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star From Age 0 RAW - Chapter (1066)
0살부터 슈퍼스타 1066화
-!–!-!
처음 맞부딪힘을 시작으로 몇 번인지 모를 공방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제자리에서 무기만 움직이는 듯하더니, 어느새 날개를 활짝 펼쳐서 드넓은 하늘을 날아다니며 서로를 공격하는 제루엘과 마신은 언뜻 보면 하얀색 번개와 검은색 번개가 부딪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쾅-!
도저히 검과 창이 부딪혀 생겨난 소리라고는 할 수 없는 커다란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대기를 뒤흔드는 충격이 느껴졌다.
“!”
그 충격은 땅 위에서 제루엘과 마신을 올려다보고 있던 서준 일행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땅 속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있던 나무들이 휘청거릴 정도의 바람이 밀려온 탓에 서준의 옷자락과 머리카락, 흰늑대의 털이 마구잡이로 휘날렸고, 공중에 떠 있던 한 뼘만 한 전생들도 저 멀리 날아갈 뻔했다.
—!
제루엘과 마신이 피한 검과 창의 파동이 두꺼운 나무기둥들을 베어냈다. 쿵! 쿵! 하고 나무들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나뭇잎이 풍성하던 나뭇가지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 근처에서 싸우고 있던 몬스터들이 화들짝 놀라 빠르게 그곳에서 벗어났다.
“우리도 가자!”
시끄럽고 어지러운 가운데, 파르비타가 외쳤다.
이제 막 시작한 전투의 여파가 이 정도인데, 더 오래 있다가는 위험할 것 같았다.
괜히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다는 속담이 있는 게 아니었다.
리치왕이 만든 마법실드가 충격파를 막아내고 서준을 등에 태운 흰늑대가 앞으로 달려나갔다. 일단 여기서 벗어나야 했기 때문에 방향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길 잠시.
눈보라를 닮은 흰늑대의 달리기는 아주 빨라 금세 싸움 지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눈먼 공격을 피하고(리치왕이 실드마법을 걸어주었지만) 공기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흰늑대의 등에 몸을 파묻고 있던 서준이 상체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뒤를 바라보았다.
콰아아앙!
서준 일행이 벗어난 것을 알았는지, 제루엘의 공격이 한층 더 강해져 마신에게로 쏟아졌다.
쾅! 쾅! 쾅! 쾅!
마신도 마찬가지였다.
검은 번개가 사방에서 내려치듯 인정사정없이 제루엘에게 검격을 날려댔다.
“진짜 재앙이 따로 없네.”
요리와 상업의 신으로 제법 평화롭게 살아온 파르비타가 질린 듯한 표정으로 그 전투를 바라보았다.
그 아래에 있던 나무로 가득한 숲은 어느새 땅바닥을 드러내고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그러게.”
서준 또한 상상 이상의 전투에 탄식하다 문득 든 생각에 입을 열었다.
“저 둘, 살아 있을 때도 계속 저렇게 싸웠겠지?”
[제루엘의 책]을 통해, 글로만 읽었던 수백 년 동안 이어졌던 천계와 마계의 전쟁이 이런 식이었다면, 그 세계는 진짜 멀쩡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았다.“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이런 싸움에 익숙한 리치왕이 가볍게 수긍하자, 평화롭게 살아온 기록석이 침음성을 흘렸다.
“동맹을 맺은 이유를 알겠어.”
그러게나 말이다.
점괘도 숙적이라고 표현할 정도인데, 동맹을 맺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쾅!!!
순백의 번개와 칠흑의 번개가 다시 한번 맞부딪혔다.
“저긴 제루엘에게 맡기고 우리도 출발하자.”
“그래.”
파르비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서준이 제루엘의 무사를 빌며 앞을 바라보았다.
서준을 태운 흰늑대의 앞에 나침반이 생겨났다.
“이쪽이야.”
다시 흰늑대가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 이길 수 있을까?”
최상급들의 싸움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최상급은 파르비타와 기록석, 리치왕뿐.
물론 미밍도 있었지만, 얘가 제루엘과 마신 같은 전투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 최상급 적이 넷만 나타나도 서준은 그대로 발목이 붙잡히고 만다.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괜찮을 거야. 무한환생도 이것저것 힘을 많이 써서 최상급 전생을 많이 꺼내서 조종하는 건 힘들 테니까.”
