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990)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90화
국왕 부부의 고향이자, 누구에게도 정복된 적 없는 철혈의 성채 벨하이츠.
그러나 회색벽 내부의 광경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건물들은 온통 파괴당한 뒤였다. 곳곳에는 마른 핏자국들이 가득하고 온갖 정체불명의 토사물들이 보인다.
무엇보다 도시 전체에 거무죽죽한 나무들이 자라나 있었는데, 지붕이나 저택을 부수고 그 뿌리가 깊게 파고들어 있었다.
마치 수백 년 이상 방치된 폐허 같다.
‘이게 고작 2주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라고?’
시몬은 제 눈을 의심했다.
역시 결사의 기술은 기이한 것들이 많으니 방심할 수가 없었다. 시몬은 신중하게 걸음을 옮겼다.
‘왕가의 문장도 당장은 반응 없음.’
시몬이 목걸이를 붙잡아 든 뒤, 작게 한숨을 쉬었다.
국왕 부부가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이 컸지만, 그래도 수색은 계속되어야 한다.
회색벽으로 햇빛이 들어오지 않은 만큼 주위는 어둡고, 쥐 죽은 듯이 조용해서 발소리를 없애는 것에도 신경을 쏟아야 했다.
당장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지만, 묘하게 알 수 없는 전운이 흐른다.
‘피어, 혹시 주위에 생명 반응이 느껴져요?’
[크흐흐! 그야말로 죽음의 땅이다만-]피어의 목소리가 끊긴 뒤, 잠시 후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 찾았다. 미약하게나마 기척이 느껴지는 곳이 있군!]‘가보죠!’
시몬은 피어의 안내에 따라 근방에 있는 작은 저택으로 향했다.
이곳도 지붕에는 흑색 나무가 자라나 있었고, 그 뿌리가 천장을 뚫고 집안까지 내려와 있었다.
시몬은 슬그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다르네.’
거미줄이 잔뜩 쳐져 있는 폐허를 예상했지만, 건물 내부는 이곳의 시간이 한 달도 지나지 않았음을 증명하듯 깨끗했다.
집 내부를 수색하던 시몬은 거실로 들어왔고, 이내 거실의 커다란 침대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
그러고는 한 손으로 침대를 붙잡더니, 거칠게 위로 젖혀 들었다.
“우와어억!”
침대 밑에 숨어 있던 한 청년이 기겁한 비명을 지르며 팔로 제 얼굴을 감쌌다.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생존자다.
얼굴에 볼이 움푹 들어간 마른 청년. 이곳을 조사하는 데 이틀은 더 걸릴 거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발견했다. 시몬은 반가운 마음을 잠재우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죽음의 마녀의 명령으로 벨하이츠를 해방하러 왔다.]“네?”
[나는 연합의 네크로맨서다.]그가 드디어 고개를 들어 시몬을 바라보았다. 피어의 투구를 눌러쓴 모습이라 살짝 겁먹은 듯한 표정이었지만, 시몬이 내민 키젠의 명령서를 보여주는 순간 ‘크흡’ 하고 감격한 눈물을 흘렸다.
“아직 제 운이 다하지 않았군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시몬이 소리가 나지 않도록 침대를 끝까지 기울여 벽에 붙인 다음, 쪼그려 앉은 청년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전히 시몬이 두려운지 망설이는 것 같았지만, 결국 시몬의 손을 맞잡았다. 시몬이 힘을 살짝 주자 그의 몸이 허수아비처럼 홱 끌려왔다.
“우왁!”
반대로 넘어가려는 그를 시몬이 다시 똑바로 일으켜 제자리에 세웠다.
몸에 힘이 없는 게 풍선인형 같다. 영양 상태가 나빠 보였다.
[어떻게 된 건지 상황을 말해라.]“아, 옙! 저도 워낙 갑작스러워서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
청년이 생각을 고르고 있는 사이, 시몬이 갑자기 파멸의 대검을 움켜쥐며 앞으로 세웠다. 청년이 화들짝 놀라며 팔을 휘저었다.
“우와악! 죄송합니다! 말을 안 한다는 게 아니라!”
부웅!
