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star From Age 0 RAW - Chapter (1063)
0살부터 슈퍼스타 1063화
거대한 흰늑대가 서준과 가까워지자 천천히 속도를 늦추었다. 새하얀 털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서준은 반가운 마음에 앞으로 두어 걸음 나아갔다.
“대장!”
“오랜만이구나, 서준아.”
하고 말하는 흰늑대의 붉은 눈동자가 아기 때와 다름없이 다정했다. 표정 또한 늑대의 그것임에도 부드럽게 웃고 있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에 서준은 아기 때 사라진 이후 영영 보지 못했던, 그리고 앞으로도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흰늑대에게로 다가가 이내 꽉 껴안았다. 부드러운 털과 뜨거운 체온이 느껴졌다.
“옛날에도 엄청 크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엄청 크네.”
폭신한 흰털에 얼굴과 상체를 파묻었던 서준이 고개를 들고 하하 웃으며 말했다. 반가운 만남에, 애니멀 테라피까지 받으니 조금 지쳤던 마음과 몸이 회복되는 것 같았다.
“서준이 넌 많이 컸고.”
흰늑대는 무리의 대장답게 서준의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바닥을 굴러다니던 동글동글한 아기는 어느새 훌쩍 자라 인간 어른이 되어 있었다. 물론 아기 때 얼굴이 조금 남아 있는 게 보였지만.
건강하고 바르게 자란 것 같아 무리의 대장으로서 흐뭇해졌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구나.”
“응, 잘 지냈어. 좋은 사람들과 만나서 무리도 만들고.”
문득, 어쩌면 ‘흰늑대의 무리’라는 개념 때문에 ‘이서준 사단’이라는 말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고 싶은 것도 실컷 했고. 뭐,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지긴 했지만.”
볼을 긁적이면서 말하는 서준에 흰늑대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서준이 네가 죽기에는 너무 이르지.”
그래서 흰늑대가 깨어난 것이었다.
흰늑대의 환생이자 ‘그’의 마지막 생이 될 ‘이서준’을 도와주기 위해.
“이야기 들었어, 대장?”
서준의 물음에 흰늑대가 대답했다.
“그래. 깨어나면서 대충이나마 알게 되었지.”
어떤 전생의 안배인지, 생의 도서관의 도움인지.
깨어난 전생들은 최상급 전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그보다는 적은 정보로 대충이나마 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깨어난다는 게 무슨 의미야?”
아까부터 궁금해했던 ‘깨어난다’는 것에 대해 묻자 파르비타가 대답했다.
“보이는 대로 삶의 책이 실체화하는 거야.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다시 몸을 갖게 되는 거지. 힘과 능력도 살아 있을 때랑 똑같으면 좋았겠지만, 아무래도 생의 도서관의 힘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그건 저쪽도 똑같죠.”
리치왕이 말을 이었다.
“첫 번째 집필대의 책을 마음대로 바꾸고, 두 번째 집필대를 만들고, 이런 대규모 환상마법까지 사용했으니, 무한환생의 힘도 많이 줄었을 겁니다.”
“무한환생이 조종하는 전생들도 그렇게 강하지는 않을 거야.”
“그래도 우리보다 강할걸. 양도 많고.”
기록석의 덧붙임에 제루엘이 재를 뿌렸다.
자신을 바라보는 서준과 전생들에 제루엘이 ‘왜?’ 하고 어깨를 으쓱였다.
“전쟁은 상황 파악이 제일 중요해.”
“틀린 말은 아니군.”
천마도 입꼬리를 조금 올리며 동의했다. 어쩐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파르비타가 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서준. 우리가 알고 있는 건 여기까지야. 최선을 다했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거지만, 여전히 우리보다 무한환생의 힘이 더 강해서 이길 수 있을 거라고는 확신할 수 없어.”
그 솔직함과 미안함이 담긴 말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 전쟁에서 이길지 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지?”
파르비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정해지지 않은 미래야.”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기다리고 있을, 그리운 사람들을 위해서도.
도와주는, 고마운 전생들을 위해서도.
“나도 살아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게.”
그런 서준의 모습에 흰늑대가 잘 큰 자식을 바라보듯 흐뭇하게 웃었다.
“자, 그럼 이제 출발하자!”
파르비타가 말하자, 흰늑대가 몸을 낮추어 서준에게 등을 내주었다.
서준이 걷고 뛰는 것보다는 흰늑대가 달리는 것이 더 빠를 터였다.
“고마워, 대장.”
“별말씀을.”
현실에서 제법 승마를 해봤지만 거대한 늑대의 등에 올라타는 건 또 다른 느낌이었다.