파르비타가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서준. 누군가가 조종하는 병사와 자아를 가진 병사가 싸울 때는 십 중 십으로 자아를 가진 병사가 이깁니다. 그래서 네크로맨서들이 영혼을 얻으려고 노력하고는 하죠. 저도 그렇고요.”
하고, 누군가를 조종하는 것에서는 그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는 전문가, 리치왕이 덧붙였다.
리치왕의 이야기를 증명하듯, 저기쯤에서 싸우는 데스나이트가 보였다.
[(악)데스나이트의 기사도(중급)]의 주인인 데스나이트. [쉐도우맨3] 당시 서준이 ‘빌런 진 나트라’가 되기 위해 사용했던 능력이 거기에 서서 날카롭고 무시무시한 검을 휘두르자, 중급으로 보이는 흑백의 몬스터들이 종이가 되어 하늘로 날아가다 사라졌다.“그리고 우리에게는 특별한 힘도 있어. 우리도 예상하지 못한.”
“특별한 힘?”
하고 되묻는 서준의 귀로 어쩐지 익숙하지만 여기서는 들려올 리가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는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다들 조심하렴. 이제 들판이란다.”
흰늑대가 말했다.
나무 사이로 몸을 숨겨 습격할 수도 있는 숲도 위험했지만 가리는 것 하나 없이 사방이 탁 트여 있는 들판도 위험했다.
서준은 한껏 긴장도를 높이면서도 들려오는 소리에서 신경을 끊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건,
“피아노?”
피아노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잘못 들었나?’
하고 서준이 생각함과 동시에 흰늑대가 숲을 벗어났다.
드넓은 들판이 보였다. 그 위에서 싸우고 있는 흑백과 색색의 몬스터들도.
격렬한 싸움이라는 걸 보여주듯 새하얀 종이들이 날아다녔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 하늘에서 흰늑대 쪽으로 떨어지는 몬스터들이 보였다. 거대한 흑백의 와이번이나 불사조, 하피, 강철새 등 비행몬스터들이었다.
쉐에엑-!
날카로운 와이번과 강철새의 발톱이 흰늑대 위에 있던 서준을 노렸다. 흰늑대가 피하려고 몸을 움찔하고 리치왕이 스태프를 휘두르려던 순간.
♪-!
착각이 아니라는 듯 선명한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어디선가 날아온 오선지 속 음표들이 비행 몬스터들을 공격했다. 제대로 맞은 와이번이 하늘에서 비틀거렸다.
그러나 공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
피아노.
♩♬–!
트럼펫.
♬♬-♪-
바이올린.
♩-♪♪-
바순, 더블베이스, 비올라, 첼로, 하프, 심벌즈, 플루트, 클라리넷, 오보에…….
쏟아지는 공격과 함께 악기들의 선율도 하나씩 늘어갔다.
그러면서도 온전한 하나의 연주처럼 들려왔다.
그 아름다운 선율들은 마치,
오케스트라 같았다.
“!”
무언가를 직감한 서준이 놀라 음표가 날아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전쟁터와는 어울리지 않는 정장을 입은, 그러나 가장 전쟁터에 익숙할 존재가 거기에 서 있었다.
마왕으로 살았던 전생을 잊지 못하고 그 영향을 그대로 이어받아 평화로운 세계 하나를 통째로 파괴하려고 했던, 그러나 바이올린의 요정에 의해 실패한,
“지휘봉의 요정……?”
전 마왕 현 요정이 서준의 눈앞에 있었다.
그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흥, 하고 코웃음 친 지휘봉의 요정이 마치 무대 위에 선 지휘자처럼 손에 든 지휘봉을 움직였다.
휘익-
그러자 음표와 오선지가 마법처럼 튀어나오며 악기들의 연주가 들려왔다.
—-!!
하늘을 날고 있던 마지막 비행 몬스터가 사라짐과 동시에, 마침내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끝났다.
지휘봉의 요정은 뒤도 안 돌아보고 다른 몬스터들을 처리하기 위해 떠났다.
발걸음이 아주 가벼웠다.
음악의 세계가 얼마나 평화로웠는지 없던 두드러기까지 생길 것 같았는데, 죽고 난 후에 이렇게 전쟁터의 냄새를 맡게 되어서 얼마나 즐거운지 몰랐다.
‘그러니 한시도 쉬지 않고 즐겨야지.’
마지막 생(이서준)이 끝을 볼 때까지.
마지막 생이 성공해서 살아남든 실패해서 죽든 지휘봉의 요정과는 상관없었다.