시몬이 크게 파멸의 대검을 휘둘렀다. 반대편 벽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갈라졌다.
푸콰아아아악!
이내 벽이 갈라진 곳을 기점으로, 그 뒤에 있던 괴물들이 반으로 갈라지며 녹색 액체를 줄줄 쏟아냈다. 수는 다섯 마리 정도. 심지어 검에 베였는데 아직도 움직이는 것들도 있었다. 청년이 ‘흐오악!’ 하며 자지러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크르륵!
그중에서 무너진 틈으로 기어 나온 괴물이 청년을 바닥에 넘어뜨린 뒤 입을 쩍 벌렸다. 청년의 낯빛이 하얗게 질린 순간.
퍽!
청년을 잡아먹으려 입을 벌린 괴물의 머리가, 턱과 아랫니만 남은 채로 깔끔하게 사라졌다. 그 뒤로 시몬이 발차기 자세를 취한 모습이 보인다.
[정신 붙들어라.]쾅!
그가 현란한 동작으로 돌진하며 괴물들을 다져대기 시작했다. 주먹 한 방 한 방에 괴물들의 장기가 튀어나오고 뇌수가 흩뿌려졌다.
이내 시몬을 향해 달려드는 마지막 한 놈을 한 손으로 붙들더니.
으적!
청년이 보고 있는 바로 옆에 찍어 눌렀다. 살점이 짓이겨지는 소리와 함께 육체의 파편이 쏟아졌다. 청년은 넋을 놓고 입만 벌린 채 ‘어버버’ 하는 소리를 냈다.
[일어나라.]시몬이 청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손을 맞잡았다.
“……시, 실례지만 엄청 강하시네요.”
***
여기서 한가히 이야기를 들을 여유는 없는 것 같았다.
큰 소리를 들은 괴물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랐기에, 시몬과 청년은 집을 빠져나와 길거리를 달렸다.
“이쪽입니다, 은인님! 안내하겠습니다!”
그는 한번 죽을 뻔한 와중에도, 집에 있던 음식들을 가죽 가방에 잔뜩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덕분에 그의 가방은 온갖 음식들로 꽉 차 있었다.
“생존자들이 숨어 있는 지하 은거지가 있습니다! 그리로 안내하겠습니다!”
생존자들의 무리가 있다니. 이건 희소식이었다.
[이름은?]“톨입니다!”
[톨, 그 은거지에는 인원이 몇 명이나 있지?]그냥 이름으로 불렀을 뿐인데, 톨이 조금은 감격한 표정이 되어 시몬을 올려다보았다.
“30명 정도입니다! 그보다 은인님! 처음에 봤을 땐 진짜 지옥에서 걸어 들어온 저승사자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척!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앞세워 톨을 멈추게 했다. 그가 화들짝 놀라며 다급히 외쳤다.
“으허억! 기,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제가 혓바닥이 좀 자유분방해서……!”
[조용히.]시몬이 인상을 쓰며 그의 입을 막은 뒤, 턱짓으로 앞을 가리켰다. 톨의 시선이 향했다.
어두운 건물 숲에서 아까 그 괴물들이 하나둘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없었다. 톨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톨, 여기서 그 은거지까지의 거리는?]“바로 앞에 있습니다! 15분 정도만 더 걸으면 될 것 같은데요!”
[그렇군.]시몬은 파멸의 대검을 쥐지 않은 왼팔을 쭉 늘어뜨리더니, 이내 손바닥을 허리에 착 붙였다.
[들어와라.]“네?”
그가 멍한 표정으로 시몬의 얼굴과 왼팔을 번갈아 보았다.
“???”
어쩌란 거야? 라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시몬은 적들을 경계하느라 설명을 할 틈이 없어 보였다. 톨이 바닥에 떨어진 열매를 경계하며 쪼아 먹는 닭처럼 시몬의 팔 안으로 손을 넣었다 뺐다, 고개를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여전히 시몬은 앞만 보고 있었다.
-크르륵!
-키이이이이이!
결국 괴물들이 시몬과 톨을 발견하고 가속해서 달려오기 시작했다. 시몬이 목소리를 높였다.
