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star From Age 0 RAW - Chapter (1058)
0살부터 슈퍼스타 1058화
서준은 차마 거기서 더 읽어 내려가지 못했다.
어느새 자신의 숨이 멈추었다는 것도, 종이를 들고 있는 손이 얕게 떨리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브라운블랙이 재결합하고 그들의 곡이 역주행해 음원차트 1위를 했다는 소식은 분명 기쁜 소식인데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후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왜, 왜지?’
[화]는 표절을 당했다. [화]의 선발대가 이때 강원도로 갈 수 있었던 건 최태우가 그걸 밝혀냈기 때문이 아닌가.‘여긴 태우 형이 없을 텐데.’
그러니 [화]를 표절했던 오성태의 문제로 촬영이 미뤄졌어야 했다.
마치 현실에서 도피하듯 이어지던 서준의 생각이 어느 순간 멈추었다.
‘아…….’
첫 생의 세계에는 최태우도 없지만 코코아엔터도 없었다.
[화]의 표절작인 [무명 화가]를 발견할 회사가 없었던 거였다.빛나는 돌멩이를 봐도 그게 다이아몬드인 줄 모르고 아무도 원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는 것처럼, 오성태가 여기저기 뿌렸을 [무명 화가]의 작품성을 알아보고 제작하자고 말하는 제작사가 없었을 터였다.
그러니 오성태도 굳이 [무명 화가]가 자신의 작품이라고 주장하지 않은 거다.
얻어걸리면 좋은 거고 아니어도 상관없었을 테니까.
그 때문에 황지윤은 자신의 작품이 표절당했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아무런 방해 없이 [화]의 촬영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거였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터널과 마주하게 된 것이었다.
서준은 눈 위를 덮고 있던 손으로 얼굴을 훑어내려 입가를 매만졌다. 얕게 떨리는 손처럼 서준이 내뱉은 숨도 작게 떨렸다.
서준은 당시 처참했던 뉴스를 기억했다.
하늘을 가득 채우던 새까만 연기와 뜨거워 보이던 불꽃과 원래의 모습을 잃고 검게 타버린 차들을 기억했다.
그리고 서준의 능력이, 기적이 없었다면 사망자가 생겼을 거라는 사실도 떠올렸다.
그런데 거기에, 그 터널 안에.
도윤이 형이, 지윤이 누나가, 우진이 형이, 첫 생이, [화] 선발대가 있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해졌다.
서준은 울렁이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면서 이 페이지를 계속 읽어나갈지 말지 고민했다.
다행히도 아무도 크게 다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불행히도 최악의 상황이 일어났을 수도 있었다.
안심하고 싶어서 읽고 싶으면서도, 확인하는 게 두려워 읽고 싶지 않았다.
“……이건 사라진 과거일 뿐이야.”
서준의 세계에서 ‘첫 생’은 ‘한준서’가 되었고, 황지윤과 황도윤, [화] 선발대는 모두 무사했다.
‘첫 생의 세계’가 사라진 과거의 세계일지, 평행세계일지는 모르지만, ‘현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지인들을 보며 서준은 최대한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었다.
그들의 또 다른 삶이 부디 행복하기를 빌었는데.
서준은 입술을 꾹 다물고 무거워진 마음을 다잡고 마지막으로 읽었던 문장, 그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터널은 지금까지 지나친 다른 터널보다 어두웠다.
전등이 켜져 있을 텐데, 왜 이렇게 어둡지? 하고 한준서가 생각할 때.
“어?!”
운전석에 앉아 있던 황도윤의 경악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왜 그러냐고 묻기도 전에 타고 있던 차가 옆으로 휘청이는 것이 느껴졌다.
무언가에 타이어라도 터졌는지 휘청이는 앞차에 황도윤이 반사적으로 핸들을 돌린 것이었다.
“무슨……!?”
“도윤아!”
“앞에 사고……!”
크게 흔들리는 차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화] 선발대의 혼란이 가득한 목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쿵! 콰앙!
