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oning Genius of the Necromancer School RAW novel - chapter (992)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천재 992화
“평화로운 거래를 제안하마.”
결사와의 거래.
심지어 다른 영지를 침범한 주제에 평화를 운운하고 있다.
구역질이 난다.
그들과는 어떤 이유로도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몇 마디 짧은 대화만으로도 시몬은 강하게 느꼈다.
그러나 시몬의 침묵이 일련의 가능성으로 느껴졌던 걸까, 연구원이 입을 열었다.
“그래, 우리는 너희를 모른 척 눈감아주겠다.”
[…….]“너희가 여기 왔다는 것도, 사람들을 구출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곳의 구원자님께 보고하지 않겠다. 너는 네가 원하는 만큼 사람들을 데리고 떠나라.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들어왔다면 나갈 수도 있겠지.”
톨이 흠칫한 표정을 지으며 시몬을 바라보았다.
마을 사람 입장에서는 당장에 이 영지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제안이니 혹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배신의 군단, 너희가 중앙 연구소를 파괴하는 바람에 결사의 지식인들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연구를 진행할 장소가 부족하단 말이다! 여기가 얼마나 어렵게 구한 장소인데! 철저하게 외부와의 접촉과 변수를 통제한 완벽한 연구 장소다!”
연구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괜히 네놈들이 들쑤시면 연구도 망가져. 그러니 거래하자는 거야. 너는 생존자들을 데리고 나가 내부는 폐허가 됐다며 보고한 뒤 바깥의 인간들에게 찬양받으면 된다. 나는 연구를 성공시킨다. 서로에게 득이 될 뿐인…….”
[거래라는 건.]카가각—
시몬이 손에 쥔 파멸의 대검이 바닥에 불똥을 튀기며 앞으로 움직였다.
[양쪽의 이해관계가 성립됐을 때 하는 말이다.]“뭐?”
[생존자들을 구하는 건 나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너희들을 척결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고, 여기에 구원자까지 하나 줄일 기회를.]피어의 투구에서 횃불 같은 안광이 활활 타올랐다.
[왜 내가 포기해야 하지?]연구원의 얼굴이 해괴하게 일그러졌다.
“구원자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하는 소리냐! 군단 하나로는 절대……!”
[나와라.]시몬이 말하기 무섭게, 허공의 괴물이 입을 벌리듯 초대형 아공간이 벌어지더니, 그 안에서 군단의 언데드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캬아아아아아아악!
-키리리리리리!
순식간에 주위가 새까만 것들로 넘쳐 흐르게 됐다.
당황한 연구원이 뒷걸음질 쳤다.
“이, 이봐! 그만……!”
[전군.]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앞세웠다.
[돌격하라.]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시몬의 절대명령이 울려 퍼지고.
7군단의 언데드가 검은 해일이 되어 전면으로 쏟아졌다. 결사의 일원들이 다급히 무기를 치켜들었다.
“쏴! 쏴라!”
결사의 각종 기구로부터 탄환과 투사체가 쏟아졌지만, 몰려드는 언데드의 해일에 파묻힐 뿐이었다. 이내 공격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무기를 내팽개치며 도망쳤고.
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언데드들이 그들을 집어삼킨 채 나아갔다.
뒤에 남은 시몬이 말했다.
지시를 마친 시몬이 등을 돌렸다.
톨이 감격한 얼굴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제가 살면서 본 가장 멋지고 황홀한 장면이었습니다! 지금 이 감격을 악상으로……!”
[톨, 너도 일할 준비 해라.]시몬이 손짓하자 스켈레톤 하나가 분해되더니 톨의 몸에 착착 달라붙었다. 톨이 ‘오옷!’ 하는 소리를 내며 자신의 새로운 갑옷을 바라보았다.
“정말 멋집니다! 희망님! 힘이 넘쳐요!”
[이걸로 병사 하나 몫은 할 수 있겠지. 에르제?] [네, 네.]에르제베트가 다가와 톨의 몸을 거미줄로 휘리릭 묶은 뒤 짐짝처럼 짊어졌다.
[남은 생존자들을 모두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켜. 언데드들만 가면 따르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톨의 얼굴을 보이면 믿어줄 거야.] [알겠사와요!]이내 에르제베트가 톨을 짊어진 채 송장거미들과 함께 떠났다. 저 멀리 톨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힘내라고 응원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시몬이 고개를 돌렸다.
방금 아공간에서 무수한 언데드들이 쏟아져 돌진한 뒤 덩그러니 놓여 있는 한 명.