[빨리!]“이, 이, 이렇게요?”
톨이 마침내 시몬의 왼팔에 몸을 쏘옥 집어넣자, 시몬이 왼팔을 좁히며 그를 가뿐히 들쳐 업었다. 그의 엉덩이가 위로 휙 들리자 ‘음헉!’ 하는 소리를 냈고, 시몬은 즉시 지면을 짓밟고 몸을 날렸다.
터엉!
시몬이 디디고 있던 지면이 금이 가더니 그의 몸이 단번에 고공으로 치솟았다. 강렬한 맞바람에 톨의 옷이 거칠게 펄럭인다.
시몬은 건물 지붕을 짓밟고 계속해서 달려갔다.
“으와아아아아악!”
시몬의 옆구리에 낀 톨이 정체불명의 비명을 내질러 댔다. 고개를 돌려 앞을 본 그가 기겁하여 외쳤다.
“은인님! 앞에! 앞에!”
하늘에 떠오른 괴물이 시몬을 향해 입을 벌렸지만, 하얀 섬광과 함께 괴물의 몸이 반으로 갈라지고, 두 사람은 그 틈으로 통과했다.
스릉! 스릉!
시몬은 오른손에 든 파멸의 대검을 젓가락 움직이듯 휘둘렀다. 쩍쩍 소리와 함께 괴물들이 갈라진다.
지붕을 밟고 달리다가, 지면에 내려오고, 다시 뛰어올라 드높은 시계탑 위에 발을 딛더니, 디딤발을 이용해 다시 지상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가히 신출귀몰한 움직임. 톨은 이제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정신 차려라, 톨. 전방 15분 거리에 왔다. 은거지의 위치가 어디지?]그 와중에 시몬의 말은 알아들은 건지, 톨이 두 손을 움직여 한 방향을 가리켰다. 포장된 마차 도로 끝에 작은 나무판자로 막힌 지점이 있었다. 지하 하수도로 향하는 입구였다.
‘포그(Fog).’
시몬은 기초 칠흑역학 마법인 안개마법을 시전해 주위를 어둡게 만든 다음, 나무판자를 뽑아 들고 톨을 먼저 안에 집어넣었다.
이어서 본인도 안으로 들어간 뒤, 손을 뻗어 나무판자를 덮어놓았다.
잠시 후.
두두두두두두두두두!
위로 괴물들의 끔찍한 발소리가 들린다. 시몬과 톨은 숨을 헐떡이며 그 상태로 멍하니 있었다.
“괘, 괜찮으십……! 우욱!”
톨이 옆으로 뛰어나가더니 바닥에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
톨의 구토가 멈췄다.
두 사람은 아공간에서 꺼낸 랜턴을 하나씩 들고 지하수도를 걸었다.
[벨하이츠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해라.]“아, 그럼요! 이제 생각이 딱 정리됐습니다!”
모든 것은 국왕 부부가 이곳에 온 뒤로 시작됐다.
벨하이츠는 국왕 부부가 태어난 고향이자, 마음의 쉼터 같은 곳이었다.
이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지역 순례’를 명목으로 벨하이츠에 방문해 마음을 다잡곤 했다. 결사 사태로 왕국이 흉흉해진 이때, 국왕 부부는 소수의 대신들만 데리고 벨하이츠에 방문했고, 주민들은 국왕 부부가 도착한 걸 알자 성대한 축제를 열어서 그들을 반겼다.
그렇게 가장 크고 화려하게 빛났던 축제의 첫날 밤.
결사의 ‘죽음’이 뿌리내렸다.
영지에는 외부로의 유입을 완전히 차단하는 ‘벽’이 펼쳐졌고, 정체불명의 독가스가 영지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것은 인간들을 오염시켜 거리를 돌아다니는 괴물, ‘감염체’로 만들었으며 영지는 쑥대밭으로 변했다. 영지는 어느새 흑색 나무들이 뿌리내리고, 죽음의 영지가 되었다.
다행히 늦지 않게 지하에 숨어든 사람들은 가스에 오염되는 것은 면했으나, 이미 영지 인구의 80%가 사라진 상황.