그러나 그건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묻혀 버렸다. 차들이 서로 부딪치고 벽에 들이박고 끝내 균형을 잡지 못해 옆으로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에서는 폭발음 같은 소리도 들려왔다.
생각은 이어지지 못했다.
쿵!
뒤에서 전해져 오는 충격에 비명도 지르지 못한 [화] 선발대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안전벨트를 하지 않았더라면 튕겨져 나갔을 터였다.
–!!
차 뒷부분이 찌그러지는 충격에 차량의 유리창도 일부분 깨져 나갔다. 한준서가 얼른 옆자리에 앉은 미술팀 팀원을 감쌌다.
쿵!
하고 다시 충격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앞에서 느껴졌다.
아니, 옆인가.
어지러운 시야와 점점 둔해지는 감각에 어디서 느껴지는 충격인지 한준서는 알 수 없었다. 몇 번이나 충격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흐릿한 시야로 정신을 잃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화] 팀 선발대의 모습이 보였다. 시뻘건 불꽃과 새까만 연기가 차를 잡아먹기 위해 다가오는 것도 보였다.
“……윤아……얘들아…….”
힘겹게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은 남매와 [화] 팀 선발대 아이들을 불러보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입을 벙긋거리던 한준서도 곧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한준서가 천천히 눈을 떴다.
중학생 때 오래도록 봤던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피와 약품과 탄내가 뒤섞인 냄새도 흐릿하게 느껴졌다.
병원이다.
!!
한준서가 벌떡 몸을 일으키려다가 아파 오는 왼팔을 붙잡았다. 아무래도 이쪽을 크게 다친 것 같았다. 다리는 괜찮은 것 같았다.
“준서 오빠!”
같은 차량에 타고 있던 미술팀 팀원이 눈물이 가득한 목소리로 깨어난 한준서를 불렀다.
한준서가 얼른 미술팀 팀원을 살펴보았다. 찰과상은 있지만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물론 교통사고는 겉에 보이는 것보다 후유증이 더 심할 때가 있긴 하지만.
“괜찮아? 다친 곳은?”
“전 괜찮아요. 오빠가 보호해 주셔서 다친 곳은 없어요.”
“다른 애들은?”
“옆에 있어요. 아직 정신은 못 차렸어요.”
커튼을 걷으니 치료를 받은 무대미술과 두 명이 기절한 듯 잠들어 있는 게 보였다.
그 모습에 안도한 것도 잠시, 한준서의 심장이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
다섯 중 둘밖에 없었다.
“도윤이랑, 지윤이는? ……우진이는?”
눈이 마주친 미술팀 팀원이 방울방울 눈물을 흘렸다.
선발대 중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미술팀 팀원은 소방관과 의사가 전해주는 나쁜 소식들을 들으면서도 정신줄을 붙잡아야 했다. 서울에 있는 팀원들과 가족들에게 알려줘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몇 번이고 했던 일이었지만 할 때마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우진 오빠는 지금 수술받고 있어요.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한준서는 질끈 눈을 감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중략)
강원도 병원 장례식장에서 터널 사고 단체 장례식이 열렸다.
소중한 부모를 잃은 자식들과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처참하고 한스러운 울음소리가 장례식장과 병원을 가득 채웠다.
“도윤아! 지윤아!”
“……우리 애들이 왜…….”
거기엔 소식을 듣고 강원도로 달려온 황도윤, 황지윤 남매의 가족들도 있었다.
촬영 간다고 즐겁게 집을 나섰던 자식들이 주검이 되어 돌아오다니.
그들은 병원에 도착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눈물을 그치질 못했다. 슬픔과 절망을 견디지 못해 몇 번이고 바닥에 주저앉기도 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에 비할까 싶지만, 한준서와 [화] 팀(소식을 듣자마자 강원도에 왔다.)도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지윤아…….”
“도윤이 형…….”
새하얀 국화꽃들과 함께 터널 사고로 사망한 사람들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었는데, 거기에 환하게 웃고 있는 황도윤과 황지윤의 사진도 있었다.
왜 남매의 사진이 저기에 있는 건지 모르겠다.