봉인 사슬에 구속당한 채 뚱한 얼굴로 앉아 있는 좀비집사였다.
[……나는 왜 데리고 온 겁니까.] [그야.]딸칵.
시몬이 피어의 두개골을 붙잡고, 후드처럼 위로 올려서 얼굴을 드러낸 채 빙긋 웃었다.
“혼자 남겨두면 서운해할 것 같으니까?”
[……괜한 짓입니다.]시몬이 저벅저벅 그에게 다가왔다. 이내 파멸의 대검을 쥐고 봉인 사슬에 정확히 대더니.
콰작!
사슬을 끊어버렸다. 묶고 있던 것들이 풀어지며 자유의 몸이 된 좀비집사가 당황한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이번 작전에서 넌 자유야.”
시몬이 파멸의 대검을 어깨에 짊어졌다.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해. 우릴 도와서 결사와 싸워도 좋고, 빈둥빈둥 시간만 보내도 좋고, 도망치다가 벽이 사라지면 아예 완전히 도망처도 돼.”
[무슨 속셈입니까!]좀비집사가 울컥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다고 내가 7군단에 합류할 것 같습니까?]“그것도 네 자유지.”
시몬이 등을 돌렸다.
“확실한 건, 결사를 완전히 끝장내기 전까지는 회색벽이 사라지지 않을 거란 사실이야. 그래도 협력하기 싫다면 그냥 지켜봐 줘. 7군단이 어떤 자들이고, 무엇을 추구하는지.”
시몬이 다시 피어의 투구를 눌러쓰고는 지면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네가 직접 판단해.]시몬의 몸이 고공으로 치솟았다가 순식간에 작은 점이 되어 저 멀리 사라졌다.
좀비집사는 우두커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
벨하이츠.
서쪽 주거지 하수도 앞.
“빨리빨리 움직여.”
지하 하수도에 숨어 있던 한 무리의 주민들이 결사에게 발각되어 끌려가고 있었다. 그들 모두 손목이 묶인 채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다.
“이제 끝이로군. 우리도-”
그들 중 한 명이 주위에 어슬렁거리는 괴물, 감염체를 보고는 파들파들 떨었다.
“저것처럼 되겠지.”
“그만해.”
이대로 결사의 실험체가 되든, 감염되든 어느 쪽이든 절망만이 기다리고 있는 운명이었다.
그런데.
크르르르—
캬아아악!
이변은 아무도 모르게 찾아왔다. 멀리서부터 바닥에 진동이 느껴지고 있었다.
감염체들이 코를 킁킁거리더니, 어딘가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움직이는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
갑자기 전면에서 시꺼먼 무리가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주민들이 당황한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가, 감염체가 저렇게 많이……!”
“잠깐! 저건 감염체가 아냐!”
포로들 중 한 남자가 그렇게 외쳤다.
“언데드다!”
“뭐? 언데드가 왜 여기에?”
주민들을 끌고 가던 결사의 일원들이 무기를 발사하며 저항했으나 언데드는 수가 너무 많았다. 결국 그들은 기겁한 소리를 내며 붙잡은 주민들을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우, 우리도 데려가!”
“온다아악!”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언데드 무리가 들이닥치며 주민들 모두 엎드리거나 제자리에서 머리를 감싼 채 쪼그려 앉았다. 가히 야생 소 떼가 들이닥치는 듯한 울림.
이내 소리가 멎어들고, 그들이 천천히 실눈을 떴다.
그렇게 많은 무리가 지나갔는데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주민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고, 지나간 언데드들이 도망치는 결사의 일원을 추격하거나 감염체와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툭툭—
그때 멍하니 지켜보던 주민의 어깨를 두들기는 손길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본 주민이 ‘우와악!’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 쳤다.
“어후, 깜짝이야!”
스켈레톤이었다.
스켈레톤이 ‘끼릭’ 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다가와 뭐라고 손짓했다.
“이 녀석, 무슨 소릴 하는 거지?”
끼릭!
못 알아먹는 인간이 답답하다는 듯 제 가슴을 친 스켈레톤의 몸이 허공에 분해되었다. 이내 그 주민의 몸에 ‘본 아머’ 상태로 착착 달라붙기 시작했다.
“우와악! 아악! 뭔진 모르겠지만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주민이 다급히 사과했지만 이미 스켈레톤이 ‘본 아머’로 몸의 통제권을 가져간 뒤였다. 스켈레톤이 주민을 데려가 무너진 건물 잔해의 날카로운 끝에 손목에 묶인 밧줄을 대게 하더니 여러 번 내려쳤다.
