔에는 계속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 괜찮슴다.”
레테가 헤헤 웃었다.
“프리스트란 족속은 원래 죽지만 않으면 회복 같은 건 금방…….”
스륵.
그때 레테의 몸이 기울어지더니 시몬의 가슴에 툭 부딪혔다. 시몬이 놀라서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쓰러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었다.
‘최강의 성녀가 상대였지. 힘든 싸움이었겠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마음속으로 안도한 시몬이 비로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나한테 기대주는 거야? 영광이네.”
레테가 시몬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으며 중지 손가락을 내밀었다.
“지랄한다. 당신이 내가 쓰러진 쪽으로 왔잖아.”
“이쪽으로 오자마자 공주님처럼 쓰러졌으면서.”
레테가 시몬의 옆구리를 꽈악 꼬집었다. 시몬이 자신도 모르게 ‘큽!’ 하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금방 회복할 테니 잠시만 이렇게 잡아줘요.”
그녀가 소곤소곤 기도문을 외우며 백마법을 펼쳤다. 백마법의 하얀 기운이 레테의 몸을 휘감다가 입과 코안으로 들어갔다. 쓰러지려던 그녀의 다리에 서서히 힘이 붙는 게 느껴졌다.
물론 이 또한 임시 조치. 체력이 빠져서 여전히 제 몸을 가누진 못했다.
“어깨 좀 빌리겠슴다.”
“얼마든지.”
시몬이 그녀를 부축했고, 그녀는 저벅저벅 걸어가며 외쳤다.
“전령!”
그녀의 외침이 울려 퍼지기 무섭게, 프리스트 복식의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그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위대한 딸을 뵙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교황청에 전하십쇼.”
잠시 숨을 고르던 레테가 입을 열었다.
“총무주교가 발효한 악마 토벌전의 척살 목표였던 선발생 9번, ‘리사라’의 정체는 악마가 아니라 성녀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사실은 악마 토벌전에 참가한 전 인원이 확인했고, 그들 모두가 리사라가 성녀임을 진실로 믿고 있습니다.”
전령이 수려한 필체로 레테의 말을 받아 적고 있는 사이, 옆에서 시끄러운 소란이 들렸다.
“놔라! 이거 놔!”
총무주교였다. 팔라딘들에게 두 팔이 붙들린 채 끌려오는 그녀는 산발이 된 머리카락을 흔들며 격렬히 몸부림치고 있었다.
“내가 누군 줄 아느냐! 이 비천한 것들이 감히 주교의 몸에 손을 대느냐!”
“시끄럽다! 이놈!”
팔라딘들이 총무주교의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강제로 들쳐 올리자 그녀의 얼굴이 우악스럽게 일그러졌다. 이 와중에 앞니는 중간에 떡하니 빠져 있는 꼴이 영 말이 아니었다.
“꿇어라! 이 불신자!”
팔라딘들이 총무주교를 레테의 발밑에 거칠게 무릎 꿇렸다.
레테가 비릿하게 웃었다.
“우와, 꼴이 많이 아니심다. 총무주교.”
“이 망할 년이이이이익!”
총무주교가 그렇게 외치기 무섭게, 뒤에서 군홧발이 날아와 뒤통수를 거칠게 짓밟았다. 진흙탕에 그녀의 얼굴이 파묻혔다.
“어느 안전이라고 악담을 입에 담느냐!”
“커흡! 컥!”
급기야 팔라딘들은 검집째로 총무주교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철썩철썩 소리가 날 때마다 총무주교가 진흙탕에서 발작하듯 몸을 뒤틀어댔다. 관절이나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려 퍼졌다.
굴지의 권력자인 총무주교가 흙탕물 위에서 매타작을 당하고 있는 진귀한 광경. 사람들은 하던 일도 잊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지켜보던 시몬도 권력의 덧없음을 느꼈다.
‘그보다 이 팔라딘들.’
시몬이 시선을 돌려 총무주교를 매타작하는 자들의 얼굴을 살폈다.
‘레테 휘하도 아니고 총무주교 쪽 녀석들이네.’
하루 전만 해도 본인이 섬겼던 주인을 후려치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충성 경쟁’.
그들은 이 순간 모든 주도권을 쥐고 있는 레테에게 빌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목숨만큼은 살려주세요 하고.
“그만.”