이후 그곳에서 마스크를 낀 결사의 일원들이 나타나 선언했다.
-벨하이츠는 이제부터 결사의 영지다.
그들은 생존자들을 하나하나 색출하여 폐건물로 데려가 인체실험을 자행했다. 끔찍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톨이 있던 은거지의 사람들은 보름 내내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지하에서 버텼지만 결국 한계에 봉착했다.
하는 수 없이 톨이 나섰다. 거리에 독가스가 사라진 걸 확인한 그는 음식을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가 괴물들에게 들켜 이틀 동안 억류당했고, 그러다 시몬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 모든 게 보름 만에 일어난 일들인가.]“저도 믿기진 않지만 그렇습니다.”
톨이 참담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아직도 모든 게 지독한 악몽 같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부모님 생신을 챙겨 드리고, 누가 내다 버린 멀쩡한 테이블을 주워서 즐거워하고, 그렇게 지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국왕 부부의 생존에 대해 아는 바는?]톨이 고개를 내저었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자기 목숨 하나 건사하는 데 바빠서…….”
[이해한다.]“아! 아! 국왕 폐하 부부의 안위를 묻는 걸 보니 왕자님들의 지원을 받고 오셨나 봅니다! 왕자님들은 지금 저희를 구하느라 벽을 부수고 계시겠지요? 역시 든든합니다! 우리 나라 만세!”
멋대로 생각하는 톨의 이야기에, 시몬은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사실 그들은 너희들의 죽음을 방치하고, 구원을 막고 있다고.
“생각해 보니 우리는 암흑연합의 소속국인데 지원이 너무 느리지 않습니까!”
갑자기 톨이 열을 올렸다.
“막대한 세금을 지불하고 있는데 아직도 연합의 도착군이 도착하지 않다니!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유감이다만.]시몬이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영지를 둘러싸고 있는 벽을 뚫은 네크로맨서는 나뿐이다.]“아.”
그가 멍한 얼굴로 입을 벌렸다.
절망적일 것이다. 기껏 버텨오고 있었는데 지원군이 하나뿐이라니.
“그렇다면 은인님만이 이 영지의 유일한 희망이군요!”
톨이 대뜸 손을 맞잡았다.
“은인님! 아니, 희망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하지 마라.]“이곳에서 살아가기만 한다면 죽을 때까지 대륙을 돌아다니며 희망님의 찬미가를 부르겠습니다! 목소리를 듣고 눈치채셨겠지만 제 직업은 음유시인인……!”
시몬이 등을 돌리자 그가 즉각 엎드리며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노옹담입니다!’ 하고 다급히 외쳤다.
“은거지는 바로 저깁니다!”
통로 앞에 괴물들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목책이나 암벽 잔해로 쌓은 바리케이드가 보인다. 시몬이 한 걸음 더 앞으로 다가가는 순간.
부르르—
시몬이 목에 매고 있던 왕가의 문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왔군.’
일이 생각보다 빨리 풀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회색벽 밖.
2왕자의 천막.
한 병사가 헐레벌떡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왕자님! 왕자님!”
천막 그물 침대에 팔자 좋게 누워 있던 2왕자가 인상을 팍 구겼다.
“또 뭐야? 안 그래도 그 자식 놓쳐서 기분 더러운데.”
“침입자가 왔습니다!”
“침입자? 배신의 군단장 정도가 아니면 그냥 무시하고 죽여 버려.”
“그, 그게…… 허억!”
병사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방금 ‘침입자’라고 말했던 당사자가 옆에 떡하니 서 있었다.
그자는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당신이 2왕자?”
침입자의 말에 2왕자가 인상을 팍 구겨다.
“뭐? 이 자식이 무엄하게. 너 뭐야?”
스륵.
이내 후드가 벗겨지며, 검은 머리카락이 어깨로 흘러내렸다.
침입자의 얼굴을 본 왕자가 ‘헛!’ 하는 소리를 내며 표정이 굳었다. 너무 놀라 그물 침대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다, 당신은……!”
붉은 안광을 번뜩이는 소녀가 차박차박 걸어와 왕자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제7군단장, 여기 왔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