서준은 흰늑대가 눈보라처럼 달리던 모습을 떠올리며, 떨어지지 않으려면 흰털들을 꽉 잡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대한 안 아프게 잡을게.”
흰늑대가 하하 웃었다.
다 자란 서준이 힘껏 매달려 봤자 아기 때 등을 타고 오르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 정도는 괜찮아. 떨어지지 않게 꽉 잡으렴.”
파르비타가 포르르 날아와 덧붙였다.
“떨어질 것 같으면 리치왕이 마법을 쓰면 돼.”
“네. 잠깐만요.”
파르비타의 말에 리치왕이 스태프를 휘둘러 서준이 흰늑대에 안정적으로 앉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책과 집필대에도 마법을 걸겠습니다.”
“책하고 집필대에도?”
고개를 갸웃하는 서준에 리치왕이 설명했다.
“들고 다니기 힘들잖습니까. 또 집필대도 저렇게 날아다니면 언제 화살을 맞아 망가질지도 모르고요.”
아.
확실히 날아다니는 집필대는 좋은 목표물이기는 했다. 계속 손에 들고 있던 [이서준의 책]도 이리저리 행동하기엔 힘들었고.
“그럼 부탁할게.”
서준의 말에 리치왕이 다시 한번 마법을 쓰자 [이서준의 책]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 움직임에 책이 살짝 벌어졌는데, 거기에서 종이 한 장이 떨어져 나와 허공을 맴돌았다.
“?!”
깜짝 놀란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책이긴 하지만 저게 바로 서준의 목숨과 기억 그 자체가 아니던가.
“설마…… 찢어진 거야?”
“아, 그걸 설명 안 했네.”
크게 흔들리는 검은색 눈동자게 파르비타가 아차, 하며 설명했다.
“아까 화살이 네 볼을 스쳤잖아.”
서준이 손을 들어 볼을 매만졌다.
“그러고 보니 상처가 없어. ……피도 안 났고.”
“여기 존재하는 네 몸이 실체가 아니니까 그런 거야. 삶의 책이 충격을 받는 거지. 페이지가 찢어진 것도 화살이 충격을 줬기 때문이고. 앞으로도 다치면 그 충격은 전부 삶의 책이 받을 거야.”
파르비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많이 다치면 안 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리거든. 그럼 현실로 돌아가는 시간이 더욱 늦어질 거야. 그리고…… 삶의 책이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서도 안 돼. 생의 도서관의 힘이 많이 남아 있지 않거든.”
그에 서준 또한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페이지가 찢어지면 기억에도 영향을 끼치니까, 한 페이지라도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해.”
파르비타의 말에 서준이 놀란 얼굴로 얼른 손을 뻗어 허공에 떠 있는 페이지를 잡았다.
【P.147】
공익 영상 [한 걸음]을 찍을 당시 김한석과 김주경과 만났던 일이 적혀 있었는데,
“기억이 안 나……”
파르비타의 말대로 기억이 나질 않았다.
【P.147】이후 김한석, 김주경과의 인연과 추억은 선명한데, 머릿속에는 남아 있지 않은 첫 만남에 서준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첫 생의 책]을 보고 배우가 되겠다고 다짐하던 그날의 기억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남아있는 기억들이 계속 배우를 하고 싶게 할까.
아니면, 흥미를 잃고 연기를 그만둘까.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이 새삼 무서워졌다.
“그럼 그것도 조치를 취하는 게 좋겠군요.”
그말에 서준이 얼른 허공에 떠 있는 리치왕을 바라보았다.
“! 할 수 있어, 리치왕?”
“당연하죠.”
커다란 로브의 모자를 쓰고 있어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초록색 눈동자는 리치왕이 미소 짓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한낱 스켈레톤으로 태어나, 마법의 끝을 본 게 바로 리치왕이 아닌가.
그런 마법쯤이야 간단했다.
리치왕이 제 키보다 큰 스태프를 휘둘렀다.
그러자 허공에 떠 있던 [이서준의 책]과 두 번째 집필대, 그리고 서준이 들고 있던【P.147】가 빛나더니 마치 실타래의 실처럼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실들은 곧 서준의 목으로 향해 날아가 빙빙 감쌌다.
마치 초커처럼 서준의 목에 마법진이 새겨졌다.
“페이지가 찢어져도 곧바로 마법진 안으로 들어갈 겁니다.”
“정말 고마워, 리치왕.”
목을 매만지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서준에 리치왕이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까지 끝낸 서준 일행은 출발했다.
아니, 출발하려고 했다.