금방이라도 이번 촬영은 어떻게 할 것인지 이야기할 것만 같은데, 언제나처럼 남매끼리 투닥거릴 것 같은데.
며칠이 지났음에도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이제 겨우 대학생.
누군가의, 친구의 죽음을 알기엔 어린 나이였다.
“……우진이 형은요?”
“오늘 일반실로 이동한대. 아직 소식은 못 전했어.”
상태가 좋지 않아 긴급수술을 받고 중환자실로 이동한 박우진은 다행히도 오늘 일반병실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회복에 영향을 줄까 봐 황도윤과 황지윤이 사망했다는 소식은 전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장례식이 끝나기 전에는 말해줘야겠지.”
“…….”
다들 박우진이 무사하다는 소식에 안도하면서도 이제는 보지 못할 황도윤과 황지윤이 떠올라 기뻐하지 못했다.
“……많이 아팠을까?”
황지윤의 절친, 김세연의 말에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
뉴스로 나왔던 사고 현장의 영상과 사진들을 보니, 차라리 큰 아픔 없이 갔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와준 중년 배우 김성식과 정은미가 아이들을 토닥여주었다. 한준서도 아이들을 위로해 주다가 나와 복도에 있는 의자에 앉아 숨을 내쉬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어떻게 했어야 모두 무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었지만,
“손녀가 보내준 여행인데…….”
“아이고…….”
[화] 팀 차량에 가장 큰 충격을 줬던 관광버스 세 대에서도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그 터널에 있던 모두가 마음과 몸을 다쳤다.“남매도 죽었다지?”
“운전석에 오빠가 앉았었는데, 조수석에 앉은 동생을 보호하려고 했대. ……결국 둘 다…….”
현장에 남은 흔적은 황도윤이 황지윤과 [화] 선발대를 보호하기 위해 애썼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언제나 유쾌하게 웃던 황도윤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멈췄던 눈물이 다시 날 것 같으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도윤이 형이랑 지윤이 누나가…….”
죽었다니.
내뱉고 싶지 않은 말을 삼킨 서준의 입술이 잘게 떨렸다.
각오하고 있었지만,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밀려오는 슬픔에 목이 메었다.
[화] 촬영 때부터 6년이 지난 지금의 황도윤과 황지윤을 알고 있어서, 남매가 얼마나 멋지고 행복하게 미래를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밝은 두 사람의 얼굴과 장례식장의 풍경이 떠올라 서준은 눈을 질끈 감았다.
책으로 읽은 간접적인 죽음이긴 하지만, 지인들의 죽음이었다. 서준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내리누르며 되뇌었다.
이건 ‘현실’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랬듯 [첫 생의 책]에 너무 몰입하지 않게,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충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복도를 스쳐 지나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복도 의자에 앉아 바닥만 쳐다보며 눈물을 참고 있던 한준서가 고개를 들었다.
‘……병실에 갔다 와야겠다.’
자신의 사고 소식을 듣고 강원도까지 달려온 외할아버지가 병실에 계셨다. 얼마나 놀라셨을지. 중학생 때 다리를 다친 이후로 항상 손자의 안전만 걱정하던 분이신데.
안 그래도 좋지 않은 건강이 더 나빠질까 걱정됐다.
후우, 한숨을 내쉰 한준서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중 눈에 띄지 않던 작은 빈소에서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상주로 보이는 남자가 초췌한 얼굴로 나와 조문객들과 인사를 하고 들어갔다. 조문객들이 안쓰러운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아니, 왜 아무도 발견을 못 했대요.”
“다들 그냥 앉아 있는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 조금만 일찍 발견했어도 아기랑 엄마 둘 다 살았을 거라고 하던데.”
“그때 터널 사고가 일어나서 다들 정신이 없었잖아.”
“남편은 어떻게 해요. 아내랑 아기 둘 다 저렇게 가서…….”
인터넷 기사로 읽었던 것 같기도 하다.
터널 사고가 난 근처에서 임산부가 벤치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되었다는 걸.
자신이 그 임산부를 봤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한준서는 마음속으로 명복을 빌며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