레테가 우아하게 손을 들어 올리자, 팔라딘들이 잽싸게 동작을 멈추고 총무주교의 머리통을 붙잡아 고개를 억지로 들게 했다.
“으그그그그극!”
그녀가 코피가 줄줄 쏟아지고 앞니가 몇 개 더 빠진 채로 말을 더듬었다.
“성여으님! 레테 성여으님! 2년 동안 봐왔던 정이 이찌 않습니까! 신입생 시절에도 즈어가……!”
아무리 고귀한 사람이라도, 폭력이라는 원초적인 행위를 경험한 뒤에는 생존본능에 눈을 뜬 짐승이 될 뿐이었다.
바로 레테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그녀의 모습을 본 프리스트들은 짙은 실망감을 느꼈다. 몇몇은 총무주교와 함께 죽을 각오도 했지만, 그 생각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네, 그러네요.”
레테가 생글생글 웃더니 고개를 돌렸다.
“전령! 다 받아 적었죠?”
“예!”
“다음 이어가겠슴다.”
레테가 가볍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여신의 뜻으로 선택받은 적법한 성녀를 악마라 칭하며 연방민들을 기만한 것은, 악마 토벌전을 선언한 총무주교 본인이며.”
총무주교의 얼굴이 흙빛으로 바뀌었다.
“성전을 위해 소집된 병사들은 기만에 휘둘렸을 뿐, 그저 자신의 소임을 다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말을 들은 팔라딘들이 감격한 듯 몸을 떨며 레테를 향해 깊게 고개를 숙였다.
“다만 총무주교에게 직접 가담해 일을 공모한 자들은 색출해야 할 필요성이 있으므로 저 별의 성녀에게 맡겨주시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상.”
촤아아아아악!
서신 작성을 마친 전령이 두루마리를 접고는, 즉시 말을 타고 떠났다. 팔라딘들은 비명을 질러대는 총무주교를 붙들고 질질 끌고 갔다.
마침 저 뒤에 도착한 교황청 직속 부대원들에게 그녀를 인계하는 모습까지 확인했다.
“끝났네.”
시몬이 말했다.
“네, 끝났슴다.”
레테가 답했다.
두 사람은 근처에 퍼질러 앉아 잠시 밝아오는 새벽하늘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리사라는 이제 무사히 정식 성녀가 될 수 있는 거겠지?”
“확정은 못 해요. 그건 이제부터 본인 하기 나름임다.”
제 어깨를 툭툭 두들긴 레테가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연방을 돌며 본인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사람들 앞에서 믿음을 구걸해야겠죠. 그 과정에 온갖 더러운 암투에 휘말릴 거고, 숱한 암살 시도에, 변태 노인네들도 만날 검다. 하지만 늘 밝고 신실한 척해야 해요. 만민의 기대에 부응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어쩐지 한이 서려 있는 대답이네.’
레테가 눈을 감았다.
“보통 각오로는 할 수 없는 일임다. 지금은 리사라가 어떻게 어떻게 시간에 맞춰서 각성하긴 했지만, 앞으로는 지금보다 몇 곱절 더 힘든 일들이 다가올 거예요. 그런 시련을 버티게 하려면 강한 멘탈과 동기가 필요한데…….”
마침 하늘에서 신성을 일으키고 있던 리사라가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저택 쪽. 선발생 동기들이 있는 곳이었다.
레테가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이번 대면이 앞으로의 미래를 좌우하겠네요.”
시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도 가보자.”
***
저택 안에서는 선발생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수다를 떨거나 영웅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아직도 믿기지 않아! 내전에 성녀 각성까지 경험하다니! 선발생 때부터 이런 큰일을 겪은 건 우리 기수밖에 없지 않을까?”
“당연하지!”
다들 크게 다치진 않은 모습이었다.
아무리 총무주교의 군대라고 해도, 떡하니 에프넬 교복을 입고 있는 학생들, 그것도 예배회 기간의 선발생들을 건드리기는 상당한 부담이었던 모양.
전장에 직접 들어가서 다소 과격하게 싸웠던 2번 스웨이는 부상이 있었지만, 어느새 다 회복된 뒤였다.
“뭐야, 스웨이.”
1번 메릴이 고개를 불쑥 내밀며 말했다.
“다들 들떠 있는데 왜 혼자 뚱한 표정이야?”
“일이 너무 잘 풀려서.”
스웨이가 짜증스럽게 툭 내뱉었다.