—-!!!
땅바닥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흑백의 몬스터만 아니었다면.
땅울림 소리와 함께 들판에 거대한 구멍을 만들어내며 등장한 흑백의 몬스터는 마치 거대한 지렁이처럼 길쭉했다. 하지만 말랑한 지렁이와는 달리 겉이 매우 딱딱해 보이는 데다가 입도 매우 컸다.
게다가 그 몸뚱어리에서는 알 수 없는 끈적한 액체가 뚝뚝 흘러나왔는데, 그 액체들이 물처럼 땅에 흡수되자 단단하던 땅이 마치 액체처럼 변했다. 그리고 몬스터 쪽을 향해 흘러가기 시작했다. 마치 빨려 들어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늪 같았다.
흰늑대가 그 늪과 몬스터를 피해 뒤로 얼마쯤 물러났다.
그 등에 타고 있던 서준이 감탄과 탄식이 섞인 표정으로 눈앞의 거대한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저것도…… 나지?”
저 몬스터도 전생의 ‘그’였다.
“그리고 우리이기도 하지.”
파르비타가 키득키득 웃었다.
“선의 도서관 출신이려나, 악의 도서관 출신이려나.”
제루엘의 말에, 서준은 딱 봐도 악의 도서관 출신이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외형만으로 판단하면 안 되겠지만 말이다.
“그냥 비켜줄 것 같지는 않은데…….”
하고 말하자마자 흑백의 몬스터가 흙과 액체가 섞인 동그란 덩어리들을 마치 총알처럼 쏘아댔다. 말이 총알이지 크기는 바위나 다름없었다.
쿵! 쿠웅!!
흰늑대가 바람처럼 빠르고 가뿐하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바위들을 피했다. 싸워서 이길 자신은 있었지만, 등에 서준이 타고 있어 피하기만 했다.
서준은 이리저리 흔들리는 몸에 흰털을 꽉 붙잡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리치왕의 마법이 없었다면 떨어졌을 게 분명했다.
공격을 피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지금도 [한준서의 책]은 완성되고 있었다. 남은 시간이 점점 줄어가고 있었다.
빨리 빠져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판단한 서준이 ‘대장!’ 하고 부르려던 때.
쉬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몬스터의 고통 섞인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진흙 덩어리도 더이상 떨어지지 않았다.
서준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몬스터의 몸체에는 구멍이 나 있었는데, 거기에서 피나 액체 대신 종이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전생들 또한 대미지를 받을 때마다 피 대신 자신의 책의 페이지가 찢어지는 것 같았다.
서준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흰늑대와 서준이 있는 곳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
거기에 몬스터를 공격한 존재가 있었다.
상체는 인간, 하체는 말인 켄타우루스, 천마.
천마는 손에 활을 들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 활로 저 거대한 몬스터를 쏜 것 같은데, 위력이 어마어마했다.
과연.
[(악)천마의 만병지왕]다웠다.“……커졌네?”
하지만 서준은 그것보다도 크기가 커진 천마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한 뼘만 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보통의 말보다도 큰 켄타우루스가 거기에 서 있었다. 아마도 살아생전 장인들이 손수 만든 듯한 무기들도 허리춤에 매달고.
다그닥다그닥.
땅과 말굽이 부딪히는 소리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이제 힘을 아낄 이유가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천마의 목소리도 한 뼘 크기일 때보다 진중하고 무거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즐거워 보이기도 했다.
“여긴 내가 맡지.”
“같이 안 가고?”
“미밍?”
아직 한 뼘 크기인 파르비타와 미밍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준도 같은 표정이었다.
“애초부터 내 목적은 여기였다.”
천마가 삐죽 웃으며 화살통에서 화살 하나를 꺼내 다시 몬스터를 향해 쏘았다. 여유가 가득한 장난 같은 움직임이었지만, 효과는 대단했다.
—-!!
거대한 몬스터의 몸체에 또 하나의 구멍이 생겨난 것이었다.
“목적이 여기라니?”
와아, 하고 감탄하던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내 환생체인 널 돕겠다는 마음도 아예 없던 건 아니었지만, 본래의 목적은 아니었다는 거지.”
천마가 입꼬리를 올렸다.
오늘 중 가장 기분이 좋아 보였다.
“강한 존재와 싸우는 것.”
즐거운 기색이 역력한 천마가 다시 화살을 쏘았다.
왠지 단번에 죽일 수도 있는데도, 마치 만찬의 시작인 애피타이저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애피타이저도 아니고 가볍게 목을 축이는 느낌일까.
“오직 그것만이 본좌가 존재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