파삭!
이내 밧줄이 끊기며 주민 한 명이 자유의 몸이 되었고, 스켈레톤이 그제야 본 아머를 풀어주며 원래대로 돌아왔다.
다른 사람들도 한마디씩 했다.
풀려난 주민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운데,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스켈레톤의 팔뼈가 작은 손도끼 하나를 그에게 내밀었다.
“하하, 고, 고맙다! 이걸로 다들 구해주란 거지?”
그렇게 결사에게 붙잡힌 주민들이 하나둘 자유가 되었다.
그들은 이제야 안심하고 결사와 싸우는 언데드 무리를 바라보았다.
새까만 무리에 커다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안광이 불처럼 흐르는 두개골, 그 뒤로 보이는 하얀 대검까지.
주민들 중에 이걸 알아본 사람이 팔을 뻗었다.
“저렇게 대규모 언데드들이 깃발을 들고 다니는 경우는 군단뿐이야! 그리고 저 문양!”
그가 큰 소리로 외쳤다.
“배신의 군단이 결사를 처치하러 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사람들이 환호했다.
곳곳에서 살았다며 울부짖는 모습을 본 여성이 헛웃음을 쳤다.
“어우, 그래도 난 언데드는 징그러워서 좀.”
케르르륵!
그때 감염체가 골목에서 튀어나오자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스켈레톤들 뒤로 숨었다.
“뭐, 뭐 해요! 군단의 언데드님! 빨리 도와줘요!”
-달칵!
스켈레톤들이 무기를 들고 감염체들을 상대하러 걸어갔다.
***
감염체로 가득한 영지 벨하이츠에 순식간에 군단의 병력들이 쏟아지며 팽팽한 전투 양상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높은 저택 옥상, 기둥, 성곽 등에.
펄럭!
펄럭!
7군단의 깃발들이 드리워졌다. 고층에 숨어 있던 생존자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하나둘 창가로 얼굴을 내밀었다.
-군단! 7군단이 왔다!
-밖에서 군단장 중 한 명이 왔어요! 결사와 싸우고 있나 봐요! 살았어요!
그들의 등장이 지치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기 시작했다.
깃발을 든 언데드들이 우르르 쏟아져 감염체들을 제거하고 사람들을 구출했다.
“여기 생존자가 열 명 정도 있소! 구호상자가 필요하오!”
건물 시계탑 위에 숨어 있던 대머리 남자가, 군단의 송장거미에게 손짓 발짓 하며 설명하고 있었다. 송장거미가 ‘키릭?’ 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우뚱하자, 그가 다시 또박또박 말했다.
“구! 호! 상! 자! 아니, 참. 알아들을 리가 없지. 내가 언데드에게 무슨 말을…….”
[지금 언데드 무시하니?]쏴아아아아아아아!
눈코입 달린 지팡이가 시계탑에 나타났다. 그 위로 금빛 모래가 모여들며 모래로 이루어진 여성이 픽 웃었다.
“칠흑이 느껴지는 걸 보니 언데드인데? 어, 언데드가 말을 한다!”
[언데드가 말하는 거 처음 봐? 아무튼, 부하들에게 따로 명령을 내려둘게.]생존자에 대한 세부적인 소통은 각 에이션트 언데드들이 맡았다.
숨어 있던 사람들은 비로소 고개를 내밀고 상황을 주시했다. 곳곳에 군단의 깃발이 올라가고 있다. 깃발의 수가 벌써 도시의 절반을 차지했다.
군단이 밀어붙이고 있었다.
“힘내라! 7군단!”
“과거가 뭐 그리 중요하겠소? 우릴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주는 자가 있는데!”
“우리도 나가자!”
사람들도 감화되었다.
그나마 전력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패색이 짙어져 생존자들 사이에 숨어 있던 네크로맨서들도 나와서 감염체와 싸우기 시작했다.
시몬 한 명이 벽을 뚫고 들어오는 것으로 전세 자체가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
왕관을 바닥에 떨어뜨린 채, 밧줄에 묶여 있는 국왕도 창밖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몸은 곳곳이 고문으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손톱이고 발톱이고 온통 덜렁댔다. 눈 한쪽은 눈알이 뽑혀 있는지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설마 희망을 느끼는 건 아니겠지? 국왕.”
그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으로 보이는 결사의 일원이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배신의 군단장도 악취미네. 승산도 없는 전투를 벌여서 사람들에게 거짓된 희망을 심어주다니.”
이내 결사의 일원이 통신 수정구를 들고 말했다.
“구원자님, 보고드릴 사항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