흠- 흠-
저도 모르게 나온 콧노래에 지휘봉의 요정이 질색하며, 화풀이로 저 멀리 있는 흑백의 몬스터에게 지휘봉을 휘둘렀다.
♬–!
‘빌어먹을.’
공격할 때마다 연주가 흘러나오는 건 진짜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건 태생이 그런 것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이를 갈면서도 지휘봉의 요정은 거침없이 지휘봉을 휘둘렀다.
지휘봉의 요정은 더 오래 더 많이 죽음을, 전투를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마지막 생을 도와주었다.
아군이 죽든 적군이 죽든 신경 쓰지 않았지만, 적이 강한 지금 아군이 줄어들면 전쟁도 그만큼 짧아지니까.
“지휘봉의 요정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서준은 아쉬운 듯 아닌 듯한 묘한 기분으로 멀어지는 지휘봉의 요정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일단 선의 도서관 출신이긴 한데, 그건 원래 악의 도서관에 가려던 능력을 정령의 나무가 등급 하락까지 각오하면서 억지로 붙잡았던 거였으니까.
“날 도와준 건…….”
“천마랑 비슷한 이유이지 않을까.”
기록석의 말에 파르비타와 미밍, 리치왕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생각을 했던 서준도 그냥 웃고 말았다. 어떤 의도였든 도와준 건 고마웠다.
“쟤가 바로 내가 말한 특별한 힘이야.”
다시 진법의 핵을 찾아 달리기 시작하는 흰늑대 위에서 파르비타가 서준에게 말했다.
특별한 힘.
그에 서준은 지휘봉의 요정의 무엇이 특별한지 생각했다.
원래는 악의 도서관에 갈 뻔했다는 거? 음악덕후 정령의 나무와 관련된 거? 최상급 능력이었지만 최하급까지 떨어진 거? 미련을 못 버린 정령의 나무 때문에 다시 중상급까지 등급이 상승했다는 거?
서준의 눈이 커졌다.
“……설마 등급 상승?”
“맞아!”
파르비타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땐 그런 거 전혀 없었거든!”
“맞습니다. 그런 게 있다는 걸 알았다면 새로운 연구를 해봤을 텐데 말이죠.”
“물론 그것도 네가 배우로서 더 성공하길 바라는 무한환생이 영향을 끼친 게 아닌가 싶지만 말이야.”
“미밍!”
리치왕과 기록석, 미밍도 덧붙였다.
파르비타가 신나게 떠들었다.
“원래 우리가 생각해놓은 계획에서는 등급 상승이라는 건 없었단 말이야. 그러니까 아까 그 지휘봉의 요정도 우리 계획에서는 최하급이었다는 거지. 하급 슬라임 공격 한 번에 죽을 최하급! 그런데 봐봐. 지금은 와이번이랑 불사조도 무찔렀잖아.”
10만큼의 힘을 기대했는데 +a가 생겨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 +a가 [무한환생]을 이길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느냐는 다른 이야기긴 하지만.
“그래도 등급이 상승해서 강해진 전생들이 적들을 많이 쓰러뜨려 주면 우리가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거지!”
그건 좋은 소식이지만.
서준이 침음성을 흘렸다.
“등급이 상승한 능력은 별로 없을 텐데…….”
10개도 채 안 될 거다.
게다가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처럼 최하급에서 중하급으로 등급이 많이 상승한 능력은 아예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겁니다.”
“맞아. 한 단계 높은 등급이 얼마나 많은 차이를 만들어내는데.”
겨우 한 단계.
그러나 그건 고양이가 호랑이로 변할 수 없는 것처럼 절대 쉽게 바꿀 수 없는 ‘격’이었다.
‘그래도 아쉽네.’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많은 능력들의 등급을 상승시켜 보려고 노력해 볼걸.
하다못해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을 최상급으로 만들어 둘 걸 그랬다.
혼자서는 힘들었겠지만, 정령의 나무가 두 팔을 걷고(팔은 없지만) 기꺼이 도와줬을 텐데.
‘아.’
정령의 나무.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매번 뜬금없는 순간에 나타나 등급을 상승시키던 게 참 약이 올랐었는데.‘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쓰게 웃은 서준은 이내 마음속으로 진심을 담아 정령의 나무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정령의 나무가 아니었으면 [(선)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연결]는 계속 최하급에 머물러 있었을 테니까.
‘정말 고마워.’
어쩐지 ‘역시 음악이 세상을 구한다니까!’ 하고 어깨를 으쓱이는(어깨는 없지만) 정령의 나무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