“망할 꼰대가 나 때문에 입장이 난처해지길 바랐는데, 이렇게 이겨 버리면 다들 ‘역시 레이트의 아들’ 어쩌고 하면서 그 꼰대만 찬양할 거 아니냐.”
“……대체 뭔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난 평생 너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 아, 그게 또 네 매력이지만!”
그렇게 선발생들이 떠들썩하게 수다를 떨고 있는 그때.
차박 차박.
몸이 작아진 뒤 로브를 뒤집어쓴 리사라가 걸어오고 있었다. 선발생들 모두가 일어났다.
“아! 리사라 자매…… 아니! 성녀님……?”
떠들썩하던 선발생들은 다가오는 리사라를 보며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머뭇거렸다.
그때 메릴이 버럭 외쳤다.
“바보들아! 성녀님이 오셨는데 뭘 하는 거야?”
그녀의 외침에 이내 정신을 차린 선발생들 모두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라툴라 미 키빌리스(cíbĭlis). 여신과 가장 가까운 딸을 뵙습니다!”
같은 동기지만 이제는 감히 우러러볼 수도 없는 높이에 올라섰다.
리사라는 표정 없는 얼굴로 저벅 저벅 걸어왔다.
‘뭔가 무섭네.’
‘호, 혹시 우리가 뭔가 잘못한 게 있던가?’
다들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그때.
쿵!
리사라가 동기들 앞에 엎드려서 머리를 바닥에 찧었다.
“여러분께 용서를 빌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
갑작스러운 반응에 모두가 경악했다. 다들 허둥지둥했지만 그나마 정신을 차린 메릴이 달려와 그녀를 일으켰다.
“이, 이러시면 안 됩니다! 성녀님!”
“그동안 여러분을 속이고 위험에 빠뜨린 점 사죄드립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돌아갔다.
“에이툴라 자매님, 마리첼로 자매님.”
“!”
그 두 사람이 고개를 들어 리사라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표정 없던 리사라의 얼굴은 위태위태해 보일 정도로 잔뜩 구겨져 있었다.
“두 분께는 평생을 속죄하며 살아도 지워지지 않을 죄를 저질렀어요. 이번에 제가 성녀가 된 건 여러분이 전투에 휘말렸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에요.”
그녀의 눈에 방울진 눈물방울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저 같은 죄인은 성녀를 계속해 나갈 자격 없어요. 저는……!”
“리사라 성녀님.”
그 순간.
에이툴라가 다가와 따스하게 그녀를 안아주었다.
“저야말로 죄송해요. 그 모습으로 변하면 감정이 통제가 안 된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제 자신이 부끄러워요. 남의 외견만을 보고, 공포에 질려서 섣불리 악마라고 하고.”
그녀가 리사라의 등을 슥슥 쓸었다.
“제가 조금이라도 더 편견 없는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래서 그때 비명을 지르고 문을 걸어 잠그는 대신, 말을 걸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면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어요. 리사라 성녀님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리고 성녀님의 신성.”
에이툴라가 빙긋 웃었다.
“무척 밝고 따뜻했어요.”
“…….”
이번에는 3번 마리첼로가 머리를 긁적이며 다가왔다.
“누구보다 잘 알죠. 내가 죽거나 남이 죽거나 양자택일을 강요받았을 때의 심정을. 저도 잘한 거 하나 없는걸요. 진짜 수사관님을 죽이려 하기도 했고……. 제가 성녀님 상황이었어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싶네요.”
흠흠.
마리첼로가 부끄러운 듯 헛기침을 몇 번 한 뒤 말했다.
“그러니 속죄라느니 하는 표현은 너무 무거운 것 같습니다.”
“여러분……!”
리사라가 재차 눈물을 터뜨렸고, 선발생들 모두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시몬과 레테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들 잘 풀린 것 같아서 다행이네.”
시몬이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하심까.”
레테가 팔꿈치로 툭 시몬을 건드리고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당신도 서류상 선발생이잖아요, 가서 같이 안아주든가?”
“난 됐어.”
시몬이 고개를 내저으며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쭉 켰다.
“내가 저기에 끼는 건 양심에 찔리네. 돌아가자.”
“뭐, 그러죠. 내일부터 대규모 여론전. 바빠질 검다.”
두 사람이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리고.
“…….”
리사라가 멀어지는 시몬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